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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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 아니, 벌써? 불붙은 대선 레이스

출발선 떠난 페이스메이커들

문재인-안철수 양강구도 고착화 우려에 박원순, 안희정 때 이른 대선 행보 시동

  • 이종훈 시사평론가·정치학 박사 rheehoon@naver.com

    입력2016-06-03 16:4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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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대권 도전이 현실로 다가오면서 대권 잠룡들의 행보도 빨라지고 있다. 대통령선거(대선) 리그의 구도도 변할 조짐이다. 핵심은 누가 반기문과 2강 또는 3강 구도를 형성할 것인가다. 이것이 1부 리그다. 현재 반기문-문재인, 또는 반기문-문재인-안철수로 이뤄진 리그다. 2부 리그에 속한 새누리당 잠룡은 오세훈-김무성-유승민, 더불어민주당(더민주) 잠룡은 박원순-안희정-김부겸이다. 새누리당의 경우 반기문과 2부 리그 선수들의 격차는 따라잡기 힘들 정도로 크다. 반면 더민주는 문재인과 2부 리그 선수들의 격차가 그다지 크지 않다. 과연 반전이 가능할까.



    페이스메이커로 전락한 박원순

    박원순 서울시장은 한때 대권주자 여론조사 지지율 1위였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국갤럽이 2015년 6월 12일 발표한 주간조사 결과에서 17% 지지율로 차기 정치 지도자 선호도 1위를 기록한 게 그것이다.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에 대한 신속한 대처로 국민적 관심이 집중되면서 한 달 만에 6%p 오른 결과였다. 박 시장은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정몽준 전 의원과 대결해 전국적 관심을 모았던 2014년 하반기에도 22%로 1위를 차지한 바 있다. 하지만 올해 5월 한국갤럽 조사에서 박 시장은 6% 지지율로 5위에 머물렀다. 1년 사이 1위에서 5위로 떨어진 것이다.

    박 시장의 지지율 하락에 가장 결정적으로 작용한 것은 안철수 대표의 탈당과 국민의당 창당이다. 이 과정에서 비주류, 특히 옛 민주계와 동교동계가 안 대표와 함께해 호남 민심이 국민의당으로 돌아섰다. 안 그래도 당내 조직기반이 취약한 박 시장이었다. 어차피 친노(친노무현)세력은 문재인 전 대표를 지지할 것이라 전제한다면, 박 시장은 비주류라도 확고히 틀어쥐었어야 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안 대표에게 선수를 빼앗겨버렸다.

    안 대표의 탈당 과정에서 박 시장이 어떤 태도를 취할지도 관심사였다. 안 대표가 후보를 양보함으로써 서울시장 자리에 오른 만큼 공동보조를 취하지 않겠느냐는 관측도 적잖다. 하지만 박 시장은 오히려 문재인 전 대표 측이 제안한 문-안-박 연대를 수용하면서 안 대표와 결별했다. 이 또한 의리 없는 기회주의자 박원순 이미지를 확산하는 데 기여했다.



    문-박 연대로 총선 과정에서 지분을 챙겼다면 그나마 다행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문 전 대표와 친노세력이 이것을 허락할 리 있겠는가. 이번에도 계산 착오로 박 시장은 몇몇 측근을 당선케 하는 데 성공했을 뿐이다. 나머지 측근들은 경선에서 대거 탈락하고 말았다. 더민주 내에서 친노·친문(친문재인)세력은 크게 확장된 반면, 박원순계는 정세균계, 손학규계에도 크게 못 미치는 소수 중에서도 소수에 불과하다.

    박 시장에게 남은 기회는 야권이 다시 요동치는 상황이다. 문 전 대표의 지지율이 급락하거나 더민주 내에서 주류와 비주류 간 갈등이 심해지면서 2차 분열이 일어나는 게 그것이다. 문 전 대표가 악재를 만나 지지율이 하락하면 대체재로서 박 시장의 가치는 높아질 수밖에 없다. 당내 주류인 친노·친문세력은 심정적으로 안희정 충남도지사에게 먼저 마음이 갈 것이다. 하지만 박 시장의 대중적 인기가 안 지사에 비해 더 높다는 점에서 일단은 박 시장을 선택할 개연성이 높다.

