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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한 상생협력 100대 프로젝트’(이하 100대 프로젝트)는 100개가 넘는다. 지금도 더 늘어나고 있다. 나는 100대 프로젝트와 관련해 하나의 아이템(프로젝트)이 거론되면 그것을 평양-베이징-서울과 연결해 가능성을 스크린해보았다.
실사구시에 입각한 100대 프로젝트의 상당수는 중국도 할 수 있는 것들이다. 내가 공개를 꺼리는 이유다. 중국이 북측에 2400만 달러짜리 유리공장을 지어주고 얼마나 생색냈는지 기억할 것이다. 일견 소소해 보일 수도 있는 몇 가지 프로젝트를 통해 100대 프로젝트의 방향만을 밝힌다.
100대 프로젝트는 4000억원 수준이면 할 수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정상회담의 대가로 지불한 돈은 어디로 갔는지 아무도 모르지 않는가. ‘퍼주기’는 주기만 하고 받는 게 없어서 나온 불평이다. ‘제대로 주고 제대로 받는’ 공식이 정착돼야 한다.
북, 석회석 많지만 탄산칼슘 공장이 없다
100대 프로젝트의 첫머리에는 ‘조선수출상품전시회’가 자리한다. 전시회는 2000년 이후 숱하게 나온 주제임에도 성사되지 못했다. 왜 안 되었는가? 우선 북측에 문제가 있다. 북측이 만드는 상품의 질이 떨어진다고 여기는 지도부가 이 결정에 소극적이었다.
남측도 마찬가지 문제가 있었다. 전시회의 중요성을 생각하지 못했다. 내가 말하는 ‘전시회’는 명절 때 백화점에서 이뤄지는 이른바 ‘북한상품전시회’ 같은 것이 아니다. 완제품만 다뤄선 제대로 된 전시회가 이뤄질 수 없다.
먼저 북측의 상품을 △완제품 △반제품 △원료제품 △가공제품의 네 가지 영역으로 구분해야 한다. 전시회를 통해 북한의 ‘수준’을 파악하면 완제품은 남측 기술로 디자인을 업그레이드해 상품성을 높일 수 있다. 반제품은 기술 지원을 하거나 원재료의 지원을 통해 상품의 질적 변화를 도모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원료제품이다. 상품단계 이전의 원료제품이 경협의 핵심이다. 가공제품은 기술 이전을 통해 북측이 만드는 완제품의 정밀성을 높인다.
조선수출상품전시회가 서울에서 개최되면 남북은 서로의 산업과 기술, 상품 및 원료의 수준을 파악할 수 있다. 중소기업은 이를 통해 기회비용을 줄이면서 남측 기술과 북측 자원 혹은 노동력을 결합한 사업을 모색할 수 있다. 이 전시회에서 이뤄진 계약은 남북 정부가 보장하는 형식을 취해야 한다. 남측의 많은 중소기업이 이 전시회를 통해 활로를 모색할 수 있을 것이라 본다.
서울서 소비되는 미나리 개성서 재배할 수 있다면
원료제품 가운데 ‘탄산칼슘(limestone 또는 calcium carbonate)’을 예로 들어보자. 나는 탄산칼슘 공장 하나 정도는 북측에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확인 결과 전량 수입하고 있었다. 한국의 대표적인 탄산칼슘 회사가 1978년에 생겼다는 점에서 보면 의외였다. 게다가 원재료인 석회석은 북측에 풍부하다.
최근 중국 쟈웨이(嘉維)화공실업유한공사가 광둥성에 세계 최대 규모의 나노 탄산칼슘 공장을 세웠다. 이 공장에서 제조된 탄산칼슘은 플라스틱, 고무, 도료, 제지 등 다양한 분야에 응용된다. 지난 10년간 중국이 이 기술을 개발, 발전시킨 것이다.
이 공장의 생산제품인 소성용 석회석, 중질탄산칼슘, 생석회, 소석회, 탈황용 등은 모두 석회석에서 출발되는 제품이다. 생석회는 비료로도 쓰인다.
남측의 탄산칼슘 기술을 북측으로 이전해 생산하거나 북측의 석회석을 가져오면 남북이 상생할 수 있다. 탄산칼슘은 언뜻 보기에 생산과정이 매우 단순한 것 같지만 정교한 지도가 뒤따라야 한다. 그래서 반드시 남측 기술이 필요하다.
4월24일 개성공단에 입주한 한 의류공장에서 북측 직원들이 옷을 만들고 있다(왼쪽). 서울의 한 대형 할인마트에 북한에서 생산된 포장김치가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이 농장에서 미꾸라지나 오리 등을 생산하면서 상품화를 확대할 수 있다. 물론 그 과정에서 남측 기술이 이전돼야 한다. 가장 기본적인 소비품인 농산물을 신토불이로 값싸게 생산, 소비하는 시스템을 남북이 갖게 되는 것이다.
