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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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학계 奇人? 열정 살렸을 뿐이죠”

김원곤 서울大 의대 흉부외과 교수 … 수집광에 5개 국어 구사, 몸짱까지 ‘슈퍼맨’

  • 박찬미 자유기고가 merlin-p@hanmail.net

    입력2009-02-27 11: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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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학계 奇人? 열정 살렸을 뿐이죠”
    서울대 의대 흉부외과 김원곤(55) 교수는 의학과 거리가 먼 분야들에서도 고수로 알려져 있다. 미니어처 술 수집가, 5개 국어 달인, 육체미 대가, 외과 교수 중 최다 집필가, 술 칼럼니스트, 종(鍾) 수집가….

    인체의 엔진 격인 심장을 살려내는 흉부외과 의사, 거기다 의대생들을 가르치는 교수인 그는 분명 이 나라에서 ‘바쁜 사람 1%’ 안에 드는 사람이다. 그런 빡빡한 일정을 소화하면서 그가 수집, 집필, 외국어, 운동 어느 하나에도 소홀하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시간은 쓰기 나름”이라는 생활신조 덕분이다.

    중년이라면 대개 그러하듯 그의 수집 취미도 어린 시절 우표수집에서 시작됐다. 그 다음이 종(鐘)이었고 지금은 술, 특히 미니어처 술이 주 관심대상이다. 종은 외국여행을 처음 나간 젊은 시절부터 시작해 200여 종류, 500여 개를 모았지만 미니어처 술을 수집하면서 중단했다. 그는 종을 수집하면서 겪고 배운 이야기를 ‘종과 여행 그리고 가족이야기’라는 가족 소장용 책으로 묶어 출판했다.

    술 좋아하는 의사의 ‘엔돌핀 술 이야기’

    의사가 술을 좋아할 뿐 아니라 수집까지 한다고 하면 간혹 삐딱한 시선으로 보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는 “그건 술을 모르기 때문”이라고 일축한다. “고래(古來)로 모든 술의 역사에 의사가 관련되지 않은 경우가 거의 없다. 술은 의사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기호품”이라는 게 그의 주장이다.



    “술은 칼과 같습니다. 칼은 맛있는 음식을 만들 수도 있지만 사람을 해치는 도구로도 이용됩니다. 술도 마찬가지죠. 폭음, 과음을 하지 않고 자신의 몸 상태를 고려해 적당히 마신다면 정신적, 신체적으로 약이 될 수 있습니다. 문제는 그 ‘적당히’가 사람마다 달라 똑 부러지게 규정할 수 없다는 거죠.”

    애주가이자 술 컬렉터인 김 교수는 특별히 좋아하는 술이 없다. 되도록 새로운 술을 찾아 마시려고 노력할 뿐이다. 또한 술에 대해 엄격한 양면성을 견지한다. 폭탄주를 하나의 문화로 받아들이는 점도 그런 면모다.

    “혼자 마시거나 술자리의 좌장이 될 경우 폭탄주를 마시지 않습니다. 하지만 폭탄주를 마시게 되는 자리에서는 몇 잔이든 거부하지 않죠. 폭탄주의 좋은 기능은 인정하지만 귀한 술, 그 맛을 음미해야 하는 값비싼 술을 폭탄주로 만들어 마시는 건 말립니다.”

    김 교수는 폭탄주를 ‘평등의 술’이라고 칭한다. 술자리에서 술이 한 사람에게 집중되는 걸 막아주기 때문. 의학적으로도 다른 술과 다를 게 없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한두 잔 마시면 득이 되지만 그 이상 마시면 독이 된다는 것.

    “의학계 奇人? 열정 살렸을 뿐이죠”

    김원곤 교수가 모은 특이한 미니어처 술.

