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일했던 모 월간지에서 보리밥 잘하는 식당들을 소재로 기사를 써달라는 원고청탁을 받았다. 하지만 흔쾌히 허락하고는 고민에 빠졌다. 보리밥 잘하는 식당이라? 청탁자 의도는 보리밥 잘 짓는 식당을 말하는 것 같은데, 보리밥 맛있는 집이 ‘보리밥을 잘 지어 맛있는 것일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보리밥 맛의 요소 중 보리밥이 차지하는 비중이 얼마나 될까?
사실 보리밥을 먹으면서 반찬을 곁들이는 법은 거의 없다. 이렇게 말하면 열에 열은 그럼 어떻게 먹냐고 고개를 살래살래 흔들 것이다. 보리밥엔 갖가지 나물과 고추장, 참기름, 된장 또는 청국장 등이 따라야 한다. 그러니까 식당에서 그냥 ‘보리밥’이라고 차림표에 써놓았지만 엄밀하게 말하면 보리비빔밥이라고 해야 맞는 것이다. 보리밥 맛있는 식당을 뽑는 기준은 보리밥을 잘 짓는 게 아니라 나물과 된장찌개(청국장) 등을 얼마나 맛있게 요리하느냐다.
이런 식당은 의외로 많다. 사실 대부분의 보리밥집들은 웬만큼 맛을 낸다. 된장과 참기름, 고추장 등 보리밥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몇 가지 요소에 집중하면 맛에서 거의 실패하지 않는 게 보리밥이다.
나물과 된장찌개 등 부재료가 맛 좌우
원고청탁을 받고 사흘쯤 뒤에야 이런 생각이 드니 난감하기 이를 데 없었다. 쓴다고 해놓고 보리밥에 대해 써야 할지, 나물이나 된장국 따위에 대해 써야 할지 되묻는다는 것은 맛 칼럼니스트로서뿐만 아니라 거절하려는 핑계로 비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며칠 끙끙거리다 결국 원고를 썼다. 대한민국 보리밥집의 대명사인 영월 장릉보리밥집을 비롯해 일산 신도시의 폼나는 보리밥집, 남산의 ‘퓨전’보리밥집 등등.
그런데 기사를 쓰면서 정말 아쉬웠던 것은 내가 먹은 보리밥 중 최고라고 여겼던 집이 지금은 사라지고 없다는 점이다. 종로 피맛골 홍도식당과 청주 육거리장터의 리어카 보리밥이다. 홍도식당은 내가 몇 차례 소개해 인터넷에서 검색하면 자세한 내용을 알 수 있는데, 순박한 노부부가 그들의 인생을 담아 내놓는 것 같은 투박함에 매료돼 혼자서도 가끔씩 가던 곳이었다. 지금은 재개발로 사라졌다.
청주 육거리장터 보리밥은 10여 년 전 내가 지면을 통해 소개한 후 방송에도 여러 번 나갔는데, 할머니들이 집에서 한 보리밥과 나물, 된장국을 리어카에 싣고 와 장터에서 팔았다. 값은 1000원이었고 그릇을 들고 장바닥에 앉아 먹어야 했다. 그러나 1000원이라는 값과 장바닥에 쪼그리고 앉아 먹어야 한다는 특별함 때문이 아니라, 참으로 맛있었다. 대접에 아무렇게나 퍽퍽 담아주는 보리밥이었지만 집에서 금방 한 밥에 집된장, 집고추장, 집참기름 등으로 맛을 내니 어찌 그 맛이 깊지 않을 수 있겠는가(보리밥 식당 중 집에서 직접 된장, 고추장 담그고 참기름 짜는 집이 얼마나 되겠는가). 지난해 청주에 갈 일이 있어 리어카 보리밥 한 그릇 먹자고 육거리 시장바닥을 뒤지며 할머니들을 찾았다. 그러나 장터 사람들은 그 할머니들이 언제 사라졌는지도 기억하지 못했다.
많은 사람들이 의외로 보리밥 맛있게 먹는 요령을 모르는 것 같다. 보리밥은 어떻게 먹느냐에 따라 맛 차이가 크다. 쌀밥처럼 밥 먹고 반찬 먹는 식으로 먹으면 특유의 촉감과 냄새 때문에 반 공기도 들기 어렵다. 보리밥은 비벼야 한다. 고추장도 좋고 강된장이나 청국장도 좋다. 여기에 여러 나물을 섞을 수 있는데 그렇다고 가짓수가 많을수록 더 맛있어지는 것은 아니다. 잘 익은 열무김치나 콩나물, 고사리 등 기본 나물만 있어도 충분히 맛이 난다. 또 하나 빠뜨리지 말아야 할 것이 참기름이다. 제대로 짠 참기름 두어 방울은 모든 나물의 ‘하자’를 감출 수 있다. 비빌 때는 젓가락을 쓰는 게 좋다. 숟가락으로 비비면 밥알이 눌리거나 깨지면서 맛이 덜하게 된다. 젓가락으로 살살 비비면 나물과 밥이 의외로 잘 섞인다.
다 비볐으면 한 숟갈 듬뿍 떠서 입 안 가득 넣고 씹어야 제 맛이다. 우걱우걱. 눈물이 찔끔 날 정도로. 미끌하고 거친 촉감은 나물들로 인해 감춰지고 특유의 냄새는 고추장이나 된장, 참기름 향에 묻히면서 구수한 맛이 입 안 가득해진다. 입 안의 보리밥을 다 넘겼으면 바로 다시 한 숟갈 밀어넣어 중간에 쉬는 일이 없어야 한다. 입 안에서 벌어지는 쉼 없는 맛의 충돌을 즐기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시원한 숭늉 한 사발 들이켜면서 불룩해진 배를 확인하는 재미, 이게 보리밥의 진짜 맛이다.
