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강현 원주세브란스기독병원 응급의학과 교수.[박해윤 기자]
12월 6일 오후 1시 48분 강원 원주시 원주양궁장 주차장이 갑자기 소란스러워졌다. 이강현 원주세브란스기독병원 응급의학과 교수(54·연세대 원주의과대학장·대한외상학회장)로부터 그곳에 세워져 있는 닥터헬기에 대한 설명을 듣던 참이었다.
닥터헬기는 2011년 정부가 도입한 ‘응급의료전용헬기’의 별칭이다. 헬기 내부에 첨단 의료장비를 갖추고 있어 ‘날아다니는 응급실’로 불린다. 이 교수는 우리나라가 일본, 독일 등 의료 선진국의 사례를 벤치마킹해 닥터헬기 시스템을 마련하는 데 앞장섰고, 현재 한국항공응급의료협회 회장을 맡고 있다. 응급의학 전문의로서 직접 닥터헬기에 탑승해 응급환자 처치와 이송을 담당하고 있기도 하다. 이 교수에게 그것에 대한 얘기를 막 들으려던 순간 다급한 ‘출동 콜’이 울리면서 모든 대화가 ‘올 스톱’됐다. 헬기 근처에서 대기 중이던 기장이 바로 달려와 조종석에 앉았고, 이 교수도 즉시 헬기에 올라탔다.
“내가 마침 여기 있으니 바로 출동할게.”
이 교수가 휴대전화를 통해 원주세브란스기독병원 의료진과 대화를 나누는 듯했다. 이후 모든 일이 순식간에 진행됐다. 1시 51분, 헬기 프로펠러가 움직이기 시작했고 엔진 예열을 마친 1시 54분 헬기가 하늘로 솟아올랐다. 응급환자가 기다리는 장소는 충북 제천시. 헬기는 원주양궁장 주차장에서 10km 떨어진 원주세브란스기독병원 응급센터 건물 옥상 헬기장에 잠시 착륙해 다른 의료진과 의료장비를 실은 뒤 곧장 제천으로 날아갈 예정이었다. 거기서 환자를 태우고 응급처치를 하며 다시 원주세브란스기독병원으로 돌아와 권역응급센터에 환자를 인계하는 것이 이들의 임무다.
“헬기는 보통 1분에 4~5km를 갑니다. 착륙시간을 포함해도 약 5분이면 병원 의료진을 태울 수 있죠. 그럼 2시 전에 환자가 있는 장소로 출발해 2시 30분 전에는 환자를 데리고 돌아올 수 있을 거예요. 헬기가 오기 전 병원에 도착하려면 지금 바로 출발하는 게 좋겠습니다.”
닥터헬기 소개차 원주양궁장 주차장에 동행했던 김좌상(26) 응급구조사가 설명했다. 그도 평소 닥터헬기를 타고 응급환자 구조 및 이송 업무를 수행한다. 강원도 뿐 아니라 충북 북부, 경기 동부 등까지 ‘항공 출동’을 한 경우가 많다. 의료기관이 적은 반면 노인과 농어민, 블루칼라 노동자 등 의료취약계층은 많이 사는 이들 지역에서는 응급환자가 최대한 빨리 적절한 처치를 받으려면 헬기 이용이 필수적이다. 올해 1월 1일부터 12월 6일까지 원주세브란스기독병원 항공의료팀은 모두 214번 현장에 출동했다. 출동 당번 날이면 의료진은 언제든 출동할 수 있도록 대기 상태를 유지한다고 한다.
그런데 이들을 태우고 갈 닥터헬기는 왜 10km나 떨어진 원주양궁장 주차장에서 대기하는 걸까. 그 이유에 대해서는 추후 다시 설명하자. 일단은 제천에서 닥터헬기를 기다리고 있을 응급환자를 좇을 때다.
승용차를 타고 원주양궁장 주차장에서 원주세브란스기독병원 응급센터까지 가는 데는 18분이 걸렸다. 2시 15분. 예정대로라면 제천에서 환자를 실어온 헬기가 머지않아 옥상에 내려앉을 때쯤 병원에 도착했다. 그런데 환자 맞을 준비를 갖추고 응급실에 대기 중이던 의료진 사이에서 ‘아직 환자가 헬기 있는 곳에 오지 못했다’는 이야기가 들려왔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시간이 계속 흐르고 있었다. 2시 32분에야 비로소 제천에서 헬기가 출발했다는 연락이 왔고, 환자가 심정지 상태라는 소식이 전해졌다. 2시 40분 헬기가 옥상에 내려앉은 즉시 대기 중이던 의료진이 달려갔다. 이 교수 등 헬기에서 응급처치를 담당한 의료진도 바로 뛰어내려 환자 이송을 거들었다. 몸에 달린 자동흉부압박장치(AutoPulse) 때문에 온몸이 거칠게 들썩이는 환자를 침대로 옮기고 권역응급센터로 이어지는 엘리베이터를 향해 내달리는 무리의 선두에 이 교수가 보였다. 환자를 태운 엘리베이터 문이 닫힌 건 2시 42분. 이 교수와 헬기주차장에서 웃으며 대화를 나누던 50여 분 전 상황이 한없이 먼 과거처럼 느껴졌다.
