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은 더 이상 IT 강국이 아니다. 새로운 성장엔진이 없어 정체 현상을 겪고 있다.”(이석채 KT 회장, 4월28일 한 강연회에서)
“반도체와 LCD 시장은 불투명한 상황이다. 경기회복이 안 돼 계속 긴장하고 있다.”(이윤우 삼성전자 부회장, 6월1일 기자들과의 대화에서)
한국은 IT로 ‘먹고사는’ 나라다. GDP의 5분의 1, 수출의 3분의 1을 IT가 책임진다. 지난해 우리나라는 130억 달러의 무역수지 적자를 기록했다. 그나마 IT 산업이 600억 달러에 가까운 흑자를 올려 글로벌 경기불황의 타격을 크게 줄여준 덕분이다. 만약 우리가 IT 약소국이었다면? 가정만으로도 섬뜩하다.
그러나 IT 수장(首長)들이 위와 같은 발언을 할 정도로 우리 IT산업의 내일은 밝지 않다. 국내 IT 산업을 견인해온 통신업계는 여전히 탈출구를 찾지 못했고, IT 수출 효자상품인 반도체, LCD 패널 등은 어느 때보다 ‘추운 계절’을 보내고 있다.
IT 분야 전문기관인 IDC는 올해 전 세계 IT 시장이 정체할 것으로 예상했다. 하드웨어 하락세가 두드러지는 반면, 소프트웨어는 소폭 상승세를 유지할 것으로 내다봤다. 하드웨어 강국이자 소프트웨어 약소국인 한국으로선 뼈아픈 전망이다.
최근 한국 IT산업의 부진은 시장이 성숙기에 진입하면서 성장이 한계에 다다른 탓 또한 크다. 그렇다고 믿을 만한 신성장동력을 찾아낸 것도 아니다. 중국 등 후발주자의 추격도 무섭다. 글로벌컨설팅회사 모니터그룹의 조원홍 한국대표는 “글로벌 불황이 국내 IT기업들의 경쟁력을 훼손시키지는 않는다”며 “향후 한국 IT산업의 경쟁력은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선점하느냐에 달렸는데, 아직 뚜렷한 전략이나 성과가 나오지 않아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불황에 맥 못 추는 반쪽짜리 반도체 강국
한국은 세계 1위의 D램 반도체 생산국가다. 삼성전자와 하이닉스반도체가 각각 34%, 20%의 세계시장 점유율을 확보하고 있다. 그러나 올 1분기 두 회사 모두 5000억원대의 영업손실을 기록하는 등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D램이 시장에 과잉 공급되고 경기불황으로 수요가 크게 줄었기 때문이다.
D램은 주로 데스크톱이나 노트북 등 컴퓨터에 쓰인다. 그러나 경기불황으로 컴퓨터를 교체하려는 기업 수요가 크게 줄었다. 개인들도 요즘 같은 땐 새 컴퓨터를 사지 않는다. IDC가 세계 각국 6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65%가 ‘글로벌 경기침체로 컴퓨터 구매를 하지 않겠다’고 답했다. 산업연구원 신사업팀 주대영 연구위원은 “마이크로소프트사의 윈도 버전이 수시로 업그레이드돼 사용자들이 2~3년 주기로 컴퓨터를 교체하던 ‘윈텔 효과’가 사라진 것도 D램 생산업체들이 어려워진 이유”라고 분석했다.
대만 일본 미국 등 경쟁업체들이 구조조정에 직면하는 등 난국에 봉착한 점은 우리나라가 앞으로도 D램 경쟁력을 유지해나가리란 전망을 가능케 한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마이크로소프트가 차세대 OS인 윈도7을 내년에 출시할 예정”이라며 “경기회복과 맞물리면 대규모 컴퓨터 교체수요를 일으키지 않을까 한다”고 기대했다.
