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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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담

“기승전 책을 읽자”

철학자 최진석, 개그맨 고명환의 유쾌하고 철학적인 만남

  • 송화선 기자 spring@donga.com

    입력2017-12-12 16:2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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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철학자인 최진석 서강대 교수는 1959년 전남 신안에서 태어났다. 개그맨 고명환 씨(메밀요리 전문점 ‘메밀꽃이 피었습니다’ 대표)는 1972년 경북 상주 생이다. 직업도, 세대도, 출신 지역도 전혀 다른 두 사람이 한 테이블에 마주 앉은 건 책 때문이다. 

    고 대표는 최근 ‘책 읽고 매출의 신이 되다’라는 제목의 저서를 펴내며 ‘독서광’이라는 명성을 얻었다. 출간 당시 ‘주간동아’와 만난 자리에서 그는 “사업에 잇달아 실패하고 방송 일도 잘 되지 않을 때 독서를 시작했다. 1900권 넘게 책을 읽으며 인생을 새롭게 보는 지혜를 얻었고, 그 내용을 사업에 적용하자 경제적 성공과 행복이 따라왔다”고 말했다(주간동아 1111호 ‘내 인생을 바꾼 독서의 힘’ 기사 참조).

    유쾌한 철학자, 진지한 개그맨

    최진석 서강대 철학과 교수. 고명환 ‘메밀꽃이 피었습니다’ 대표.(왼쪽부터)[김도균]

    최진석 서강대 철학과 교수. 고명환 ‘메밀꽃이 피었습니다’ 대표.(왼쪽부터)[김도균]

    바로 이 인터뷰를 최 교수가 읽은 게 이색 만남의 시작이었다. 그동안 여러 저서와 강연을 통해 독서의 중요성을 강조해온 최 교수는 고 대표의 이야기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고 한다. 주간동아 기사를 개인 페이스북에 소개하면서 ‘책을 읽읍시다. 독서는 가장 내실 있는 수련입니다’라는 글을 덧붙이기도 했다. 평소 자신에게 큰 영향을 끼친 책으로 최 교수의 ‘인간이 그리는 무늬’를 꼽아온 고 대표는 최 교수의 관심에 뛸 듯이 기뻐했다. 12월 1일, 그렇게 서로에게 호감과 호기심을 갖고 있던 두 사람이 서울 충정로 한 카페에서 처음 만났다. 2시간을 예정하고 시작한 철학자와 개그맨의 대화는 4시간 넘게 이어졌다. 

    책으로 시작해 책으로 이어지다 책으로 끝난 긴 이야기 속에서 두 사람이 의견 차이를 보인 주제는 딱 한 가지, 고 대표의 호칭뿐이었다. 최 교수는 고 대표를 줄곧 ‘대표님’ 또는 ‘선생님’이라 불렀고, ‘‘님’자 만이라도 빼달라’는 고 대표의 부탁도 들어주지 않았다. 고 대표에 대한 최 교수의 말 마디마디에서 책 읽기를 즐기는 사람에 대한 존중과 존경이 느껴졌다.

    최진석 프랑스 작가 파스칼 키냐르는 ‘독서는 마법의 양탄자여서 내가 시간과 공간을 넘나들 수 있게 해준다’고 했습니다. 고명환 대표님 인터뷰를 읽으며 문득 그 얘기가 떠올랐어요. ‘마법의 양탄자’에 올라타려고 애쓰는 일은 곧 수련이자 공부일 텐데, 고 대표님은 그 과정을 통해 책 읽는 일의 힘과 가치를 잘 보여줬습니다. 꼭 한번 만나고 싶었습니다.



