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크리스티앙 자크의 대하소설 ‘람세스’. 피라미드와 스핑크스, 아부심벨·카르나크·룩소르 신전을 비롯한 거대 신전들, 파라오의 저주와 투탕카멘, 그리고 소설 주인공 람세스 2세의 카리스마 넘치는 활약상은 가슴을 뒤흔들기에 충분했다.
소설을 읽은 이라면 누구나 ‘파라오의 나라’ 이집트 여행을 버킷리스트에 올려두었을 테다. 나 역시 그랬다. ‘언젠가 꼭 이집트에 가보리라’ 다짐했다. 그래서일까. 바로 어제 다녀온 것처럼, 그 오랜 꿈을 이뤘던 순간을 잊을 수 없다. 처음 이집트에 도착했을 때 가장 먼저 람세스 2세의 영혼이 담긴 이집트의 심장 ‘아부심벨 대신전’을 마주하고 싶었다.
아부심벨로 가려면 거점 도시인 아스완을 거처야 한다. 카이로에서 아스완까지는 비행기, 버스, 열차를 이용할 수 있는데 대부분 람세스역에서 출발하는 야간열차를 탄다. 어느 지역을 가든 기차역에는 출발 시간보다 일찍 도착하는 것이 좋다. 정시에 출발하는 경우도 드물지만 예정 시간보다 일찍 출발해버리는 황당한 상황도 생기기 때문이다. 역 내부는 정신없이 붐빈다. 대합실이 따로 없어 사람들이 플랫폼에서 기다리다 보니 시골 장터가 따로 없다. 침대칸은
2인 1실이라 비좁긴 해도 버틸 만하다. 식사는 저녁과 아침 두 끼가 제공되지만 입맛에 맞지 않을 가능성이 크니 비상식량을 꼭 챙겨야 한다. 일교차가 커 밤에는 기온이 내려가는데, 난방은 약하고 우풍이 심하니 체온 유지를 위해 두툼한 옷도 준비해야 한다.
카이로를 떠난 지 14시간 만에 아스완에 도착했다. 영문판 ‘론리플래닛’에서 찾은 파라다이스호텔에 여장을 풀었다. 이곳에서 하룻밤 머문 뒤 새벽 일찍 아부심벨로 떠날 계획이다. 이름만 거창한 호텔방은 도저히 누울 수 없을 정도로 먼지가 수북했지만 여기까지 온 분명한 목적과 이유가 있기에 이런 불편함을 마음에 담아두지 않으려 노력했다. 어서 날이 밝아 아부심벨로 떠나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새우잠을 겨우 청하고 새벽 4시쯤, 전날 호텔을 통해 예약한 아부심벨행 미니버스에 몸을 실었다. 버스는 어둠을 뚫고 4시간을 달리고 또 달렸다. 아침을 깨우는 태양빛 너머로 높이 20m가 넘는 거대한 석상 4기가 눈에 들어왔다. 드디어 꿈에 그리던 이집트의 심장 아부심벨 대신전에 도착한 것이다.
