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식 스마트 포투 쿠페(위)와 2001년식 스마트 포투 카브리오. 둘 다 600cc다.
국내에 250대 정도 운행 추산
한국에 돌아와 메르세데스벤츠가 생산하는 경차 스마트(Smart)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국내에서는 정식 수입되고 있지 않다는 아쉬운 정보도 함께.
하지만 스마트는 잊을 만하면 다시금 눈앞에 나타났다. 영화 ‘다 빈치 코드’에서 남녀 주인공이 루브르박물관을 탈출할 때 타고 가는 차가 바로 스마트다. ‘어느 멋진 순간’에서 러셀 크로가 프랑스 시골길을 달리던 차도, ‘스쿠프’에서 우디 앨런이 스칼렛 요한슨을 구출하기 위해 타고 달리던 차도 스마트다. 거기에다 아주 가끔씩 서울 시내에서 스마트와 우연히 마주쳤다. 독일 자동차가 대체 어떤 경로를 통해 머나먼 한국까지 왔을까. 스마트를 타는 사람들은 과연 어떤 사람일까. 호기심에 ‘코리안 스마터(Korean Smarter)’를 찾아 나섰다.
“정확하게 기억합니다. 2002년 12월24일, 파리 샹젤리제 거리에서였어요. 첫눈에 반해버렸죠.”
한국가스공사에서 근무하는 신인식(39) 씨는 한국의 전통문양 치우천왕을 그려 넣은 파란색 스마트의 주인이다. 그 또한 신혼여행으로 떠난 파리에서 스마트를 보고 반했고, 귀국 후 수소문을 해 차의 정체를 알아냈다고 한다. 그리고 2004년 일본국제경매장을 통해 꿈에 그리던 스마트를 국내로 수입하는 데 성공했단다.
4월14일, 신씨를 비롯한 6명의 스마트 마니아들을 한자리에서 만났다. 이들이 스마트를 타게 된 동기는 가지각색. 권진환(28) 씨는 캐나다 유학 시절 친구의 스마트를 타보고는 “생각보다 넓은 실내공간과 독특한 디자인에 반해” 스마트를 구입, 배에 실어 한국으로 들여왔다. MBC 카메라감독으로 일하고 있는 박형준(33) 씨는 가장 저렴한 출퇴근용 차를 찾다 스마트를 선택했다. 배기량이 600cc인 스마트는 경차다. ‘경차 대접’을 받으니 주차료나 고속도로 통행료 등이 저렴하다(사진촬영을 위해 이동한 올림픽공원에서도 주차료로 단돈 1500원만 냈다. 소형차 주차료는 3500원).
차가 작으니 주차 또한 쉽다. 자동차 1대 주차공간에 3대까지 주차할 수 있다. 박씨는 “무엇보다 연비가 뛰어나다”며 흡족해했다. 스마트의 연비는 대략 ℓ당 22km. 서울에서 부산까지(417km) 달릴 경우 2만8500원(ℓ당 1500원 가정)이면 되는 셈이다.
코리아 스마터 6명이 자신의 스마트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오른쪽 위부터 시계 반대 방향으로 문호, 김병열, 권진환, 신인식, 박은아, 박형준 씨.
1997년 2인용 경차 스마트 포투(For Two)가 독일 프랑크푸르트 모터쇼(IAA)에 첫선을 보였다. 반응은 뜨거웠다. 이듬해부터 생산되기 시작한 스마트 포투는 현재까지 36개국에서 약 75만 대가 팔렸다. 메르세데스벤츠는 포투뿐 아니라 천장이 열리는 카브리오, 스포츠카 로드스터, 5인승 포포(For Four) 등으로 다양한 스타일을 선보이고 있다. 스마트란 ‘스와치(S)와 메르세데스벤츠(M)가 만든 예술(ART)’이라는 뜻이다.
길이 2.5m 배기량은 600cc
국내 스마트 오너들은 인터넷 카페를 통해 끈끈한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다. 다음의 ‘My스마트’와 ‘Smart Owners Club’, 프리챌의 ‘스마트 매니아’가 대표적인 관련 카페. 이들은 국내에 250여 대의 스마트가 운행되고 있다고 추산한다. 오너들 중에는 20대 후반~30대 중반의 남성이 가장 많고, 여성 오너는 10명 중 1명꼴로 적은 편이라고.
비록 국내에서는 극히 소수만이 스마트카를 타고 있지만, 이보다 몇 배 많은 스마트 ‘원츄’들이 있다. 다음카페 ‘My스마트’의 회원은 3300여 명인데, 이 중 100명 이하가 진짜 스마트 오너이고 나머지는 ‘때’를 기다리며 스마트 관련 정보를 열심히 습득하는 사람들이라고 한다.
