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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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상의 철녀, 조훈현도 넘길까

‘최강’ 이창호 꺾고 국수전 도전자 획득 … 수읽기·전투력 출중

  • 입력2006-06-15 11:3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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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상의 철녀, 조훈현도 넘길까
    “운이 좋았다고 생각합니다. 어쩌다 한번이지요…. 이창호 9단은 단연 넘버 원입니다.”

    1월4일 한국기원에서 벌어진 제43기 국수전 도전자결정전에서 세계최강 이창호 9단을 흑 불계로 물리치고 도전권을 획득한 루이 나이웨이(芮乃偉·37) 9단은 한껏 상기된 얼굴이었다.

    거대한 대마가 잡히며 이창호 9단이 무너진 것은 예상 외였다. 여자 도전자의 탄생은 한국바둑 사상 처음이었고, 외국인(루이9단은 중국인이다)이 국내기전 도전무대에 나선 것도 처음 있는 일이다. 그것도 국내 최고의 전통을 지닌 국수(國手)전에. 그래서 한국바둑은 새 천년 벽두부터 술렁이기 시작했다.

    루이9단은 여류기사들의 세계대회인 보해컵에 네 번 출전해 세 번의 우승을 휩쓴 세계에서 가장 센 여류기사다. ‘반상의 마녀’ ‘철녀’(鐵女)란 별명에서 알 수 있듯 여자라고 하기에는 너무도 무지막지한(?) 주먹을 휘두르는 하드펀처. ‘대마 킬러’를 자처하는 웬만한 남자기사라도 그녀 앞에서는 명함도 못내민다.

    아직은 여류바둑이 온실 속의 ‘화초 바둑’ 취급을 받는 때에 상당 수준의 수읽기와 전투력을 지닌 아마조네스의 여전사가 등장했으니 남자기사들이 비상을 걸 만하다. 일본바둑계가 그녀를 받아들이지 않은 이유도 실은 ‘중국기원과의 정치적 마찰’을 우려한 것보다 너무도 출중한 그녀의 실력 때문이었다는 얘기도 들린다.



    아마추어 초단 정도 실력인 아버지로부터 어릴 때 바둑을 배웠던 그녀가 본격적으로 바둑에 매진한 것은 고등학교를 졸업할 무렵.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은 여고생의 경우 졸업 후 의무적으로 일정 기간 농촌봉사활동을 하게 되어 있는데, 국가적으로 바둑을 장려하던 중국정부는 바둑특기를 가진 학생은 열외시켜 주었다. 고단한 농촌봉사활동을 면제받기 위해 들어선 바둑의 길이 운명을 결정지은 것이다.

    그녀는 89년 지금의 남편인 장주주(江鑄久·38) 9단의 뒤를 따라 조국을 등졌다. 당시 장주주 9단은 중-일 슈퍼대항전에서 5연승 기록을 세운 신진 유망주였으나 톈안문 민주화운동에 가담한 전력이 문제돼 중국기원 실력자의 눈 밖에 나자 미국으로 망명했다. 그녀도 장9단의 연인이라는 이유로 외국출전 기회가 부당하게 종종 박탈당하자 일본에 주저앉아 돌아가지 않았다. 반상의 로미오와 줄리엣으로 동정을 사던 두 사람은 92년 제2회 응씨배 중에 결혼식을 올렸으나 한동안 견우와 직녀처럼 떨어져 살아야 했고, 99년 4월 한국기원 객원기사로 정착하기까지 10여년간 유랑생활을 해야 했다.

    한국에 정착하자마자 예상했던 대로 루이9단은 어린애 손목 비틀듯 한국의 여류기사들을 꺾고 여류국수를 차지했으며 불과 9개월만에 3개의 본선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더군다나 99년 통산 33승6패, 승률 84.62%의 전적으로 도맡아 놓고 승률 1위를 지켜오던 이창호 9단을 끌어내리고 첫해부터 승률 1위에 오르는 놀라운 행보를 보였다. 그것도 양에 차지 않았는지 이창호 9단을 국수전 도전무대에서조차 밀어냈으니….

    이창호 9단은 남자를 대표하는 세계 넘버 원. 루이9단은 세계 여성 넘버 원. 당연히 두 기사의 성대결은 관심을 모을 수밖에 없는데, 이번에 루이9단이 승리를 거둠으로써 전적상으론 여성인 루이9단이 2승1패로 앞서고 있다. 앞서 두 기사는 92년과 96년 응씨배에서 한 차례씩 마주쳐 1승1패를 거둔 바 있다. 이창호 9단은 92년 일본에서 처음 루이9단에게 지자 아버지 이재룡씨에게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여자에게도 지다니… 은퇴해야 할 것 같습니다.”

    루이9단이 과연 조훈현 국수마저 꺾고 여류국수에 이어 국수 타이틀도 차지, 명실상부한 ‘통합 국수’ 에 오를지 하회가 못내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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