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성시 장풍군 십탄리 서원동에 있는 이제현 선생 묘소를 참배해 제를 올리는 경주이씨 익재공파 문중 인사들.
이 전 장관은 진보노선을 견지한 성공회 신부로 오랫동안 활동해오다 통일부 장관에 발탁됐다. 그래서 보수진영은 그가 유지해온 노선 때문에 김 통일전선부장을 환대한 것으로 봤다. 그런데 이 전 장관의 환대에는 다른 요인이 작용했을 수도 있다는 단서가 발견됐다. 새로운 단서란 이 전 장관의 ‘본(本)’이다. 이 전 장관은 박혁거세를 세워 신라를 연 여섯 부족장의 일원인 ‘알평공’을 시조로 하는 경주이씨의 76세 손이다.
이러한 경주이씨 문중에서 배출한 고려 말의 대학자가 52세 손인 익재 이제현(李齊賢·1287~1367) 선생인데, 그의 후손들은 경주이씨 내에서 익재공파로 불린다. 이 전 장관도 익재공파. 이제현 선생의 생가는 개성시 선죽동, 묘소는 개성시 장풍군 십탄리 서원동에 있다.
이 장관 시절 통일부에 근무한 인사는 “2007년 이 장관은 경주이씨 익재공파 문중으로부터 이제현 선생 생가와 묘소를 참관하게 도와달라는 부탁을 받은 뒤 직원들에게 ‘북측과 접촉해 가능한지 알아보라. 여의치 않으면 이제현 선생 묘소 사진이라도 구하라’고 지시했다. 이에 따라 2007년 여름 개성공단관리위원회 간부가 북측의 도움을 받아 이제현 선생 묘소를 방문해 사진을 찍고 이 장관을 통해 경주이씨 문중에 ‘비밀리’에 전달했다”고 말했다.
몇 달 후 김 통일전선부장은 이 장관의 환대를 받으며 한국을 방문해 노무현 당시 대통령을 면담하고 돌아갔다. 그리고 두 달 뒤인 2008년 1월24일 이 장관이 이끄는 통일부는 6명의 장관이 포함된 장·차관단의 개성공단 견학행사를 가졌다. 이 행사 도중 이 장관은 ‘개인행동’을 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장·차관단에서 빠져나와 북한 모 기관 소속의 고위인사와 이제현 선생 묘소를 참배했다는 것. 그리고 보름여가 지난 2월12일 익재공파 대종회 인사 200여 명이 1박2일로 개성을 방문해 이제현 선생의 묘소를 참관할 수 있도록 했다. 이때 이 장관은 개성에 가지 않았지만 통일부 직원을 동원해 문중 사람들을 도운 것으로 알려졌다.
이 전 장관 “비밀로 해달라” 부탁
문중 인사들이 방북했을 때 개성에서는 제1차 남북 도로분과위원회 회담이 열렸다. 이 회담에 참석하기 위해 개성에 간 통일부 간부 모씨는 회담장을 빠져나와 문중 사람들과 이제현 선생의 묘소를 참관했다. 한 소식통은 “그 통일부 간부는 이 전 장관의 지시로 문중 사람들의 개성 방문은 물론, 이제현 선생 묘소 참관까지 도왔다”고 말했다.
200여 명에 이르는 익재공파 문중 사람들의 이제현 선생 묘소 참관은 통일부의 힘만으로는 불가능하다. 북측의 협조가 있어야 한다. 한 소식통은 “익재공파 문중 사람들이 개성을 방문했을 때 북한 모 기관 소속 간부 10여 명이 평양에서 내려와 이제현 선생 묘소 참배는 물론, 문중 사람들의 북한 입경(入境)과 출경(出境)과정을 도왔다. 이 전 장관은 북측의 협조로 성사된 문중 인사들의 이제현 선생 묘소 참배를 비밀에 부치게 했다”고 전했다.
익재공파 대종회의 관계자는 이 전 장관의 도움으로 현대아산을 통해 개성을 방문, 이제현 선생 묘소를 참관한 것을 시인하면서 도움을 준 북한 기관은 ‘민협’이라고 밝혔다. 이 전 장관이 통일부 직원을 동원하고 북한 기관의 협조를 받아 자신과 익재공파 문중 인사들이 이제현 선생의 묘소를 참관하게 해준 것은 직권남용으로 볼 소지가 있다. 특히 이 전 장관이 장·차관단 방북 때 이제현 선생 묘소를 참배한 것은 오해를 일으킬 소지가 크다.
이 전 장관은 측근을 통해 “문중 인사들의 부탁이 있어 통일부를 통해 북측의 초청장을 받아 문중 인사들이 이제현 선생 묘소를 참관하게 해준 적이 있다”며 이를 시인했으나 장·차관단의 개성공단 방북 때 혼자 빠져나와 이제현 선생 묘소를 참배한 의혹에 대해서는 “그런 사실이 없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