    고명환 ‘책 읽기가 마법의 양탄자’라는 말씀은 정말 맞는 것 같습니다. 저를 상상도 못 한 곳, 바로 이 자리에 데려다줬으니까요. 저는 교수님 책 ‘인간이 그리는 무늬’를 참 열심히 읽었습니다. 학교 다닐 때 국사 공부하듯 밑줄 치고 여백에 메모도 해가며 읽고 또 읽었어요. 이후 4년 넘게 그 책이 제게 준 감동을 여기저기 얘기하고 다녔습니다. 하지만 교수님을 직접 뵐 수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죠. 제가 책을 쓴 것도 그렇습니다. 몇 년 동안 책 읽기에 푹 빠져 지내면서도 글 쓰는 일은 엄두를 못 냈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그동안 읽어온 책 얘기가 제 안에서 저절로 흘러나왔고, 어느 순간 돌아보니 제가 저자가 돼 있었어요. ‘책을 읽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 이뤄진다’는 걸 요즘 실감합니다. 앞으로 주위 사람들에게 더 열심히 ‘책을 읽으라’고 말하고 다닐 생각입니다.

    최진석 저는 그 얘기를 벌써 몇 년째 틈날 때마다 하고 있습니다만, 저 같은 철학자의 말에 아무도 귀기울여주지 않더군요.(웃음) 고 대표님처럼 인기 있고 많이 알려진 분이 책 얘기를 하시는 게 훨씬 영향력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늘 뵙고 그 부탁을 드리려 했어요. 저는 요즘 한국 사회를 보면서 ‘우리가 여기서 이렇게 멈출 수는 없지 않나’라는 생각을 자주 합니다. 이 걱정 앞에는 ‘지금까지 이렇게 잘해왔는데’라는 전제가 있습니다. 우리는 후진국에서 출발해 단기간에 경제규모 세계 11위 국가(2016년 국내총생산(GDP) 기준)가 될 만큼 성장했죠. 하지만 이제는 그동안 이뤄온 ‘직선적 발전’을 이어가기 힘든 상황입니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중진국과 선진국을 가르는 투명한 장벽이 있죠. 지금 우리나라가 그 앞에 와 있어요. 이 한계를 돌파하려면 책 읽는 문화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백범 김구 선생이 쓰신 ‘나의 소원’이라는 글에는 ‘나는 우리나라가 남의 것을 모방하는 나라가 되지 말고, 높고 새로운 문화의 근원이 되고 목표가 되고 모범이 되기를 원한다’는 대목이 있습니다. 이런 나라가 바로 선진국이죠. 이미 짜인 판을 벗어나 새로운 판을 짜고, 남이 세운 목표나 모범을 따라가는 데서 벗어나 스스로 목표와 모범이 될 수 있는 나라. 국민이 책을 읽어야 이런 나라를 만들 수 있습니다.

    한계를 돌파하게 하는 힘

    [김도균]

    [김도균]

    고명환 교수님 책 ‘탁월한 사유의 시선’에도 같은 내용이 있죠. ‘우리가 사용하는 거의 모든 것은 다른 나라에서 만들기 시작한 것을 우리가 따라 다시 만든 것이다. 우리는 전기밥솥을 잘 만들어 수출까지 하지만 전기밥솥이라는 것 자체를 시작하지는 못했다. 자동차 또한 잘 만들어 수출하지만 자동차라는 것 자체를 시작하지는 못했다. 무엇인가 새로 만들면서 이루는 일정한 범위를 장르라고 한다. 선진국은 바로 이 장르를 만든다.’ 이 대목을 읽고 큰 감명을 받았어요. 개그맨 후배들한테 “너희는 지금 제네시스, 쿠쿠, 카스를 만들고 있다. 그걸 넘어서 자동차, 전기밥솥, 맥주를 만들 수 있어야 한다”고도 했고요. 애들이 “무슨 말씀인지 알겠는데, 그걸 어떻게 만들죠?” 하더군요. 제가 답했어요. “책을 읽어라.” 