아부심벨 대신전은 람세스 2세가 나일강 상류 지역이자 수단과 인접한 누비아를 정벌한 뒤 그곳에 자신을 위해 건설한 것이다. 이집트 역사상 가장 위대한 파라오로 칭송받는 람세스 2세(재위 기원전 1279~기원전 1213)는 신전과 석상 등 수많은 건축물을 이집트 전역에 세워 업적을 과시했는데, 그중 가장 대표적인 건축물이 아부심벨 대신전이다. 정면에 보이는 4개의 거대 좌상은 모두 람세스 2세의 모습인데 상(上)이집트와 하(下)이집트를 통합한 파라오를 상징하는 의상이 조각돼 있다. 이미 피라미드를 보고 온 사람도 아부심벨 대신전의 장엄한 기세에 감탄사를 연발한다. 한 인간의 집요한 욕망과 의지가 실현된 거대한 신전 앞에서 그야말로 압도되는 느낌을 받는다. 안으로 들어가면 거대한 기둥들, 람세스 2세의 입상 8점과 함께 벽마다 수많은 부조가 새겨져 있다. 이 부조들은 카데시 전투(이집트와 히타이트 왕국의 대전투) 승리를 묘사한 것이다. 더 깊이 들어가면 반드시 보고 와야 할 ‘지성소’에 도착한다. 이곳에는 가장 유명하고 강력한 3명의 신(어둠의 신 ‘프타’, 태양의 신 ‘라’, 바람의 신 ‘아문’)과 람세스 2세가 나란히 앉아 있다. 평소에는 거대 좌상이 있는 전면에만 빛이 비치지만, 1년에 딱 2번(람세스 2세의 생일과 대관식일)만 신전 깊숙한 이곳까지 빛이 스며들게끔 설계됐다. 더욱 놀라운 점은 어둠의 신 프타에게는 빛이 비치지 않도록 했다는 것. 태양 움직임까지 면밀히 계산했던 이집트인의 천문학 기술이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아부심벨 대신전 옆에는 람세스 2세가 평생 사랑했던 여인 네페르타리 왕비를 위한 소신전도 있다. 소신전의 규모와 비스듬한 사선 조각, 정면 석상 사이사이 칸막이 상형문자 양각 등 작품성을 보면 왕비를 향한 파라오의 절대적인 사랑이 느껴진다.
모래에 파묻혀 있던 이 거대 신전은 고대 도시 페트라를 발견한 스위스 탐험가 야코프 부르크하르트에 의해 1813년 처음 발견됐다. 발견 당시 기술 수준으로는 수작업으로 모래를 제거해야 했기에 그 이상의 발굴은 단념했다. 그 후 1817년 이탈리아 고고학자 조반니 벨조니가 신전 내부로 들어가는 데 성공했으며, 당시 발굴 안내를 맡았던 이집트 소년의 이름을 따 아부심벨이라고 명명했다. 람세스 2세 생전에 이 신전을 지었으니 3000여 년 만에야 다시 햇빛을 본 것이다. 이후 1963년 이집트 정부가 나일강 나세르 호수에 아스완 하이 댐 건설을 계획하면서 수몰 위기에 처했으나 유네스코의 노력으로 세계 50여 개국에서 8000만 달러(약 1032억8000만 원)를 모금해 아부심벨 대신전을 1036개 조각으로 해체한 뒤 원래 유적지보다 63m 높고 서북쪽으로 210m 떨어진 곳으로 옮겨 사라질 뻔한 인류 보물을 지켜냈다.
아부심벨 대신전 여정을 마치면 나일강 크루즈를 타고 시간이 멈춘 도시 ‘룩소르’로 이동하는 것을 추천한다. 나일강을 따라 태동한 고대 이집트 문명의 경이로운 흔적들을 발견할 수 있는데 체류 기간(2박 3일~7박 8일)과 크루즈 등급에 따라 다양한 선택이 가능하다. 룩소르는 아스완에서 기차로는 12시간, 카이로에서는 10시간이 걸릴 정도로 먼 곳이지만, 이집트에 와서 룩소르에 들르지 않는 여행자는 거의 없다. 룩소르는 ‘테베’로 불린 상이집트 왕국시대 수도였다. 한때는 인구 100만 명에 달할 정도로 가장 번성한 도시였다. 룩소르에서는 세계 최대 신전으로 꼽히는 ‘카르나크 신전’과 ‘룩소르 신전’, 투트모세 3세·세티 1세·투탕카멘 등 여러 왕의 무덤이 몰려 있는 ‘왕들의 계곡’, 이집트의 유일한 여성 파라오 ‘핫셉수트의 장제전’(죽은 왕의 영혼을 숭배하는 곳), 아멘호테프 3세의 장제전을 지키는 ‘멤논의 거상’ 등을 돌아볼 수 있다.
