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권택 감독의 영화 ‘만다라’를 보면, 햇볕 드는 절 마루에 쪼그리고 앉아 나무로 부처 조각을 깎는 ‘땡중’ 지산이 나온다. 그는 다음과 같은 대사를 읊는다.
“천년을 두고 사람들은 부처의 미소가 신비하다느니 불가사의하다느니 이야기해왔지. 부처가 신이 아니고 인간일진대, 그렇게 침묵하며 요지부동할 수 있을까? 지금 이 순간에도 중생은 병들고 권세와 돈 가진 자에게 억눌려 신음하는데 그렇게 빙그레 웃고만 있을 수 있을까? …난 참말 부처의 얼굴을 만들고 싶은 거네. 그래서 이렇게 나무토막을 깎고 또 깎는 거라네. 이것은 추악한 내 비곗덩어리와 살을 깎는 작업이기도 해.”
천년을 두고 염화미소를 띠는 부처의 마음과 그 마음에 다가가려는 중생의 지난한 몸짓이 열매를 맺어 ‘한 감독의 백 번째 영화’라는 전무후무한 기록이 한국 영화사에 세워졌다.
거장의 백 번째 영화 ‘전무후무한 기록’
임권택 감독의 백 번째 영화 ‘천년학’. ‘만다라’로 시작된 그의 ‘길’은 ‘서편제’에서 5분간 빛나는 남도 길의 롱테이크로 이어지더니, 한 이복남매의 이룰 수 없는 숙명의 교차로가 된다. 절절한 맨얼굴의 길들 위에서 수십 년을 만나고 헤어져도 서로를 잊지 못하는 남녀의 마음길이 된다. ‘천년학’은 거장의 손길로 다듬고 자신의 살을 깎아가며 완성한 임권택 세계의 총결산서라 할 만하다.
영화는 이복남매의 엇갈린 운명과 부박한 희로애락이 교차하는 인생 스토리이기도 하지만, ‘취화선’이 그러했듯 ‘예술가로서의 정체성과 예술이 무엇인지’에 관한 관조와 성찰도 담겨 있다.
눈이 먼 송화와 유랑극단을 전전하는 동호는 자신들이 끝내 같이 살 수 없을 것이라는 예감을 떨치지 못한다. 그것은 또한 임권택이 감지하고 품어온 자신의 슬픔, 즉 끝내 완성의 점근선만을 향해 무한대 고독 속을 걸어야 하는 예인의 슬픔이기도 하다.
‘취화선’에서 장승업은 이러한 슬픔을 짓이기고 자신을 극복하려는 결기에서 스스로 불구덩이 가마 속으로 걸어 들어가고 말았다. 그러나 이제는 그마저 초극한 듯, 동호가 북을 잡은 자리에 두 마리 학이 유유히 날갯짓을 하며 날아간다. 그 가운데 마주치는 세인의 평판과 예술가로서의 영광은 미물이나 봄날의 뽀얀 먼지 같은 것이라는 걸 이 노(老)대가는 이미 알고 있는 것이다.
송화는 지방 유지의 소실이 되어 작은 영화를 누리며 살아간다. 하지만 살을 나눈 부잣집 영감이 죽어가자 그는 매화가 흩날리는 가운데 ‘꿈이로다 꿈이로다. 모두가 다 꿈이로다. 너도 나도 꿈속이요, 이것저것이 꿈이로다. 꿈 깨이니 또 꿈이요, 깨인 꿈도 꿈이로다. 꿈에 나서 꿈에 살고, 꿈에 죽어가는 인생 부질없다’며 창으로 그의 죽음길을 위무한다. 유미적 아름다움과 시각적 나르시시즘이 절창인 매화원 장면은 수많은 이들이 감독에게 바친 헌사와 존경에 대한 화답인 것이다.
소리와 영상 어우러진 임권택식 영화의 화룡점정
이러한 경지에 다다른 감독이기에 더 이상 속세의 평가나 법제니 관습이니 하는 것들이 그의 길을 막을 수 없다. 과거 ‘적벽가’의 명창이던 한 노인이 송화의 노래가 법제에 맞지 않는다며 혼을 내자, 동진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누나, 실망하지 마. 사람들이 좋아해서 어떤 길이 나면 그것이 길이 되고, 그러면 이제 새 길이 나는 법이야.”
