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습기 살균제 피해 여파가 확대되고 있다. 국내 가습기 살균제를 쓴 소비자는 약 800만 명으로 추산되며, 그중 정부에 피해구제 신청을 한 사람은 5월 현재 1282명이다. 나머지 소비자들은 지금 드러나지 않은 잠재적 질환 가능성 때문에 불안해하고 있다.
가습기 살균제의 독성물질은 코를 통해 흡입돼 폐질환 등을 유발했다. 이 사실이 알려지면서 향초, 방향제, 탈취제 등 다른 품목들도 위해성 논란을 빚고 있다. 이 제품들의 성분은 공기 중에 떠다니다 사람 호흡기로 들어간다는 점에서 가습기 살균제와 일치한다. 해외에서는 이 품목들이 인체에 유해할 수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1월 18일 영국 ‘가디언’에 게재된 한 응급의학과 의사의 기고문은 다음과 같이 분석했다.
“향이 나는 화학물질이 공기와 반응했을 때 생성되는 포름알데히드는 암과 호흡 곤란을 일으킬 수 있으며, 피부에도 좋지 않다. 실내에서 접하는 포름알데히드 같은 화학물질은 천식, 암 등의 발병 확률을 높이는 원인이 된다.”
환기는 되고 통풍은 안 되고? 애매한 주의사항
2월에 나온 영국 왕립외과협회·왕립보건소아과학회의 공동연구 결과도 비슷하다.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유럽에서는 실내 공기오염으로 연 9만9000여 명이 사망하는 것으로 추산되며 실내 공기오염의 주범에는 주방용품, 방향제, 탈취제, 청소세제 등이 포함돼 있다. 연구진은 “이 제품들에 사용되는 휘발성유기화합물은 공기 중으로 증발해 인체에 피해를 입힐 수 있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뽐뿌’ 등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실내 방향제 때문에 머리가 아프다’ 등 부작용을 호소하는 사용 후기가 상당히 많이 올라와 있다.소비자가 제품의 유해성을 인지하려면 제품에 성분명, 사용 시 주의사항과 위험성이 명확히 표기돼야 한다. 국내에서 판매하는 향초, 방향제의 상황은 어떨까.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의 한 향초 가게에 들러 제품들을 살펴봤다. 제품은 향초지만 종류는 ‘방향제’로 표기돼 있고 성분명은 ‘파라핀 왁스(양초), 아로마 향(향료)’이 전부였다. 가게 점원에게 “제품 사용상 유해성은 없느냐”고 묻자, 점원은 “정부의 안전기준을 통과한 제품이라 문제없다. 정 걱정된다면 콩의 천연성분이 들어간 소이왁스 함유 제품을 쓰라”고 답했다.
모든 제품의 겉면에는 ‘화학물질의 등록 및 평가 등에 관한 법률에 의한 위해우려제품 안전기준에 적합함’이라고 쓰여 있었다. 하지만 소비자 처지에서 이해하기 어려운 문구들도 있었다. 사용상 주의사항에는 상충하는 항목 2개가 있었는데, ‘사용 시 충분히 환기하라’와 ‘통풍이 원활한 곳에는 두지 말라’였다. 환기를 하되 바람을 피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주간동아’는 해당 제품의 수입원 측에 ‘통풍이 원활한 곳에 향초를 두면 안 되는 이유’에 대해 질의했다. 수입원 관계자는 “향초 사용 시 그을음이 생기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다. 바람이 불면 그을음이 생긴다. 따라서 촛불을 끌 때도 입으로 불지 말고 심지를 왁스에 담가 끌 것을 소비자에게 권고하고 있다”고 답변했다.
신규옥 을지대 미용화장품과학과 교수는 “초는 바람의 세기와 상관없이 연소 활동 자체에서 그을음을 유발하며, 소이왁스 등 천연성분을 함유한 향초도 실내 공기에 나쁜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사용 시 환기는 필수”라고 강조한다. 신 교수는 “제품에 소이왁스가 함유돼 있더라도 기본 성분이 파라핀인 것은 똑같다. 연소되는 물질은 미세먼지와 그을음, 발암물질을 생성하는 데다, 제품에 인공색소와 향을 첨가하기 때문에 호흡기 및 피부질환을 일으킬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밤에 향초를 켜놓고 자는 일은 대단히 위험하다. 초가 연소하면 실내 이산화탄소 농도가 올라가기 때문에 구토와 메스꺼움 등의 증상을 유발할 수 있다. 따라서 장시간 사용은 자제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정부, 주무부처 바꾸며 늑장 대응
탈취제의 위해성 논란도 확산되고 있다. 특히 P&G 탈취제 ‘페브리즈’는 폐 손상물질을 첨가했다는 이유로 여론의 도마에 올랐다. 미생물억제제로 쓰는 벤조이소치아졸리논(BIT)과 항균제인 암모늄클로라이드 계열의 디데실디메틸암모니움클로라이드(DDAC)가 해당 물질이다. 환경부는 5월 17일 브리핑을 열어 페브리즈의 DDAC 농도(0.14%·섬유탈취용)와 BIT 농도(0.01%·공기탈취용)를 밝혔고 이날 참석한 양지연 연세대 환경공해연구소 교수는 “BIT는 위해도가 높지 않은 것으로 평가되고, DDAC는 안전기준이 없어 독성을 재평가해야 한다”고 분석했다. 정부는 이 성분들의 흡입독성 실험도 검토 중이다.
환경부는 뒤늦게 전수조사에 나섰다. 환경부에 따르면 2015년 지정한 15종의 ‘위해우려제품’을 제조·수입하는 기업에게 제품 내 함유된 살생물질 종류 등을 보고받고 위해우려가 높은 물질은 단계적으로 평가할 예정이다. 위해우려제품은 세정제, 방향제, 탈취제, 합성세제, 표백제, 섬유유연제, 코팅제, 방청제, 김서림방지제, 접착제, 물체 탈·염색제, 문신용 염료, 소독제, 방부제, 방충제 등이다. 정부는 전수조사 결과에 따라 사용 안전기준을 강화하고 고시할 계획이다.
정부의 조사가 늦어진 이유는 주무부처가 해당 제품을 제대로 관리하지 않은 데 있다. 환경부 관계자는 “향초, 방향제 등은 원래 산업통상자원부 소관인 공산품으로 분류됐다. 하지만 가습기 살균제 피해 파동이 일어난 후 2015년 4월부터 환경부 소관이 됐다. 주무부처 이관으로 제품에 새로운 기준을 적용하는 데 시간이 걸린 점을 이해해달라. 9월 30일까지는 이들 제품에 모두 ‘화학물질의 등록 및 평가 등에 관한 법률’ 적용을 완료하고 제품 겉면에 안전 사용 기준 표기를 강화하거나 환경부가 인증한 레이블을 붙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전문가는 향초, 방향제, 탈취제 위험성에 대한 대책이 시급하다고 주장한다. 임종한 인하대 직업환경의학과 교수는 “향초, 방향제는 인체에 해로운 휘발성유기물질을 포함하고 있는데 일반 소비자는 별 안전의식 없이 일상적으로 사용한다. 이 제품들을 잘못 사용했을 때 생기는 문제점을 강력하게 경고하는 조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한 임 교수는 “페브리즈의 유해물질 흡입독성에 대한 실험도 빨리 시행돼야 한다. 정부는 ‘농도가 낮다’는 이유만으로 소비자를 안심시키고 있는데, 세부적인 실험을 실시해 유해물질로부터 국민을 보호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