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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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세상과 진정 만나는 방법

  • 이명재 자유기고가

    입력2008-07-30 09: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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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른 세상과 진정 만나는 방법

    ‘점퍼’

    뉴욕 맨해튼 거리에 서 있던 사람이 눈 한번 감았다가 뜨니 로마 콜로세움에 와 있다. 다시 깜짝할 새 이번에는 런던의 빅벤이다. 그리고 이집트의 스핑크스로, 파리의 에펠탑과 도쿄, 상하이로. 원하는 대로 순식간에 이동하는 이런 초능력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상상, 누구든 어린 시절 한 번쯤은 해봤을 법하다. 영화 ‘점퍼’는 이 같은 판타지를 포착한 것이다.

    “스핑크스 꼭대기에서 점심을 즐기고, 가벼운 술 한잔 마시러 영국으로 점핑한다.”

    이 영화의 홍보 문구는 생각만 해도 스릴 넘치고 신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아쉽게도 이런 초능력은 공상에 가까운 것이니, 사람들은 대신 세계여행을 떠난다. 특히 한국인들에게 세계를 구석구석 다녀보는 것은 동경이고 꿈이다. ‘80일간의 세계일주’의 포그 선장이나 인디아나 존스 박사처럼 세계를 누벼보는 것. 그건 제 땅에서 지평선을 볼 수도 없는 한국인에게는 강렬한 꿈이다. 그 낭만과 동경을 채우러 많은 이들이 외국에 나간다. 지난 수천 년간 허기졌던 만큼 그 허기를 채우려는 듯 식탐은 맹렬하다. 그건 죽기 전에 꼭 해야 할 숙원과도 같은 것이며 세계는 넓고 가야 할 곳은 많다는 사실을 확인하기 위한, 여행담 털어놓기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기 위한 분투다.

    그 레이스는 숨가쁘고 미처 소화하지 못해 체할 정도다. 지난 여행의 여운이 사라지기도 전에 다음 목적지를 계획한다. 여행을 독서에 비유한다면, 독서에 속독·통독·정독이 있듯 여행에도 그런 구분이 가능할 수 있다.

    “어떤 책은 맛만 볼 것이고, 어떤 책은 통째로 삼켜버릴 것이며, 또 어떤 책은 씹어서 소화해야 할 것이다.” 프란시스 베이컨의 말을 빌리자면 한국인의 여행은 아직 씹어서 소화시키는 정도는 아닌 것 같다.



    여행에 등급을 매길 때 경치를 보고 오는 것이 가장 낮은 것, 다음이 문물, 그리고 가장 높은 것은 사람을 사귀는 것이라고 했다. 낯선 풍광만을 담고 오려 할 때, 낯선 것과의 만남은 단지 낯선 것에 그친다. 그러나 낯선 것, 낯선 이들을 만나는 것은 또 다른 우리를 만나는 것이다. 결국은 자신을 발견하는 것이며 진지하게 만나는 것이다. 영화 ‘모터사이클 다이어리’에서 남미를 여행하던 체 게바라는 어머니에게 쓰는 편지에서 이렇게 고백하지 않던가. “한 번도 본 적 없는 것을 이렇게 그리워할 수 있을까요?”

    고유가로 항공료가 올랐지만 공항은 여전히 북적댄다. 하지만 우리는 아직 다른 세상과 진정으로 만나는 법에 미숙하다. 동남아로 많은 이들이 나가지만 이웃 아시아에 대해 우리는 얼마나 알고 있을까. 그저 새로운 것, 기이한 것만을 찾는 여행.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점퍼’의 순간 이동이나 다를 게 없다.



    영화의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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