그러나 경기곡선에 따라 울고 웃는 ‘반쪽짜리 반도체 강국’이라는 오명을 벗으려면 경기의 영향을 덜 타는 시스템LSI(비메모리) 분야에서의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 시스템LSI 반도체는 전 세계 반도체 시장의 70% 이상을 차지하며 당분간 연평균 6% 이상 성장할 것으로 전망되는 넓고도 밝은 시장이다. 삼성전자는 2000년대 초반부터 ‘메모리와 시스템LSI 동반성장’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 매출 규모가 메모리의 8분의 1에 그쳐 갈 길이 멀다. 주대영 연구위원은 “메모리가 기성복이라면 시스템LSI는 맞춤옷”이라며 “소프트웨어와 연계해 다품종 소량 생산해야 하기 때문에 대규모 투자와 다량 생산의 패턴에 익숙한 국내 기업이 하기 어려운 게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요즘 국내 IT 마니아들 사이의 핫이슈는 단연 ‘아이폰’의 국내 출시 여부다. 아이폰이 KT를 통해 들어오느냐 마느냐를 놓고 설왕설래인 가운데, 삼성전자와 LG전자 등 휴대전화 제조업체들이 긴장한 모습이 뚜렷하다. 노키아에 이어 세계시장 2위와 3위에 올라 있는 이들 회사가 아이폰을 경계하는 이유를 업계 관계자는 “아이폰이 휴대전화의 패러다임을 바꿔놓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올 1분기 삼성전자와 LG전자의 시장점유율은 각각 18.8%와 9.2%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영업이익률도 상승 추세다. 현재 성적대로라면 우리의 휴대전화 경쟁력은 ‘맑음’이다. 그러나 올해 전체 휴대전화 시장은 마이너스 성장을 하는 반면, 스마트폰 시장은 10% 이상 성장할 것으로 예측된다. 삼성전자와 LG전자 역시 옴니아폰, 인사이트폰 등 스마트폰을 내놓았지만, 시장 지배력은 약한 상태다. 특히 애플이 최근 신형 ‘아이폰 3GS’를 발표하면서 가격을 대폭 인하해 아이폰의 시장점유율이 신장하리라는 전망이 나온다.
아이폰의 성공은 많은 시사점을 준다. 큐박스닷컴 권도혁 대표는 “아이폰으로 인해 휴대전화 선택 기준이 하드웨어에서 소프트웨어로 바뀌었다”며 “앞으로 하드웨어는 껍데기에 불과하고 그 안에 담긴 소프트웨어의 차별성으로 시장에서의 성패가 좌우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애플, ‘아이폰’으로 휴대전화 새 패러다임 창출
아이폰의 성공 뒤에는 ‘앱스토어(App Store)’가 있다. 앱스토어는 아이폰용 애플리케이션(Application·응용 소프트웨어)을 자유자재로 사고파는 온라인 장터다. 지난해 7월 개설된 이후 3만 개 이상의 애플리케이션이 등록됐고, 10억 회 이상 다운로드됐다. 아이폰 사용자는 자기가 원하는 애플리케이션을 다운받아 설치함으로써 ‘스스로’ ‘나만의’ 휴대전화를 만든다.
삼성전자와 SK텔레콤 등 IT 업체들은 앱스토어와 유사한 서비스를 개발하는 등 ‘애플 따라하기’에 나서고 있다. 휴대전화와 통신 강국으로서 새 시장의 주도권을 쥐지 못했다는 점이 아쉽다.
카이스트 전산과 김진형 교수는 “시장의 새 패러다임을 제대로 소화하지 못한다면 국내 IT 제조업체들은 단순 하드웨어 공급회사로 전락할 수 있다”며 “업체 관계자들이 하루빨리 바뀌어야 한다는 점을 인식하고 있지만, 전략 전환을 하지는 못한 것 같다”며 우려를 나타냈다. 조원홍 모니터그룹 한국대표는 다음과 같이 조언했다.
“진정한 리더가 되려면 몇 단계의 발전을 거쳐야 한다. 첫째 단계는 가격과 질에서 승리하는 것이고, 둘째 단계는 마케팅에서 뛰어난 성과를 거두는 것이다. 그동안 국내 IT 기업들은 이 두 가지를 잘 해냈다. 마지막 단계는 스스로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어 주도권을 쥐는 것이다. 애플은 아이폰으로 그걸 해냈다.”
19조원 대(對) 12조원. 통합KT와 SK텔레콤의 연간 매출 규모다. ‘통신공룡’이라는 별명이 딱 들어맞는다. 그러나 양대 통신회사는 성장의 한계에 부닥쳐 있다. 유선전화 가입자는 자꾸 빠져나가고, 이동통신 시장도 포화 상태다.
새로운 돌파구가 어느 IT 산업보다 다급한 상황. 일단 국내 통신업계는 인터넷프로토콜TV(IPTV)에서 그 답을 찾으려 한다. 그러나 IPTV에서 실시간방송 서비스를 개시한 지 반년밖에 되지 않았는데도 ‘IPTV 시장은 블루오션인가, 레드오션인가’라는 논쟁이 벌어질 만큼 성과가 기대에 못 미친다. IPTV의 실시간방송 가입자 수는 50만여 명에 그친다.