    그는 술을 즐기고 수집하는 데 그치지 않고 술과 관련된 식견과 정보를 칼럼으로 옮긴다. 그의 글에는 갖가지 술 역사부터 그에 얽힌 이야기, 맛 분석, 싸게 제대로 고르는 법 등 스토리텔링과 정보가 함께 녹아 있다. 한 의학 전문지에 연재하는 ‘미니 술 이야기’와 서울대학병원 웹진에 기고하는 ‘김원곤 교수의 엔돌핀 술 이야기’가 그것. 둘 다 의료계뿐 아니라 술 마니아들이 많이 읽는 칼럼이다. 그는 국내 최초로 미니어처 술병 홈페이지를 개설했는데, 방문자만 2300명이 넘었으며 방명록에는 국내뿐 아니라 외국 마니아들의 글도 200여 건이 올라 있다.

    해박한 역사적 사실과 다양한 인용, 폭넓은 상식과 정보가 망라된 그의 글은 흉부외과 책도 재미있게 만든다. 김 교수는 국내 외과의사 중 가장 많은 책을 출판한 사람이다. 그중 흉부외과의 여러 질환에 대한 진단과 치료법을 상술한 ‘의대생을 위한 흉부외과학’은 전문서적으로는 이례적으로 3쇄를 찍었을 정도. 그 밖에 전문인은 물론 일반인에게도 화제가 된 ‘My Heart’는 심장수술을 받았거나 받을 사람들, 혹은 심장수술에 대해 알고 싶은 사람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게 저술한 책이다.

    50살 넘었어도 늘 단어공부와 운동

    역사에 관심이 많은 김 교수는 흉부외과 역사 관련 자료나 정보 수집, 논문 발표에도 열의가 대단하다. 역사 공부를 좋아하기도 하지만 역사에 대한 조예는 글을 잘 쓸 수 있는 밑거름이 되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한국 최초로 흉부외과 수술을 받은 환자가 을사오적 중 한 명인 이완용이라는 기록이 담긴 ‘상해 감정서’를 발견해 화제가 됐다.

    그는 5년 전인 50세 때 ‘더 늙기 전에 새로운 일에 도전해보자’는 생각으로 외국어 공부를 시작해 지금은 영어 일본어 중국어 프랑스어 스페인어 등 5개 국어를 ‘고급 수준’으로 구사한다. ‘외국어 달인’이란 주변의 평이 허명이 아니다.

    “저는 어학에 소질이 없습니다. 강의 시간에 학생들이 10분마다 한 번씩 웃음을 터뜨릴 정도로 발음이 좋지 않아요. 영어는 직업상 해야 하니 꾸준히 해왔지만, 다른 외국어도 공부해보고 싶어 가장 만만하게 생각하던 일본어를 시작한 게 지금에 이르렀습니다.”

    뒤늦은 외국어 공부가 쉬울 리 없었지만 그는 식지 않는 열정으로 나이를 초월했다. 출퇴근길 지하철에선 어김없이 단어공부를 한다. 그의 겉옷 양쪽 주머니와 가방에는 전자사전 2개와 프랑스어 사전이 들어 있다. 지금도 주말마다 영어를 제외한 2개 외국어를 번갈아 학원 고급반에서 공부하며 감을 잃지 않으려 노력한다.

    “어학과 운동만큼 정직한 것은 없습니다. 안 하는 순간 바로 티가 나죠. 외국어는 손을 놓으면 그와 정비례해서 잊어버리기에 실력을 쌓는 것보다 유지하기가 더 힘듭니다. 운동 또한 게을리하는 순간 몸이 망가지기 때문에 주기적으로 해야 합니다.”

    김 교수가 즐겨 하는 운동은 보디빌딩이다. 의대 예과 1학년 시절 서울대 물리대 역도부에 입단하면서 시작한 운동을 지금까지 계속하고 있다. 의대에 역도부 동아리를 처음 만든 것도 그였고, 첫 회장도 당연히 그였다. 의대 역도부는 35년이 흐른 지금도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그는 몸매가 더 늙기 전에 반(半)누드집을 출판할 예정이다. 물론 판매용이 아니라 소장용.

    뿐만 아니라 ‘나이 50이 넘어도, 외국에 나가지 않아도 외국어 얼마든지 잘할 수 있다’는 주제로 책을 쓸 계획이다. 술에 관한 기고가 많이 모이면 그것도 책으로 출판할 예정. 심장수술이 본업인 이 기인(奇人) 교수의 못 말릴 정열이 또 어떤 기행을 낳을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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