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중구 씨스퀘어빌딩에서 명맥을 유지해오던 독립영화전용관(독립영화관) 스폰지하우스 광화문이 경영난을 이기지 못하고 5월 13일 영업을 중단했다. 30일 월요일 저녁 스폰지하우스가 있던 건물 1층은 문을 닫았고 2주 전까지 대형 포스터가 걸려 있던 간판 자리는 텅 비어 있었다. 독립영화 팬들이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를 나누던 카페의 불도 꺼져 있었다. 영화관 앞은 주차장이 됐다. 사정을 알지 못하는 승용차들이 영화관 입구와 근처에 세워져 있었다.
그나마 광화문점은 스폰지하우스 3개 지점 가운데 가장 마지막까지 버틴 곳이다. 스폰지하우스 광화문은 10년 전인 2006년 문을 연 독립영화관으로, 당시 개봉작은 일본 영화 ‘카모메 식당’이었다. 개봉 작품에서 알 수 있듯 스폰지하우스 광화문은 주로 일본 예술영화를 상영했다. 스폰지하우스 광화문 관계자는 “예술영화관이 수익을 내기 어려운 현 상황에서 스폰지하우스 광화문도 운영상 어려움이 계속됐다. 마침 건물 임대차 재계약 시점이었고, 정리하는 게 맞다고 판단했다”고 폐점 이유를 밝혔다.
영진위 예산 삭감, ‘다이빙벨’ 상영 괘씸죄?
독립영화관의 위기는 스폰지하우스 광화문이 문을 연 2006년 이미 시작됐다. 그해 서울 종로 씨네코아, 명동 시네콰논과 중앙시네마 등이 줄줄이 문을 닫았다. 멀티플렉스가 늘어나면서 영화관 경영이 악화됐기 때문이다. 살아남은 독립영화관들은 영화진흥위원회(영진위)의 지원금으로 버텼다. 영진위는 ‘영화 및 비디오물의 진흥에 관한 법률’(영화비디오법)에 따라 2002년부터 매년 20곳 내외 예술영화관을 선정, 지원해왔다. 특색 있는 상영 프로그램을 유지하는 독립예술영화관을 지원해 관객의 영화 선택 다양성을 보장하겠다는 취지였다.그러나 이 지원제도도 2015년 사실상 실효를 잃었다. 그해 2월 영진위가 발표한 지원사업 계획안에 따르면 지원받을 수 있는 독립영화관은 2014년 25개관에서 2015년 3개관으로 줄어들었다. 게다가 실제 지원금이 지급된 영화관은 영진위가 직영으로 운영하는 인디플러스와 한국영상자료원의 시네마테크 KOFA, 마지막으로 서병수 부산시장이 이사장으로 있는 인디플러스 영화의전당 3곳뿐이었다. 이 3곳의 공통점은 세월호 참사 원인을 추적한 다큐멘터리 영화 ‘다이빙벨’을 상영하지 않았다는 것. 영진위는 2014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이 영화 상영을 앞두고 영화제 주최 측과 갈등 끝에 예산을 삭감해버렸다.
그나마 있던 지원금은 2015년 7월 완전히 끊겼다. 영진위는 2002년부터 2014년까지 시행된 ‘예술영화전용관 지원사업’을 폐지하고 ‘예술영화 유통배급 지원사업’을 2015년 7월부터 시작했다. 예술영화 유통배급 지원사업은 영진위가 독립영화 작품을 선정한 뒤 상영관 대관료와 일정 홍보비용을 해당 영화 배급자에게 지원해주는 정책이다. 즉 독립영화관은 영진위가 선정한 영화를 상영해야만 대관료를 받아 운영할 수 있는 것이다.
지원금이 축소되거나 사라지자 비영리 민간독립영화관은 쓰러지기 시작했다. 지난해 11월 서울 종로구 소격동 씨네코드 선재의 폐관을 시작으로 올해 1월에는 강원도에 있는 유일한 독립영화관인 강릉독립예술극장 신영(신영)이 휴관했으나 재개관일은 정해지지 않았다. 신영은 공지사항을 통해 ‘영진위 예술영화관 지원사업의 중단 이후 건물 임대차 계약을 연장하지 못할 정도로 재정 상황이 열악해져 휴관을 결정하게 됐다. 대자본 위주의 독점적 영화시장 안에서는 민간의 노력과 의지만으로는 대안적인 극장 설립과 운영이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을 지난 4년간 극장 운영으로 확인했다’고 밝혔다. 현재 멀티플렉스 계열을 제외하고 남은 예술영화관은 전국에 30곳 남짓이다.
