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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윤수의 人文기행 마지막회 ‘나의 여행’

삶은 굽잇길 여정, 그리하여 우리는 떠나는 것이다

  • 정윤수 문화평론가 prague@naver.com

삶은 굽잇길 여정, 그리하여 우리는 떠나는 것이다

삶은 굽잇길 여정, 그리하여 우리는 떠나는 것이다

충북 진천의 국도에서.

남도 땅 장흥(長興)에서도 버스는 다시 비좁은 해안도로를 한 시간 남짓 내달린 끝에, 늦가을 해가 설핏해진 저녁 무렵이 다 되어서야 종점지인 회진(會鎭)으로 들어섰다.

차가 정류장에 멎어서자, 막판까지 넓은 차칸을 지키고 앉아 있던 7, 8명 손님이 서둘러 자리를 일어섰다. 젊은 운전기사 녀석은 그새 운전석 옆 비상구로 차를 빠져나가 머리와 옷자락에 뒤집어쓴 흙먼지를 길가에서 훌훌 털어내고 있었다.

사내는 맨 마지막으로 차를 내려섰다. 차를 내린 다른 손님들은 방금 완도 연락을 대기하고 있는 여객선의 뱃고동 소리에 발걸음이 갑자기 바빠지고 있었다.

사내는 발길을 서두르지 않았다.

이청준의 소설 선학동 나그네의 한 대목이다. 소설 속의 ‘사내’처럼, 어쩌면 나는 오래전부터 그런 여행 혹은 떠돎을 생각했는지 모른다. 두 가지 이유로 그 생각은 늘 유보되거나 실패해왔다. 하나는 내가 소설 속의 ‘사내’와 같은 정한을 갖지 못했다는 점, 그리고 다른 하나는(좀더 실무적인 차원에서) 서울을 벗어나 영동의 오지나 남도 작은 마을을 갈 때 낡은 버스를 이용하기보다는, 그 깊고 먼 마을들의 옆구리를 치고 나가는 고속도로를 이용해 차를 몰고 쏜살같이 돌아다니곤 했기 때문이다. 그 두 가지 이유로, 나는 낡은 가방 하나 메고 낡은 정류장을 빠져나와 완행버스를 타는, 그런 아득한 기억 속의 여행을 제대로 해보지 못하였다.



그런 까닭에 나의 여행이란, 혹은 좀더 범위를 확장하여, 오늘날 업무가 있어서 혹은 한가로운 여행으로 어디론가 떠나가는 우리 모두는 자동차에 올라탄 채 연신 내비게이션을 눌러가며 고속도로 위를 질주하는 처지가 되고 말았다. 사물은 휙휙 스쳐 지나가는 직선 위의 희미한 점으로 사라지고 사람들은 차창 밖의 감정 없는 나무들처럼 우두커니 서 있다.

낯선 시간, 낯선 길, 낯선 사람과의 우연한 스침이나 그에 따른 불편함이나 또 그런 과정 끝에 생각해보게 되는 삶의 여러 갈래 길에 대하여, 더는 생각해볼 만한 여정이 못 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서정인의 오래된 단편 강에 나오는 대목은 오늘의 실상에서는 가히 전설 같은 장면이 되었고, 실제로 우리가 아래 대목과 같은 일을 소읍의 정류장이나 버스에서 마주치면 불편함부터 느끼게 되는 게 인지상정이 됐다. 이제는 아무도 버스나 기차 안에서 낯선 사람과 말을 트지 않는다.

사계절 늘 준비, 약간의 틈 생기면 출발

“눈이 내리는군요.”

버스 안. 창 쪽으로 앉은 사나이는 얼굴빛이 창백하다. 실팍한 검정외투 속에 고개를 웅크리고 있다. 긴 머리칼은 귀 뒤로 고개 위에 덩굴 줄기처럼 달라붙었는데 가마 부근에서는 몇 낱이 하늘을 향해 꼿꼿이 섰다.

“예, 진눈깨빈데요.”

그의 머리칼에 얹힌 큼직큼직한 비듬을 바라보고 있던 옆 사람이 역시 창밖으로 시선을 던진다. 목소리가 굵다. 그는 멋내는 것을 좋아하는 모양이다. 하얀 목도리가 밤색 점퍼 속으로 그의 목을 감싸 넣어주고 있다. 귀 앞머리 끝에는 면도 자국이 신선하다. 그는 눈발 빗발 섞여 내리는 창밖에 차츰 관심을 모으기 시작한다. 버스는 이미 떠날 시간이 지났는데도 태연하기만 하다.

“뭐? 아, 진눈깨비! 참 그렇군.”

그렇다고 해서 길 떠나는 것을 중지할 순 없지 않은가. 여름철의 바캉스와 겨울철의 스키 패키지를 생략하더라도, 우리는 늘 떠날 준비가 되어 있고 약간의 틈만 생기면 어김없이 떠난다. 봄철의 벚꽃을 찾아나서는 가족 나들이가 되었든, 치정의 연인과 가을철 내소사 전나무숲 사이로 걷든, 그도 아니면 혼자서 겨울철 대설주의보를 관통하면서 태백이나 정선의 시간이 정박된 아득한 공간 속으로 하염없이 걸어가든, 어쨌든 우리는 떠날 준비가 되어 있고, 그래서 또 언젠가는 떠나게 된다.

