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침체의 그림자가 길어지면서 미국의 직장인에게 ‘정리해고(Layoff)’는 이제 낯선 일이 아니다. 지난해 리먼브러더스 파산 이후 미국에서만 300만개에 이르는 일자리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경기를 민감하게 타는 정보기술(IT) 업체나 금융회사가 된서리를 맞았지만, 최근 들어서는 정리해고가 산업 전반으로 확대되고 있다. 보잉사에서 1만명, 통신회사 ‘스프린트 넥텔’에서 8000명, 가정용품 제조업체 ‘홈디포’에서 7000명이 해고되는 등 그야말로 업종을 가리지 않고 무더기 정리해고가 단행되고 있다.
직장 옆자리의 동료가 해고 통지서인 ‘핑크 슬립(Pink slip)’을 받고 주섬주섬 짐을 싸는 장면도 미국인에겐 익숙한 풍경이다. 최근 뉴욕 월가에서는 해고 통보를 받은 사람들이 스스로를 위로하는 ‘핑크 슬립 파티’가 새로운 풍속으로 자리잡았다.
‘유에스 뉴스 앤드 월드 리포트’지가 최근 커버스토리로 다룬 ‘해고된 동료에게 말 건네는 법’은 이런 분위기에서 시선을 끌 수밖에 없는 기사다. 이 기사의 핵심은 ‘당신의 동료나 상사, 부하직원이 삽시간에 해고 통보를 받았다고 가정해보라. 그때 낙망한 직장동료에게 어떤 말을 해야 그나마 위로가 될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 참 씁쓸하면서도 실용적인(?) 기사가 아닐 수 없다.
월가 ‘정리해고 파티’ 새 풍속으로 등장
대부분의 직장인은 해고된 동료가 짐을 챙겨 무거운 발걸음으로 사무실을 나설 때 아무 말도 건네지 못한다. 너무나 어색하고, 간절히 피하고 싶은 순간이다. 사무실을 나서는 동료의 얼굴은 장례식에 온 사람처럼 딱딱하게 굳어 있을 것이다. 이런 순간에 할 만한 적당한 말이 생각날 리가 없다.
인사관리 전문가인 로리 루티먼은 이럴 때 ‘괜히 어색한 말을 꺼내려 하지 말고, 동료를 껴안아주거나 어깨를 두드려주라. 힘찬 악수도 좋다’고 충고한다. 어설픈 작별인사보다 이 같은 ‘보디 랭귀지’가 동료의 쓰라린 마음을 위로해줄 수 있다는 것이다.
커리어 코치인 수전 크램은 ‘막 해고당한 사람에게 조언이나 충고를 하려 들지 말라’고 조언한다. 크램의 분석에 따르면 갑자기 직장을 잃은 사람은 실망과 분노에 차 있기 때문에 어떤 조언도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럴 때 동료가 할 수 있는 최선의 행동은 그의 손을 잡으며 ‘세상에, 이런 법이 어디 있어!’ 하고 분개해주는 것이다. 해고당한 사람에게 필요한 건 자신의 처지를 이해해주는 동료다. 그 이상의 역할을 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 당신은 가족도 친구도 아닌 ‘동료’일 뿐이니까.”
한 달 또는 보름 정도의 유예를 받은 해고 당사자 옆에 있는 직장동료도 좌불안석이긴 마찬가지다. 소심한 사람이라면 이런 생각을 할지 모른다. ‘내가 해고될 사람과 이야기하는 걸 보면 인사부에서 내 메일 내용을 검열할지도 몰라.’ 그러나 친하게 지내던 동료가 해고 통보를 받았다고 갑자기 그를 피하는 행동을 하면 안 된다. 루티먼은 동료를 피하기보다는 ‘페이스북(Facebook)’ 같은 소셜 네트워크 웹사이트를 소개하거나, 아예 웹사이트에 가입해주라고 말한다. 해고를 눈앞에 둔 사람은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기 때문에 작은 호의에도 감동한다는 것이다.
이달 말까지만 근무하게 된 동료가 드러내놓고 새 직장을 찾고 있다고 가정해보자. 사실 지금 같은 불황에 새로운 직장을 구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이번 불황이 앞으로도 15개월 이상 갈 것으로 본다. 오바마 대통령부터 “경기부양책이 제대로 가동된다면 내년쯤에는 경기 회복의 기미가 보일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구직자는 응답이 없는 이력서에 목을 매달거나, 인터뷰 뒤에도 아무런 연락이 없다는 사실에 점점 더 절망의 늪으로 빠져들게 마련이다. 이럴 때 옆자리의 동료는 무엇을 해줄 수 있을까. 크램은 “구직에 대한 좋은 책을 사서 슬그머니 건네라”고 충고한다. 예를 들면 자신에게 맞는 직장을 찾는 법을 다룬 ‘이력서 절대 보내지 마라(Don’t send a resume)’ 같은 책이다.