서울의 농산물 소비는 엄청나다. 북측에서는 군이건 해당 지방기업이건 정해지는 단위에서 얼마든지 이 사업을 수행할 수 있다. 그 과정에서 남측이 자본을 제공하고 해당 전문가가 기술 지도 및 이전을 꾸준히 해야 한다. 먹을거리를 늘리는 기술은 북측에게 긴요하다. 그 기술을 넘겨주고 생산물을 구입해오자는 것이다.
농산물과 관련해선 ‘조선농산물포장가공센터’의 설립도 빼놓을 수 없다. 개성이든 그 인근이든 관계없이 계절마다 혹은 지역마다 나오는 특정 농산물을 ‘상품화’할 수 있는 포장가공센터가 설립돼야 한다.
북측의 포장기술은 열악하다. 기계와 자재 모두가 부족하다. 그런 상태에선 상품이 좋아도 건조제품을 제외하고는 외국에 내다 팔기가 어렵다. 북측의 농산물을 ‘재화가치를 지닌 상품’으로 만들기 위해선 생산물에 ‘포장’과 ‘가공’이 덧붙여져야 한다. 그 기술을 남측이 제공하고 생산품을 수입한다면 서로 윈윈할 수 있다.
이러한 농업협력이 북측의 특정 지역 수준을 벗어나 전국으로 확대되면 수확시기별, 계절별, 상품별로 경협 시스템이 만들어질 수 있다. 북측의 농업담당 부서와 남측의 농협이 파트너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예컨대 ‘옻나무’를 살펴보자. 평북 태천은 옻나무가 자생하는 곳이다. 태천 옻은 우루시올(Urusiol)이 60~80%나 함유됐다고 한다. 옻은 공업재료와 약재로 쓰인다. 암과 난치병에도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남북이 옻나무를 특산품으로 산업화하면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 옻의 사례처럼 소소해 보이지만 남측의 도움으로 부가가치를 높일 수 있는 북측 농산품이 적지 않다.
어업협력과 관련해 양식산업을 살펴보자. 해수 이용 육상수조 방식의 양식산업은 한국이 경쟁력을 갖고 있다. 기술 수준도 높다. 태풍이나 해일의 영향을 받지 않고 육상에 건립된 수조를 이용한 양식산업은 다양한 부대산업을 만들어낼 수 있다. 북한에 자본을 제공하고 이 기술을 전수하면 남측은 소비시장이 된다. 또한 북측 내에서의 소비로 연결될 수도 있다.
중국에서 수입하는 어패류의 양을 떠올려보자. 윈윈 아닌가. 그러나 이러한 어업협력은 특정 기업 수준에서 이뤄지기 어렵다. 기업이 뛰어들면 남북간의 괴리로 시작도 못해보고 좌절하기 쉽다. 결국 종합적인 정부 차원의 협력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남북간엔 다양한 정보기술(IT) 분야의 협력이 있었다. 그러나 대부분 실패했다. ‘조선하이테크 수출센터’라는 기구의 공동 설립을 추진하는 것은 그래서 의미가 있다. 이 또한 기업이 하기엔 버겁다. 북측에서 상품화가 가능한 IT기술이 시장성을 가지려면 남측의 전폭적인 지원이 필요하다.
2001년 중국 베이징에서 당시 범태평양조선민족경제협력촉진위원회 주최로 제1회 조선소프트웨어전시회가 개최된 이후 지금까지 북측의 IT기술 수준을 파악할 만한 이렇다 할 전시 기회도 마련되지 않고 있다. 이후로도 북측의 IT기술이 일부 전해졌으나 제대로 된 협력모델은 아직까지 만들어지지 못했다.
황사 예보·IT·어업 협력도 절실
‘환경기술센터’의 설립도 필요하다. 예를 들어 황사를 예보하기 위해선 남북 예보 시스템의 결합이 요구된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이 분야에선 남북의 협력이 개시되고 있다. 환경문제, 수질오염 방지 등의 과제는 남측의 전문연구기관이 북측의 해당 부문이나 연구센터와 긴밀한 협력을 하면서 풀어나가야 한다. 환경기술은 남북 모두의 환경문제에 직결되는 산업기술 분야로 높은 수준의 전문성이 필요하다. 지원을 해서라도 성사시켜야 할 부분이다.
‘지금 할 수 있는 것부터 하자’라는 모토는 매우 중요하다. 남북간엔 지금 당장 시작해야 하는 사업 분야가 매우 많다. 100대 프로젝트에는 1, 2, 3차 산업 전반에 걸쳐 남북이 윈윈할 수 있는 프로젝트가 담겨 있다. 나는 정부가 텃밭을 만들어준 뒤, 전문성을 가진 기업을 참여시키고 정부가 이를 지원하는 시스템이 꾸려지면 100대 프로젝트가 소기의 목적과 성과를 이룰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그리고 더 많은 유용한 프로젝트가 그 사이 개발되고 확대될 것이다. ‘남북 경제협력 공동체’는 가까운 데서부터 발걸음을 떼어야만 성공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