    고 대표는 이렇게 대화 도중 최 교수의 책을 수시로 인용했다. 최 교수의 책은 세상에 대한 통찰을 담고 있을 뿐 아니라, 독자들이 그 책에서 출발해 점점 더 많은 책을 읽는 방향으로 나아가게 만드는 힘도 갖고 있다는 게 고 대표 생각이다. 예를 들어 최 교수는 ‘탁월한 사유의 시선’에서 ‘그동안 우리나라 사람들은 다른 사람이 한 사유의 결과를 숙지하고 내면화하면서 스스로 생각한다고 착각해왔다. 이제는 훈고(訓詁)에서 벗어나 창의(創意)로 비약해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과는 다른 차원의 시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고 대표는 이 부분을 읽은 뒤 자신의 ‘사유의 시선’을 고민하게 됐고, 이를 높이려면 그동안 소홀히 했던 분야의 책을 읽어야겠다는 생각도 하게 됐다고 한다. 이후 고 대표는 ‘사기열전’ ‘칼 세이건의 말’ 등 역사와 우주에 관한 책 목록을 만들어 꾸준히 읽어가는 중이다. 그의 휴대전화에는 ‘완독’한 책을 들고 찍은 ‘셀카’가 수없이 저장돼 있었다.

    고명환 힘들어도 억지로 버티면서 읽다 보면 마침내 마지막 페이지가 나와요. 그것까지 읽어내려 간 뒤 책을 덮을 때면 ‘아, 내가 이만큼 자랐구나’ 싶어서 참 좋죠. 그런 감정을 알게 된 건 교수님 덕이라, 오늘 만나 뵈면 꼭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었습니다.

    최진석 그게 얼마나 고급스러운 느낌이에요, 그렇죠?

    최 교수가 빙긋 웃으며 던진 농담에 내내 진지하던 개그맨이 큰 웃음을 터뜨렸다.

    고명환 네, 정말 고급스럽습니다.



    최진석 제가 대학에서 철학을 가르치니까 원래부터 공부 좋아하고 책 좋아하는 사람일 거라고 생각하는 분이 많아요. 그런데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저는 ‘술 먹을래, 책 볼래’ 하면 늘 술이 먼저였어요. 40대 후반, 50대가 되고서야 비로소 책이 재밌어졌죠. 내가 고 대표님보다 오히려 늦된 사람인 겁니다. 그래서 책 한 권 읽어내는 게 쉬운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잘 알아요. 책 한 권을 끝까지, 그것도 중간에 그만두고 싶은 마음과 싸워가며 읽어내는 거, 그게 보통 내공이 필요한 일이 아니거든요. 그 과정에서 사고의 근력이 생기고, 끝내는 사람이 달라지죠. 저도 그렇게 변했고, 지금은 ‘술 먹을래, 책 볼래’ 하면 책을 선택합니다. 책 볼 시간 줄어드는 게 아까워 오히려 다른 것을 피하게 돼요. 철학자 하이데거가 ‘인생은 비교와 잡담 속에 망한다’고 했습니다. 비교는 나를 잃어버리는 거고, 잡담은 이미 있는 내용을 이리 붙이고 저리 붙여가며 시간을 보내는 거죠. 비교와 잡담을 멈추고 책을 읽으면 미래가 열립니다.

    최 교수의 말에 고 대표가 고개를 끄덕였다. 고 대표에 따르면 그가 운영하는 메밀국숫집은 가을부터 비수기다. 추석이 지나면 손님 수가 크게 줄어든다. 상대적으로 책 읽을 시간이 많아진다. 이를 십분 활용해 고 대표는 10월 6일부터 거의 하루에 한 권씩 책을 읽어가고 있다고 한다. 이런저런 모임에 참석해 시간을 허투루 쓰지 않으려고 아예 초저녁에 잠자리에 들고 다음 날 오전 1시에 일어나 책을 펼쳐드는 습관도 들였다. 고 대표는 “예전엔 책을 좋아하면서도 하루 종일 책만 읽은 날이면 저녁 때 ‘아, 시간을 이렇게 다 보내버렸네’ 하고 생각했다. 밖에 나가고 사람도 만나야 뭔가 일이 되는 것 같았다. 지금은 사람 만나는 것보다 책 읽는 게 더 좋다. 가끔은 ‘이러다 사업을 못 하게 되겠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며 웃었다.

