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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장으로 들어온 한 권

뚱뚱한 것이 죄가 된다고 누가 말하는가?

  • 윤융근 기자 yunyk@donga.com

뚱뚱한 것이 죄가 된다고 누가 말하는가?

뚱뚱한 것이 죄가 된다고 누가 말하는가?

돈 쿨릭·앤 메넬리 엮음/ 김명희 옮김/ 소동/ 376쪽/ 1만7000원

노출의 계절이다. 봄부터 옷으로 아슬아슬하게 가려왔던 늘어진 뱃살은 이제 도심의 거리, 수영장, 해수욕장에서 사정없이 드러난다. 많은 사람은 휴가를 앞두고 ‘작심 3일 다이어트’에 한숨 쉬며, 심지어 지방흡입 수술까지 생각한다. 그러나 다이어트를 하는 사람의 76%는 ‘요요현상’을 겪는다. 독하게 다이어트를 시작했지만 3년 뒤에는 다이어트 이전보다 살이 더 찐다. 결국 한 번 찌면 빼기 어려운 지방(fat·이하 팻)이 문제다.

날씬하고 건강한 몸이 권력인 세상이니 뚱뚱함은 게으름과 온갖 성인병을 부르는 ‘악의 축’이다. 하지만 팻이 꼭 그런 대접과 지탄을 받아야 할까. 팻은 기름, 비만, 살이라는 뜻의 명사인 동시에 비옥한, 유리한, 뚱뚱한이라는 뜻의 형용사로도 쓰인다. 14편 에세이로 구성된 이 책은 수치심과 죄책감, 불안과 행복을 넘나들며 세계 도처의 팻 모습을 문화인류학적 시선으로 담아낸다.

팻은 문화에 따라 얼굴을 바꾼다. 아프리카 니제르 여성의 이상적 몸매는 뚱뚱한 것이다. 어린 시절부터 살을 찌우려 노력하는 그들은 체중을 재면서 날씬해지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더 살찌기를 소망한다. 그러나 브라질 중산층 여성은 한 달 월급보다도 많은 돈을 들여 다이어트 약을 구입한다. 그들에게 뚱뚱함은 빈곤과 유색인종의 상징이고, 살을 뺀다는 것은 백인 상류층에 가까워진다는 의미다.

서구에서 팻은 참기 힘든 유혹이다. 불포화지방산이 많다고 소문난 ‘엑스트라 버진 오일’은 최고의 건강식품으로 팔려나간다. 사람들은 기름 덩어리가 아닌 신선한 자연을 섭취한다고 착각한다. 이탈리아 베르가모의 진미 돼지비계는 얇은 조각 모양으로 식탁에 올라 식욕을 돋우는 전채요리로 지역의 보물 대접을 받는다.

미국인의 팻 탐닉은 놀랍다. 그들은 커피전문점에서 무지방 라테를 주문한 후 휘핑 크림을 얹는다. 사상 최대치의 설탕과 크림을 소비하면서 사상 최대치의 저지방 식품을 사들인다. 하와이 주민은 스팸을 가장 많이 먹는다. 한 사람이 1년에 평균 4통을 소비하는데 스팸 완탕, 스팸 초밥 등으로 섭취한다. 진주만 공습 이후 어업이 금지되면서 스팸에 길들여졌다. 스팸은 하와이의 고유 문화로, 본토 사람들이 ‘스팸메일’ 운운해도 상관하지 않는다.



팻은 여성에겐 엄격한 반면 남성에겐 관대하다. 스웨덴 소녀가 자신의 뚱뚱한 몸에 대해 자유롭게 말하려면 실제 본인은 뚱뚱해선 안 되며, 소녀들은 마치 전염병이 옮기라도 하는 양 살이 찐 친구에게는 가까이 가려 하지 않는다. 반면 미국의 유명 남자 힙합 래퍼는 과체중이며, 비만인 경우도 많다. 그들은 자신의 신체 크기를 자랑스럽게 공공연히 떠들고 다닌다.

그래도 뚱뚱한 사람은 늘어나고 뚱보 혐오 현상은 여전하다. 마른 것이 행복해지는 유일한 길이라며, 무슨 수를 써서든 날씬해지라고 명령하는 세상. “우리가 나쁘고, 추하며, 무가치하다고 말하는 문화에 짜증 난다”며 “살을 빼지 말고 당당하게 거리로 나서라”고 촉구하는 비만인권운동가의 목소리는 공허하게 들린다.



주간동아 793호 (p74~74)

윤융근 기자 yuny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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