카르나크 신전은 세계 최대 신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귀중한 문화유산이다. 고대 이집트에서 최고의 신으로 여기던 아문신을 위해 만든 것으로, 약 2000년에 걸쳐 시대별 파라오들에 의해 증축과 파괴, 개축이 반복됐다. 이집트 전성기를 이끈 람세스 2세와 왕비 네페르타리의 조각상을 지나면 등장하는, 134개의 큰 기둥이 숲을 이루는 ‘대열주실’이 카르나크 신전의 백미로 손꼽힌다. 돌기둥 1개 크기가 둘레 15m, 높이 23m에 달한다. 이곳에서도 사진을 찍어주겠다고 웃으며 접근하는 호객꾼들을 만날 텐데, 어떤 일이 있어도 카메라나 휴대전화를 넘겨주지 말길 권한다. 카르나크 신전은 룩소르 신전으로 이어진다. 룩소르 신전은 카르나크 신전의 부속 신전으로, 두 신전은 2.5㎞ 길로 이어져 있다. 4세기에 걸쳐 지어진 룩소르 신전 입구에는 태양신을 상징하는 기념비 오벨리스크가 서 있고 그 뒤를 람세스 2세의 거대한 석상이 지키고 있다. 룩소르 신전만의 범접할 수 없는 오라가 느껴진다.
나일강 서쪽, 왕들의 계곡을 찾아가다 보면 19.5m 거대한 돌 앞에 멈춰 서게 된다. 파라오 아멘호테프 3세의 장제전을 지키는 수호자 멤논의 거상이다. 의자에 앉아 하늘을 바라보는 모습으로 서 있는 한 쌍의 거인. 새벽이면 거대한 석상에서 울음소리가 나는데, 죽은 멤논이 자신의 어머니인 여명의 여신 에오스를 부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실상은 석상의 갈라진 틈에서 나는 진동 소리다.
바로 근처에는 독창적이고 웅장한 3층의 테라스식 신전 핫셉수트의 장제전도 있다. 핫셉수트는 투트모세 1세의 딸로 이집트 최초 여성 파라오다. 장제전의 수많은 열주식 기둥은 고대 이집트 건축의 최고 걸작으로 불릴 만큼 장엄하고 현대적이다.
장제전 위로는 나무 한 포기 없는 모래 언덕 같은 황량한 계곡이 펼쳐진다. 60여 명의 파라오가 바위를 뚫고 묘를 만든 후 스스로 미라가 되어 묻힌 왕들의 계곡이다. 도굴꾼들이 거의 다 파헤쳤는데, 황금마스크를 쓴 투탕카멘만이 3300년 전 모습 그대로 발굴됐다. 입장권을 구매하면 공개된 무덤 중 3개를 선택해 볼 수 있다. 인기가 높은 투탕카멘 무덤 등은 따로 표를 끊어야 한다. 이곳에 누워 있던 주인공은 대부분 도굴되어 팔려나가거나 박물관으로 옮겨져 사람들의 구경거리가 되고 말았다. 영원한 삶을 염원했던 파라오의 비극이 아닌가 싶다.
“당신은 인생에서 기쁨을 찾았는가.” 영화 ‘버킷리스트’에서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은 주인공들이 마지막 여행지인 이집트 피라미드 위에서 서로에게 묻는 말이다. 때론 여행이 인생의 온기와 활력, 기쁨을 찾아주곤 한다. 더 나아가 다가올 역경과 고난을 견뎌낼 힘을 줄 때도 있다. 인생의 기쁨을 회복할 새로운 에너지가 필요한 순간이라면 위대한 고대 문명의 흔적을 찾아 이집트로 떠나보자.
이집트 심장, 아부심벨 대신전
람세스 2세가 건설한 아부심벨 대신전. [박진희 제공]
아부심벨로 가려면 거점 도시인 아스완을 거처야 한다. 카이로에서 아스완까지는 비행기, 버스, 열차를 이용할 수 있는데 대부분 람세스역에서 출발하는 야간열차를 탄다. 어느 지역을 가든 기차역에는 출발 시간보다 일찍 도착하는 것이 좋다. 정시에 출발하는 경우도 드물지만 예정 시간보다 일찍 출발해버리는 황당한 상황도 생기기 때문이다. 역 내부는 정신없이 붐빈다. 대합실이 따로 없어 사람들이 플랫폼에서 기다리다 보니 시골 장터가 따로 없다. 침대칸은
2인 1실이라 비좁긴 해도 버틸 만하다. 식사는 저녁과 아침 두 끼가 제공되지만 입맛에 맞지 않을 가능성이 크니 비상식량을 꼭 챙겨야 한다. 일교차가 커 밤에는 기온이 내려가는데, 난방은 약하고 우풍이 심하니 체온 유지를 위해 두툼한 옷도 준비해야 한다.