    “읽고 싶은 책을 읽어라”

    고명환 대표가 밑줄 치고 메모해가며 ‘공부’한 최진석 교수의 책 ‘인간이 그리는 무늬’. 고 대표는 최 교수와 이야기를 나눈 날 이 책을 들고 와 맨 앞장에 서명을 받았다.

    고명환 대표가 밑줄 치고 메모해가며 ‘공부’한 최진석 교수의 책 ‘인간이 그리는 무늬’. 고 대표는 최 교수와 이야기를 나눈 날 이 책을 들고 와 맨 앞장에 서명을 받았다.

    최진석 세상에는 반드시 어떤 원칙대로 되는 일이 있어요. 책을 몇백 권 읽은 사람은 어떤 모습이 될 수밖에 없다는, 그런 규칙이 있죠. 내가 고 대표님 인터뷰 기사를 읽고 ‘이 분이 책을 이 정도 읽은 데다 직접 쓰기까지 했다면 분명 이런 느낌일 거다’라고 상상한 게 있어요. 오늘 보니 딱 그 모습 그대로입니다. 어떤 부분에서는 기대 이상이고요. 사람이 책을 읽으면서 다양한 흔적을 남기잖아요. 인상적인 구절에 밑줄을 긋거나, 목록을 만들거나, 독서 일기를 쓰거나. 고 대표님을 보면서 본인이 읽은 순서대로 사진을 남기는 것도 멋진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본인 독서에 대한 신뢰와 자부심이 있어야만 할 수 있는 일이죠.

    고명환 사진을 순서대로 이어서 보면 시간 흐름에 따라 제 관심사가 달라지는 게 확인됩니다. 독서 초기에는 실용적인 책 위주로 읽었는데 ‘탁월한 사유의 시선’ 다음부터는 고전, 인문학, 과학 쪽으로 방향이 확 바뀌었어요.

    최진석 바로 그겁니다. 그렇게 읽고 싶은 책을 읽어야 해요. 내가 지금 끌리는, 내 취향에 맞는 책을 읽어야 독서를 즐길 수 있죠. 우리나라 부모들은 자식한테 자신이 생각하는 좋은 책을 읽게 하려고 하는데, 그건 아주 바보 같은 짓이에요. 폭력이기도 하고요. 아이가 책을 좋아하게 하려면 여러 주제의 책을 아이 주위에 그냥 늘어놓기만 하는 게 바람직합니다. 열 개 주제의 책을 펼쳐뒀는데 아이가 그중 서너 주제의 책만 즐겨 본다면, 다음엔 그 주제에 맞는 책을 골라 또 많이 펼쳐두는 거예요. 그중 두 개에 더 관심을 보이면 다음번엔 그 주제의 책만 주고요. 그렇게 아이가 좋아하는 주제의 독서 수준을 고도로 높이는 게 중요합니다. ‘아이가 과학책은 안 읽고 판타지 소설만 읽으려 해서 고민’이라는 분들이 있죠. 그런데 판타지 소설도 좋아요. 우리나라가 문화적으로 한 단계 성장하려면 판타지가 필요합니다. 어릴 때 판타지, 동화를 많이 읽는 아이가 상상력과 창의력이 있는 사람으로 자랍니다.

    고명환 동화 말씀하시니 생각나는 게 있습니다. 제 친구인 가수 윤도현이 들려준 얘기입니다. 그 친구가 작사, 작곡을 직접 하는데, 오래전 자기 딸이 네 살 때쯤 갑자기 뭔가 벽에 부딪친 듯한 느낌이 들더래요. 곡이 잘 써지지 않고 간신히 만들어내도 마음에 들지 않아 속으로 끙끙 앓았다는 거죠. 그렇게 6개월쯤 보냈을까, 또 어느 날 갑자기 작사, 작곡이 술술 풀리더랍니다. 뭐가 달라졌나 생각해보니 그 6개월 동안 매일 집에서 아이한테 동화를 읽어줬다더군요. 그게 자기한테 돌파구가 된 거죠. 그래서 지금은 아이가 다 컸는데도 혼자 동화를 읽는다고 해요.