    더민주 내에서 다시 탈당 사태가 벌어질 경우, 그래서 야권발(發) 정계개편 움직임이 생기는 경우도 기회다. 이때 탈당해 국민의당에 합류하거나 야권 빅텐트론을 주도하는 것을 상상해볼 수 있다. 물론 이는 서울시장직을 버려야 가능한 일이다. 그렇지 않다면 이 몫은 손학규 전 상임고문이나 김부겸 의원의 차지가 될 공산이 크다. 결과적으로 서울시장직을 유지하는 한 박 시장이 바랄 수 있는 것은 문 전 대표의 지지율 폭락뿐이다. 한때 유력 대권주자였지만 이제는 페이스케이커로 전락한 박 시장의 냉엄한 현실이다.



    페이스메이커로 등극한 안희정

    안희정 충남도지사의 최근 행보가 예사롭지 않다. 원래는 차차기를 노릴 계획이었지만 차기로 급변경했다는 소문이 끊이지 않는다. 5월 20일 더민주 총선 당선인 초청 정책설명회에서 안 지사는 “열심히 훈련하고 연습하고, 불펜투수로서 몸을 풀고 그래야겠다”고 말했다. 사실상 차기 대권 도전 의사를 내비친 것이다. 이에 대해 문 전 대표는 일단 환영 의사를 밝혔다. “안 지사 같은 좋은 후배하고 제가 경쟁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큰 영광”이라는 것이다. 문 전 대표의 말은 페이스메이커로 환영한다는 뜻이다. 안 지사가 일단 페이스메이커로 공식 인정받은 순간이다.

    안 지사는 페이스메이커로 만족할까. 아니다. 박 시장과 마찬가지로 페이스메이커로 일단 당내 경선을 뛰지만, 문 전 대표의 지지율이 폭락하면 대체재가 되겠다는 의지가 강한 것으로 보인다. 마라톤에서 페이스메이커가 우승하는 이변은 적잖게 발생한다. 에베레스트 등정 과정에서도 마찬가지다. 하물며 선거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지 말라는 법은 없다.

    그런 점에서 안 지사는 박 시장에 비해 유리한 위치에 서 있다. 더민주 내 주류인 친노세력이라는 확고한 지지기반을 확보한 까닭이다. 심지어 친노세력 내에서 선수교체론까지 제기되는 상황이다. 문 전 대표로 정권교체에 성공할 수 있겠느냐는 회의론에서 나온 주장이다. 문 전 대표는 2012년 대선 당시 안 대표와 후보단일화까지 했음에도 패했다. 더욱이 문 전 대표는 대표 당시 재·보궐선거 연전연패로 사퇴론에 시달렸고, 결국 비주류를 끌어안지 못해 야권을 분열시킨 장본인이다.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국보위) 출신인 김종인 전 의원을 비상대책위원회 대표로 영입함으로써 호남 민심이 더 이반하는 결과를 초래하기도 했다. 총선에서 신승했다고 하지만, 이를 문 전 대표의 결단 덕분으로 보기는 어려운 측면이 적잖다. 이제 안 대표도 독자 정당을 꾸린 마당에 문 전 대표에게 다시 양보할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본다면, 차라리 새로운 선수로 교체해 야권 후보단일화와 대선 본선에 임하는 것이 유리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반기문 대항마로 안희정의 가치도 없지 않다. 충청권 민심을 반기문 대 안희정으로 반반 가르는 데 성공한다면, 안희정만한 카드도 없다. 여기에 안 대표까지 야권 후보단일화로 주저앉히는 데 성공한다면 한번 해볼 만한 싸움이라는 생각을 친노세력은 할 것이 분명하다.



    페이스메이커는 역시 페이스메이커?

