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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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 사회엔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연극 ‘마라, 사드’

  • 현수정 공연칼럼니스트 eliza@paran.com

    입력2009-06-17 11: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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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 우리 사회엔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마라, 사드’의 시공간적 배경은 1808년 프랑스의 한 정신병동이다. 그러나 이 작품이 묘사하고 있는 것은 그보다 15년 전인 1793년에 일어난 사건이다. 이 연극은 극중극을 통해 프랑스 혁명기에 급진주의자 혁명가 마라(김주완 분)가 죽임을 당하기까지의 과정을 재연한다.

    그런데 그냥 당시의 상황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중간중간 작가인 사드(극 중의 작가, 강신구 분)가 개입해 마라와 논쟁을 벌인다. 사드는 마라와 반대로 혁명에 회의를 느끼는 개인주의자다. 두 사람은 ‘인간이라는 족속은 변화할 수 있는가’ ‘세상은 진보할 수 있는가’ 등에 대해 대립된 명제를 던지며 논쟁한다. 마라는 하수구를 전전하며 도망 다니다 생긴 피부병 때문에 평생 욕조의 찬물에 몸을 담그고 살았다. 그러나 욕조 안에서 죽임을 당한 마라의 모습은 화가들을 통해 묘사돼왔는데, 그중 다비드의 ‘마라의 죽음’은 유명하다.

    1793년은 혁명이 일어나고 나폴레옹 1세가 집권한 지 4년째 되던 해다. 당시는 표면적으로는 그들이 외친 슬로건인 자유, 평등, 형제애가 이뤄진 것처럼 보이지만, ‘낮은 곳’에 있는 서민의 삶은 여전히 나아진 게 없다는 회의감이 들던 때다. 연극 ‘마라, 사드’는 이러한 프랑스의 사회 배경을 반영한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 연극이 현재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관객들에게 질문을 던진다는 것이다. 서민을 대변하며 혁명을 꿈꿨던 마라의 죽음, 그의 죽음을 슬퍼하는 민중의 모습은 동시대적인 사건을 떠올리게 만든다.

    페터 바이스가 쓴 ‘마라, 사드’는 20세기 작가의 양대 거장이라 할 수 있는 브레히트와 아르토의 기법들을 모두 보여주는 작품으로 연극사에서 매우 중요하게 인식되는 작품이다.

    이 작품의 매력 중 하나는 여러 층위의 메시지가 숨어 있기 때문에 관객에 따라, 연출자에 따라 다양하게 받아들여진다는 것이다. 박근형 연출의 ‘마라, 사드’에서는 마라의 목소리에 무게중심이 실려 있다. “현재 우리 사회에는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지금 보고 계신 것은 과거의 일이며 앞으로 일어날 수도 있는 일입니다.” 극중극을 진행하는 해설자는 반복해서 강조한다. 그러나 이 말은 관객들에게 반어적으로 와닿는다.



    ‘마라, 사드’는 원작을 충분히 살렸으면서도 연출의 해석이 돋보이는 드라마(김미혜 드라마투르기, 구성), 곳곳에서 적절한 멜로디와 분위기로 극의 내용을 강조하는 음악(박천휘 작곡), 작품의 분위기를 잘 표현해주는 비주얼(무대 윤시중, 조명 김광섭), 배우들의 원숙한 연기가 모두 돋보이는 작품이다(문의 3272-2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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