여행은 우리의 숙명이다. 대도시의 싸늘한 비정은 신성과 자연성으로부터 우리를 한사코 떼어놓고 있다. 우리네 삶이 결코 모래알처럼 산산이 흩어지고 마는 무의미한 것이 아니라 먼 과거에서 아득한 미래로 이어지는 굽잇길 과정의 하나이며, 또한 우리네 삶이 건조한 의무의 관계만으로 이뤄져 있지 않으며, 때로 무한히 넘실대는 파도나 대지를 적시는 폭우에 의해 위로받게 되는 것이라는, 그러한 신성과 자연성이 겨우 한 줌으로 남아 있던 마음속 서정을 충동질하게 되고, 그리하여 우리는 떠나는 것이다. 황지우는 시 발작에서 이렇게 썼다.

삶은 굽잇길 여정, 그리하여 우리는 떠나는 것이다

경춘선 강경역. 부여 백마강 선착장의 배. 강원도 증산 버스터미널. 동서울 톨게이트(위 왼쪽부터 시계 방향).

삶이 쓸쓸한 여행이라고 생각될 때
터미널에 나가 누군가를 기다리고 싶다
짐 들고 이 별에 내린 자여
그대를 환영하며
이곳에서 쓴맛 단맛 다 보고
다시 떠날 때
오직 이 별에서만 초록빛과 사랑이 있음을
알고 간다면
이번 생에 감사할 일 아닌가
초록빛과 사랑 : 이거
우주 기적 아녀

어느 때의 연재보다 오늘은 유독 인용하는 소설과 시가 많다. 그 까닭은, 우리 문학사의 빛나는 작품들을 취해 그것들을 배태한 곳을 찾아나섰던 이 여정을 오늘을 끝으로 잠시 멈추기 때문이다. 이 지면을 통해, 지난 1년 동안 여러 곳을 찾아다녔다. 어디론가 떠나고자 하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늘 미묘하게 일렁거리는, 여행지에서의 우연한 만남이나 애틋한 추억, 불행하게도 지난 1년의 여정 속에 그런 일이 단 한 번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것이 애석할 뿐, 그 밖의 의미와 배움은 크고 깊었다.

간절한 떠남과 애틋한 위로를 꿈꾸며

그럼에도 가닿지 못한 곳이 너무나 많다. 벽에 붙어 있는 큰 지도에 미처 가보지 못한 곳마다 붉은 동그라미가 그려져 있다. 한강의 소설 여수의 사랑을 따라 나서는 길, 오정희의 서늘한 눈매가 떠오르는 파로호의 장려한 소멸, 시인 김명인의 마음속 무늬를 새겨준 울진, 이문구와 김성동 소설의 태실과 같은 대천 보령 일대의 고샅길을 남겨둔 채, 일단 이 연재는 이번 회로 끝이 난다. 그동안 동행해준 독자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어쨌든, 좀더 격렬한 여행이기를 원한 1년이었다. 한가롭게 국내외의 이곳저곳을 훑어보는 일도 그 나름의 의미가 없지 않지만, 굳이 ‘인문기행’이라는 제목이 아니더라도, 모름지기 여행이란 간절한 떠남이어야 하고 애틋한 위로이어야 하고, 격렬하게 누군가의 이름을 부르는 거친 행동이어야 한다고 늘 생각해왔다. 그 마음을 나눠보기 위하여 시인과 소설가의 힘을 빌려왔으되, 서하진의 소설 제부도의 마지막 대목을 군말 대신 옮겨 적는다.

길은 점차 물에 덮이고 한번 만난 물길은 사나운 기세로 엉켜들기 시작했다. 자신들의 만남을 방해하는 작은 자동차를 향해 파도가 맹렬히 몰려오고 움칫움칫 금방 설 듯하면서도 차는 물 가운데로 조금씩 떠밀리듯 움직인다. 바퀴가 잠기고 차의 문 옆을 때리는 파도가 차창으로 튀어올랐다. 물방울에 그의 얼굴이 커다랗게 다가왔다 부서진다.

그가 갔던 길을 가보리라. 그가 사라진 곳으로 나는 그를 따라가리라. 어둠 저편에 미소짓고 있는 그가 보였다. 그를 향해 마주 웃으며 나는 힘주어 가속페달을 밟았다. 그의 얼굴이 이끌어주고 있으므로 나는 길을 놓치지 않을 것이다. 앞유리까지 밀려드는 파도를 와이퍼로 밀어내며 나는 물소리와 차의 끼륵거리는 신음소리, 그 가운데서 나를 부르는 그의 아득한 목소리를 들었다. 지금 가요. 나직이 대답하는 내 앞을 막아서는 바다. 춤추는 바다를 나는 그 파도를 닮은 손짓으로 밀어내며 어둠 속으로 어둠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이번 호를 끝으로 ‘정윤수의 인문기행’ 연재를 마칩니다. 그동안 여행을 함께해주신 독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주간동아 2009.03.03 675호 (p64~66)

정윤수 문화평론가 pragu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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