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으로 기대하는 기업은 현대차그룹이다. 현대차그룹은 자기자본이익률(ROE)이 낮은 편이지만 보유 현금이 많다. 만약 현대차그룹이 자사주 매입 및 소각을 ‘조 단위’로 한다면 다른 기업들도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정부 정책에 발맞추는 모습을 보여주면 다른 대기업들도 따라가지 않을까. 현대차그룹이 어떻게 하느냐가 기준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염승환 이베스트투자증권 이사는 2월 5일 이른바 ‘저(低)주가순자산비율(PBR) 테마’의 톱픽으로 현대차와 기아를 꼽으며 이같이 말했다. 실제로 시장에서는 이들 기업에 대한 강한 선호가 감지된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2월 외국인투자자와 기관투자자가 가장 많이 순매수한 종목은 현대차였다. 2월 14일까지 외국인투자자의 현대차 순매수 규모는 1조4059억 원에 달했다. 같은 기간 기관투자자 역시 3857억 원 상당의 현대차 주식을 순매수했다. 기아 역시 외국인투자자 순매수 4위에 이름을 올렸다. 염 이사는 “외국인·기관투자자가 랠리를 주도하는 만큼 저PBR 장세가 오래갈 수 있다”고 전망했다.
염승환 이베스트투자증권 이사. [이상윤]
실적 꺾여도 오르는 현대차
그간 국내 증시는 만성적으로 저평가를 받아왔다. PBR 1 이하인 기업이 즐비한 탓에 ‘코리아 디스카운트’라는 꼬리표마저 따라붙었다. 개인투자자의 원성이 커지면서 정부는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을 수립해 상황 반전을 모색하고 있다. 이달 중 프로그램의 세부 사항을 확정할 예정이다. 상장사들이 한국거래소 가이드라인에 따라 기업가치 개선 계획에 PBR, ROE 목표치를 포함하는 것을 권고하는 방안이 유력하다. 이미 시장은 주주환원 기대감으로 PBR 1 이하 기업을 중심으로 랠리가 펼쳐지고 있다. 염 이사에게 최근 나타난 저PBR 장세에 관해 물었다.현대차를 저PBR 테마 대장주로 보나.
“시장은 그렇게 본다. 현대차 주가는 지금처럼 오를 수가 없는 상황이다. 지난해 4분기 실적이 좋지 않았고, 미국 판매 또한 감소하며 시장점유율이 하락했다. 실적만 놓고 본다면 주가가 상승할 수 없는 상황인데, 주주환원 기대감이 작용하고 있다. 현대차는 여느 기업에 비해 주주환원을 잘해왔다. 그럼에도 시장은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 시행에 맞물려 주주환원을 더 해주기를 원하고 있다. 만일 현대차가 앞장선다면 국내 증시에도 많은 변화가 생기지 않을까.”
공매도 금지 조치 당시를 떠올리는 사람도 많다. 당시 정부 정책 발표 후 증시가 급등했지만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다. 같은 양상이 되풀이될 우려는 없나.
“정부가 의지만 있다면 굉장히 오래갈 이슈라고 본다. 지난해 나타난 에코프로그룹 랠리는 개인투자자들이 이끌었다. 2021년 삼성전자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번에는 다르다. 저PBR 주가 상승하는데(그래프 참조) 개인투자자들은 매도하고 있다. 기관투자자와 외국인투자자가 랠리를 주도하는 상황이다. 외국인투자자는 단기 보유 목적으로 주식을 매수하지 않는다. 이 때문에 저PBR 테마는 짧게 갈 이슈가 아니라고 본다. 다만 시장 변동성이 크다 보니 자칫 다칠 수도 있다. 주가가 급등하는 날은 조심하고, 한 번씩 급락할 때 저점매수를 하는 것이 나아 보인다.”
한국에 많은 ‘인색한 기업’
최근 시장을 어떻게 평가하나.“생소한 시장이다. 지난 3~4년 동안 성장주 위주로 주가가 올랐는데 1월 말부터 저PBR 테마로 분류할 수 있는 회사들이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에 대한 기대감으로 급등하고 있다. 한국 기업은 주주환원에 부족한 부분이 있다. 이를 개선한다는 측면에서는 긍정적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주가 급등락이 심한 만큼 사람들의 포모(FOMO·Fear Of Missing Out: 고립 공포감) 심리를 자극하지 않을까 걱정된다. 최근 몇 년 사이 시장 색깔이 빠르게 변하고 있다. 테마에 따라 특정 업종은 오르고, 다른 업종은 내리는 장세가 연중 이어지고 있어 쫓아가기 쉽지 않다.”