카이로를 떠난 지 14시간 만에 아스완에 도착했다. 영문판 ‘론리플래닛’에서 찾은 파라다이스호텔에 여장을 풀었다. 이곳에서 하룻밤 머문 뒤 새벽 일찍 아부심벨로 떠날 계획이다. 이름만 거창한 호텔방은 도저히 누울 수 없을 정도로 먼지가 수북했지만 여기까지 온 분명한 목적과 이유가 있기에 이런 불편함을 마음에 담아두지 않으려 노력했다. 어서 날이 밝아 아부심벨로 떠나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새우잠을 겨우 청하고 새벽 4시쯤, 전날 호텔을 통해 예약한 아부심벨행 미니버스에 몸을 실었다. 버스는 어둠을 뚫고 4시간을 달리고 또 달렸다. 아침을 깨우는 태양빛 너머로 높이 20m가 넘는 거대한 석상 4기가 눈에 들어왔다. 드디어 꿈에 그리던 이집트의 심장 아부심벨 대신전에 도착한 것이다.
아부심벨 대신전은 람세스 2세가 나일강 상류 지역이자 수단과 인접한 누비아를 정벌한 뒤 그곳에 자신을 위해 건설한 것이다. 이집트 역사상 가장 위대한 파라오로 칭송받는 람세스 2세(재위 기원전 1279~기원전 1213)는 신전과 석상 등 수많은 건축물을 이집트 전역에 세워 업적을 과시했는데, 그중 가장 대표적인 건축물이 아부심벨 대신전이다. 정면에 보이는 4개의 거대 좌상은 모두 람세스 2세의 모습인데 상(上)이집트와 하(下)이집트를 통합한 파라오를 상징하는 의상이 조각돼 있다. 이미 피라미드를 보고 온 사람도 아부심벨 대신전의 장엄한 기세에 감탄사를 연발한다. 한 인간의 집요한 욕망과 의지가 실현된 거대한 신전 앞에서 그야말로 압도되는 느낌을 받는다. 안으로 들어가면 거대한 기둥들, 람세스 2세의 입상 8점과 함께 벽마다 수많은 부조가 새겨져 있다. 이 부조들은 카데시 전투(이집트와 히타이트 왕국의 대전투) 승리를 묘사한 것이다. 더 깊이 들어가면 반드시 보고 와야 할 ‘지성소’에 도착한다. 이곳에는 가장 유명하고 강력한 3명의 신(어둠의 신 ‘프타’, 태양의 신 ‘라’, 바람의 신 ‘아문’)과 람세스 2세가 나란히 앉아 있다. 평소에는 거대 좌상이 있는 전면에만 빛이 비치지만, 1년에 딱 2번(람세스 2세의 생일과 대관식일)만 신전 깊숙한 이곳까지 빛이 스며들게끔 설계됐다. 더욱 놀라운 점은 어둠의 신 프타에게는 빛이 비치지 않도록 했다는 것. 태양 움직임까지 면밀히 계산했던 이집트인의 천문학 기술이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아부심벨 대신전 옆에는 람세스 2세가 평생 사랑했던 여인 네페르타리 왕비를 위한 소신전도 있다. 소신전의 규모와 비스듬한 사선 조각, 정면 석상 사이사이 칸막이 상형문자 양각 등 작품성을 보면 왕비를 향한 파라오의 절대적인 사랑이 느껴진다.
