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은 몰라도 몬테스는 안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몬테스 와인은 한국 사람에게 큰 사랑을 받고 있다. 몬테스는 ‘칠레 와인=값싸고 마시기 쉬운 와인’이라는 인식을 깨고 칠레도 프리미엄 와인을 만들 수 있음을 증명한 와이너리로 유명하다. 이제 우리나라에선 ‘국민 와인’이 되다시피 한 몬테스를 1988년 설립한 아우렐리오 몬테스(Aurelio Montes) 회장이 최근 방한했다. 바쁜 일정에도 어렵게 시간을 내준 그를 만나 몬테스 와인에 대해 얘기를 나눴다. 대표 와인인 몬테스 알파(Montes Alpha), 최근 출시한 스파클링 엔젤(Sparkling Angel), 몬테스의 최고급 와인 폴리(Folly)가 바로 그것이다.
필자가 몬테스 회장을 만난 것은 이번이 두 번째. 반갑게 인사를 나누며 그는 “한국이 그리웠다. 한국은 유난히 애착이 가는 나라다. 바쁜 일정 때문에 자주 방문하진 못하지만 한국에 오면 늘 즐겁다”며 밝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실제 그는 2014년 12월 방한한 후 1년 반 만에 다시 한국을 찾았다. 당시 방문은 드라이 파밍(Dry Farming) 방식으로 만든 몬테스 알파 2012년산을 알리기 위한 것이었다. 드라이 파밍은 포도밭에 물을 전혀 주지 않는 농법을 가리킨다. 드라이 파밍 이후 알파에 대한 반응이 더 좋아졌느냐는 질문에 그는 이렇게 답했다.
알파의 숙성 잠재력은 20년 이상
“와인 품질이 나아진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포도나무는 내가 미울 것이다. 너무 고생시키니 말이다(웃음). 포도밭에 물을 주지 않으면 포도는 심층수를 찾으려고 뿌리를 깊게 내려야 한다. 그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시련을 겪은 포도나무는 더 단단한 껍질과 농축된 과육을 만들어낸다. 그래서 드라이 파밍 방식을 사용한 알파에서는 향상된 농축미와 탄탄한 타닌이 느껴진다. 이제 알파는 병 속에서 숙성될수록 한층 더 아름다운 맛을 만들어낼 것이다.”몬테스 알파의 가격은 4만 원 정도다. 누구도 이 가격대의 와인을 셀러에서 오래 묵힐 생각은 하지 않는다. 하지만 몬테스 회장은 알파의 숙성 잠재력이 20년 이상이라고 역설하면서 “알파의 저력을 맛보고 싶다면 셀러에서 오래 보관할 것”을 자신 있게 권했다. “알파는 잘 익은 포도로만 골라 만들기 때문에 최근 빈티지(vintage·생산연도)도 마시기 좋지만, 병 속에서 10년이 지나면 가장 맛있는 시기에 도달한다”고 했다. 더불어 그는 드라이 파밍을 시도한 근본적인 이유도 설명했다.
“내가 드라이 파밍을 시작한 것은 단순히 품질 때문만은 아니다. 가장 큰 목적은 수자원 절약이었다. 그런데 물도 절약하고 와인 맛도 좋아졌으니 일석이조다. 건강한 자연이 우수한 포도를 생산한다. 좋은 포도로 나쁜 와인을 만들 수는 있지만, 나쁜 포도로 좋은 와인을 만들 수는 없다. 나는 와인 양조가지만 포도밭에서 보내는 시간이 더 많다. 포도가 좋아야 와인이 맛있기 때문이다.”
몬테스는 올해 그들의 첫 스파클링 와인인 스파클링 엔젤을 출시한다. 스파클링 엔젤은 샴페인처럼 피노 누아르(Pinot Noir) 70%에 샤르도네(Chardonnay) 30%를 블렌딩한 와인이다. 만드는 기법도 샴페인과 같은 방식을 쓴다. 몬테스 회장에게 스파클링 엔젤을 만들게 된 배경을 묻자 그는 “스파클링 와인 출시는 오랫동안 마음속에 품어온 목표였다”면서 “스파클링 엔젤이야말로 칠레에서 가장 공들여 만든 스파클링 와인”이라고 자신했다.