    마라톤에서 페이스메이커가 우승하는 일은 그래도 이변일 뿐이다. 페이스메이커는 메인 선수를 보조할 뿐 아니라, 다른 우승 유력 선수들이 무리하도록 유도함으로써 중도 탈락하게 만드는 일도 한다. 그래서 페이스메이커는 초반 열심히 질주해 선두에 나서는 일이 없지 않다. 안 지사가 페이스메이커 노릇에 충실하려면 당장은 반기문 대항마로서 이미지를 극대화하는 초반 질주전략을 구사해야 한다. 반 총장 방한 직전에 안 지사가 불펜투수론을 제기한 것은 그런 맥락으로 이해가 가능하다.

    그런데 최근 안 지사가 속도 조절에 나섰다는 관측이 없지 않다. 더민주 우상호 원내대표의 발언 역시 그런 관측에 힘을 더한다. 우 원내대표는 최근 한 방송 인터뷰에서 안 지사의 페이스메이커론에 대해 “잘못된 분석 같다. 문재인은 문재인, 안희정은 안희정”이라면서 “두 분이 같은 가문은 맞지만 한 가문에서 한 명만 나오라는 법은 없다. 누구를 돕기 위해 일할 사람은 아니고, 본인이 뜻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아울러 “너무 일찍 몸을 풀면 지친다”는 당부의 말까지 아끼지 않았다. 안 지사가 페이스 조절에 나섰다면, 페이스메이커 이상을 꿈꾼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꿈꾸는 것은 자유지만 현실은 또 다른 문제다. 안 지사에게는 결정적 악재가 하나 있다. 2004년 불법 대선자금 수수 혐의 등으로 실형을 선고받은 게 그것이다. 물론 노무현 전 대통령은 자신을 대신해 처벌받은 것이나 다름없어 늘 미안해했다. 친노세력 사이에서는 그래서 동정론이 일었고 이미 면죄부를 준 상태다. 사면복권까지 이뤄진 까닭에 법적으로 하자 요인도 아니다. 그래서 더민주 내 경선과정에서는 큰 문제가 아닐 것이다. 반면 대선 본선에 나설 경우 국민은 부정적으로 판단할 것이 분명하다. 페이스메이커 이상은 그래서 무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최근 박 시장 역시 달리기 시작했다. 호남을 방문한 데 이어 충청 방문까지 추진했다. 서울메트로 2호선 구의역 사고가 없었다면 강행했을 충청행이다. 충청행의 의도는 뻔하다. 반 총장 때문이다. 문 전 대표가 반 총장의 경북 안동 하회마을 방문에 앞서 선제적으로 하회마을을 방문하고, 연이어 충청을 방문한 것에 자극받은 행보다. 문 전 대표는 반 총장과 조기 2강체제 구축을 시도 중이다. 박 시장은 바로 이 1부 리그에 본인도 얼른 들어가야겠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보인다.

    반 총장이 안 대표의 보수성향 지지세력 일부를 흡수한 최근 여론조사 결과에도 힘을 받았을 것이다. 일단 3강으로 올라선 다음 문 전 대표를 꺾는 초반 질주전략이다. 그런데 앞서 지적했듯이 이는 페이스메이커가 쓰는 전형적 전략이다. 초반 질주 후 탈진이 목표가 아니라면 쓰지 않는 전략, 곧 우승을 노리는 선수의 전략은 아니라는 점이다.

    더욱이 박 시장은 추월을 위해 종종 도로 밖 비포장도로까지 나가는 것이 문제다. 메르스 사태 당시 심야 긴급 기자회견으로 초반 반짝 효과를 봤지만 이후 진정성을 의심받으면서 지지율 속락 사태를 초래한 것이 대표적이다. 최근의 호남행과 충청행에 대해서도 비판 여론이 없지 않은데, 이 또한 유사하다고 본다. 서울시장은 충남도지사와는 또 다르다. 서울시민은 물론 전 국민의 이목이 집중되는 자리다. 서울은 사건, 사고도 빈발하는 곳이다. 구의역 사고처럼 박 시장의 발목을 잡을 만한 일은 허다하다. 그런데 서울시정에 집중하지 않는다면 문재인과 안철수 잡으려다 지지율만 더 떨어지는 악순환의 길로 접어들 수 있다. 무엇보다 비포장도로 질주로는 반짝 효과 이상을 기대하기 어렵다. 더 탈진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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