    최진석 그동안 동화를 딸한테 읽어준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본인이 읽은 거죠. 아, 좋네. 그런 얘기 정말 좋아요.

    최 교수는 정말 조금 들뜬 듯했다. 고 대표는 “제 주변에 이런 사례가 정말 많다. 독서의 효용을 이렇게 목격하니 ‘그래, 책을 읽어야 해’ 하는 생각을 더 하게 된다”고 화답했다.

    최진석 그러니까 동료들한테도 ‘개그 소재가 고갈되면 책을 읽어라’ ‘무슨 가게 열어야 할지 고민되면 책을 읽어라’ 하는 거고요?(웃음)

    고명환 제가 후배들한테 좀 더 ‘쎄게’ 이렇게도 말했습니다. “누군가 네게 365일 동안 책 365권을 읽으면 10억 원을 주겠다고 제안하면 책을 읽겠느냐”고요. 다들 “당연하죠, 형님” 그러더군요. 제가 다시 말했죠. “1년에 책 365권을 읽으면 10억이 아니라 100억, 1000억 원도 벌 수 있다.” 이게 정말 제 생각이에요. 제가 ‘책 읽고 매출의 신이 되다’라는 책을 쓴 것도 이 얘기를 하고 싶어서였죠. 책과 매출을 바로 연결 짓는 게 좀 부담스럽기는 했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돈의 힘이 강력하지 않습니까. ‘책 읽으면 돈도 벌 수 있다’는 얘기를 앞에 내세우면, 그것에 끌려 독서를 시작하는 사람이 많아질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정치적 판단을 넘어 자기만의 시각 갖기”

    최진석 실제로 미국에서 돈을 많이 버는 기업 대표 중 상당수가 인문학 전공자라고 합니다. 조지 소로스, 루퍼트 머독 같은 유명 CEO(최고경영자)도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했죠. 책을 많이 읽은 사람, 인문학적 통찰력이 있는 사람이 돈을 벌기로 마음먹으면 얼마든지 부자가 될 수 있다고 봐요. 책이 주는 참된 지혜는 다음에 무엇을 해야 할지 알게 해주는 거거든요. 책을 읽으면 누구나 다음을 꿈꾸게 되죠. 다만 그 목표가 점점 돈에서 벗어나는 것뿐이에요. 다른 고급스러운 즐거움을 알게 되니까, 돈에 끌려가는 삶에서 벗어나 돈을 자기 컨트롤 아래 두면서 진정 자유롭고 독립적인 삶을 살 수 있게 되죠.

    고명환 교수님의 책 ‘인간이 그리는 무늬’에도 책의 효용을 설명하는 대목에 ‘돈도 벌 수 있다’는 문장이 있죠. 그 부분을 읽고 ‘아, 책이랑 돈 얘기를 좀 같이해도 되겠구나’ 하는 자신감을 얻었어요.(웃음) 사업을 해본 제 경험에 비춰 말하자면 책은 어떻게 해야 돈을 벌 수 있는지만이 아니라, 무슨 일을 하면 돈을 잃게 되는지에 대해서도 알려줍니다. 예를 들면 ‘일이 쉽다’ ‘본사에서 다 해준다’ 같은 말만 믿고 별다른 준비 없이 프랜차이즈 업체 매장을 덜컥 내는 일 같은 것을 하면 안 된다는 사실이요. 이 정도는 책 세 권만 읽어도 알게 돼요. 책을 계속 읽고 독서 내공이 쌓이면 결국 돈을 초월하게 되는 때가 오겠지만, 독서를 시작할 때는 실용적인 측면을 염두에 두는 것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이번엔 최 교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고 대표는 이날 두 사람이 나눈 긴 대화를 “‘기승전 책을 읽자’였다”는 단 한 문장으로 정리했다. 정말 그렇게 모든 이야기가 ‘그래서 책을 읽어야 해요’ ‘정말 그렇습니다. 독서가 최고입니다’로 이어졌다. 