“케이블TV와 뭐가 다른지 모르겠다”는 가입자들의 볼멘소리도 높다. 정보통신정책연구원 이경남 주임연구원은 “케이블TV의 시장 잠식을 막으려는 차원에서 시작한 IPTV는 태생적으로 이동통신 서비스만큼 파급효과를 불러일으키기는 어렵다”고 선을 그었다. 그러나 그는 “양방향 서비스가 본격화하고 휴대전화로 IPTV를 볼 수 있는 모바일 IPTV 서비스가 개시되면 통신업계에서 신성장동력 기능을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전문가들은 초고속 인터넷망을 이용하는 IPTV가 인터넷 콘텐츠를 포용한다면 더 큰 잠재력을 가질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셋톱박스를 활용해 IPTV가 홈네트워크의 허브가 되면 방송이나 영화 콘텐츠 제공을 넘어선 새로운 서비스 영역을 개척할 수도 있다. KT 미디어본부 박정호 부장은 “수신료 수입은 그다지 크지 않을 것”이라며 “하지만 광고나 커머스(Commerce) 수익 등 다양한 수익원을 창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국내 IT산업을 이끄는 거대 통신회사들은 제 몸집만 불려왔을 뿐, 중소업체들과 함께 성장하는 ‘상생’을 일굼으로써 IT 경쟁력을 산업 전반으로 넓히는 데 실패했다는 비판을 받는다. 제조업계와 달리 장기간 거래하는 ‘협력업체’를 두지 않고 여러 업체를 경쟁시키는 관행, 납품업체에 불리한 수익 배분 구조, 유지·보수에 대한 낮은 보상 등은 이미 오래전부터 지적돼온 문제다.
벤처기업협회 최병희 지식사업본부장은 “장비를 개발해 납품한 중소기업이 망하면 유지·보수가 어렵다며 특허를 받아놓은 소스 코드를 통신회사가 가져간다”면서 “공정거래위원회는 제3의 기관이 소스를 보관하는 에스크로 제도를 권장하지만 양대 통신회사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러한 문제들이 중소업체의 경쟁력을 약화시켜 통신시장의 확대와 한국의 IT 경쟁력을 떨어뜨린다”고 비판했다.
“반도체와 LCD 시장은 불투명한 상황이다. 경기회복이 안 돼 계속 긴장하고 있다.”(이윤우 삼성전자 부회장, 6월1일 기자들과의 대화에서)
한국은 IT로 ‘먹고사는’ 나라다. GDP의 5분의 1, 수출의 3분의 1을 IT가 책임진다. 지난해 우리나라는 130억 달러의 무역수지 적자를 기록했다. 그나마 IT 산업이 600억 달러에 가까운 흑자를 올려 글로벌 경기불황의 타격을 크게 줄여준 덕분이다. 만약 우리가 IT 약소국이었다면? 가정만으로도 섬뜩하다.
그러나 IT 수장(首長)들이 위와 같은 발언을 할 정도로 우리 IT산업의 내일은 밝지 않다. 국내 IT 산업을 견인해온 통신업계는 여전히 탈출구를 찾지 못했고, IT 수출 효자상품인 반도체, LCD 패널 등은 어느 때보다 ‘추운 계절’을 보내고 있다.
IT 분야 전문기관인 IDC는 올해 전 세계 IT 시장이 정체할 것으로 예상했다. 하드웨어 하락세가 두드러지는 반면, 소프트웨어는 소폭 상승세를 유지할 것으로 내다봤다. 하드웨어 강국이자 소프트웨어 약소국인 한국으로선 뼈아픈 전망이다.
최근 한국 IT산업의 부진은 시장이 성숙기에 진입하면서 성장이 한계에 다다른 탓 또한 크다. 그렇다고 믿을 만한 신성장동력을 찾아낸 것도 아니다. 중국 등 후발주자의 추격도 무섭다. 글로벌컨설팅회사 모니터그룹의 조원홍 한국대표는 “글로벌 불황이 국내 IT기업들의 경쟁력을 훼손시키지는 않는다”며 “향후 한국 IT산업의 경쟁력은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선점하느냐에 달렸는데, 아직 뚜렷한 전략이나 성과가 나오지 않아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불황에 맥 못 추는 반쪽짜리 반도체 강국
한국은 세계 1위의 D램 반도체 생산국가다. 삼성전자와 하이닉스반도체가 각각 34%, 20%의 세계시장 점유율을 확보하고 있다. 그러나 올 1분기 두 회사 모두 5000억원대의 영업손실을 기록하는 등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D램이 시장에 과잉 공급되고 경기불황으로 수요가 크게 줄었기 때문이다.