최근 랠리에도 우려를 보였다.
“주가라는 것은 촉매가 생기면 상승하는 경향이 있다. 문제는 상승 속도가 너무 빠르다는 점이다. 초보 투자자들은 PBR이 1 미만인 기업은 무조건 주가가 일정 부분까지 오를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가령 ‘이마트는 PBR이 0.2니까 주가가 5배 오를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다.”
PBR이 1 이하로 떨어졌다는 것 자체가 좋지 않은 신호다.
“PBR이 1 이하로 떨어졌다는 것은 시장이 회사 자본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주로 두 측면 때문이다. 첫째, 향후 기업 이익이 감소하면서 자본이 훼손될 수 있다는 우려가 작용해서다. 가령 쿠팡이 생기면서 대형마트 상황이 나빠지자, 시장은 이들의 자본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지 않았다. 둘째, 기업의 잉여 현금이 많은데도 이를 주주들한테 돌려주지 않아서다. 시장은 이들 기업을 ‘인색하다’고 평가하고 낮은 PBR을 부여한다. 애플의 경우 PBR이 굉장히 높다. 돈을 벌면 자사주를 매입 및 소각하며 자본을 없애버리기 때문이다. 오히려 빚을 내 자사주를 매입 및 소각할 정도로 주주들에게 열성적이다.”
최근 시장이 선호하는 저PBR 주에는 어떤 기업들이 있나.
“첫 번째는 현대차나 기아 같은 스타일의 기업이다. 이 기업들의 특징은 주주환원을 잘하고, ROE도 올리려고 노력한다. 물론 이들 기업은 워낙 자본이 많다 보니 자사주 소각과 배당을 해도 ROE가 크게 높아지지 않는다. 두 번째는 현금을 많이 갖고 있는 기업이다. 주로 지주사가 이에 속한다. 한국 지주사는 현금을 많이 갖고 있지만 주주환원에 인색한 편이다. 최근 정부가 자사주 매입이나 배당 등으로 주주환원 확대를 원하는 만큼 기대감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일본을 벤치마킹하는 듯한데, 양국 상황이 같지만은 않은 것 같다.
“일본 기업들은 잉여 현금이 생기면 배당을 하거나 자사주 매입 및 소각을 많이 한다. 반면 한국은 주주환원에 소극적이다. 더 큰 문제는 한국은 중간재 기업이 많고 경기에도 민감하다는 점이다. 무슨 일이 터질지 모르기에 일정 수준의 여유자금 확보가 필요하다. 자연스레 주주환원에 집중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다만 한국을 대표하는 기업들은 현금이 많다. 정부의 드라이브에 따라 변화가 시작될 수 있다.”
상법 개정이 핵심
강제성 있는 정책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는데.“당근과 채찍이 요구된다. 당근은 주주환원을 늘리는 기업에 포상을 주는 것이다. ‘특별 지수’에 편입하게 해주거나 특정 가산점을 부여하는 방식이 대표적 예다. 일본은 2026년까지 저평가 문제를 개선하는 모습이 보이지 않으면 상장폐지까지 고려한다고 한다. 상장폐지까지는 아니더라도 한국 역시 강제성 있는 정책이 필요하다. 기업의 자발적 조치에 의존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가장 중요한 조치를 하나 꼽자면 무엇인가.
“정치권에 꼭 당부하고 싶은 것이 있다. ‘상법 제382조 3’의 개정이다. ‘이사는 법령과 정관의 규정에 따라 회사를 위해 그 직무를 충실하게 수행해야 한다’고 명시했는데, 여기서 ‘회사’를 ‘주주’로 바꾸면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에 큰 도움이 된다. 상법이 이렇게 개정되면 (주주 중심으로) 각종 소송이 가능해지면서 경영진이나 오너가 함부로 주주가치를 훼손하지 못한다.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보다 상법 개정이 훨씬 중요하다고 본다.”
최진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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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주간동아 최진렬 기자입니다. 산업계 이슈를 취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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