    최 교수와 고 대표는 이 자리에서 두 사람을 사로잡은 독서의 매력을 더 많은 사람에게 알리는 데 힘을 모으기로도 의기투합했다. 그러니 조만간 철학자와 개그맨 듀오가 대중 앞에 나서 유쾌하면서도 진지한 언변으로 ‘여러분 모두 독서의 세계로 넘어오십시오’라고 권하는 장면을 보게 될 것 같다. 이들의 이야기를 직접 듣는다면 아마 백에 아흔아홉은 ‘지금 당장 책을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 그 독서 여정의 출발점으로 삼을 수 있도록 두 사람에게 2017년 출간된 책 가운데 놓치고 지나가면 아까운 책을 추천해달라고 청했다.

    최진석 저는 이스라엘 학자 아자 가트가 쓴 ‘문명과 전쟁’을 소개하고 싶습니다. 전쟁을 매개로 인류 문명을 설명하는 책이에요. 우리나라 사람들은 많은 경우 주요한 사안에 대해 정치적이거나 윤리적인 판단을 내립니다. 내 마음에 드나 안 드나, 그게 좋은가 나쁜가 같은 기준으로 문제를 판단한다는 거죠. 전쟁에 대해서도 그렇습니다. ‘전쟁은 나쁘니까 무조건 피해야 한다?’ 옳은 말이죠. 하지만 전쟁이 피하고 싶다고 피해지나요. 최근 우리 사회에는 전쟁에 관한 온갖 얘기가 오고 가는데, 그 수준이 너무 저열하고 천박해요. 전쟁에 반대하면 ‘종북’이고 찬성하면 ‘전쟁광’이고…. 이제는 이런 이분법을 뛰어넘어야 한다고 봅니다. 인간이 지금까지 자기 존재를 유지하고 확장하는 데 전쟁이 어떤 구실을 했는지 알게 되면 좀 더 깊고, 넓고, 정확한 판단을 할 수 있게 되죠. 그래서 이 책을 한 번 꼭 읽어보시면 좋겠습니다.

    고명환 ‘문명과 전쟁’은 반드시 읽어보겠습니다. 이에 더해 제가 추천하는 ‘2017년의 책’은 최 교수님의 ‘탁월한 사유의 시선’입니다. 이 책을 읽고 나면 스스로 생각을 하게 돼요. 또 다른 책을 찾아 더 많이 읽게 되고요. 그 과정에서 사유의 시선이 높아지는 걸 느끼게 됩니다. 한번 읽어보시면 제가 왜 이런 말씀을 드리는지 알게 될 겁니다.

    최진석 나는 고 대표님이 쓴 ‘책 읽고 매출의 신이 되다’라는 책도 어떤 인문학 책 못지않다고 생각해요. 책을 읽은 것, 매출을 올린 것은 각각 ‘역사’죠. 책을 읽어 매출의 신이 됐다고 한 건 ‘철학’적 통찰입니다. 그걸 ‘문학’적인 필치로 쓴 거예요. 그러니 이 책 안에 ‘문사철’이 다 들어 있는 겁니다.

    이야기가 마무리될 무렵 카페 안에 ‘징글벨’이 흐르기 시작했다. 창밖으로 굵은 눈송이가 떨어지는 게 보였다. 고 대표가 들고 온 가방 속에서 손때 묻은 최 교수의 책을 꺼내 들었다. 스스로 ‘국사 교과서 보듯 공부했다’고 한, 곳곳에 밑줄이 쳐져 있고 여백 가득 메모가 적힌 ‘인간이 그리는 무늬’였다. “이 책 첫 장에 교수님 서명을 받고 싶어 챙겨왔다”는 고 대표의 말에 최 교수는 얼굴 가득 웃음을 띠고 펜을 꺼내들었다. 고 대표와 최 교수의 이름이 나란히 적힌 책 앞장을 바라보며 고 대표는 아이돌을 만난 소녀 팬처럼 기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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