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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사극’에 양념이 과하다고?

배경·인물 범위 확대와 정치 이야기 탈피…장르 혼합, 해석의 다양성으로 시청자 사로잡아

  • 백경선 객원기자 sudaqueen@hanmail.net

‘사극’에 양념이 과하다고?

‘사극’에 양념이 과하다고?

‘추노’에 출연한 장혁.

바야흐로 사극(史劇) 전성시대다. ‘추노’ ‘성균관 스캔들’ ‘짝패’에 이어 ‘공주의 남자’와 ‘무사 백동수’가 끝났지만, 시청자는 여전히 ‘계백’과 ‘뿌리깊은 나무’를 월·화·수·목요일에 만날 수 있다. 게다가 ‘온조 비류(가제)’ ‘전우치’도 방송을 앞두고 있다. 언제부턴가 사극이 지상파 방송3사의 주말극은 물론이요, 월화극과 수목극을 점령하면서 젊은 시청자와 여성 시청자에게 어필하고 있다. 고정 주말극으로 중장년층 남성 시청자의 전유물이던 사극은 이제 옛날 이야기다.

여기서 꼭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 과연 ‘예전’이라 함은 언제냐는 것이다. 보통은 1990년대까지로 본다. 많은 사람이 2000년을 기준으로 사극이 변모했다고 주장한다. ‘허준’(1999년 11월 29일~2000년 6월 27일)과 ‘다모’(2003년 7월 28일~9월 9일)라는 역사적 사극을 근거로 내세운다. MBC ‘조선왕조 500년’ 시리즈나 KBS1 대하드라마 시리즈로 대표되는 2000년 이전의 사극(이하 정통 사극)은 주로 조선왕조 이야기를 다뤘다. 조선시대 왕과 그 주변 인물을 중심으로 권력 다툼을 그리는 데 초점을 맞췄다. 그러나 정통 사극의 소재와 한정된 발화 방식에 대한 근본적 회의가 제기되면서, 2000년대 사극은 다양한 변신을 꾀했다.

젊은 층과 여성에게 어필

일단 사극의 배경과 인물의 범위가 확대됐다. 시대적 배경은 조선에서 벗어나 더 과거로 거슬러 올라갔다. ‘주몽’에서는 고구려로, ‘선덕여왕’에서는 신라로, ‘계백’에서는 백제로. 공간적 배경 또한 궁궐을 벗어나거나 궁궐을 벗어나지 않더라도 중심부에서 주변부로 시선을 돌렸다. 인물은 왕과 그 주변 인물을 벗어나 비주류를 다뤘다. 위로부터 아래로, 중심에서 주변으로 이동한 것. 특히 이병훈 PD는 ‘대장금’과 ‘동이’를 통해 권력의 역사 속에서 살아남은 비주류의 성공 신화를 탁월하게 그려내는 한편, 여성 인물에 주목했다.

주제 역시 정치 일변도에서 벗어나 일상의 삶을 이야기했다. 예를 들어, 최근 큰 인기를 끌었던 ‘공주의 남자’는 단종과 세조 시대를 배경으로 하되, 정치적 이야기 대신 사랑 이야기를 그렸다. 사랑을 중심에, 정치는 주변에 놓음으로써 남녀 주인공을 갈라놓는 장벽으로 이용했을 뿐이다.



주제적 측면은 곧 장르 혼합과 연결된다. 내용적 측면은 형식적 측면과 불가분의 관계를 맺기 때문이다. 주제가 다양해지면서 사극이라는 장르에 멜로, 추리, 액션 장르를 결합했다. 심지어 사극을 후경화하고, 결합한 장르는 전경화하기도 했다. ‘공주의 남자’는 멜로를, ‘뿌리깊은 나무’와 케이블TV에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던 ‘별순검’은 추리를, ‘추노’와 ‘무사 백동수’는 액션을 사극보다 앞세웠다. ‘공주의 남자’의 열렬한 팬이었다는 주부 박모(37) 씨는 “이 드라마는 사극보다 멜로드라마를 보는 기분이었다”고 말했다. 등장인물이 한복을 입었다는 것 때문에 문득문득 사극이라는 것이 환기되곤 했지만, 보는 내내 김승유(박시후 분)와 이세령(문채원 분)의 사랑에 몰입했다는 것.

역사적 강박으로부터의 자유?

‘사극’에 양념이 과하다고?

