전직 은행원이었던 B씨(38)는 지난 98년 대대적인 구조조정 과정에서 명예퇴직을 했다. 그후 이런 저런 일을 하던 B씨는 지난해 계약직으로 들어오지 않겠느냐는 은행측의 연락을 받고 기꺼이 재입사했다. 비록 연봉은 줄었지만 예전과 같은 ‘정상적인’ 생활로 돌아갈 것을 기대했던 그는 그러나 왠지 ‘물 위에 뜬 기름’ 같은 기분을 느껴야 했다.
“은행 전체에 업적고과제가 도입돼 분위기가 무척 경쟁적이었다. 자료도 서로 보여주지 않고 심지어 남의 고객을 가로채는 일도 벌어졌다. 나같은 사람은 ‘돈 벌러 나온 사람’으로 취급하는 분위기였다.”
결국 그는 재입사 석달만에 다시 사표를 썼다. 그와 함께 재입사했던 동료 중 절반이 은행을 떠났다.
임금 정규직의 89%까지 벌어져
증권사에서 5년간 근무하던 여성창구직원 C씨(30)도 지난해 구조조정 과정에서 명예퇴직했다. 당시 명예퇴직자의 90%가 여직원이었다.
C씨는 최근 종전 월급의 60% 정도를 받기로 하고 계약직 사원으로 재입사했다. 그러나 매사에 흥이 나지 않는다. “전과 똑같은 일을 하면서도 적은 돈을 받으니 의욕이 생기지 않는다. 게다가 언제 잘릴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회사에 대해 애정도 생기지 않고 불안하기 짝이 없다”고 말한다.
동료들과의 유대감도 예전 같지 않다. “자격지심 때문인지 모르지만, 동료들은 왠지 다른 세상을 사는 사람들 같다”는 C씨는 그러다보니 “내 일만 하겠다”는 이기적인 태도를 가지지 않을 수 없다고 토로한다.
종합병원에서 의무기록사로 일하는 A씨(25)의 경우는 비정규직 직원에 대한 사용자의 착취가 어디까지 이루어질 수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 지난 3년간 1년 단위 계약직으로 일해온 그는 얼마 전 병원측으로부터 자신의 신분을 파견직으로 바꾸겠다는 통보를 받았다. 그 결과 업무는 전과 같은데 월급은 70~80%로 줄어들고 휴가도 없어졌다.
그의 신분이 갑자기 바뀌게 된 계기는 엉뚱하게도 노동부가 벌인 실태조사 때문. 병원측이 계약직에도 해당되는 4대 보험에 가입하지 않아 노동관계법 위반으로 적발되자 병원측에서 아예 그의 신분을 파견직으로 강등해 버린 것. 같은 처우를 당한 동료는 발끈해 사표를 내버렸지만, 딱히 대안이 없는 그는 출근을 계속하고 있다.
제레미 리프킨은 일찍이 저서 ‘노동의 종말’에서 골드칼라의 등장과 대부분의 노동자의 몰락을 예견 했지만, 이제 이 예언은 한국의 고용현장에서도 늘어만 가는 계약직과 임시직을 중심으로 현실화되는 양상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99년 11월 전체 임금근로자 1311만2000명 중 상용근로자(정규직)는 615만9000명이며 나머지는 비정규직(임시직 440만4000명, 일용직 254만9000명)이다. 93년 전체 임금근로자 중 58%였던 정규직의 비중이 99년 3월 49.5%로, 다시 99년 11월 통계에서는 47%까지 줄어든 것(표 참조). 이를 역으로 보자면 비정규직의 비율은 93년 42%에서 99년 11월 53%로 늘었다는 얘기가 된다.
‘계약직’이라고 하면 전혀 다른 모습이 떠오르기도 한다. 요즘 매스컴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는 ‘억대 연봉 계약직’들이 바로 그들. 그러나 그처럼 화려한 계약직들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대부분의 샐러리맨들은 변화의 와중에서 불완전 고용상태로 내몰리고 있다.