모래에 파묻혀 있던 이 거대 신전은 고대 도시 페트라를 발견한 스위스 탐험가 야코프 부르크하르트에 의해 1813년 처음 발견됐다. 발견 당시 기술 수준으로는 수작업으로 모래를 제거해야 했기에 그 이상의 발굴은 단념했다. 그 후 1817년 이탈리아 고고학자 조반니 벨조니가 신전 내부로 들어가는 데 성공했으며, 당시 발굴 안내를 맡았던 이집트 소년의 이름을 따 아부심벨이라고 명명했다. 람세스 2세 생전에 이 신전을 지었으니 3000여 년 만에야 다시 햇빛을 본 것이다. 이후 1963년 이집트 정부가 나일강 나세르 호수에 아스완 하이 댐 건설을 계획하면서 수몰 위기에 처했으나 유네스코의 노력으로 세계 50여 개국에서 8000만 달러(약 1032억8000만 원)를 모금해 아부심벨 대신전을 1036개 조각으로 해체한 뒤 원래 유적지보다 63m 높고 서북쪽으로 210m 떨어진 곳으로 옮겨 사라질 뻔한 인류 보물을 지켜냈다.
세계 최대, 카르나크 신전
파라오 아멘호테프 3세의 장제전을 지키는 수호자 멤논의 거상. [박진희 제공]
카르나크 신전은 세계 최대 신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귀중한 문화유산이다. 고대 이집트에서 최고의 신으로 여기던 아문신을 위해 만든 것으로, 약 2000년에 걸쳐 시대별 파라오들에 의해 증축과 파괴, 개축이 반복됐다. 이집트 전성기를 이끈 람세스 2세와 왕비 네페르타리의 조각상을 지나면 등장하는, 134개의 큰 기둥이 숲을 이루는 ‘대열주실’이 카르나크 신전의 백미로 손꼽힌다. 돌기둥 1개 크기가 둘레 15m, 높이 23m에 달한다. 이곳에서도 사진을 찍어주겠다고 웃으며 접근하는 호객꾼들을 만날 텐데, 어떤 일이 있어도 카메라나 휴대전화를 넘겨주지 말길 권한다. 카르나크 신전은 룩소르 신전으로 이어진다. 룩소르 신전은 카르나크 신전의 부속 신전으로, 두 신전은 2.5㎞ 길로 이어져 있다. 4세기에 걸쳐 지어진 룩소르 신전 입구에는 태양신을 상징하는 기념비 오벨리스크가 서 있고 그 뒤를 람세스 2세의 거대한 석상이 지키고 있다. 룩소르 신전만의 범접할 수 없는 오라가 느껴진다.
인생의 기쁨 찾아주는 이집트 여행
열주식 기둥이 돋보이는 핫셉수트의 장제전. [박진희 제공]
바로 근처에는 독창적이고 웅장한 3층의 테라스식 신전 핫셉수트의 장제전도 있다. 핫셉수트는 투트모세 1세의 딸로 이집트 최초 여성 파라오다. 장제전의 수많은 열주식 기둥은 고대 이집트 건축의 최고 걸작으로 불릴 만큼 장엄하고 현대적이다.
장제전 위로는 나무 한 포기 없는 모래 언덕 같은 황량한 계곡이 펼쳐진다. 60여 명의 파라오가 바위를 뚫고 묘를 만든 후 스스로 미라가 되어 묻힌 왕들의 계곡이다. 도굴꾼들이 거의 다 파헤쳤는데, 황금마스크를 쓴 투탕카멘만이 3300년 전 모습 그대로 발굴됐다. 입장권을 구매하면 공개된 무덤 중 3개를 선택해 볼 수 있다. 인기가 높은 투탕카멘 무덤 등은 따로 표를 끊어야 한다. 이곳에 누워 있던 주인공은 대부분 도굴되어 팔려나가거나 박물관으로 옮겨져 사람들의 구경거리가 되고 말았다. 영원한 삶을 염원했던 파라오의 비극이 아닌가 싶다.
“당신은 인생에서 기쁨을 찾았는가.” 영화 ‘버킷리스트’에서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은 주인공들이 마지막 여행지인 이집트 피라미드 위에서 서로에게 묻는 말이다. 때론 여행이 인생의 온기와 활력, 기쁨을 찾아주곤 한다. 더 나아가 다가올 역경과 고난을 견뎌낼 힘을 줄 때도 있다. 인생의 기쁨을 회복할 새로운 에너지가 필요한 순간이라면 위대한 고대 문명의 흔적을 찾아 이집트로 떠나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