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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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신해철법, 변호사만 웃는다

법 통과에 의사단체 극심 반발, 환자에겐 불리할 수도…소송 건수와 비용만 크게 늘듯

  • 박세준 기자 sejoonkr@donga.com

    입력2016-06-03 17: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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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앞으로 병·의원의 진료 과실을 밝혀내려는 환자는 의사 동의가 없어도 정부의 의료분쟁 조정 절차를 진행할 수 있게 된다. 19대 국회는 5월 19일 그동안 의사가 거부하면 시작조차 하지 못했던 의사와 환자 간 의료분쟁 조정 절차를 의사 동의 없이 자동개시할 수 있도록 한 ‘의료사고 피해구제 및 의료분쟁 조정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신해철법)을 통과시켰다. 
    환자단체 측은 법안 통과에 일단 환영하는 모양새다. 의사들의 참여 거부로 사실상 실효가 없던 의료분쟁 조정 절차를 이제는 쉽게 밟을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반면 의료계는 크게 반발하고 있다. 개정안이 의사들의 소신 진료를 막고 의료현장 전반에 심각한 문제를 초래할 것이라며 강경대응까지 불사하겠다는 반응이다.  
    이번에 통과된 신해철법의 골자는 환자가 사망·중상해를 입었을 때 진료한 의사나 병원 측에 의료분쟁 조정 참여를 강제할 수 있다는 내용이다. 하지만 법조계에서는 “의료분쟁 조정 참여가 강제된다 해도 조정 결과의 법적 구속력이 없어 오히려 소송만 늘 것”이라며 “의료사고의 진실을 밝히거나 의료소비자의 억울함을 실질적으로 풀어주기보다 변호사의 배만 불리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전망이 우세하다. 



    ‘신해철법’ 핵심은 조정 아닌 소송

    개정된 신해철법에 따르면 의료사고로 환자가 사망하거나 1개월 이상 의식 불명인 상태 또는 장애등급 1급 중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경우에 해당하면 의사의 동의 없이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의료중재원)에 조정을 신청해 조정 절차를 시작할 수 있다. 지금까지는 의료사고가 의심돼 의료중재원에 분쟁 조정을 신청해도 의사가 동의하지 않으면 조정이 이뤄지지 않았다. 
    그러나 신해철법은 법안 심사과정에서 분쟁 자동조정 대상이 크게 축소됐다. 신해철법 원안은 환자 측이 사고 피해의 경중에 관계없이 의료사고가 의심되면 의사 동의 없이 의료중재원에 조정을 신청해 조정 절차를 진행할 수 있게 돼 있었으나, 국회 통과 과정에서 사망자나 중상해자 등으로 조정 대상이 한정됐다. 
    한편 의료계는 “신해철법이 통과돼 조정 건수가 늘어나면 의사들의 소신 진료가 위축되고 소극적인 방어 진료만 성행할 것”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대한의사협회(의협)는 5월 25일 언론 브리핑을 통해 국회가 신해철법 조정 절차에 자동개시 조항을 포함시킨 데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하고, 강경대응 의지를 밝혔다. 김주현 의협 대변인은 “법이 발효되면 의사들이 환자 치료를 우선시하기보다 자기 책임을 최소화하는 식의 방어 진료를 우선시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조정 참여 강제 조항에 대한 의사의 반발은 궁색한 측면이 없지 않다. 신해철법 이전에도 의료분쟁 조정에 의사 또는 병·의원 참여를 강제하는 법 규정이 이미 존재했기 때문이다. 2011년 개정된 소비자보호법에 따르면 신청인이 소비자분쟁 조정을 신청하면 피신청인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한국소비자원을 통해 조정 절차가 자동 진행되도록 규정하고 있다. 신해철법으로 달라지는 부분은 중재를 진행하는 기관이 한국소비자원에서 의료중재원으로 바뀌는 것뿐이다. 
    사실 신해철법의 핵심은 조정이 아닌 소송에 있다. 국내 의료소송에서 원고(주로 환자 측) 승소율은 1.4%에 불과하다. 현행법상 의료사고를 입증할 책임이 환자에게 있지만 의료 비전문가인 환자가 의료 전문가인 의사의 과실과 책임을 찾아내 입증하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의사의 과실 입증을 도와줄 법적 장치가 없다는 것도 문제였다. 소비자분쟁 조정 절차 또한 이 기능을 다하지 못했다. 소비자분쟁 조정의 경우 의사 1명이 조정감정서를 작성하게 돼 있어 판단의 객관성에 의문이 지속적으로 제기됐다.  
    이에 반해 의료분쟁 조정은 의료중재원의 조정 감정을 통해 조정 절차를 진행하는데, 조정 감정위원은 5명으로 의사 2명, 현직 검사와 의료 전문 변호사, 소비자권익위원 각 1명으로 이뤄진다. 이 위원 5명이 관련 자료를 분석해 시시비비를 가린다. 전문가로 구성된 조정 감정위원들이 환자 측 대신 의료사고의 원인을 밝혀주는 셈이다. 이 덕에 의료분쟁 조정 신청 건수는 2013년 1398건, 2014년 1895건, 2015년 1691건 등으로 증가 추세에 있다. 그러나 의사나 병원 측에서 조정을 거절해 2015년까지 조정 개시율은 44.3%로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이번에 통과된 신해철법에 따라 환자 측은 전보다 더 쉽게 의료사고 내막을 알 수 있게 됐다. 안기종 한국환자단체연합회 대표는 “조정 참여 강제 조항이 사망이나 중상해에 머문 점은 아쉽다. 그러나 이 법안으로 사망이나 중상해 의료사고 피해를 입은 환자는 모두 조정 절차를 밟을 수 있게 됐다. 이제 남은 일은 법안 적용 범위를 차츰 넓히는 것”이라며 “이렇게 하려면 법안 내용에 반대하는 의료계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이를 위해 조정위원회의 투명성 확보가 전제돼야 한다. 의료계가 조정위원회의 편파성을 의심해 조정 내용에 불응하지 않도록 양측 모두 납득할 수 있는 조정위원회를 구성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주장했다.



