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복지부가 7월 1일부터 만 0~2세 자녀를 둔 외벌이 가정을 대상으로 어린이집 ‘맞춤형 보육’을 실시하기로 하자 여론이 들끓고 있다. 맞춤반과 종일반으로 나눠 운영하는 이 제도는 종일반은 기존과 달라진 것이 없지만, 맞춤반으로 배정된 아동은 어린이집 이용 가능 시간이 오전 9시부터 오후 3시까지로 제한된다.
보건복지부가 제시한 종일반 자격 조건을 살펴보면 부모가 취업 중인 경우, 부모가 구직 또는 취업 준비 중인 경우, 그 밖의 돌봄 필요 사유가 있는 경우(아동, 아동의 부모, 형제·자매가 장애가 있는 경우, 자녀 3명(연령 무관) 이상 가구, 임신 중이거나 출산 후 1년이 안 된 경우, 한부모가정, 부모가 학업 중인 경우, 부모가 장기 부재 중인 경우, 저소득층, 다문화가정)에는 종일반에 들어갈 수 있다. 위 사유에 해당하지 않지만 종일반에 꼭 들어가야 할 경우 6월 24일까지 읍·면·동주민센터에서 ‘종일형 요청 자기기술서’(자기기술서)를 작성한 뒤 심사를 거쳐야 한다.
전업주부가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지 않고 되도록 가정에서 키우게 한다는 것이 이 제도의 취지인데, 이에 대해 부모들은 대부분 “황당하다”는 반응이다. 서울 마포구에 거주하는 전업주부 A씨는 “지금도 아이를 아침 10시쯤 맡겨 오후 4시 전후에 데려오고 있어 큰 변화가 생기는 건 아니지만, 전업주부로서 상대적 박탈감을 느낀다. 일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보육시간을 일방적으로 단축하다니, 줬다 빼앗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고 푸념했다.
무늬만 전업주부인 경우에는 더욱 답답할 노릇이다. 남는 시간을 쪼개 부업을 하거나 프리랜서로 활동하는 경우, 공부하면서 시험을 준비하는 경우라면 갑작스러운 ‘규제’에 난감할 수밖에 없다. 물론 자기기술서와 함께 증빙서류를 내면 되지만 대학원은 학업 중인 상태로 인정되는 데 반해 일반 학원이나 한국방송통신대는 해당하지 않고, 구직 중임을 증명하는 구직등록확인서는 1회만 인정돼 효력이 3개월인 구직등록확인서로는 장기간 구직활동이 불가능하다.
원장도 학부모도 불안한 보육의 질
진짜 문제는 따로 있다. 맞춤형 보육의 숨겨진 취지는 바로 ‘보육료 삭감’이라는 점이다. 맞춤반에 해당하는 아동에게는 보육료의 80%만 지급된다. 맞춤반 원아는 월 15시간 ‘긴급보육바우처’를 사용할 수 있는데, 사용시간에 따라 어린이집에 비용이 지급되고 15시간을 다 썼을 경우에는 6만 원이 지원된다. 결국 어린이집은 맞춤반에 해당하는 아동이 많아질수록 재정 면에서 큰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이는 곧 보육의 질 저하로 직결돼 전업주부, 워킹맘, 어린이집 모두에게 손해가 아닐 수 없다.서울 마포구 소재 한 구립 어린이집 원장은 “5월 말 기준 원아의 50% 정도가 맞춤반으로 판정 났다. 기존에 정부로부터 지원받던 월 보육료가 2000만 원 정도인데, 맞춤반 전환 이후 매달 200만 원가량 덜 받게 된다. 당장 아이들 먹거리부터 걱정이다. 지금은 점심식사는 물론 간식도 유기농 재료를 많이 쓰는데, 지원 보육료가 줄어들면 이를 유지하는 게 힘들 것 같다. 아이들 장난감과 학습교구 구매 등에도 제약이 따를 게 뻔하다”고 말했다.