도리 없이 죽어가던 환자들
12월 6일 강원 원주양궁장 주차장에서 닥터헬기를 타고 충북 제천으로 출동한 이강현 교수.[박해윤 기자]
1997년 응급의학 전문의 생활을 시작한 이 교수는 지난 20년간 우리 국민 누구나 제때 적절한 의료 처치를 받을 수 있는 응급의료 시스템을 구축하는 데 앞장서왔다. 특히 의료 인프라가 상대적으로 낙후된 산간·도서지역 주민의 안전을 위해서는 반드시 닥터헬기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고 일찍부터 주장해온 의사다. 그를 비롯한 여러 전문가의 노력 덕에 2011년 국내에 닥터헬기 2대가 처음 도입됐고, 지금은 전국적으로 6개 병원(강원 원주세브란스기독병원, 경북 안동병원, 인천 가천대길병원, 전남 목포한국병원, 전북 원광대병원, 충남 단국대병원)에서 6대가 응급환자를 이송하고 있다.
이 교수가 처음부터 응급의학에 뜻을 두고 의사의 길로 접어든 건 아니다. 의대생 시절 그의 지망 분야는 정형외과였다고 한다. 그런데 인턴을 마치고 공중보건의(공보의)로 경북 문경의 한 병원 응급실에 배치되면서 전에는 알지 못했던 세계를 만나게 됐다. 문경새재 근처에 있던 그 병원 응급실엔 수시로 교통사고 환자가 들이닥쳤다. 반면 그들을 살려낼 만한 의료 인프라는 없었고, 여러 환자가 속수무책으로 숨을 거뒀다.
“그러던 어느 일요일, 교통사고로 뇌를 크게 다친 환자가 응급실에 실려 왔어요. 신경외과 담당의가 없는 상태라 우리 병원에서는 환자를 돌볼 수 없었죠. 구급차에 태워 대구 영남대병원으로 옮기는데, 제가 따라가면 병원 응급실 문을 닫아야 할 처치였어요. 저 대신 조무사 한 명을 동행하게 했죠. 그런데 그 환자분이 이송 중 사망하고 말았습니다.”
여기까지는 어쩌면 익숙한 일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가족을 잃은 보호자의 고통이 매우 컸다. 구급차에 함께 탔던 보호자는 조무사가 제대로 된 응급처치를 못해 가족이 죽었다며 주먹을 휘둘렀고, 조무사는 중환자실에 입원할 만큼 큰 부상을 입었다. 보호자는 이 교수에게도 찾아와 울분을 토해냈다.
“제 차를 문짝이 다 부서질 만큼 망가뜨려 놓았어요. 그런데 화가 나기보다 미안한 거예요. 응급실은 삶과 죽음이 오가는 곳이라는 게 실감났고, 내가 어떤 의사가 돼야 하는지를 진지하게 고민하게 됐죠.”
공보의를 끝낸 뒤 1993년 레지던트 과정으로 응급의학과를 선택한 건 이런 경험 때문이었다고 한다. 당시는 우리나라에 응급의학과 전문의 제도조차 없을 때다. 이 교수는 “우리 동기 가운데 응급의학을 전공한 사람은 나 한 명이다. 당시 교수님이 ‘4년 과정을 마치고도 전문의가 못 될 수 있는데 괜찮겠느냐’고 물었던 기억이 난다. 그때는 ‘그래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컸다”고 했다. 다행히 96년 정부가 응급의학 전문의 제도를 만들었고, 이 교수는 이듬해 전문의가 될 수 있었다. 그의 응급의학 전문의 번호는 65번이다. 지금은 응급의학 전문의가 1700명 이상 배출됐다니, 그야말로 상전벽해다.
국내 응급의료학의 선구자
이강현 교수(오른쪽에서 두 번째)가 심정지 환자를 침대에 실어 권역응급센터 내 응급소생실로 옮기고 있다(왼쪽). 이 환자는 병원에서 30분 이상 심폐소생술을 받았으나 끝내 숨을 거뒀다.[박해윤 기자]
“강원 태백에서 교통사고를 당한 환자였는데 2시간이 걸려 병원에 도착했어요. 수술방에 채 들어가기도 전에 눈을 감았죠. 그 아내와 어린 아이들이 응급실 앞에서 통곡하는 모습을 보는데, 대체 이게 무슨 일인가, 언제까지 이런 일이 반복돼야 하나 가슴이 무너지더라고요. 우리나라가 아직 이 수준밖에 안 되나, 의료취약 지역만이라도 나랏돈 들여 의료전문헬기를 보급해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때부터 적극적으로 나서 닥터헬기 얘기를 하고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자, 그 헬기가 지금 도입된 것이다. 이 교수에게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는 환자는 없는지 물었다. 그는 “워낙 많아서…”라며 웃었다.