‘천년학’은 ‘족보’에서 출발해 ‘씨받이’ ‘춘향뎐’ ‘취화선’에 이르기까지 늘 거대한 산수화 안에서 인간을 하나의 점처럼 배치하는 임권택식 영화 미학이 화룡점정을 이룬 작품이기도 하다.
한 예로, 제주도 갈대밭에서 송화는 사우디아라비아로 떠나는 동호를 앞에 두고 춘향전의 ‘이별가’를 부른다. 그 순간 자연은 숨을 죽이고 바람은 정지한 듯하다. 임권택의 자연은 유장한 롱테이크 안에서 벽화처럼 주인공들의 마음속 깊이 숨겨진 소회를 대변한다. 그것은 둔탁한 소음 속에서도 묵묵히 자신들이 있어야 할 곳을 알고 그곳에 있는 나무와 바람, 산과 강물에 조응하는 주인공의 눈과 귀와 입인 것이다.
눈이 먼 송화가 북소리만으로도 동호의 존재를 알아차리는 장면 역시 임권택식 미학을 보여주는 명장면이었다. 카메라는 송화의 얼굴에 다가가지만, 무수한 말을 삼키고 있는 정지한 얼굴 밖, 화면 밖, 아니 세상 밖에서는 동호의 북소리가 메아리친다. 또 한 번 임권택은 고통의 바다 같은 한반도의 역사와 누추하고 부박한 이 땅의 풍광마저 감싸안는다. 그 순간 명치끝을 찌르는 듯한 슬픔이 몰려든다.
그렇기에 고작 관객이 네 명 든 극장에서 임 감독의 영화를 관람하는 행위 자체가 ‘천년학’의 마지막 메타포인 것만 같았다. 사람들은 더는 ‘서편제’의 속편이라 생각했을 임 감독의 백 번째 영화를 보러 오지 않는다. 감독은 외길을 가는데, 관객들은 변했고 세월은 흘렀다.
칸은 임권택 대신 김기덕과 이창동의 영화를 선택했다. 왠지 그 모든 것이 쇠락하는 말년의 느낌을, 영화 속에서 석양이 지는 가운데 뒷모습을 보이며 마지막 숨을 고르는 유봉을 떠오르게 한다.
俗에 발 담그고 살면서 俗 초월하려는 갈구
그러한 면에서 ‘천년학’의 결말은 낙관적이라 할 수 없다. 줄기차게 임권택의 영화는 속(俗)의 세상에 발을 담그고 살면서도 결국에는 속을 초월하려는 휴머니즘의 갈구로 창녀, 씨받이, 호스티스의 환한 가랑이를 통해 다시 태어났다. 예를 들면 ‘만다라’에서 지산은 오랜 방랑 뒤 자신과 사랑을 나누었던, 그러나 지금은 창녀가 된 여자 집을 찾는다. 그때 카메라는 그녀가 정성껏 닦아놓은 지산의 고무신을 클로즈업한다. 누구 말마따나 ‘들병이의 서방’이 되고 싶어하는 임권택식 휴머니즘은 ‘창녀, 씨받이, 호스티스’ 등 천대받는 여성의 질곡을 경유해 남성 주인공들에게 따뜻한 고향의 안식을 주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 ‘천년학’에 이르러서 남자가 여자가 다니던 강가 주막을 다시 찾지만, 그곳에는 과거라는 안개, 뿌연 기억의 그림자만 자욱하다. 세상에 대한 임권택의 비애는 더 짙어졌고, 이름도 의미심장하게 ‘천년학’이란 판타지만이 빈 곳을 채운다.
그리하여 임권택의 주인공들은 오늘도 길을 떠난다. 그 자리에 세상의 질곡과 세상의 영화를 모두 누려봤을 노대가도 함께한다. 비애와 슬픔, 연민과 불운을 관조와 정치한 아름다움으로 승화시키며 임권택의 ‘천년학’은 지상을 떠나 끝내 다시 지상에 내려오지 않는 쪽을 택한 것 같다.