(위) 유생들의 사랑을 담은 드라마 ‘성균관 스캔들’. (아래) 비극적 사랑을 그린 ‘공주의 남자’.

정통 사극에서 빈번하게 호출되는 인물이 있다. 연산군과 장녹수, 인현왕후와 장희빈, 영조와 사도세자, 명성황후와 흥선대원군이 그 주인공이다. 이들은 닳고 닳은 원 소스(One Source)다. 게다가 드라마마다 이 닳고 닳은 원 소스를 호출하는 방식에도 차이가 없었다. 그 인물을 연기하는 연기자만 바뀔 뿐이었다. 장희빈은 불여우고, 세조는 천륜을 배신한 나쁜 사람이며, 갈등의 근원은 항상 정치와 권력에서 비롯했다. 그런데 최근에는 이들 원 소스를 호출하는 방식, 즉 해석이 다양해졌다. 장희빈이나 세조를 악인으로만 몰고 가지 않고, 그들에게도 인간적인 면모와 개연성을 부여한다.

그렇다면 사극은 과연 무엇을 말할까. 사실 사극이 변모했다고 말하지만, 이 말 자체가 모호하다. 사극의 사전적 의미는 역사적 사실(史實)을 바탕으로 만든 극일 뿐이다. 이때 역사와 사실의 기준이 애매하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사극이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문학적 상상력을 보태 만든 장르라는 데 동의한다. 이렇게 보면 2000년대 전후가 사극의 변곡점을 이룬다 하겠다. 정통 사극이 문학적 상상력보다 역사적 사실을 중시한 반면, 2000년대 이후 사극은 역사적 사실보다 문학적 상상력에 무게 중심을 두기 때문이다. 정통 사극이 역사 기록에 의존해 그것을 어떻게 잘 구성할지에 열중했다면, 2000년대 이후 사극은 기록에 나온 역사적 사실을 어떻게 재해석할지에 열중한다.

사극 제작자들의 이러한 태도 변화에 대해 일단에서는 “역사적 강박에서 벗어나 새로운 해석의 시대가 도래했다”며 희망적인 진단을 내린다. 하지만 다른 일각에서는 역사적 무책임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대학생 김모(20) 씨는 “요즘 아버지는 사극을 보면서 역사를 왜곡해 보여주는 것이 불쾌하다고 말씀하신다”며 “나 역시 그렇다”고 고백했다. 그러면서 “상상력도 중요하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적 사실을 존중해야 한다”는 말했다.

대학에서 문학을 강의하는 박모(55) 씨 역시 “기본적인 사실은 침해하지 말고 문학적 상상력을 펼쳤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그는 ‘무사 백동수’를 예로 들었다. “사도세자가 뒤주에 갇혀 죽은 것이 아니라 뒤주에서 탈출해 길에서 칼에 맞아 죽는 것으로 설정했는데, 이를 보고 많이 혼란스러웠다”는 것. 사극이 역사를 자꾸 왜곡해 보여주면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혼란을 줄 수 있다는 주장이다.

그에게 “문학을 가르치면서 왜 문학적 상상력보다 역사적 사실에 방점을 찍느냐”고 묻자, 간단한 답이 돌아왔다. “그냥 사극이니까 그래야 한다.” 즉, 역사적 사실에 충실해야 하는 것이 사극의 숙명이라는 의견이다.

‘사극’에 양념이 과하다고?

‘계백’에 출연한 이서진

역사적 사실과 허구가 적절히 결합한 사극이야말로 이상적이다. 이때 적절히 결합한다는 것은 역사적 사실을 근간으로 하되, 극성(劇性)을 위해 역사의 행간을 개연성과 설득력을 갖춘 상상력으로 메워나가는 것이다. 이는 오롯이 작가와 PD의 능력에 달린 문제다.

끊임없이 사극의 진위에 대해 논란을 벌이고, 팩트와 픽션을 놓고 어느 쪽이 더 중요한지를 저울질한다. 어리석은 일이다. 어쩌면 이에 대한 답이 없는데, 열심히 답을 찾는 모양새일 수 있다. 다만, 생산자 측은 역사적 책임감을 버리지 말아야 하고, 소비자 측은 사극을 역사책이라고 생각하는 태도를 버려야 한다.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이다.



주간동아 2011.10.31 810호 (p50~51)

백경선 객원기자 sudaquee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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