실제로 “비정규직화하는 사람의 80~90%는 고용조건이 악화된다”는 게 한국노동연구원 박우성연구위원의 분석. 이들 비정규직은 저임금과 고용불안에 시달리며 신빈민층을 형성한다. 특히 여성의 비정규직화와 저임금화가 두드러진다. 최근 이화여대 조순경교수(여성학)가 서울지역 12개 시중은행 3급 이하 은행원 348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비정규직의 임금수준이 정규직의 41%를 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각종 수당과 복리후생비 등을 모두 계산하면 격차는 최대 89%까지 벌어졌다.
특히 IMF 사태 이후 사회에 진출한 사람들 대부분은 계약직 신분이다. 김농주 연세대취업담당관은 “이들 사회 초년병은 단지 늦게 태어났다는 이유 때문에 계약직을 감수해야 하는 스스로를 ‘저주받은 세대’라 부른다”고 소개한다.
지난 98년말 모 대학병원에 수습사원으로 합격한 D씨의 경우는 더 기막히다. 병원측이 신입사원 내정자로 20명을 뽑아놓고는 결원이 생길 때 수시로 뽑아쓰는 인력풀로 활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 “채용된 지 3개월만에 그만 나오라고 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같은 자리에 다른 내정자를 불러다 쓰고 있었다. 말하자면 수습기간을 채울 때까지만 싼 임금으로 사람을 쓴 셈이다.”
이같은 계약직들은 노동시장 유연화의 산물이다. 짧게는 1년, 길게는 2~3년마다 고용계약을 갱신하는 계약직 사원은 회사에 별로 부담이 되지 않고 인력 집계에도 잡히지 않는다. “구조조정을 잘해 사람을 줄인 것으로 발표되는 기업들 대다수가 분사나 기존 사원을 계약직으로 돌림으로써 통계상의 숫자를 줄인 케이스”라는 게 삼성경제연구소 강우란박사의 지적이다.
물론 형편이 좋은 회사의 경우 계약직 전환 과정에서 얼마간의 인센티브를 주기도 하지만 그렇지 않다 해도 사원들 입장에서는 속수무책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지난해 말 50여개 사업장의 비정규직 고용실태를 조사한 한국노동연구원 산하 실업대책 모니터링센터 신정완 총괄조정팀장은 “전체 조사대상 사업장에서 근로기준법이 제대로 적용되는 곳은 한 군데도 없었다”고 밝혔다. “특히 근로기준법상의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이 계약직과 임시직에서는 전혀 적용되지 않는다”고 전문가들은 한결같이 지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우성연구위원은 “계약직이나 임시직의 증가는 피할 수 없는 추세가 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아직도 한국 기업 대부분이 고용의 유연성을 위해서는 사원 100명 중 20~30명은 못견디고 나가도 좋다는 태도를 보인다”는 것.
삼성경제연구소 강우란박사는 이를 ‘인재 관리의 이원화 현상’으로 설명한다. 요즘 대기업들의 가장 큰 과제는 회사에 도움되는 인재들을 어떻게 붙잡는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들을 붙잡아놓기 위해 스톡옵션 재택근무 성과급 등 각종 메리트가 제공된다. 반면 여기 포함되지 않는 인력들은 비정규직화하거나 분사, 아웃소싱 형태로 관리대상에서 제외시킨다는 것이다.
계약직은 기업에 이익만을 가져다주는 존재일까. “비정규직을 활용하는 데는 잦은 이직으로 인한 교육훈련이나 기술 축적의 장애, 낮은 생산성, 정규직과의 불공정함으로 인한 노사갈등, 법적 문제 등의 비용이 발생한다”는 게 박우성연구위원의 분석이다. 특히 팀워크나 집단생산성 측면에서 계약직은 취약할 수밖에 없다고 박연구위원은 말한다.
눈을 사회 전체로 돌리면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상지대 김연명교수(사회복지학)는 “비정규직의 열악한 근로조건은 근로자 개인의 좌절과 불만뿐 아니라 저소득층의 확산과 임금불평등의 확대라는 문제를 낳는다”고 지적한다. 기업은 유능한 인력만을 책임지려 하고 나머지는 정부 사이드에 떠넘기는 식으로 갈 경우 고용불안 문제는 결국 정부의 재정부담으로 연결되고 종국적으로는 기업에도 주름살을 미칠 것이란 얘기다.