보육교사의 질 저하도 우려된다. 보통 어린이집 운영비의 70%가 인건비로 책정되는데, 맞춤반 운영으로 지원 보육료가 삭감되면 상대적으로 인건비가 저렴한, 경력이 짧은 교사를 채용할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더군다나 맞춤형 보육을 실시하면 교사의 업무는 더욱 가중될 공산이 크다. 보통 영아는 점심식사 후 오후 1시 반부터 2시 반까지 낮잠을 자고 4시까지 간식을 먹으며 휴식시간을 갖는데, 3시에 하원하는 아이들을 따로 챙기려면 교사는 더욱 바빠질 수밖에 없다. 이에 대해 한 보육교사는 “간식 먹는 시간을 한 시간이나 앞당기려면 낮잠시간을 줄여야 하는데, 그러면 아이들의 신체 리듬이 깨지고, 교사들도 서류 작성 등 보육 외적인 일을 처리할 시간이 부족해 추가 근무가 불 보듯 뻔하다”고 말했다. 그 밖에도 통학차량 운행 횟수, 합반 운영, 맞춤형 관련 행정업무 등이 가중돼 교사들의 추가 수당 지급이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
‘맞춤형 보육’은 1월 일었던 ‘누리과정 예산 파행’의 변주곡쯤으로 보인다. 당시 각 교육청이 어린이집에 누리과정 예산을 지급하지 않자 비난을 쏟아내던 보건복지부가 이번에는 예산 감축의 주체가 돼 영·유아 보육비 삭감을 자행하려는 것. 특히 농어촌이나 소도시 등 교육적으로 취약한 지역에서는 맞춤형 비율이 높을 수밖에 없는데, 이는 영·유아 시기부터 차별 없이 공교육을 받게 한다는 정부의 당초 취지에도 어긋나는 결과다.
어린이집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맞춤형 보육 제도 시행에 앞서 정부 지원 보육료의 현실화가 우선시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영숙 한국어린이집총연합회 맞춤형보육비대위원장은 최근 한 라디오 방송에서 정부 지원 보육료와 ‘표준보육비용’의 차이를 줄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올해 보육료가 6% 올랐지만 맞춤형 보육 실시로 줄어들 비용을 생각하면 조삼모사라는 것. 그는 “보육료 단가가 표준보육비용의 80%밖에 되지 않는다. 주변에서 보면 자기 월급도 챙기지 못하는 원장이 허다하다. 여기에 7월부터 맞춤형 보육료 20%가 삭감되면 표준보육비용과의 격차는 더 벌어지게 된다”고 말했다.
공무원도 잘 모르는 맞춤형 보육 취지
현재 어린이집이 2세 이하 아동 인당 받는 정부 지원 보육료는 아동 나이에 따라 다르다. 0세는 41만8000원, 1세는 36만8000원, 2세는 30만4000원이다. 이 금액은 인건비를 지원하는 정부 지원 어린이집에 적용되는 것이고, 인건비 미지원 시설인 민간 가정에는 기본 보육료가 추가돼 0세는 80만1000원, 1세는 55만3000원, 2세는 42만5000원이다. 7월부터는 보육료가 6% 늘어나면 0세는 약 82만5000원, 1세는 57만원, 2세는 44만 원 정도 된다.
현재 정부가 예상하는 종일반 영아는 80%, 맞춤반 영아는 20%다. 비율만 봐서는 맞춤반으로 옮겨가는 아동이 그리 많지 않지만 이는 종일반 원아 비율을 최고치로 잡았을 때 해당하는 수치일 뿐, 5월 19일 공적자료를 기준으로 종일반으로 확정된 원아는 42%밖에 되지 않는다.
아이러니한 점은 정작 행정을 처리해야 할 일선 공무원 가운데 업무를 제대로 숙지하지 못한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며칠 전 주민센터에 자기기술서를 제출하고 왔다는 한 주부는 “주민센터 직원도 왜 이 제도를 시행하는지 정확히 모르는 것 같더라. 그만큼 설득력이 없는 제도라는 걸 방증하는 셈”이라고 비판했다.
한편 보건복지부는 맞춤형 보육으로 예산이 절감되지 않았다는 주장이다. 보육사업기획과 한 관계자는 “종일반의 경우 올해 보육료가 6% 인상됐고, 맞춤반 역시 인상된 금액의 85% 수준이기 때문에 결국 2015년 대비 97%에 해당하는 금액이 지원된다. 보육료가 삭감된 것이 아니라 1083억 원 증가한 것”이라고 밝혔다. “그렇다면 맞춤형 보육을 실시하지 않았다고 가정했을 때 예상되는 증액분은 얼마인가”라는 기자의 질문에는 “보육료 상승률을 얼마로 책정할지 모를 일이기 때문에 정확한 금액은 산정할 수 없다”고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