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10

..

대권후보 중심으로 새판짜기 시동

야권, 내년 총선과 대선 ‘박원순式’ 유력…각 정파의 자발적 동의가 관건

  • 고성국 정치평론가, 정치학 박사

    입력2011-10-31 10:02: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대권후보 중심으로 새판짜기 시동

    10월 26일 밤 서울시장 보궐선거 개표 결과 박원순 후보(가운데)의 당선이 확정되자, 박 당선자와 야당 지도부가 함께 손을 맞잡고 지지자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이변은 없었다. 선거 초반 여권의 검증 공세에 휩싸여 고전했지만 야권 무소속 박원순 후보는 기성 정치권에 실망과 염증을 느낀 유권자의 ‘무조건적’ 지지에 힘입어 무난히 승리했다.

    서울시민은 박 후보를 선택하는 것으로 정치 개혁과 쇄신, 양극화 해소 등에 대한 강한 욕구를 다시 한 번 드러냈다. 이번 선거 결과를 한나라당뿐 아니라 기성 정치권 전체의 패배로 규정하는 이유다. 민주당은 박 후보를 당선시키는 데 일조했지만,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후보조차 내지 못해 사실상 한나라당보다 더 참담한 패배를 했다.

    완전히 새로운 세력과 인물로 승부

    범야권 단일후보를 결정한 10월 3일 경선 당일의 풍경은 민주당이 이날 패배를 왜 뼈아프게 반추해야 하는지를 잘 보여준다. 이날 오후 서울 중구 장충체육관 근처 지하철역에서 쏟아져나온 20~30대 젊은 유권자는 야권 단일후보 경선 판세를 뒤흔들어 놓았다. 그뿐 아니라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박 후보의 승리를 확정 짓는 데 강력한 힘을 발휘했다. 새 정치에 대한 열망을 담은 이 힘이 내년 총선과 대선에서 어떤 형태로든 영향력을 행사하리라는 것은 따로 설명할 필요가 없다.

    박 후보를 당선시킨 정치권 바깥의 힘은 일차적으로 시민사회가 주도하는 야권 질서 재편 운동으로 분출할 가능성이 높다. 야권의 장자(長者) 자리를 시민사회에 빼앗긴 민주당이 이 과정에서 이른바 기득권을 지켜내기는 불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기득권에 집착할수록 구태정당으로 낙인찍혀 청산 대상으로 전락할 소지가 크다.



    이번 서울시장 보궐선거 과정이 여실히 보여줬듯, 민주당으로는 내년 총선과 대선에서 승리를 기약할 수 없다는 공감대가 반(反)한나라 진영에서는 강하다. 이에 따라 야권은 내년 총선에서 완전히 새로운 세력과 인물로 승부할 것으로 보인다. 또 유력한 대권주자를 조기에 내놓지 못하면 앞서가는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와의 경쟁에서 역전이 불가능하다는 점이 야권으로선 고민스러운 대목이다.

    이런 점에서 ‘혁신과 통합’을 이끄는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이나 이번 서울시장 보궐선거의 아이콘으로 떠오른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 등의 행보가 관심거리다. 야권 대선주자로 거론되는 두 사람은 임박한 정치 일정을 감안할 때 더는 한가하게 정치권 밖에서 서성거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총선은 전국 선거고, 이 선거를 주도하려면 최소한 245개 선거구의 지형이라도 익혀야 하기 때문이다.

    강력한 구심점 있으면 희망 대합창 가능

    대권후보 중심으로 새판짜기 시동

    문재인 이사장(위)과 안철수 원장.

    지난 1년여의 야권 상황을 돌아보면 야권 질서 재편이 당위라 할지라도 현실적으로 이를 이뤄내는 과정이 쉽지 않으리라는 것을 예감할 수 있다. 야심차게 추진해온 진보 대통합의 결렬 과정을 보면 특히 그렇다. 상대적으로 이념적 지향이 유사한 진보정당 간 통합마저 결렬된 마당에 진보적 정파와 민주당, 그리고 정치권 밖 시민세력까지 모두 아우르는 야권대통합이 순탄하게 이뤄지리라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야권 일각에서 “향후 전개될 야권 질서 재편은 당위론보다 ‘어떤 경로로’ ‘어떤 수준으로’ ‘어떤 형태로’라는 현실적 요소가 더 중요하다”는 얘기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당위론적 접근으로 밀어붙였다 또다시 실패하면 수습할 시간적 여유조차 없다는 절박함의 표현인 것.

    야권은 야권 재편의 모델을 박원순 후보 선거대책위원회가 구사한 홍보 전략에서 힌트를 얻을 것으로 보인다. 박 후보와 야권 지도부, 그리고 시민사회 각 영역에서 나온 박 후보의 멘토는 시민과 함께 ‘희망 대합창’을 정치적으로 구현했다. 희망 대합창에는 박 후보는 물론 문재인 이사장, 손학규 민주당 대표, 이정희 민주노동당 대표, 유시민 국민참여당 대표, 조국 서울대 법대 교수, 공지영 소설가 등이 함께했다.

    하모니가 생명인 합창은 각기 다른 컬러와 톤의 출연자를 어떻게 하나로 엮어내는지가 핵심이다. 야권이 저마다의 컬러와 톤으로 개성 있게 부른 대합창의 지향점은 결국 총선과 대선 승리다. 즉 ‘공동정부’를 전제로 서로 다른 정파가 후보를 중심으로 모이는 것이다.

    문제는 이 해법이 대선에는 맞추어 쓸 수 있지만 총선에는 곧바로 적용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수백 명의 후보가 뛰는 총선에는 공동정부라 부를 만한 구심을 만들어내기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정파를 하나의 정당으로 묶어세우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다. 그렇지만 이 방법은 진보정당 통합 실패에서 보듯 그리 현실적이지 못하다.

    다만 하나의 정당 틀로 묶어세우는 효과를 누군가 대신하는 것은 가능하다. 유력한 차기 대권주자가 등장해 구심점 구실을 한다면 굳이 당을 하나로 묶어세우지 않아도 희망 대합창은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대선후보 중심의 야권 대연합이 총선 전에 가시화할 여지는 남아 있다. 이 방법 외에 복잡다기한 정파를 효과적으로 아우르는 다른 길을 생각하기는 현실적으로 쉽지 않아 보인다.

    한국 정치는 대선을 중심으로 움직여왔다. 권력구조가 대통령 중심제기 때문에 정치판은 숙명적으로 대선 후보를 중심으로 재편될 수밖에 없다. 특히 선거는 판을 짜면 후보 중심으로 돌아가게 마련이다. 사실 판을 짜는 과정에서부터 후보 중심으로 진행된다. 이런 점에서 야권 재편은 경쟁력 강한 대권주자를 옹립하고 그를 중심으로 희망 대합창을 재현하는 것으로 전개될 가능성이 크다. 내년 총선에서 여든 야든 유력 대선후보의 도움 없이 당선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기 때문이다. 문제는 다소 생소할 수 있는 대선후보 중심의 판짜기에 야권 각 정파가 자발적으로 동의해줄 것인가 하는 점이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