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루노 파이야르 샴페인 하우스를 설립한 브루노 파이야르와 퀴베, 블랑 드 블랑, 로제(왼쪽부터).[사진제공·(주)나루글로벌]
파이야르의 집안은 1700년대부터 프랑스 샹파뉴 지방에서 와인 중개상을 해왔다. 브루노 파이야르가 성공적이던 가업을 뒤로 하고 샴페인을 만들기 시작한 건 1981년, 그가 28세 되던 해였다. 샴페인 만드는 일을 숙명으로 느낀 그는 아끼던 앤티크 재규어 승용차를 팔아 샴페인 하우스를 설립했다.
파이야르에게는 좋은 샴페인을 만들기 위해 반드시 지키는 일이 한 가지 있다. 포도에서 즙을 딱 한 번만 짜는 것이다. 포도즙 양은 생산량과 직결되기 때문에 샴페인을 대량생산하는 업체는 포도를 여러 번 짜서 최대한 많은 즙을 얻으려 한다. 하지만 파이야르는 포도즙이 순수해야 우아한 샴페인을 만들 수 있다고 봤다.
그런데 순수한 즙은 산도가 높아 긴 숙성을 요한다. 샴페인 기포는 와인, 이스트, 당분을 병 속에 넣고 밀봉해 만든다. 기포 발생이 끝나면 이스트 앙금이 병 속에 가라앉는데, 이 앙금과 함께 샴페인이 숙성되는 기간이 길면 길수록 맛이 부드러워진다. 법이 정한 숙성기간은 15개월이지만 브루노 파이야르의 숙성기간은 최소 4~5년이다. 이렇게 긴 숙성을 거치면서 샴페인은 부드러운 맛과 함께 복합미를 최고조로 끌어올린다.
재불 화가 방혜자의 그림이 들어간 브루노 파이야르 2008 빈티지 샴페인 레이블.[사진제공·(주)나루글로벌]
빈티지 샴페인은 작황이 탁월한 해에만 생산하는 특별한 와인이다. 브루노 파이야르는 빈티지 샴페인을 생산할 때마다 그 해의 특징을 키워드로 부여하는데, 2008년 키워드는 ‘에너지’였다. 파이야르는 방혜자 화백에게 레이블에 들어갈 그림을 요청했고, 방 화백은 동서양을 결합한 특유의 화법으로 2008년의 에너지를 멋지게 그려냈다.
브루노 파이야르 2008 빈티지 샴페인은 이스트 앙금과 7년이라는 긴 세월을 보내고 앙금이 제거된 뒤 1년간 셀러에서 안정을 취하고 출시됐으니 숙성기간이 8년에 이른다. 한 모금 머금으면 입안을 가득 채우는 묵직하고 부드러운 질감에 눈이 스르르 감긴다. 상큼한 과일향, 갓 구운 쿠키의 고소함, 은은한 덤불숲향 등 끊임없이 피어나는 복합적인 향미는 방 화백이 여러 색깔로 표현한 에너지 파장이 마치 입안에서 춤을 추는 듯한 느낌을 준다.
저무는 한 해를 돌아보며 소중한 사람들과 브루노 파이야르로 축배를 들어볼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