사실 보리밥을 먹으면서 반찬을 곁들이는 법은 거의 없다. 이렇게 말하면 열에 열은 그럼 어떻게 먹냐고 고개를 살래살래 흔들 것이다. 보리밥엔 갖가지 나물과 고추장, 참기름, 된장 또는 청국장 등이 따라야 한다. 그러니까 식당에서 그냥 ‘보리밥’이라고 차림표에 써놓았지만 엄밀하게 말하면 보리비빔밥이라고 해야 맞는 것이다. 보리밥 맛있는 식당을 뽑는 기준은 보리밥을 잘 짓는 게 아니라 나물과 된장찌개(청국장) 등을 얼마나 맛있게 요리하느냐다.
이런 식당은 의외로 많다. 사실 대부분의 보리밥집들은 웬만큼 맛을 낸다. 된장과 참기름, 고추장 등 보리밥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몇 가지 요소에 집중하면 맛에서 거의 실패하지 않는 게 보리밥이다.
나물과 된장찌개 등 부재료가 맛 좌우
원고청탁을 받고 사흘쯤 뒤에야 이런 생각이 드니 난감하기 이를 데 없었다. 쓴다고 해놓고 보리밥에 대해 써야 할지, 나물이나 된장국 따위에 대해 써야 할지 되묻는다는 것은 맛 칼럼니스트로서뿐만 아니라 거절하려는 핑계로 비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며칠 끙끙거리다 결국 원고를 썼다. 대한민국 보리밥집의 대명사인 영월 장릉보리밥집을 비롯해 일산 신도시의 폼나는 보리밥집, 남산의 ‘퓨전’보리밥집 등등.
그런데 기사를 쓰면서 정말 아쉬웠던 것은 내가 먹은 보리밥 중 최고라고 여겼던 집이 지금은 사라지고 없다는 점이다. 종로 피맛골 홍도식당과 청주 육거리장터의 리어카 보리밥이다. 홍도식당은 내가 몇 차례 소개해 인터넷에서 검색하면 자세한 내용을 알 수 있는데, 순박한 노부부가 그들의 인생을 담아 내놓는 것 같은 투박함에 매료돼 혼자서도 가끔씩 가던 곳이었다. 지금은 재개발로 사라졌다.
청주 육거리장터 보리밥은 10여 년 전 내가 지면을 통해 소개한 후 방송에도 여러 번 나갔는데, 할머니들이 집에서 한 보리밥과 나물, 된장국을 리어카에 싣고 와 장터에서 팔았다. 값은 1000원이었고 그릇을 들고 장바닥에 앉아 먹어야 했다. 그러나 1000원이라는 값과 장바닥에 쪼그리고 앉아 먹어야 한다는 특별함 때문이 아니라, 참으로 맛있었다. 대접에 아무렇게나 퍽퍽 담아주는 보리밥이었지만 집에서 금방 한 밥에 집된장, 집고추장, 집참기름 등으로 맛을 내니 어찌 그 맛이 깊지 않을 수 있겠는가(보리밥 식당 중 집에서 직접 된장, 고추장 담그고 참기름 짜는 집이 얼마나 되겠는가). 지난해 청주에 갈 일이 있어 리어카 보리밥 한 그릇 먹자고 육거리 시장바닥을 뒤지며 할머니들을 찾았다. 그러나 장터 사람들은 그 할머니들이 언제 사라졌는지도 기억하지 못했다.
많은 사람들이 의외로 보리밥 맛있게 먹는 요령을 모르는 것 같다. 보리밥은 어떻게 먹느냐에 따라 맛 차이가 크다. 쌀밥처럼 밥 먹고 반찬 먹는 식으로 먹으면 특유의 촉감과 냄새 때문에 반 공기도 들기 어렵다. 보리밥은 비벼야 한다. 고추장도 좋고 강된장이나 청국장도 좋다. 여기에 여러 나물을 섞을 수 있는데 그렇다고 가짓수가 많을수록 더 맛있어지는 것은 아니다. 잘 익은 열무김치나 콩나물, 고사리 등 기본 나물만 있어도 충분히 맛이 난다. 또 하나 빠뜨리지 말아야 할 것이 참기름이다. 제대로 짠 참기름 두어 방울은 모든 나물의 ‘하자’를 감출 수 있다. 비빌 때는 젓가락을 쓰는 게 좋다. 숟가락으로 비비면 밥알이 눌리거나 깨지면서 맛이 덜하게 된다. 젓가락으로 살살 비비면 나물과 밥이 의외로 잘 섞인다.
다 비볐으면 한 숟갈 듬뿍 떠서 입 안 가득 넣고 씹어야 제 맛이다. 우걱우걱. 눈물이 찔끔 날 정도로. 미끌하고 거친 촉감은 나물들로 인해 감춰지고 특유의 냄새는 고추장이나 된장, 참기름 향에 묻히면서 구수한 맛이 입 안 가득해진다. 입 안의 보리밥을 다 넘겼으면 바로 다시 한 숟갈 밀어넣어 중간에 쉬는 일이 없어야 한다. 입 안에서 벌어지는 쉼 없는 맛의 충돌을 즐기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시원한 숭늉 한 사발 들이켜면서 불룩해진 배를 확인하는 재미, 이게 보리밥의 진짜 맛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