어찌됐건 경쟁력만이 강조되는 현실에서, 임시직 계약직 등의 비정규직들은 더욱 늘어날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은행 전체에 업적고과제가 도입돼 분위기가 무척 경쟁적이었다. 자료도 서로 보여주지 않고 심지어 남의 고객을 가로채는 일도 벌어졌다. 나같은 사람은 ‘돈 벌러 나온 사람’으로 취급하는 분위기였다.”
결국 그는 재입사 석달만에 다시 사표를 썼다. 그와 함께 재입사했던 동료 중 절반이 은행을 떠났다.
임금 정규직의 89%까지 벌어져
증권사에서 5년간 근무하던 여성창구직원 C씨(30)도 지난해 구조조정 과정에서 명예퇴직했다. 당시 명예퇴직자의 90%가 여직원이었다.
C씨는 최근 종전 월급의 60% 정도를 받기로 하고 계약직 사원으로 재입사했다. 그러나 매사에 흥이 나지 않는다. “전과 똑같은 일을 하면서도 적은 돈을 받으니 의욕이 생기지 않는다. 게다가 언제 잘릴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회사에 대해 애정도 생기지 않고 불안하기 짝이 없다”고 말한다.
동료들과의 유대감도 예전 같지 않다. “자격지심 때문인지 모르지만, 동료들은 왠지 다른 세상을 사는 사람들 같다”는 C씨는 그러다보니 “내 일만 하겠다”는 이기적인 태도를 가지지 않을 수 없다고 토로한다.
종합병원에서 의무기록사로 일하는 A씨(25)의 경우는 비정규직 직원에 대한 사용자의 착취가 어디까지 이루어질 수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 지난 3년간 1년 단위 계약직으로 일해온 그는 얼마 전 병원측으로부터 자신의 신분을 파견직으로 바꾸겠다는 통보를 받았다. 그 결과 업무는 전과 같은데 월급은 70~80%로 줄어들고 휴가도 없어졌다.
그의 신분이 갑자기 바뀌게 된 계기는 엉뚱하게도 노동부가 벌인 실태조사 때문. 병원측이 계약직에도 해당되는 4대 보험에 가입하지 않아 노동관계법 위반으로 적발되자 병원측에서 아예 그의 신분을 파견직으로 강등해 버린 것. 같은 처우를 당한 동료는 발끈해 사표를 내버렸지만, 딱히 대안이 없는 그는 출근을 계속하고 있다.
제레미 리프킨은 일찍이 저서 ‘노동의 종말’에서 골드칼라의 등장과 대부분의 노동자의 몰락을 예견 했지만, 이제 이 예언은 한국의 고용현장에서도 늘어만 가는 계약직과 임시직을 중심으로 현실화되는 양상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99년 11월 전체 임금근로자 1311만2000명 중 상용근로자(정규직)는 615만9000명이며 나머지는 비정규직(임시직 440만4000명, 일용직 254만9000명)이다. 93년 전체 임금근로자 중 58%였던 정규직의 비중이 99년 3월 49.5%로, 다시 99년 11월 통계에서는 47%까지 줄어든 것(표 참조). 이를 역으로 보자면 비정규직의 비율은 93년 42%에서 99년 11월 53%로 늘었다는 얘기가 된다.
‘계약직’이라고 하면 전혀 다른 모습이 떠오르기도 한다. 요즘 매스컴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는 ‘억대 연봉 계약직’들이 바로 그들. 그러나 그처럼 화려한 계약직들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대부분의 샐러리맨들은 변화의 와중에서 불완전 고용상태로 내몰리고 있다.
실제로 “비정규직화하는 사람의 80~90%는 고용조건이 악화된다”는 게 한국노동연구원 박우성연구위원의 분석. 이들 비정규직은 저임금과 고용불안에 시달리며 신빈민층을 형성한다. 특히 여성의 비정규직화와 저임금화가 두드러진다. 최근 이화여대 조순경교수(여성학)가 서울지역 12개 시중은행 3급 이하 은행원 348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비정규직의 임금수준이 정규직의 41%를 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각종 수당과 복리후생비 등을 모두 계산하면 격차는 최대 89%까지 벌어졌다.