“이번에 출시한 스파클링 엔젤은 2012년산 포도로 만들었다. 3년 묵혔다 출시한 거다. 스파클링 와인은 두 번 발효를 거치는데, 두 번째 발효가 끝나면 병 속에 효모 앙금이 생긴다. 앙금과 함께 적어도 3년은 숙성시켜야 와인이 부드럽고 우아해진다. 칠레에서 스파클링 와인을 3년씩 숙성시키는 와이너리는 몬테스가 유일하다. 다들 그렇게 하지 않는 이유는 수익성이 없어서다. 하지만 우리는 수익성보다 품질이 먼저다. 수익성 때문에 품질을 저버릴 수는 없다.”
몬테스 회장과 함께 시음한 스파클링 엔젤은 과연 그의 말대로 부드러우면서도 우아했다. 잔에 막 따랐을 때는 상큼한 사과향과 레몬향이 튀어나왔지만, 시간이 조금 지나자 은은한 허브향과 연기향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몬테스 회장은 스파클링 엔젤이 별다른 안주 없이 마시기에도 좋지만, 환상적인 궁합을 맛보고 싶다면 굴과 함께 즐길 것을 권했다.
‘바보’ 폴리의 놀라운 맛
몬테스 회장에게 그가 만든 와인은 모두 소중한 자식일 것이다. 하지만 특별히 애정이 가는 와인이 있지 않을까 궁금했다. 짓궂은 질문에 그는 잠시 망설이더니 “폴리”라고 답했다. 폴리는 시라(Syrah) 품종의 포도로 만든 와인이다. 카베르네 소비뇽(Cabernet Sauvignon)으로 만든 몬테스 엠(M)과 함께 최고급 와인으로 꼽히지만 엠만큼 잘 알려진 와인은 아니다. 그는 “폴리가 무슨 뜻인지 아느냐”며 와인에 얽힌 에피소드를 말해줬다.“내가 폴리를 만들기 전 칠레에는 시라를 심은 와이너리가 없었다. 아무도 칠레에서 시라가 잘될 거라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가 시라를 심으려고 산비탈을 일궈 포도밭을 만들자 모두 나를 바보, 즉 폴리(어리석은 행동)라고 비웃었다. 이것이 곧 와인 이름이 됐다.”
그가 보여준 몬테스 폴리 와인은 레이블이 특이했다. 몬테스의 모든 와인 레이블에는 몬테스의 상징인 천사가 그려져 있다. 하지만 폴리에 그려진 천사는 장난기가 가득했다. 그 이유를 묻자 그는 와인 애호가로 유명한 영국 화가 랠프 스테드먼(Ralph Steadman)과의 일화를 들려줬다.
“랠프가 폴리를 맛보고는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그러더니 선뜻 자신이 레이블 그림을 그려주겠다고 나섰다. 여기에 그려진 천사는 취한 천사다. 폴리와 잘 어울리지 않나(웃음). 몬테스 폴리라고 쓴 이 글씨도 랠프의 필체다. 폴리는 매년 레이블 그림이 바뀐다. 모두 랠프의 작품이다.”
폴리의 맛은 놀라웠다. 농축된 과일향에 향신료의 매콤함과 다크초콜릿의 쌉싸름한 향이 어우러져 있었고, 벨벳 같은 질감이 매력적이었다. 몬테스 회장은 “카베르네 소비뇽으로 만든 몬테스 엠이 이브닝드레스를 걸친 우아한 여인이라면, 시라로 만든 폴리는 사랑스러운 애인 같다”며 수줍게 웃었다. 그는 68세의 중후한 노신사지만 눈은 아직도 30대의 열정을 품고 있었고 감성은 10대 소년과도 같았다.
마지막으로 한국 와인 애호가에게 남기고싶은 메시지가 있는지 물었다. 그는 자세를 고쳐 앉으며 정중한 목소리로 말했다.
“지금까지 한국이 몬테스에 보여준 사랑에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여기에 대한 보답은 절대 실망시키지 않는 것뿐이다. 여러분의 기대와 사랑에 부합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맛있는 와인을 만들겠다고 약속한다.”
몬테스 회장은 말을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나며 “오늘 저녁에도 맛있는 한국 음식에 몬테스 와인을 곁들일 계획”이라며 엄지를 들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