“천년을 두고 사람들은 부처의 미소가 신비하다느니 불가사의하다느니 이야기해왔지. 부처가 신이 아니고 인간일진대, 그렇게 침묵하며 요지부동할 수 있을까? 지금 이 순간에도 중생은 병들고 권세와 돈 가진 자에게 억눌려 신음하는데 그렇게 빙그레 웃고만 있을 수 있을까? …난 참말 부처의 얼굴을 만들고 싶은 거네. 그래서 이렇게 나무토막을 깎고 또 깎는 거라네. 이것은 추악한 내 비곗덩어리와 살을 깎는 작업이기도 해.”
천년을 두고 염화미소를 띠는 부처의 마음과 그 마음에 다가가려는 중생의 지난한 몸짓이 열매를 맺어 ‘한 감독의 백 번째 영화’라는 전무후무한 기록이 한국 영화사에 세워졌다.
거장의 백 번째 영화 ‘전무후무한 기록’
임권택 감독의 백 번째 영화 ‘천년학’. ‘만다라’로 시작된 그의 ‘길’은 ‘서편제’에서 5분간 빛나는 남도 길의 롱테이크로 이어지더니, 한 이복남매의 이룰 수 없는 숙명의 교차로가 된다. 절절한 맨얼굴의 길들 위에서 수십 년을 만나고 헤어져도 서로를 잊지 못하는 남녀의 마음길이 된다. ‘천년학’은 거장의 손길로 다듬고 자신의 살을 깎아가며 완성한 임권택 세계의 총결산서라 할 만하다.
영화는 이복남매의 엇갈린 운명과 부박한 희로애락이 교차하는 인생 스토리이기도 하지만, ‘취화선’이 그러했듯 ‘예술가로서의 정체성과 예술이 무엇인지’에 관한 관조와 성찰도 담겨 있다.
눈이 먼 송화와 유랑극단을 전전하는 동호는 자신들이 끝내 같이 살 수 없을 것이라는 예감을 떨치지 못한다. 그것은 또한 임권택이 감지하고 품어온 자신의 슬픔, 즉 끝내 완성의 점근선만을 향해 무한대 고독 속을 걸어야 하는 예인의 슬픔이기도 하다.
‘취화선’에서 장승업은 이러한 슬픔을 짓이기고 자신을 극복하려는 결기에서 스스로 불구덩이 가마 속으로 걸어 들어가고 말았다. 그러나 이제는 그마저 초극한 듯, 동호가 북을 잡은 자리에 두 마리 학이 유유히 날갯짓을 하며 날아간다. 그 가운데 마주치는 세인의 평판과 예술가로서의 영광은 미물이나 봄날의 뽀얀 먼지 같은 것이라는 걸 이 노(老)대가는 이미 알고 있는 것이다.
송화는 지방 유지의 소실이 되어 작은 영화를 누리며 살아간다. 하지만 살을 나눈 부잣집 영감이 죽어가자 그는 매화가 흩날리는 가운데 ‘꿈이로다 꿈이로다. 모두가 다 꿈이로다. 너도 나도 꿈속이요, 이것저것이 꿈이로다. 꿈 깨이니 또 꿈이요, 깨인 꿈도 꿈이로다. 꿈에 나서 꿈에 살고, 꿈에 죽어가는 인생 부질없다’며 창으로 그의 죽음길을 위무한다. 유미적 아름다움과 시각적 나르시시즘이 절창인 매화원 장면은 수많은 이들이 감독에게 바친 헌사와 존경에 대한 화답인 것이다.
소리와 영상 어우러진 임권택식 영화의 화룡점정
이러한 경지에 다다른 감독이기에 더 이상 속세의 평가나 법제니 관습이니 하는 것들이 그의 길을 막을 수 없다. 과거 ‘적벽가’의 명창이던 한 노인이 송화의 노래가 법제에 맞지 않는다며 혼을 내자, 동진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누나, 실망하지 마. 사람들이 좋아해서 어떤 길이 나면 그것이 길이 되고, 그러면 이제 새 길이 나는 법이야.”
