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항공우주국 소속 그래픽 디자이너들이 우주궤도에 떠도는 각종 파편과 우주 쓰레기를 묘사한 그림. 심각성을 드러내기 위해 실제보다 크게 표현했다(큰사진). 지상에서 촬영한 이리듐 통신위성 사진(작은사진).
사고 직후 미국항공우주국(NASA)은 “이번 충돌로 2개의 거대한 구름이 일어난 것이 관측됐다”며 “사고 경위를 파악하기까지 최소 몇 주는 걸린다”고 공식 입장을 밝혔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고가 몇 년 전 기능을 잃은 코스모스 위성궤도를 조정하지 못해 일어난 것으로 본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정확한 궤도를 도는 인공위성이 충돌할 확률은 ‘제로’에 가깝다는 점에서 과도한 우주개발 경쟁으로 지구 주변의 궤도가 포화 상태에 빠진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지난해 다목적 실용위성 아리랑 1호를 잃어버린 한국도 언제든 가해국이 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미·러 위성 충돌 파편 구름 … ‘2, 3차 피해 우려’
사고 직후 NASA와 미 공군은 사고로 생겨난 파편들의 추적에 나섰다. NASA는 충돌 직후 생긴 파편 구름 2개에 대한 추적 활동을 벌이고 있으며, 특히 허블우주망원경과 다른 위성에 미치는 위험성 파악에 나선 것으로 확인됐다. 크고 작은 파편들이 인근 궤도를 지나는 인공위성에 부딪히는 2차 피해를 우려해 내린 조처다.
NASA의 한 관계자는 “미국 이리듐 위성과 러시아 코스모스의 충돌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며 “우주 물체를 감시하는 미국우주감시네트워크(SSN)를 활용해 2개 파편 구름에 대한 추적 작업을 벌이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중국의 우주전문가 팡즈하오는 “충돌한 위성의 파편은 초속 7.8㎞ 이상으로 날고 있다”며 “파편이 또 다른 인공위성과 부딪칠 경우 큰 피해가 생길 수 있다”고 경고했다.
가장 큰 문제는 파편이 현재 3명의 미국, 러시아 우주인이 머물고 있는 국제우주정거장(ISS)에 부딪힐 경우다. 총알보다 빠른 속도로 나는 우주 파편이 ISS에 구멍이라도 내면 이들 우주인은 심각한 위험에 빠지게 된다. 그러나 다행히도 대다수 전문가들은 파편이 ISS의 안전에는 위협을 주지 않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ISS는 이번 충돌이 일어난 790km 상공보다 훨씬 낮은 354km 상공의 우주궤도를 돌고 있기 때문에 영향권 밖에 있다는 것이다.
미국 휴스턴에 있는 NASA 존슨우주센터 니콜러스 존슨 국장은 “파편이 ISS가 도는 궤도까지 내려올 것으로 보이지만 매우 소량일 것”이라며 “그러나 좀더 높은 궤도를 도는 인공위성은 사정이 다르다”고 말했다. 실제 지상 705km 상공을 돌고 있는 NASA의 ‘아쿠아’와 ‘오라’ 지구관측위성의 경우 우주 파편에 부딪힐 가능성이 가장 높으며, 800km 상공을 도는 또 다른 위성 1개도 충돌 위험이 높은 것으로 이 관계자는 확인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파편과 충돌 위험이 있는 인공위성이 최하 12개 이상”이라고 밝혔다.
600km 상공에서 관측 활동을 벌이고 있는 허블우주망원경도 파편과 2차 충돌의 위험에 처했다. 러시아 우주군 알렉산드르 야쿠신 부사령관은 “충돌로 생긴 파편이 500~1300km 상공에 걸쳐 흩어져 있다”며 “610km에 떠 있는 허블우주망원경도 이 영역에 포함된다”고 말했다.
파편이 대기권에서 불타 없어지지 않고 땅에 떨어질 위험도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15일 미국 텍사스주에서는 우르릉거리는 소리와 함께 하늘에서 떨어지는 불덩이가 목격되기도 했다. 이에 대해 미국연방항공청(FAA)은 “주민들이 본 유성은 최근 미국, 러시아 위성 간 충돌로 생긴 우주 파편일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FAA는 전날인 14일 항공기 조종사들에게 파편에 대비하라고 경고했다.
이번처럼 우주에서 물체끼리 충돌한 경우는 20년간 3차례가 있었다. 그러나 인공위성 부품과 같은 작은 것들의 충돌이어서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과학자들은 위성 간 충돌은 물론 우주궤도를 떠도는 쓰레기로 인한 사고 위험을 여러 차례 경고해왔다.
우주에 부서진 부품 등 최소 1만8000개 쓰레기
SSN을 운영하는 미공군전략사령부는 현재 인공위성과 부서진 부품을 포함해 우주공간에 최소 1만8000개의 우주 물체가 떠돌고 있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이 중 실제 가동되는 인공위성은 800~1000개, 나머지는 모두 버려진 쓰레기로 추정한다. NASA 측은 “이번 사고로 생긴 파편이 최소 500개에 이른다”고 비공식 집계하고 있다. 중국이 2007년 미사일로 인공위성을 쏘아 떨어뜨린 요격실험에서 생긴 파편은 약 2500개로, 대부분 이번 사고로 생긴 파편보다 크기가 컸다.
한국이 쏘아올린 인공위성도 미국 군사위성과 충돌할 뻔한 일이 있었다. 2003년 발사된 과학기술위성 1호가 지난해 9월25일 우주 상공 650km 지점에서 미 군사위성과 불과 431m 거리를 두고 비켜간 것. 과학위성을 운용하는 KAIST 인공위성센터 측은 “초속 7km로 날아가는 위성이 431m 간격을 두고 스쳐지나간 것도 확률적으로 매우 드문 일”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사고로 한국이 운용 중인 다목적 실용위성 아리랑 2호와 과학기술위성 1호 등의 안전에는 이상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아리랑 2호는 충돌사고가 일어난 790km보다 100km 낮은 685km 궤도를 하루 14바퀴씩 정상적으로 돌고 있다. 그러나 지난해 기능을 잃고 ‘우주 쓰레기’ 신세로 전락한 아리랑 1호 위성이 다른 나라 위성과 부딪쳐 피해를 줄 가능성은 여전히 있다. 전략적 목적이 강한 군사위성이나 민간 통신위성과 충돌하기라도 한다면 외교분쟁이나 국제소송에 휩싸일 가능성도 높다. 이번 충돌사고의 당사자인 미국과 러시아도 벌써부터 사고 책임 소재를 상대에게 떠넘기는 등 국제분쟁으로 번지고 있는 상황이다. 정부가 2007년 마련한 우주손해배상법에는 이번과 같은 우주 충돌에 관한 대책과 보상 방안이 들어 있지 않다.
이런 가운데 유럽우주국(ESA)은 이번 사고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16일 미국과 러시아에 초국적 협력을 제안했다. 우주 파편을 추적하거나 표시하는 국제기준을 마련하고 러시아 연방우주청과 ESA, NASA 간 정보를 공유하자는 것이다. ESA는 인공위성 충돌을 막기 위해 1만3000개 우주 물체의 상세 궤도를 각국 정부에 제공하는 ‘유로(euro) 50’ 계획을 세워놓았다. KAIST 인공위성센터의 한 관계자는 “올해 통신해양기상위성과 과학기술위성 2호를 쏘아 올리는 한국도 위성 간 충돌사고 예방 등을 위한 우주 물체 감시체계 구축을 서둘러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