D램은 주로 데스크톱이나 노트북 등 컴퓨터에 쓰인다. 그러나 경기불황으로 컴퓨터를 교체하려는 기업 수요가 크게 줄었다. 개인들도 요즘 같은 땐 새 컴퓨터를 사지 않는다. IDC가 세계 각국 6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65%가 ‘글로벌 경기침체로 컴퓨터 구매를 하지 않겠다’고 답했다. 산업연구원 신사업팀 주대영 연구위원은 “마이크로소프트사의 윈도 버전이 수시로 업그레이드돼 사용자들이 2~3년 주기로 컴퓨터를 교체하던 ‘윈텔 효과’가 사라진 것도 D램 생산업체들이 어려워진 이유”라고 분석했다.
대만 일본 미국 등 경쟁업체들이 구조조정에 직면하는 등 난국에 봉착한 점은 우리나라가 앞으로도 D램 경쟁력을 유지해나가리란 전망을 가능케 한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마이크로소프트가 차세대 OS인 윈도7을 내년에 출시할 예정”이라며 “경기회복과 맞물리면 대규모 컴퓨터 교체수요를 일으키지 않을까 한다”고 기대했다.
그러나 경기곡선에 따라 울고 웃는 ‘반쪽짜리 반도체 강국’이라는 오명을 벗으려면 경기의 영향을 덜 타는 시스템LSI(비메모리) 분야에서의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 시스템LSI 반도체는 전 세계 반도체 시장의 70% 이상을 차지하며 당분간 연평균 6% 이상 성장할 것으로 전망되는 넓고도 밝은 시장이다. 삼성전자는 2000년대 초반부터 ‘메모리와 시스템LSI 동반성장’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 매출 규모가 메모리의 8분의 1에 그쳐 갈 길이 멀다. 주대영 연구위원은 “메모리가 기성복이라면 시스템LSI는 맞춤옷”이라며 “소프트웨어와 연계해 다품종 소량 생산해야 하기 때문에 대규모 투자와 다량 생산의 패턴에 익숙한 국내 기업이 하기 어려운 게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요즘 국내 IT 마니아들 사이의 핫이슈는 단연 ‘아이폰’의 국내 출시 여부다. 아이폰이 KT를 통해 들어오느냐 마느냐를 놓고 설왕설래인 가운데, 삼성전자와 LG전자 등 휴대전화 제조업체들이 긴장한 모습이 뚜렷하다. 노키아에 이어 세계시장 2위와 3위에 올라 있는 이들 회사가 아이폰을 경계하는 이유를 업계 관계자는 “아이폰이 휴대전화의 패러다임을 바꿔놓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올 1분기 삼성전자와 LG전자의 시장점유율은 각각 18.8%와 9.2%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영업이익률도 상승 추세다. 현재 성적대로라면 우리의 휴대전화 경쟁력은 ‘맑음’이다. 그러나 올해 전체 휴대전화 시장은 마이너스 성장을 하는 반면, 스마트폰 시장은 10% 이상 성장할 것으로 예측된다. 삼성전자와 LG전자 역시 옴니아폰, 인사이트폰 등 스마트폰을 내놓았지만, 시장 지배력은 약한 상태다. 특히 애플이 최근 신형 ‘아이폰 3GS’를 발표하면서 가격을 대폭 인하해 아이폰의 시장점유율이 신장하리라는 전망이 나온다.
아이폰의 성공은 많은 시사점을 준다. 큐박스닷컴 권도혁 대표는 “아이폰으로 인해 휴대전화 선택 기준이 하드웨어에서 소프트웨어로 바뀌었다”며 “앞으로 하드웨어는 껍데기에 불과하고 그 안에 담긴 소프트웨어의 차별성으로 시장에서의 성패가 좌우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애플, ‘아이폰’으로 휴대전화 새 패러다임 창출
아이폰의 성공 뒤에는 ‘앱스토어(App Store)’가 있다. 앱스토어는 아이폰용 애플리케이션(Application·응용 소프트웨어)을 자유자재로 사고파는 온라인 장터다. 지난해 7월 개설된 이후 3만 개 이상의 애플리케이션이 등록됐고, 10억 회 이상 다운로드됐다. 아이폰 사용자는 자기가 원하는 애플리케이션을 다운받아 설치함으로써 ‘스스로’ ‘나만의’ 휴대전화를 만든다.