‘천년학’은 ‘족보’에서 출발해 ‘씨받이’ ‘춘향뎐’ ‘취화선’에 이르기까지 늘 거대한 산수화 안에서 인간을 하나의 점처럼 배치하는 임권택식 영화 미학이 화룡점정을 이룬 작품이기도 하다.
한 예로, 제주도 갈대밭에서 송화는 사우디아라비아로 떠나는 동호를 앞에 두고 춘향전의 ‘이별가’를 부른다. 그 순간 자연은 숨을 죽이고 바람은 정지한 듯하다. 임권택의 자연은 유장한 롱테이크 안에서 벽화처럼 주인공들의 마음속 깊이 숨겨진 소회를 대변한다. 그것은 둔탁한 소음 속에서도 묵묵히 자신들이 있어야 할 곳을 알고 그곳에 있는 나무와 바람, 산과 강물에 조응하는 주인공의 눈과 귀와 입인 것이다.
눈이 먼 송화가 북소리만으로도 동호의 존재를 알아차리는 장면 역시 임권택식 미학을 보여주는 명장면이었다. 카메라는 송화의 얼굴에 다가가지만, 무수한 말을 삼키고 있는 정지한 얼굴 밖, 화면 밖, 아니 세상 밖에서는 동호의 북소리가 메아리친다. 또 한 번 임권택은 고통의 바다 같은 한반도의 역사와 누추하고 부박한 이 땅의 풍광마저 감싸안는다. 그 순간 명치끝을 찌르는 듯한 슬픔이 몰려든다.
그렇기에 고작 관객이 네 명 든 극장에서 임 감독의 영화를 관람하는 행위 자체가 ‘천년학’의 마지막 메타포인 것만 같았다. 사람들은 더는 ‘서편제’의 속편이라 생각했을 임 감독의 백 번째 영화를 보러 오지 않는다. 감독은 외길을 가는데, 관객들은 변했고 세월은 흘렀다.
칸은 임권택 대신 김기덕과 이창동의 영화를 선택했다. 왠지 그 모든 것이 쇠락하는 말년의 느낌을, 영화 속에서 석양이 지는 가운데 뒷모습을 보이며 마지막 숨을 고르는 유봉을 떠오르게 한다.
俗에 발 담그고 살면서 俗 초월하려는 갈구
그러한 면에서 ‘천년학’의 결말은 낙관적이라 할 수 없다. 줄기차게 임권택의 영화는 속(俗)의 세상에 발을 담그고 살면서도 결국에는 속을 초월하려는 휴머니즘의 갈구로 창녀, 씨받이, 호스티스의 환한 가랑이를 통해 다시 태어났다. 예를 들면 ‘만다라’에서 지산은 오랜 방랑 뒤 자신과 사랑을 나누었던, 그러나 지금은 창녀가 된 여자 집을 찾는다. 그때 카메라는 그녀가 정성껏 닦아놓은 지산의 고무신을 클로즈업한다. 누구 말마따나 ‘들병이의 서방’이 되고 싶어하는 임권택식 휴머니즘은 ‘창녀, 씨받이, 호스티스’ 등 천대받는 여성의 질곡을 경유해 남성 주인공들에게 따뜻한 고향의 안식을 주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 ‘천년학’에 이르러서 남자가 여자가 다니던 강가 주막을 다시 찾지만, 그곳에는 과거라는 안개, 뿌연 기억의 그림자만 자욱하다. 세상에 대한 임권택의 비애는 더 짙어졌고, 이름도 의미심장하게 ‘천년학’이란 판타지만이 빈 곳을 채운다.
그리하여 임권택의 주인공들은 오늘도 길을 떠난다. 그 자리에 세상의 질곡과 세상의 영화를 모두 누려봤을 노대가도 함께한다. 비애와 슬픔, 연민과 불운을 관조와 정치한 아름다움으로 승화시키며 임권택의 ‘천년학’은 지상을 떠나 끝내 다시 지상에 내려오지 않는 쪽을 택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