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46

2008.07.29

의문의 여중생 죽음, 집단항거 불길

  • 동아일보 베이징 특파원 orionha@donga.com

    입력2008-07-21 17: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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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문의 여중생 죽음, 집단항거 불길

    6월28일의 주민 시위로 불이 난 구이저우성 웡안현의 공안국 청사와 파손된 차량.

    중국에서 발생한 한 여중생의 의문사 사건이 예기치 않은 방향으로 비화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사건의 발단은 6월21일 자정쯤 구이저우(貴州)성 웡안(瓮安)현 제3중에 다니는 리수펀(李樹芬·15)이라는 학생이 갑자기 시내 하천에 투신한 것이다. 투신 당시 리 양과 함께 있었던 친구들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소방관과 경찰은 구조에 나섰지만, 어두컴컴한 밤이라 실패했다. 리 양의 시체는 뒤늦게 소식을 듣고 달려온 삼촌이 새벽녘에 발견해 건져냈다.

    6월22일 오후 8시경 시체를 부검한 현의 공안국 소속 법의(法醫)는 익사로 결론짓고 유족에게 이를 통보했다. 하지만 유족들은 재부검을 요구했다. 사흘 뒤 상급기관인 첸난(黔南)주 공안국 법의가 부검을 했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유족들은 시체를 발견 지점에 안치한 채 재수사를 요구하며 경찰과 대립했다. 리 양이 자살할 이유가 전혀 없다는 게 유족들의 주장이었다.

    이러는 사이 유언비어가 난무하기 시작했다. 리 양이 강간당한 뒤 살해돼 강물에 던져졌다는 얘기부터 범인은 현 서기의 조카딸이고 강간범은 파출소 소장과 친척관계라는 소문이 떠돌아다녔다. 심지어 유족이 경찰관에게 맞아 병원에 입원했고 리 양의 삼촌이 경찰에 맞아 숨졌다는 등 공권력에 적개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각종 유언비어가 난무했다.

    결국 6월28일 오후 성난 주민 2만여 명은 공안국에 몰려가 청사에 불을 질렀고 그 결과 청사와 함께 54대의 차량이 불탔다. 또 경찰과 주민의 충돌로 주민 150여 명이 다쳤다. 뒤늦게 구이저우성이 직접 나서 3차 부검을 실시했지만 결론은 마찬가지였다. 외상이 없고 폐에서 익사 지점의 하천에 사는 규조류가 발견되는 등 사체는 전형적인 익사의 특징을 나타냈다.

    올림픽 앞두고 중국 각지에서 잇단 시위 … 정치개혁과 민주화 불씨 되나



    사건 현장을 방문한 스쭝위안(石宗源) 구이저우성 서기는 “이번 사건의 발생 원인은 광산과 저수지 개발 등의 과정에서 주민들의 의사와 이해관계를 충분히 반영하지 않은 정부에 있다”고 말했다. 단순 투신자살이 이처럼 많은 주민의 항거로 이어진 것은 그동안 정부에 대한 불만이 누적됐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런 분석이 맞는지는 모르지만 이 사건 발생 이후 중국 전역에서는 주민들의 집단항거가 잇따르고 있다. 7월5일엔 산시(陝西)성 푸구(府谷)현에서 경찰의 검문검색을 피해 인근 강물에 뛰어들었다가 숨진 농민의 시신을 둘러싸고 경찰과 주민이 충돌했다. 11일엔 저장(浙江)성 위환(玉環)현에서 신분증이 없다는 이유로 경찰이 외지인을 구타하자 성난 타지 출신 노동자 1000여 명이 파출소를 부수며 항의시위를 벌였다.

    올림픽을 눈앞에 두고 봇물처럼 터지는 서민들의 집단항거에 중국 정부는 당황하는 모습이다. 하지만 서민의 불만을 누적시키는 지방행정 시스템과 부실한 지방 행정관리 감독 시스템에 대해서는 별다른 대책을 내놓지 않고 있다. 중국 정부가 이를 단지 치안 차원으로만 다루지 정치적인 함의를 읽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다.

    이 사건이 중국 정치개혁과 민주화를 향한 ‘작은 씨앗’이 될지, 또다시 메아리 없는 외침에 그칠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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