특히 IMF 사태 이후 사회에 진출한 사람들 대부분은 계약직 신분이다. 김농주 연세대취업담당관은 “이들 사회 초년병은 단지 늦게 태어났다는 이유 때문에 계약직을 감수해야 하는 스스로를 ‘저주받은 세대’라 부른다”고 소개한다.
지난 98년말 모 대학병원에 수습사원으로 합격한 D씨의 경우는 더 기막히다. 병원측이 신입사원 내정자로 20명을 뽑아놓고는 결원이 생길 때 수시로 뽑아쓰는 인력풀로 활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 “채용된 지 3개월만에 그만 나오라고 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같은 자리에 다른 내정자를 불러다 쓰고 있었다. 말하자면 수습기간을 채울 때까지만 싼 임금으로 사람을 쓴 셈이다.”
이같은 계약직들은 노동시장 유연화의 산물이다. 짧게는 1년, 길게는 2~3년마다 고용계약을 갱신하는 계약직 사원은 회사에 별로 부담이 되지 않고 인력 집계에도 잡히지 않는다. “구조조정을 잘해 사람을 줄인 것으로 발표되는 기업들 대다수가 분사나 기존 사원을 계약직으로 돌림으로써 통계상의 숫자를 줄인 케이스”라는 게 삼성경제연구소 강우란박사의 지적이다.
물론 형편이 좋은 회사의 경우 계약직 전환 과정에서 얼마간의 인센티브를 주기도 하지만 그렇지 않다 해도 사원들 입장에서는 속수무책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지난해 말 50여개 사업장의 비정규직 고용실태를 조사한 한국노동연구원 산하 실업대책 모니터링센터 신정완 총괄조정팀장은 “전체 조사대상 사업장에서 근로기준법이 제대로 적용되는 곳은 한 군데도 없었다”고 밝혔다. “특히 근로기준법상의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이 계약직과 임시직에서는 전혀 적용되지 않는다”고 전문가들은 한결같이 지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우성연구위원은 “계약직이나 임시직의 증가는 피할 수 없는 추세가 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아직도 한국 기업 대부분이 고용의 유연성을 위해서는 사원 100명 중 20~30명은 못견디고 나가도 좋다는 태도를 보인다”는 것.
삼성경제연구소 강우란박사는 이를 ‘인재 관리의 이원화 현상’으로 설명한다. 요즘 대기업들의 가장 큰 과제는 회사에 도움되는 인재들을 어떻게 붙잡는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들을 붙잡아놓기 위해 스톡옵션 재택근무 성과급 등 각종 메리트가 제공된다. 반면 여기 포함되지 않는 인력들은 비정규직화하거나 분사, 아웃소싱 형태로 관리대상에서 제외시킨다는 것이다.
계약직은 기업에 이익만을 가져다주는 존재일까. “비정규직을 활용하는 데는 잦은 이직으로 인한 교육훈련이나 기술 축적의 장애, 낮은 생산성, 정규직과의 불공정함으로 인한 노사갈등, 법적 문제 등의 비용이 발생한다”는 게 박우성연구위원의 분석이다. 특히 팀워크나 집단생산성 측면에서 계약직은 취약할 수밖에 없다고 박연구위원은 말한다.
눈을 사회 전체로 돌리면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상지대 김연명교수(사회복지학)는 “비정규직의 열악한 근로조건은 근로자 개인의 좌절과 불만뿐 아니라 저소득층의 확산과 임금불평등의 확대라는 문제를 낳는다”고 지적한다. 기업은 유능한 인력만을 책임지려 하고 나머지는 정부 사이드에 떠넘기는 식으로 갈 경우 고용불안 문제는 결국 정부의 재정부담으로 연결되고 종국적으로는 기업에도 주름살을 미칠 것이란 얘기다.
어찌됐건 경쟁력만이 강조되는 현실에서, 임시직 계약직 등의 비정규직들은 더욱 늘어날 수밖에 없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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