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 밝은 밤 서자로 태어난 신세를 한탄하던 길동에게 홍판서가 말한다. ‘지금 이 시간부터 내 너에게 호부호형을 허하노라.’
홍판서가 이날 밤 갑자기 길동에게 호부호형을 허한 이유는 무엇일까. 서자에게 호부호형을 허락하는 것이 크게 흠이 되지 않는 시대가 되었거나 길동의 재능이 서자의 것으로 두기엔 ‘위험할 만큼’ 뛰어났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아트선재센터(02`-`733`-`8945) 지하주차장에서 열리고 있는 ‘호부호형’전은 미술에서 적자와 서자가 어떤 의미인지 묻는다. 굳이 따지자면 이 전시는 원래 99독립예술제의 일환으로 기획됐다가 취소됐으므로 ‘인디’적이고 ‘서자’적이어야 할 것이다.
“미술 자체가 언더이고 인디인 시대입니다. 지금 적자와 서자를 따지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전시를 기획한 최금수씨의 말이다.
그는 “학교 학예회 수준의 미술전”이 ‘인디’나 ‘언더’라는 이름으로 불려질 수 없다는 생각에서 이번 전시 참여 기준을 젊다거나, 미술운동을 한다거나 하는 작가적 조건과 상관없이 “일상의 고정관념을 깨부수려 노력하는 이미지”로 결정했다. 그래서 이종빈씨처럼 ‘제도권’에서 활동하는 작가가 있는가 하면, 연영석씨처럼 운동권으로 분류되는 작가도 포함돼 있다. 미술의 ‘서자’임을 자처하는 이런 이미지들이 주류 문화를 비틀어 ‘형을 형이라 부르고 아비를 아비라 부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다른 장르와 함께 열리는 독립예술제의 하나로 기획됐기 때문에 ‘호부호형’전의 이미지들은 다른 장르, 즉 독립영화나 언더그라운드 음악과 정서적으로 공유한다. 그것은 언더가 썩 잘 어울리는 세기말적 감상이다. 지하주차장이라는 전시 공간은 이런 ‘신파’가 머물기에 딱 좋아보인다.
전시장 입구의 ‘붓다, 예수 서울에 입성하시다’(이흥덕)가 새로운 세기에 대한 근심과 희망을 보여주고 나면 이성과 미술제도에 대한 독설을 담은 작품들이 시끄럽게 다가온다.
미술사의 거장들과 작품들을 기형적으로 변형시켜 한바탕 ‘쇼’로 바꿔놓은 홍지연의 ‘20세기 패션쇼’가 그렇고 개의 머리와 사람의 몸을 붙여놓은 권오상의 ‘미술이 가지는 절대적 권위와 숭배에 관한 280장의 진술서’가 또 그렇다. 성기를 은밀하게 바라보는 시점 때문에 ‘뭘봐’라고 말하는 듯한 최경태의 ‘포르노그래피’, 안창홍의 누드화 ‘여장남자`-`나의 육체도 너희들처럼 아름답다’는 성에 대한 솔직한 반응이다. 최근 몇 년 동안 테크놀로지가 만들어내는 희한한 이미지들에 홀렸던 두 눈이 시큼하다. 박은영의 인물이 웃으며 대답하는 것 같다. ‘난 괜찮아’. 1월30일까지.
홍판서가 이날 밤 갑자기 길동에게 호부호형을 허한 이유는 무엇일까. 서자에게 호부호형을 허락하는 것이 크게 흠이 되지 않는 시대가 되었거나 길동의 재능이 서자의 것으로 두기엔 ‘위험할 만큼’ 뛰어났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아트선재센터(02`-`733`-`8945) 지하주차장에서 열리고 있는 ‘호부호형’전은 미술에서 적자와 서자가 어떤 의미인지 묻는다. 굳이 따지자면 이 전시는 원래 99독립예술제의 일환으로 기획됐다가 취소됐으므로 ‘인디’적이고 ‘서자’적이어야 할 것이다.
“미술 자체가 언더이고 인디인 시대입니다. 지금 적자와 서자를 따지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전시를 기획한 최금수씨의 말이다.
그는 “학교 학예회 수준의 미술전”이 ‘인디’나 ‘언더’라는 이름으로 불려질 수 없다는 생각에서 이번 전시 참여 기준을 젊다거나, 미술운동을 한다거나 하는 작가적 조건과 상관없이 “일상의 고정관념을 깨부수려 노력하는 이미지”로 결정했다. 그래서 이종빈씨처럼 ‘제도권’에서 활동하는 작가가 있는가 하면, 연영석씨처럼 운동권으로 분류되는 작가도 포함돼 있다. 미술의 ‘서자’임을 자처하는 이런 이미지들이 주류 문화를 비틀어 ‘형을 형이라 부르고 아비를 아비라 부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다른 장르와 함께 열리는 독립예술제의 하나로 기획됐기 때문에 ‘호부호형’전의 이미지들은 다른 장르, 즉 독립영화나 언더그라운드 음악과 정서적으로 공유한다. 그것은 언더가 썩 잘 어울리는 세기말적 감상이다. 지하주차장이라는 전시 공간은 이런 ‘신파’가 머물기에 딱 좋아보인다.
전시장 입구의 ‘붓다, 예수 서울에 입성하시다’(이흥덕)가 새로운 세기에 대한 근심과 희망을 보여주고 나면 이성과 미술제도에 대한 독설을 담은 작품들이 시끄럽게 다가온다.
미술사의 거장들과 작품들을 기형적으로 변형시켜 한바탕 ‘쇼’로 바꿔놓은 홍지연의 ‘20세기 패션쇼’가 그렇고 개의 머리와 사람의 몸을 붙여놓은 권오상의 ‘미술이 가지는 절대적 권위와 숭배에 관한 280장의 진술서’가 또 그렇다. 성기를 은밀하게 바라보는 시점 때문에 ‘뭘봐’라고 말하는 듯한 최경태의 ‘포르노그래피’, 안창홍의 누드화 ‘여장남자`-`나의 육체도 너희들처럼 아름답다’는 성에 대한 솔직한 반응이다. 최근 몇 년 동안 테크놀로지가 만들어내는 희한한 이미지들에 홀렸던 두 눈이 시큼하다. 박은영의 인물이 웃으며 대답하는 것 같다. ‘난 괜찮아’. 1월30일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