요즘 이 카페에서는 서울 양재동 오토갤러리에 2007년 신형 스마트 카브리오가 전시된 지 3시간 만에 팔린 일이 화제다. 1억원이 넘는 벤츠S500L을 사러 온 어느 부부가 스마트를 보자마자 반해 S500L과 함께 스마트를 곧장 사갔다는 것. 일주일 정도 팔지 않고 전시할 계획이었는데, 바로 돈을 내고 가져가겠다는 사람을 도저히 말릴 수 없었다는 후문이다.
치우천왕을 그려 넣은 신인식 씨의 스마트(오른쪽)는 중형 세단 길이의 절반 정도에 불과하다.
스마트의 길이는 2.5m에 불과하다. 르노삼성 SM5의 길이가 4.95m이니 딱 절반이다. 작기 때문에 안전성에 문제가 있지 않을까. 스마트 오너들은 먼저 인터넷에 떠다니고 있는 스마트 충돌실험 동영상을 보라고 권했다. 스마트가 시속 70마일(약 112km/h)로 달리다 20t의 콘크리트와 부딪히는 동영상인데, 유리는 깨졌지만 차체의 뼈대에 해당하는 프레임은 깨지지 않았다(이 프레임은 조립식이 아니라 전체가 하나로 돼 있다). 신인식 씨는 “트리디온 안전 셀이라 불리는 프레임이 워낙 튼튼해 웬만한 충격에는 깨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김병열 씨는 “지난 1월 뒤에 오던 국산 중형차가 스마트를 들이받았는데, 스마트는 전혀 다치지 않고 국산 차만 크게 부서졌다”고 경험담을 전했다.
자신의 스마트 포투 카브리오를 타고 포즈를 취한 박형준 씨.
“고속도로를 달리다 보면 옆에 딱 붙어 주행하면서 계속 차 구경을 하는 사람도 있어요. 차선을 바꾸질 못하게 하니 좀 난처해요.”(권진환)
“택시기사가 제 스마트를 넋 놓고 구경하다 핸들을 잘못 돌려 다른 차와 접촉사고를 낸 적도 있어요. 좀 미안했죠.(웃음)”(신인식)
“어느 날은 운전 중에 휴대전화를 받았는데 한 아저씨가 대뜸 ‘어디서 샀냐’고 묻는 거예요. 스마트를 보고 너무 궁금한 나머지, 앞 유리창에 꽂아놓은 제 휴대전화 번호를 보고 전화했대요.”(박은아)
“여자친구와 스마트를 타고 가면 사람들이 디카로 스마트와 저희를 찍어대요. 처음엔 쑥스러워서 얼굴도 못 들었는데, 요새는 브이(V)자를 그리면서 포즈까지 취하곤 합니다.”(문호)
“어딜 함부로 못 갑니다. 눈에 잘 띄니까 ‘야, 너 거기서 뭐 하냐’ ‘지금 어디 가냐’는 전화가 자주 걸려와요. 제가 아는 한 사업가는 스마트를 몰고 술집에 갈 수가 없어서 다른 차로 바꿨대요.”(박형준)
2인승이라서 좀 불편할까. “오히려 장점이 많다”고 이구동성이다. 회사 야유회 때나 지방으로 결혼식 또는 문상 갈 때 ‘운짱’ 노릇을 안 해도 되기 때문이다. 김병열 씨는 “스마트 덕분에 여학생들 사이에서 인기가 좋다”고 귀띔했다.
메르세데스벤츠는 37번째 스마트 판매 국가로 미국을 꼽았다. 내년 1월 뉴욕 현대미술관에서 스마트 전시회를 여는 것을 시작으로 대형 자동차 중심의 미국에서 ‘꼬맹이’ 스마트의 판매가 개시된다. 하지만 벤츠코리아는 한국에서는 스마트를 정식 수입 판매할 계획이 아직 없다고 한다. 많은 이들이 이 점을 무척 아쉬워하고 있다. 스마트의 미국 판매가가 1만2000~1만7000달러(1115만~1580만원)인 점과 비교할 때 국내로 개별 수입해오는 비용이 무척 비싸기 때문이다.
“혼자 혹은 둘이 타고 다니는 자동차가 거의 대부분인데 왜 모든 자동차가 5인승 이상인지 모르겠어요.” 문호 씨가 스마트를 쓰다듬으며 이렇게 말했다. 생각해보니 정말 그렇다. 그동안 우리는 불필요를 필요로 오해했던 것이 아닐까. 익숙한 사물을 새롭게 인식하게 하는 것. 그것이 스마트의 작지만 강한 매력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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