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기물들은 흐물흐물하게 서로 엉겨 붙어 끈적한 침 같은 액체를 흘리면서 다른 유기물로 변이되는 듯하다. 이들이 만들어내는 형상은 곰팡이가 핀 음식물들이나 썩은 시체의 표면처럼 느껴진다. 어떤 때는 동물의 신경이나 혈액 속을 떠다니면서 그 보균자를 감염시키는 세균덩어리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 유기물들은 또한 인간의 성기, 성행위, 질병, 부패의 흔적을 연상시킨다.
작가 문영민의 그림은 이런 이상한 추상적 형상들을 보여준다. 그의 그림은 화려한 색채로 가득하다. 이러한 화려하고 장식적인 특성은 뭔가 섬뜩한 느낌을 더욱 강렬한 것으로 만든다.

우리는 성적 경험이나 일상에서 폭력 또는 심리적 충격을 받곤 한다. 폭력이나 충격은 우리가 새로운 것을 만났을 때 두려움이나 공포를 자아내며, 심지어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만들기도 한다. 트라우마에 의해 무기력해진 주체는 그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서, 어떤 단절을 이끌어내기 위해서, 그리고 새로운 ‘나’로 거듭나기 위해서 일단 트라우마와 직접 대면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문영민은 그 관문을 제시한다. 징그럽고 혐오스러운 느낌을 경험하는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관객은 자신이 가진 두려움의 근원과 폭력의 기억이 무엇인지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8월27일까지, 대안공간 풀, 02-386-4805.
주간동아 549호 (p76~7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