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은진 씨가 11년 연애 이야기를 담아 AI로 직접 만든 식전 영상 캡쳐본. 이은진 씨 제공
내년 6월 결혼식을 올리는 김모 씨(29)가 준비를 시작하면서 가장 먼저 찾아간 곳은 웨딩숍이 아닌 생성형 인공지능(AI) 앞이었다. 김 씨는 AI를 통해 자신에게 어울리는 드레스 라인과 체형별 단점 보완법을 완벽히 예습한 뒤에야 비로소 실제 드레스숍을 찾았다.
올해 6월 말 결혼식을 앞둔 직장인 고정훈 씨는 아예 AI를 디자이너로 고용했다. 고 씨는 제미나이 유료 버전과 노트북LM을 활용해 청첩장과 식권을 직접 제작했고, 식 중 영상 역시 AI로 완성했다. 고 씨는 “옛 사진을 움직이는 영상으로 구현하는 건 비전문가인 직장인이 엄두도 못 낼 작업인데, AI 도움으로 손쉽게 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AI 열풍 속에서 2030 사이에서는 결혼 준비에 AI를 활용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네이버에 ‘AI 결혼 준비’ 등을 검색하면 ‘AI로 셀프청첩장 제작하기’, ‘나한테 어울리는 드레스 찾기! 제미나이 웨딩드레스 프롬프트’ 같은 게시물이 쏟아진다.
30만 원 식전 영상 단돈 1만 원에 해결
결혼 준비 비용이 치솟으면서 비용 절감을 위해 AI를 이용하는 이가 적지 않다. 한국소비자원의 ‘결혼서비스 가격 조사’에 따르면 2월 전국 14개 지역의 평균 결혼서비스 비용은 2139만 원으로 지난해 12월보다 2.3% 올랐다. 이른바 ‘웨딩플레이션’ 속에서 예비부부들은 AI를 통해 비용을 줄이고 있다.최근 AI로 식전 영상을 직접 제작한 30대 천민경 씨는 “알아본 업체들은 기본 30만 원 이상을 요구해 부담이 컸다”며 “물론 완성도는 높겠지만 선뜻 결제하기 어려운 가격이었다”고 말했다. 천 씨가 영상을 완성하는 데 들인 돈은 단돈 1만 원. 영상 편집 애플리케이션의 유료 버전 결제 금액이 영상 제작과 관련된 지출의 전부다. 업체 맞춤형 제작 비용과 비교하면 30분의 1 수준으로 비용을 아낀 셈이다.
웨딩업체의 불투명한 추가금 요구와 독소 조항을 걸러내는 데도 AI가 유용하게 활용되고 있다. 그간 예비부부들은 업체와 계약할 때 개별 서비스 가격을 제대로 알지 못한 채 ‘패키지 계약’을 맺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이 과정에서 금액이 부풀려지거나 미리 고지하지 않은 추가금이 붙는 탓에 소비자 피해가 발생하곤 했다.
10월 결혼 예정인 30대 이모 씨는 “특정 업체의 이해관계에서 벗어나 내 기준대로 판단하는 데 AI가 도움이 됐다”며 “업체가 제시한 옵션을 그대로 따르는 게 아니라 성당 결혼식이라는 점, 부모 도움 없이 한정된 예산에서 준비해야 한다는 점 등 여러 상황을 반영해 업체별 견적을 비교한 후 우선순위에 맞게 선택했다”고 말했다. AI 덕분에 그간 웨딩업체 쪽으로 기울어 있던 정보 주도권을 어느 정도 가져올 수 있게 된 것이다.
한국소비자원에 따르면 결혼서비스 관련 소비자 피해구제 신청 건수는 2024년 905건에서 2025년 1076건으로 18.9% 증가했으며, 접수된 피해 대부분(88.1%)은 ‘계약 해지·위약금 및 청약철회’와 관련된 분쟁이었다.