삼성전자와 SK텔레콤 등 IT 업체들은 앱스토어와 유사한 서비스를 개발하는 등 ‘애플 따라하기’에 나서고 있다. 휴대전화와 통신 강국으로서 새 시장의 주도권을 쥐지 못했다는 점이 아쉽다.
카이스트 전산과 김진형 교수는 “시장의 새 패러다임을 제대로 소화하지 못한다면 국내 IT 제조업체들은 단순 하드웨어 공급회사로 전락할 수 있다”며 “업체 관계자들이 하루빨리 바뀌어야 한다는 점을 인식하고 있지만, 전략 전환을 하지는 못한 것 같다”며 우려를 나타냈다. 조원홍 모니터그룹 한국대표는 다음과 같이 조언했다.
“진정한 리더가 되려면 몇 단계의 발전을 거쳐야 한다. 첫째 단계는 가격과 질에서 승리하는 것이고, 둘째 단계는 마케팅에서 뛰어난 성과를 거두는 것이다. 그동안 국내 IT 기업들은 이 두 가지를 잘 해냈다. 마지막 단계는 스스로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어 주도권을 쥐는 것이다. 애플은 아이폰으로 그걸 해냈다.”
19조원 대(對) 12조원. 통합KT와 SK텔레콤의 연간 매출 규모다. ‘통신공룡’이라는 별명이 딱 들어맞는다. 그러나 양대 통신회사는 성장의 한계에 부닥쳐 있다. 유선전화 가입자는 자꾸 빠져나가고, 이동통신 시장도 포화 상태다.
새로운 돌파구가 어느 IT 산업보다 다급한 상황. 일단 국내 통신업계는 인터넷프로토콜TV(IPTV)에서 그 답을 찾으려 한다. 그러나 IPTV에서 실시간방송 서비스를 개시한 지 반년밖에 되지 않았는데도 ‘IPTV 시장은 블루오션인가, 레드오션인가’라는 논쟁이 벌어질 만큼 성과가 기대에 못 미친다. IPTV의 실시간방송 가입자 수는 50만여 명에 그친다.
“케이블TV와 뭐가 다른지 모르겠다”는 가입자들의 볼멘소리도 높다. 정보통신정책연구원 이경남 주임연구원은 “케이블TV의 시장 잠식을 막으려는 차원에서 시작한 IPTV는 태생적으로 이동통신 서비스만큼 파급효과를 불러일으키기는 어렵다”고 선을 그었다. 그러나 그는 “양방향 서비스가 본격화하고 휴대전화로 IPTV를 볼 수 있는 모바일 IPTV 서비스가 개시되면 통신업계에서 신성장동력 기능을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전문가들은 초고속 인터넷망을 이용하는 IPTV가 인터넷 콘텐츠를 포용한다면 더 큰 잠재력을 가질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셋톱박스를 활용해 IPTV가 홈네트워크의 허브가 되면 방송이나 영화 콘텐츠 제공을 넘어선 새로운 서비스 영역을 개척할 수도 있다. KT 미디어본부 박정호 부장은 “수신료 수입은 그다지 크지 않을 것”이라며 “하지만 광고나 커머스(Commerce) 수익 등 다양한 수익원을 창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국내 IT산업을 이끄는 거대 통신회사들은 제 몸집만 불려왔을 뿐, 중소업체들과 함께 성장하는 ‘상생’을 일굼으로써 IT 경쟁력을 산업 전반으로 넓히는 데 실패했다는 비판을 받는다. 제조업계와 달리 장기간 거래하는 ‘협력업체’를 두지 않고 여러 업체를 경쟁시키는 관행, 납품업체에 불리한 수익 배분 구조, 유지·보수에 대한 낮은 보상 등은 이미 오래전부터 지적돼온 문제다.
벤처기업협회 최병희 지식사업본부장은 “장비를 개발해 납품한 중소기업이 망하면 유지·보수가 어렵다며 특허를 받아놓은 소스 코드를 통신회사가 가져간다”면서 “공정거래위원회는 제3의 기관이 소스를 보관하는 에스크로 제도를 권장하지만 양대 통신회사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러한 문제들이 중소업체의 경쟁력을 약화시켜 통신시장의 확대와 한국의 IT 경쟁력을 떨어뜨린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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