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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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집은 폭발, 구심점은 실종

중국 어느 곳이나 한국인 급속 증가… 교민들 권익보호 ‘한인단체’ 있는 듯 없는 듯

  • 조창완/ 중국전문연구가ㆍ알자여행사 대표 chocw@paran.com

    입력2005-04-15 11: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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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몸집은 폭발, 구심점은 실종

    중국어를 몰라도 생활이 가능한 베이징 왕징 거리. 한국어 간판들이 빽빽이 걸려 있고, 조선족 보모들이 한국인 아이들과 공원에서 산책하고 있다.

    2004년 겨울 교사들의 한 중국 체험연수회에서 교사들과 LG 노용악 부회장의 간담회가 열렸다. 그때 노 부회장의 말 가운데 인상적인 대목은 “기업인은 물론이고 일반인들까지 중국에 다 다녀갔는데 가장 먼저 와야 할 선생님들이 왜 이제야 왔느냐”는 것이었다. 학생들에게 중국을 바르게 가르쳐야 할 교사들이 이제야 오기 시작했다는 데 대한 책망이면서 기쁨의 표현으로 들렸다.

    베이징(北京)의 한국인 거리인 왕징(望京), 톈진(天津)의 완더좡따지에(万德庄大街), 선양(瀋揚)의 시타(西塔), 상하이(上海)의 구베이(古北) 등은 수만명의 한국인이 사는 곳으로 코리아 타운이라는 말이 전혀 어색하지 않다. 그곳의 최근 수년간 유입자 증가세는 상상을 초월한다. 과거 증가세를 이끌던 이는 중국에서 활로를 찾던 중소·자영업자들이었지만, 최근에는 중·고등학생부터 초등학생에까지 이르는 조기 유학생과 그 가족이다.

    엑소더스(Exodos)같이 중국에 파고드는 중국 속 한국인들의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 미국에서처럼 코리아 타운을 형성하고, 한국인만의 세계를 만들어갈 수 있을까. 아니면 과거 선조들처럼 다시 고국으로 돌아가거나, 문화의 용광로인 중국에 동화돼 살아갈까.

    누구도 정확히 예측할 수 없는 재중 한국인 사회의 미래를 보기 위해서 우리는 몇 가지 전제조건을 확인해야 한다. 먼저 청나라 건륭제의 팔순잔치에 참석하기 위해 수많은 고초를 겪으며 베이징을 거쳐 청더(承德)를 향하던 사신단의 시대와 달리 요즘은 비행기에서 잠시 몸을 뒤척이면 베이징에 닿는 초고속 시대라는 점이다.

    베이징 왕징, 톈진 완더좡따지에 등 수만명 북적



    인천에서 베이징까지 실제 비행 시간은 1시간 반 남짓이다. 인천에서 상하이까지 역시 1시간 반 남짓. 반면 베이징과 상하이 사이는 1시간40분 정도로 한국에서 가는 것보다 더 멀다. 또 최근에는 대도시뿐만 아니라 중국 곳곳으로 항공 노선이 연결되면서 노선 수는 일본을 추월한 지 오래다.

    게다가 베이징인들이 상하이인을 돈밖에 모르는 수전노라고 생각하는 탓에 심리적 거리감을 느끼는 데 반해, 우리나라 사람들은 외국인이라는 인식이 있어서 존중하는 편이다. 상하이인들 역시 베이징인들을 돈도 못 벌면서 정치 논쟁이나 하는 무능한 사람들로 인식한다는 점을 생각하면 그들 간의 거리나 위치 설정은 매우 흥미롭기도 하다.

    또 하나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근성(?)이다. 이미 2002년부터 “중국 속 한국 사회가 무너지고 있다”는 주장이 속속 제기되기 시작했다. 중국 진출 초기, 중국인들과 조선족한테서 받은 피해는 이제 “방심하면 한국인에게 당한다”는 격언으로 바뀐 지 오래다. 여기에 주재원, 자영업자, 유학생 등 여러 계층구조에서 기인하는 교민단체의 결집 실패와 극히 일부이긴 하지만 한국인들의 방탕한 생활 등도 끊임없지 지적되고 있다.

    이런 모습은 3년여가 지난 지금도 마찬가지다. 그 사이에 한국인 수는 급증했지만, 여전히 한인단체는 교민사회에서 중심 축 구실을 하지 못하고 있다. 한 예가 난항에 빠진, 베이징·상하이에서의 한국국제학교 설립 문제다. 정원 680명인 국제학교는 이미 정원이 차 입학이 하늘의 별따기일 만큼 어렵지만, 현지 모금액 380만 달러(정부지원 480만 달러)가 모아지지 않아 학교 측은 건설 중단 위기에 빠져 있다. 바로 이런 일에 한인단체가 제 기능을 해야 하지만 아직까지 그 정도의 신뢰조차 얻지 못하고 있다.

    재중 한인사회가 지속적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권익을 대변해줄 단체가 있어야 하고, 그 몫을 한국인회나 한국상회·한국상공인회 등이 해야 한다. 하지만 이들 단체에 한계가 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한인단체가 좀더 적극적으로 존재 가치를 인식시켜야 한다.