드레스 투어 피팅 비용 아끼고, 청첩장도 다양한 버전

제미나이를 이용해 같은 디자인의 드레스를 여러 버전으로 조합한 모습. 이모 씨 제공
보통 웨딩드레스를 입어보고 고르려면 숍당 5만~10만 원의 피팅 비용을 내야 한다. 드레스를 고르기 위해 숍 여러 군데를 돌아보는 ‘드레스 투어’를 할 경우에는 비용과 시간이 더 많이 들어간다. 30대 이모 씨는 “드레스 투어에 드는 비용과 에너지를 아끼고자 숍을 하나만 지정하고 싶었다”며 “어떤 디자인이 내게 어울리는지 대략적으로 파악한 뒤 숍을 고르면 실패 확률이 낮을 거라 생각해 제미나이의 도움을 받았다”고 말했다. 이 씨는 자신에게 실크, 비즈, 레이스 중 어떤 소재가 어울리는지, 머메이드와 A라인 가운데 어떤 것이 어울리는지 미리 파악한 뒤 적절한 숍을 골랐다.
이번 달에 식을 올리는 30대 최모 씨도 “드레스숍에 가기 전 내 사진을 여러 장 전송해 얼굴과 체형에 맞는 스타일을 미리 추천받았다”며 “드레스 실장도 AI가 추천한 스타일이 내게 잘 어울린다고 해서 확신을 갖고 드레스를 골랐다”고 말했다.
AI를 이용해 결혼식 개성을 살리기도 한다. 10월 결혼을 앞둔 30대 하모 씨는 평소 챗GPT를 써본 적이 없을 정도로 AI 회의론자였지만, 결혼을 준비하면서 처음으로 AI의 도움을 받았다. 하 씨는 “청첩장 업체의 상투적인 멘트가 친구에서 연인으로 발전한 예비신랑과의 이야기를 온전히 담아내지 못한다고 느꼈다”며 “챗GPT에게 물어본 결과 위트 있는 버전, 센스 있는 버전, 따뜻한 버전 등 여러 유형을 비교할 수 있어 편했다”고 말했다. 하 씨는 친구에서 연인으로 발전한 두 사람의 서사를 담은 지인용 모바일·종이 청첩장, 핵심만 큼지막한 글씨로 담은 혼주 및 어르신용 청첩장을 각각 만들어 돌렸다.
이은진 씨(30)는 “식전 영상 제작 업체의 경우 2분 내외로 영상 길이가 정해져 있어 내가 직접 AI로 만들었다”며 “연애 기간이 11년으로 긴데, 그간의 이야기를 잘 축약해 보여줄 수 있어 좋았다”고 말했다. 이어 “평소 술을 좋아하는 나는 소주를, 술을 못하는 예비 신랑은 콜라를 마시는 장면이 특히 반응이 좋았다”고 덧붙였다.
“결국 최종 결정은 인간의 몫”

2030세대는 결혼식을 앞두고 식전 영상이나 청첩장을 제작할 때 인공지능(AI)을 적극 활용한다. 제미나이 생성 이미지
그러면서 AI 정보의 한계도 명확히 인지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정 팀장은 “소비자원 차원에서 실제 현장 조사를 나가 보면 업체마다 요금·상품 구성 등 기본 조건이 다르고, 소비자가 세부 사항을 어떻게 선택하느냐에 따라서도 최종 가격이 완전히 달라진다”며 “정확한 가격을 파악하기가 워낙 까다로운 시장인 만큼, AI가 내놓은 정보에 지나치게 의존하기보다 참고 자료로만 활용하면서 직접 현장을 찾아 세부 조건을 꼼꼼히 확인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이홍주 숙명여대 소비자경제학과 교수는 “AI를 일상 전반에 활용하는 2030세대 특성이 결혼 시장에도 나타나고 있다”며 “소비자가 직접 정보를 분석하고 의사결정까지 내리면서 업체나 플래너 중심이던 웨딩 시장이 소비자 주도형으로 재편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 교수는 “장기적으로는 웨딩업계가 수익 구조나 마케팅 전략을 좀 더 투명하고 납득할 만한 수준으로 전환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