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열릴 올림픽에서 골프 경기가 112년 만에 열린다. 전 세계적으로 골프를 즐기는 나라와 인구가 많아지면서 시범종목으로 채택된 것. 하지만 2020 도쿄올림픽까지 2회 경기만 치르고 야구처럼 퇴출될 수도 있다.
세계적으로 뛰어난 우리 여자 골프 선수들은 올림픽 출전 의지를 불태우고 있지만, 정작 골프 흥행키를 쥐고 있는 남자 세계 톱랭커들은 꼭 그렇진 않다. 세계 랭킹 3위 로리 매킬로이(북아일랜드)는 최근 “지카바이러스 때문에 출전하기 두렵다”는 말로 불참 뉘앙스를 풍겼다. 애덤 스콧(호주)은 “매주 미국 PGA에서도 충분히 나라를 위해 뛴다”고 했고, 올해 마스터스 챔피언인 세계 랭킹 9위 대니 윌렛(영국)은 “2세를 위해 출전이 어렵다”고 말했다.
사실 지카바이러스는 표면적 이유일 뿐이다. 올림픽 불참의 속내는 애국심만으로 상금 한 푼 없는 대회에 출전하기는 어렵다는 것. 골프장의 여러 연못에 지카바이러스를 품은 모기들이 날아다닐 수 있고 브라질의 혼란한 정치 상황도 걱정스럽긴 하지만, 참여 자격이 되는데도 올림픽 출전을 거부하는 것은 우리 정서로는 쉽게 이해하기 어렵다.
사실 올림픽은 오늘날 스포츠의 제왕이 됐지만 올림픽의 역사는 정치사와 무관치 않다. 80년 전 열린 1936 베를린올림픽은 특히 굴절된 대회였다. 역대 올림픽 가운데 정치 선전(propaganda)이 가장 극심한 대회였다. 골프는 그때 정식종목이 될 뻔한 기회를 잡았지만 끝내 물거품이 됐다. 당시 올림픽 개최국 독일의 지배자는 나치 당수 아돌프 히틀러. 그는 올림픽을 통해 독일의 국위를 세계만방에 과시하려 했다. 경기장마다 나치스 상징인 하켄크로이츠 깃발이 펄럭였다. 히틀러는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스포츠 종목이 베를린에서 다 치러지도록 하라”고 지시했다.
3000km 떨어진 올림픽 발상지 그리스 올림피아에서 1500여 명 주자가 이어 달려 성화를 대회장으로 운반하는 방식도 시도했고, 대회 내내 TV 중계도 이뤄졌다. 49개국 3963명 선수 중에는 마라톤 금·동메달리스트인 손기정과 남승룡도 있었다. 게르만의 우수성을 알리려던 히틀러의 프로파간다는 결정적으로 미국 흑인 육상 선수 제시 오언스가 4관왕 위업을 달성하면서 뭉개졌다.
“모든 종목을 다 치르라”는 히틀러의 지시에 따라 1904년 이래 중단된 골프가 32년 만에 올림픽 종목으로 부활하는 듯했지만, 대회가 워낙 갑자기 결정되면서 초청 이벤트로 전락하고 말았다. 그나마 초청 36개국 중 참여 국가는 유럽 7개국뿐. 각국 2명이 한 팀이 돼 이틀간 프랑스 접경 휴양지 바덴바덴골프클럽에서 36홀씩 72홀 스트로크 플레이 방식으로 경기를 치렀다. 골프를 치지는 않았지만 히틀러는 큰 관심을 보이며 메달 외에도 은쟁반에 8개의 노란 호박석을 박은 우승 트로피까지 제작했다.
경기 첫날에는 독일의 19세 레오나드 폰 베케라트, CA 헬머 팀이 영국의 요크셔 사우스포트 헤스켓골프클럽 소속 아널드 벤틀리, 토미 터스크 팀에 3타 차로 앞섰다. 폰 리벤트롭 나치 외무장관이 그 내용을 보고하자 히틀러는 게르만의 위대함을 선전할 기회로 여기고 다음 날 바덴바덴으로 출발했다. 하지만 도중에 독일이 5타 차로 뒤졌다는 보고를 듣고는 노발대발하며 베를린으로 돌아갔다고 한다. 결국 금메달은 영국이 차지했고, 독일은 프랑스에 이어 동메달에 그쳤다. 트로피는 카를 헹켈 독일골프협회장이 대신 수여했다. 히틀러의 진노로 골프는 다시 올림픽 종목에서 잊혀졌다. ‘히틀러 트로피’는 2012년 영국 런던 체스터백화점에 경매로 나왔고, 헤스켓골프클럽이 1만8750파운드(약 3234만 원)에 사들여 벤틀리룸에 보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