이 교수가 가장 처음 떠올린 사람은 지난해 겨울 정선 스키장에서 심근경색 증상을 보인 30대 남성이다. 가슴에 갑작스러운 통증을 느낀 그는 의무실 쪽으로 걸어가다 그대로 쓰러졌다. 당시 닥터헬기 당직이던 이 교수는 바로 ‘출동’해 헬기 내에서 응급처치를 하며 심장내과 의료진에게 환자 상태를 설명했다. 이 남성은 병원 도착 즉시 혈관을 뚫고 스텐트를 넣는 시술을 받은 덕에 닷새 뒤 건강한 모습으로 병원 문을 나설 수 있었다.
2014년 10월 경북 안동의 집 앞에서 놀다 자전거 손잡이에 골반이 부딪히는 사고를 당한 12세 소녀도 기억난다고 했다. 이 소녀는 당시 골반 부위 혈관이 파열되면서 과다출혈로 인해 쇼크가 올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사고 현장 근처에는 응급수술을 감당할 수 있는 의료기관이 없었다. 수소문 끝에 안동병원 닥터헬기가 소녀를 충북 단양까지 이송했고, 원주세브란스기독병원 닥터헬기가 그곳에서 소녀를 인계받아 병원까지 태워왔다. 이후 의료진이 긴급 수술을 해 소녀는 생명을 되찾을 수 있었다. 이 교수는 “그 아이가 큰 후유증 없이 퇴원할 때 참 기뻤다”고 했다.
“북한 병사 사례를 보세요. 초동대응만 잘하면 그런 환자도 살려낼 수 있을 만큼 우리나라 의료 수준이 뛰어납니다. 그런데 지금도 동해 어부들, 밤잠 못 자며 영동고속도로를 주행하는 화물차 기사들, 충북 충주 인터넷 기사처럼 위급한 상황에 빠진 노동자들이 제때 적절한 응급조치를 받지 못해 목숨을 잃고 있어요. 응급의료 시스템을 어떻게 개선하면 더 많은 목숨을 구할 수 있을지 우리 사회가 고민하고 대책을 찾아야 합니다.”
그가 첫 번째로 지적한 것은 닥터헬기를 100% 활용할 수 없게 만드는 헬기장 시스템이다. 이 교수에 따르면 강원지역 병원 가운데 헬기장을 갖춘 곳은 원주세브란스기독병원뿐이다. 이 병원은 2013년 자체 예산을 들여 헬기장을 지었다. 그만한 재정 여건이 안 되는 다른 병원들엔 헬기가 뜨고 내릴 수 있는 설비가 없다. 이 경우 닥터헬기는 병원 인근 주차장이나 공터 등에 착륙해 환자를 기다리고, 응급환자는 구급차에 실린 채 헬기가 있는 곳까지 달려와야 한다. 그 과정에서 ‘골든 아워’를 놓치기 십상이다.
헬기가 떴는데도…
응급실 환자를 진료하고 있는 이강현 교수.[박해윤 기자]
마지막으로, 한 가지 더 그가 바란 게 있다. “혹시라도 집 근처에서 헬기가 뜨고 내릴 경우 그 소음이 응급환자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발생하는 것이라는 점을 이해하고 잠시만 참아주면 좋겠다”는 것이다. 앞서 말했듯 우리나라 병원에는 헬기장이 거의 없다. 이 교수 등이 정부에 관련 예산 배정 등을 요구하고 있지만 실현 가능성이 요원하다. 집 근처 공원, 주차장, 공공시설 등에서 헬기가 뜨고 내릴 때 조금씩만 이해해준다면 의료진이 더 많은 생명을 구할 수 있으리라는 게 그의 의견이다.
이 교수와 이런 이야기를 나누다 닥터헬기를 보러 원주양궁장으로 향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비번인데도 환자를 구하고자 닥터헬기를 타고 떠났다. 이 교수가 심정지 환자의 침대를 밀면서 응급소생실로 들어간 뒤 약 40분 동안, 커튼 너머로 의료진의 거친 숨소리만 들려오는 그 방 앞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이 교수가 비로소 모습을 드러냈을 때 상황이 좋지 않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가 말했다.
“제천 한 병원에서 구급차를 타고 헬기가 있는 곳까지 실려 왔을 때 이미 환자 심장이 멎어 있었어요. 50대 중반 가장인데, 가벼운 뇌경색 증상을 느끼고 오늘 아침 제 발로 병원에 걸어 들어갔다는데, 이렇게 허망하게 또 잃고 마네요.”
오전 인터뷰에서 그가 “더 늦기 전 응급의료 시스템이 개선될 수 있도록 국민들이 관심을 기울여주면 좋겠다”고 얘기하던 모습이 떠올랐다.
“우리나라 응급의료 시스템은 분명 좋아지고 있습니다. 귀순 병사 사건을 계기로 아마 더욱 나아질 겁니다. 하지만 그사이에도 우리는 많은 아까운 목숨을 잃고 있어요. 국민의 관심이 필요합니다. 이건 우리 모두를 위한 사회적 안전망 문제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