    정작 웃는 것은 소송 늘어난 변호사

    신해철법의 치명적 약점은 조정 결과에 법적 강제성이 없다는 점이다. 어느 한쪽이라도 조정 결과를 거부하면 조정은 실패로 돌아가고 곧바로 민형사 소송으로 이어진다. 조정 결과는 이후에 있을 손해배상 소송의 판결에 큰 영향을 끼칠 수 있기 때문에 병·의원의 경우 조금이라도 불리하다고 판단하면 일단 거부하고 보는 게 관례가 될 개연성이 높다. 결국 신해철법은 의료소송만 늘게 해 법조 수요를 창출하고 가난한 의료소비자는 조정 기간만 낭비한 채 소송까지 가보지도 못하는 결과를 불러올 수 있다는 지적이다.



    성용배 법무법인 정앤파트너스 변호사는 신해철법에 대해 “조정 신청을 독려해 의료소송에 소모되는 비용을 줄이겠다는 입법 취지는 좋지만 의료계나 국민 양측에게 부담이 될 위험이 있는 법안”이라고 평했다. 성 변호사는 “법적 강제성이 없어 조정 결과에 불복하는 경우가 많을 수밖에 없고, 조정이 실패하면 소송을 해야 한다. 기존에는 환자의 손해배상 소송이 주를 이뤘지만 조정 강제 제도가 시행되면 조정 결과에 불복하는 의료계의 채무부존재확인소송(책임이 없다는 내용을 확인하는 소송)도 늘어나 소송 건수 자체가 크게 증가한다. 환자든 의사든 조정 결과에 불복하면 조정 기간을 포함해 소송 기간만 더욱 길어지고 비용도 늘어나는 폐단이 생길 수 있다”고 주장했다. 

    사망·중상해로 법안 적용 범위가 제한된 점이 문제라는 분석도 있다. 신현호 법률사무소 해울 대표변호사는 “의료분쟁 소송에서 사망이나 중상해는 비율이 높지 않다. 결국 소송비용을 줄이는 등의 실효성 확보에는 실패했다”고 말했다. 신 변호사는 “의료분쟁조정제도에 대한 인식 개선 차원에서라도 신해철법은 원안대로 통과됐어야 한다. 과거에는 소송 없이 합의할 수 있는 작은 사안도 의사 측이 조정을 거절해 결국 소송으로 격화되는 경우가 많았다. 신해철법 원안은 굳이 소송까지 갈 필요가 없는 사안들을 조정으로 해결할 수 있었다”며 법안이 수정 통과된 것에 대해 안타까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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