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 주민들의 마당 구실을 하는 건물 로비(왼쪽). 옥상 정원에 심은 자작나무.
자세히 보면 검은 벽이 아니라 전체가 투명한 유리창으로 돼 있다. 빌딩 안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표정까지 선명하게 드러날 정도다. 닫힌 듯 열려 있는 신비로운 공간. 바로 세계적인 디지털 셋톱박스 제조회사 휴맥스의 새 사옥 ‘휴맥스 빌리지’다. 2006년 10월에 완공돼 입주가 진행 중이다.
빌딩 속 상상하기 힘든 너른 마당
이 건물을 설계한 건축설계사무소 ‘이로재’의 승효상(54) 소장은 애초 ‘분당의 창(窓)’이라는 컨셉트를 갖고 작업을 시작했다고 한다. 실제로 탄천변에 줄지어 선 오피스 빌딩들은 마을공동체를 물길로부터 차단하는 ‘장벽’ 같은 구실을 한다. 그 길고 긴 담은 휴맥스 빌리지에 당도해서야 마침내 한 박자 쉴 수 있는 여유를 갖는다. 작가의 의도가 절묘하게 맞아떨어지는 것이다.
휴맥스 사옥의 이름이 ‘마을(빌리지)’이란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2000여 평 대지에 연건평 1만2000평, 지상 12층, 지하 5층으로 이뤄진 널찍한 휴맥스 빌리지는 자연을 안에 품은 독특한 건물이다. 이 ‘마을’은 사방팔방으로 뚫려 외부와 직접 연결된다. 누구라도 쉽게 마을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 입구에 펼쳐진 정갈한 연못과 하얀 자작나무, 그리고 너른 마당은 여느 오피스 빌딩에서는 상상도 하지 못할 광경이다.
건물은 각 층마다 별도의 정원을 품고 있는 형태로, 1층 마당에서 하늘을 바로 올려다볼 수 있다. 비나 눈이 건물 정원에서 자라는 나무와 풀 위에 직접 떨어지는 것은 물론, 밝은 햇살이 각 층 전체에 골고루 퍼진다.
건물 지하에 있는 지역 주민을 위한 공연장(왼쪽). 휴맥스 빌리지 입구.
이곳을 방문한 사람들은 한결같이 한 건물 안에 도시와 자연의 모습을 조화롭게 표현한 작가의 작업에 찬사를 아끼지 않는다. 더구나 이 같은 작업이 대기업도 아닌 벤처회사에 의해 이뤄졌다는 점에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휴맥스 변대규(46) 사장은 휴맥스 빌리지의 대지 매입을 시작한 2002년부터 건물이 완성된 2006년 10월까지 임직원에게 “건물은 우리가 짓지만 결국은 우리 것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고 한다. 사옥이란 지역 주민의 쉼터가 돼야 함은 물론, 나아가 지역 명물로 자리잡을 때만이 진정한 가치를 지닐 수 있다는 의미다.
이제는 세계적인 건축가로 대접받는 승 소장은 “처음에 ‘나에게 모든 것을 맡기지 않으면 나서지 않겠다’고 배짱을 부렸지만, 실제로 건축주가 간섭하지 않은 것은 기적 같은 일이다”라고 평가했다.
물론 이는 변 사장의 철학과 함께 승 소장에 대한 무한한 신뢰가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변 사장과 승 소장의 남다른 관계는 널리 알려져 있지만, 이들을 이어준 사람이 박노해(48) 시인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
지역 주민 쉼터로 자리매김
시인 박노해. 건축가 승효상. 휴맥스 변대규 사장(왼쪽 부터).
박 시인은 1991년 남한사회주의노동자동맹(사노맹) 사건으로 무기징역을 받고 수감 중일 때 ‘사회진보가 아닌 생활진보’를 고민하면서 건축에 관심을 쏟았다고 한다. 92년 달동네의 효율적 공간활용을 주장한 승 소장의 ‘빈자의 미학’에 감명받은 박 시인이 그에게 연락을 함으로써 교류가 시작됐다. 이후 승 소장은 (사)나눔문화 운동에 자문위원 자격으로 참여하면서 박 시인의 평화운동을 적극 후원했다.
2002년 휴맥스 사옥을 구상하던 변 사장은 박 시인에게 자문을 구했다. 이에 박 시인은 “기업에게 사옥은 생명과 같다”고 답하면서 승 소장을 추천했다. 승 소장은 즉각 “‘비움’의 공간 안에 자연을 담아보자”고 제안했고, 변 사장은 그 ‘비움’이 자신의 ‘나눔 경영’과 다르지 않다고 화답했다고 한다.
결국 휴맥스 빌리지는 ‘나눔’ 철학을 공유한 세 사람에 의해 탄생한 ‘비움’ 공간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