    몸집은 폭발, 구심점은 실종

    톈진에 있는 한국국제학교. 장기 체류하는 신조선족들은 아이들을 한국학교가 아닌 중국공립학교에 보내고 있다. 칭다오 한 교회의 주말 바자 모습(오른쪽).

    이러한 일을 위해 노력하는 곳 가운데 하나가 톈진한국인회다. 각종 문화강좌 등을 열어 교민들을 끌어들이는 한편, 바자 등을 통해 교민을 하나로 모으는 노력을 지속적으로 하고 있다. 한국인회가 활발해지면 이를 바탕으로 시정부 등 중국 기관들과 재중 한국인 관련 논의를 할 수 있고, 한국인의 권익 보호를 위한 장치도 만들어갈 수 있다.

    지금 중국에서 활동하는 한국인들의 대부분은 중소기업가나 자영업자들이다. 이들 대부분은 지금까지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동전화나 자동차 업종 등은 그래도 괜찮지만, 전자나 섬유 업종 등은 중국 기업에 비해 경쟁력이 떨어지고 인건비·세금 등 부대비용의 증가로 삼중고를 겪고 있다.

    한-중 관계는 과거와 달리 급변하고 있다. 우리의 창의적인 사고를 바탕으로 한국기업 제품뿐만 아니라 중국기업에서 만든 물건까지 세계시장에 팔아야 할 상황이다. 우리가 가진 경쟁력이란 적극적인 사고와 유연한 대처 능력을 바탕으로 한 진취적 기상의 세일즈 정신, 한류로 대변되는 문화 콘텐츠의 생산과 마케팅 능력, 그리고 뛰어난 정보통신 적응력을 바탕으로 한 정보통신 기술 개발 및 활용 능력일 것이다.

    중국에서 나름대로 성공한 이들은 “만약 이렇게 발전하는 세계 공장이 중국이 아니라 인도나 브라질이었다면 어떻게 됐을까” 하며 다행스럽게 생각하기도 한다. 중국이 우리나라 옆에 있다는 것은 우리를 위협하는 요소이기도 하지만 우리에게 더 많은 기회를 제공해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재중 한국인 사회는 분명히 그런 전초기지 구실을 하는 곳이다. 전초기지가 제대로 세워지지 않으면 앞으로 중국의 한인사회는 양적인 증가에도 사상누각을 면키 어려울 것이다.

    2001년에 한국상회의 모 사무국장은 “한국 진출 기업 가운데 10%는 이윤을 남기고, 40%는 반반 정도고, 50%는 그만두어야 할지 또는 옮겨야 할지를 놓고 고민한다”고 한탄한 적이 있다. 물론 그 비율은 지금도 바뀌지 않고 있다. 그러나 중국에서의 사업 환경은 계속 나빠졌지만, 이제는 중국에 진출하는 사람들이 무작정 들어오기보다 나름대로 준비한 끝에 오기 때문에 성공 확률이 높아지진 않았지만 실패율도 오르지 않고 있다.

    한인사회 성숙과 유지의 관건은 교육

    그렇다면 재중 한국사회의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 우선 양적인 증가는 거스를 수 없는 대세가 됐다. 베이징의 경우 단기유학생까지 합치면 유학생 수만 10만명을 헤아릴 정도다. 거기에 조기유학생들까지 폭발적으로 늘고 있다. 유학생의 증가는 소비자원의 증가이지, 생산자원의 증가는 아니다. 또 그들은 모래알처럼 흩어져 지내기 때문에 교민들의 구심점도 약하다. 미국의 경우 이런 문제를 해결하던 곳이 교회나 각종 소모임들이었다. 중국에서의 문제는 각각의 소모임들이 자신들만의 리그를 형성해 전체로 가는 데 도움을 주지 않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소모임의 증가는 재중 한국인 사회 통합이라는 인식이 확산될 경우 긍정적인 작용을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지금 중국에 오는 이들은 중국이라는 초원에 양을 놓아 길러서 세계에 팔려는 유목 정신으로 무장한 이들이다. 그들이 사는 세계는 고정되어 있지 않다. 몽골족들에게 아오빠오(敖包)라는 지침대가 있었듯, 우리도 한국인이라는 지침대를 중심에 두고 살아가야 한다.

    중국 내 한인사회의 성숙과 유지의 관건은 교육에 달려 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한국식 교육을 받지 못하는 이들은 자연스럽게 국가에 대한 이해를 잃고 신조선족으로 살아갈 것이다. 조선족 동포들의 경우 3세대 이후부터는 조선인학교가 급속히 줄면서 언어를 잊기 시작했다. 한국이 가까워지면서 한국어의 중요성이 새삼 커지고 있는 것이 현실인데, 먼 훗날 조선족이 지금 겪는 고민을 재중 한국인 후세들이 할 것이 자명하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는 길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한국국제학교를 서둘러 세우는 것이다. 또 재중 한국인들을 골치 아픈 대상으로만 보고 소극적으로 대하던 대사관이나 영사관의 활동 등이 좀더 교민 친화적으로 바뀌어야 한다. 즉 한국인회나 한국상회 등 교민 우호단체들의 활동을 지원·강화해야 하는 시기가 도래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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