독립예술영화전용관 인디스페이스의 안소현 사무국장은 “영진위가 새로 진행하는 사업은 독립영화관의 프로그램 편집권을 침해하는 행위”라고 평가했다. 안 사무국장은 “영진위의 입맛대로 작품을 선정하고, 이 작품을 틀 영화관을 새로 건립하는 사업을 진행 중”이라며 “이는 독립영화관의 작품 선택을 제한해 프로그램 편집을 통한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는 문제적 사업”이라 말했다.
전문성 없는 위탁사가 예술영화 선정
영진위의 새 사업인 예술영화 유통배급 지원사업은 위탁사업자를 통해 영화 48편을 선정하고 이 중 다시 24편을 뽑는다. 이 24편을 정해진 기준에 따라 상영하는 극장에게 지원금을 주는 방식이다. 독립예술영화관 측과 한국독립영화협회는 위탁사업자를 선정해 예산을 들이는 대신, 영진위가 직접 작품 선정을 담당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영진위 측은 “전문성 있는 단체에 맡겨야 한다”며 이들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영진위 측 관계자는 “지원 형태를 바꾼 이유는 민간독립예술영화전용관이 대부분 한국 독립예술영화가 아닌 해외 예술영화를 주로 상영했기 때문이다. 국내 영화 진흥을 위해선 변경이 불가피했다. 선정된 영화 24편은 그다지 많은 수가 아니다. 1년 상영의 30% 수준이며, 나머지 70%는 각자 알아서 상영하면 된다”고 해명했다.
영진위 고집대로 변경한 지원사업은 그대로 강행됐다. 2015년 10월 예술영화 유통배급 지원사업의 위탁 수행자로 (사)한국영화배급협회가 선정됐다. 문제는 사업자로 선정된 한국영화배급협회는 원래 비디오업계 발전을 위해 세워진 단체라는 점. 한국영화배급협회는 1999년 비디오업계의 건전한 유통질서 확립과 건전한 비디오문화 육성을 목적으로 설립된 한국영상산업협회가 이름을 바꾼 단체였다.
영진위는 “위탁사 공모에 지원한 곳이 한국영화배급협회 한 곳뿐이었다. 재공고를 냈지만 지원한 곳이 또 이곳뿐이었다. 그래서 이 단체의 사업 진행 가능성 여부만 따졌다. 상황이 이런데 (독립영화관들이) 직접 단체를 꾸려 공모하지 않고 위탁사의 전문성만 따지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항변했다.
정작 지원사업에 응모하는 작품도 없었다. 영진위는 2015년 10월 15일부터 29일까지 위탁사업자를 통해 작품을 접수받아 선정하기로 했지만, 실제 접수 신청 건수는 두 건에 불과했다. 독립영화계에서 사업 보이콧에 나섰기 때문이다. 같은 달 독립영화감독 120명은 예술영화 유통배급 지원사업에 작품을 접수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독립영화관 측도 반발했다. 전국독립예술영화전용관모임은 성명을 통해 “한국영화배급협회의 전문성에 문제가 있다”며 예술영화 유통배급 지원사업 정책 철회를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영진위는 3월 독립영화계와 독립영화관 측 요구와는 전혀 다른 해결책을 내놓았다. 영진위가 3월 발표한 2016년 사업계획에는 예술영화 유통배급 지원사업 외에 독립영화관 설립 지원사업이 추가됐다. 사라지는 독립영화관을 보호하기 위한 고육지책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온도차가 크다. 계획안의 세부 내용에 따르면 독립영화전용관 설립 지원사업 신청 대상을 지방자치단체나 공공기관으로 한정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영진위 관계자는 “독립영화관 설립 지원사업에는 공공기관뿐 아니라 공공기관의 지원이 확정된 민간단체도 참여 가능하다. 기존 사업을 접고 새 사업을 시작한 이유는 역시 한국 독립예술영화가 민간독립영화관 위주의 시스템에서는 잘 상영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독립영화계 인사는 “독자적 편집권을 지닌 민간 비영리 독립영화관이 사라진다면 관객은 영진위가 고른 독립영화만 볼 수 있게 된다”며 “지금은 독립영화관들이 손해를 보지만 결과적으로 이 사업의 부작용은 관객에게 돌아갈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