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솟, ‘굿바이-머지 강에서’, 1881년경, 캔버스에 유채, 83.8×53.3cm, 뉴욕, 포브스 매거진 컬렉션.
몇 년 전 한 홈쇼핑 회사에서 혹독한 기후 조건을 지닌 캐나다 매니토바주 위니펙 이민 상품을 내놓아 단일 품목, 단일 방송 사상 최고의 매출액을 기록한 것은 우리 사회의 이민 열기가 어느 정도인지를 웅변으로 보여주는 사례라 하겠다. 미국 국토안보부 이민통계국에 따르면 2005 회계연도에 미국 영주권을 취득한 한국인은 모두 2만6562명으로, 2003 회계연도의 1만2512명에 비해 2년 새 53%나 증가했다고 한다. 전체 미국 영주권 취득자 가운데 한국인이 차지하는 비율도 2003년의 1.8%에서 2004년 2.1%, 2005년 2.4%로 계속 늘어나는 추세다.
‘굿바이-머지 강에서’ 19세기 조국 등지는 영국인 모습 담아
우리나라 사람들은 왜 이처럼 이민 욕구가 강할까? 전문가들은 여러 요인들 가운데서 우리 사회의 불확실성을 가장 큰 원인으로 꼽는다. 사회가 합리적인 체계 아래 안정돼 있지 않다 보니 작은 계기만 생겨도 사람들이 나라를 떠나고픈 생각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한 인터넷 포털사이트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사람들이 이민을 생각하는 가장 큰 이유 1, 2, 3위가 ‘부정부패, 극심한 경쟁 등 한국 사회에 대한 불신’(59.6%), ‘자녀 교육’(20.7%), ‘취업 등 경제적 이유’(12.3%)였다고 한다. 모두 우리 사회의 불확실성, 불합리성과 관련된 이유들이다.
정직할수록 손해를 보고, 부정과 비리가 끊이지 않으며, 강 하나를 사이에 두고 아파트 값이 급등해 엄청난 상대적 박탈감을 안기는 사회에서 사람들은 더 이상 정을 붙이고 살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이민 후의 삶이 확실해서가 아니라 지금 이곳에서의 삶이 불확실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자꾸 조국을 등지려고 한다. 이민 열풍에 어린 우리 시대의 슬픈 자화상이 아닐 수 없다.
프랑스 출신으로 영국에서 활동한 화가 제임스 티솟의‘굿바이-머지 강에서’는 영국을 떠나 신대륙으로 향하는 이민선을 전송하는 그림이다. 이 그림이 그려진 19세기 후반에도 많은 영국인들이 조국을 떠나 미국이나 캐나다, 호주 등지로 이민을 갔다. 통계에 따르면 1840~60년의 20년 동안 2700만명의 영국인 가운데 무려 400만명 이상이 영국 밖으로 삶의 근거지를 옮겼다. 시민 6명 가운데 1명꼴인 셈이다.
오늘날처럼 교통이 자유롭지 않던 시절이니 한번 조국을 떠나면 다시 돌아온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고 친지들의 얼굴도 영원히 못 볼 각오를 해야 했다. 그럼에도 굶기를 밥 먹듯 하던 이들은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차상위 계층의 사람들은 더욱 나은 생활환경을 얻기 위해 과감히 정든 고향을 떠났다. 당시 영국은 ‘세계의 공장’이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고도성장을 구가하는 최고의 산업선진국이었으나, 이처럼 노동자 계층의 삶은 불안정했고 불황은 다반사였으며 생계 보장책은 전무하다시피 했다. 삶의 희망을 꿈꾸는 사람이라면 어떤 도전이라도 감내하겠다는 의지를 다질 만한 환경이었다.
브라운, ‘영국의 땅 끝’, 1852~54, 나무에 유채, 82.5×75cm, 버밍엄 시립미술관.
포드 매독스 브라운이 그린 ‘영국의 땅 끝’도 이 무렵 그려진 이민을 주제로 한 대표적인 걸작이다. 브라운이 이 그림을 완성한 1854년은 영국에서 이민 행렬이 절정에 이른 해여서 무려 36만9000명이 조국을 등졌다. 브라운 또한 이 무렵 인도로 이민 갈 것을 심각하게 고려했다고 하는데, 그만큼 예술가들을 둘러싼 시장 환경도 썩 좋지 못했다. 브라운의 조각가 친구 토머스 울너는 5년 동안 단 한 건의 작품 주문도 받지 못해 아사지경에 이르자 그 현실을 타개하고자 이 그림이 그려지기 직전 호주로 이민을 갔다. ‘영국의 땅 끝’은 생존의 땅 끝에 이른 예술가들의 절규도 담고 있는 그림인 것이다.
그림을 보면, 화면 한가운데에 젊은 부부가 클로즈업돼 있다. 그들의 표정은 매우 비장하다. 이제 떠나면 다시 오기 어려운 고향 땅. 미지의 땅에 모든 희망을 건 이민자로서 가위로 실을 자르듯 정든 과거와 절연하고 있다. 이제 그들이 새로 엮어갈 인연의 끈은 오로지 미래를 향해서만 뻗어 있다. 여인의 숄 한가운데쯤 그녀의 왼손이 아기의 고사리 손을 부여잡은 모습이 보이는데, 바로 그것이 이제 새롭게 피어나는 희망의 싹처럼 보인다. 아이에게만큼은 행복하고 풍요로운 미래를 물려주고 싶다는 부부의 결의가 처절하리만큼 아프게 다가온다. 저 매서운 칼바람도, 지금 이 순간의 서럽고 복잡한 감정도 이 싹을 틔우기 위한 훌륭한 거름이리라. 그러기에 붉게 상기된 두 얼굴은 다가올 모든 것을 감당할 수 있다는, 꼭 그렇게 해야만 한다는 결의에 차 있는 것이다.
물론 그림에서 보는 옛 영국인들의 이민과 오늘날 우리 사회의 이민 바람에는 분명 차이가 있다. 19세기 영국의 이민자들은 하위계층에 속한 사람이 대부분이었으나, 근래 우리의 이민자들은 고학력의 상류층이 적지 않다. 이들 상류층 이민자는 자산도 이민과 더불어 모두 처분하는 게 아니라 어느 정도 국내에 남겨두어 이민이 실패했을 때를 대비하거나 환테크 등을 통해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그만큼 이민의 동기가 생존을 위한 것이라기보다 더 많은 기회와 성취를 위한 것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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