해고되는 사람이 상사나 부하직원이라면 문제는 좀더 복잡해진다. 진심이 담긴 위로의 말도 해고되는 상사에겐 고깝게 들릴 수 있다. ‘너희가 잘못한 걸 내가 다 떠안고 나가는 거란 말이다!’라든지, ‘내가 나가면 부장 자리는 당신이 차지할 거 아냐?’라는 식으로 상사의 반감을 사면 어떤 말로도 꼬인 감정을 풀 수 없다.
현실 받아들이도록 도와주는 게 최선
이럴 때는 차라리 말을 돌리지 말고 상사에게 “앞으로 어떻게 하실 건가요?”라고 단도직입적으로 묻는 게 낫다고 한다. 상사가 자신의 계획을 설명하면 고개를 끄덕이면서 “그렇군요. 잘되실 겁니다. 아무튼 나중에라도 부장님과 같이 일하게 됐으면 합니다”라고 진솔하게 말하는 것이다. 자신을 인정해주는 상사와 함께 일하기가 즐거운 것처럼, 상사 역시 부하에게 인정받았다는 데 큰 의미를 두게 마련이다.
부하직원을 해고해야 하는 상황 역시 난감하기는 마찬가지다. ‘당신의 기업을 시작하라’의 저자이자 애플사(社) 특별연구원이던 가이 가와사키는 최근에 펴낸 책 ‘리얼리티 체크’에서 이렇게 말한다.
“몇몇 부하에게 해고를 통보하는 순간보다, 정리해고 후의 부서를 관리하는 것이 더 어렵고 중요한 일이다. 한번 정리해고의 폭풍이 지나가면 남은 직원들은 모두 두려움에 떨게 된다. 그들은 하나같이 상사인 당신과 한 번이라도 더 대화를 나누려 하고 당신의 조언을 듣고자 할 것이다.”
즉 올바른 상사라면 이 순간에 진정한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는 것이다. 가와사키는 “이럴 때일수록 상사는 씩씩하고 용기 있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그것이 허세일지라도, 때론 허세도 부릴 줄 아는 사람이 진짜 상사”라고 조언한다.
가장 중요한 점은 어떤 경우라도 해고되는 동료에게 ‘동정심’을 발휘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실제 많은 해고 경험자들은 가장 견디기 힘들었던 점으로 ‘불쌍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시선’을 꼽는다. 해고 경험이 있다는 한 독자는 ‘결국 현실을 받아들이도록 도와주는 것이 주위에서 해줄 수 있는 최선’이라고 댓글을 달았다.
미국 언론들은 현재 미국 경기의 회복을 막고 있는 네 가지 요인으로 정리해고 급증, 주택 가격 하락, 은행 위기, 신뢰성 상실을 꼽는다. 이 중에서도 평범한 미국인을 가장 위협하는 것은 언제 닥칠지 모르는 정리해고의 칼날이다. 올해 다시 200만개의 일자리가 사라질 것이며, 현재 7.6%의 실업률이 연말에는 9%로 치솟을 것이라는 등 날마다 우울한 전망이 쏟아진다. 미국의 경기불황 그림자는 우리의 짐작보다 훨씬 더 깊고 어두운 듯싶다.
처음에는 경기를 민감하게 타는 정보기술(IT) 업체나 금융회사가 된서리를 맞았지만, 최근 들어서는 정리해고가 산업 전반으로 확대되고 있다. 보잉사에서 1만명, 통신회사 ‘스프린트 넥텔’에서 8000명, 가정용품 제조업체 ‘홈디포’에서 7000명이 해고되는 등 그야말로 업종을 가리지 않고 무더기 정리해고가 단행되고 있다.
직장 옆자리의 동료가 해고 통지서인 ‘핑크 슬립(Pink slip)’을 받고 주섬주섬 짐을 싸는 장면도 미국인에겐 익숙한 풍경이다. 최근 뉴욕 월가에서는 해고 통보를 받은 사람들이 스스로를 위로하는 ‘핑크 슬립 파티’가 새로운 풍속으로 자리잡았다.
‘유에스 뉴스 앤드 월드 리포트’지가 최근 커버스토리로 다룬 ‘해고된 동료에게 말 건네는 법’은 이런 분위기에서 시선을 끌 수밖에 없는 기사다. 이 기사의 핵심은 ‘당신의 동료나 상사, 부하직원이 삽시간에 해고 통보를 받았다고 가정해보라. 그때 낙망한 직장동료에게 어떤 말을 해야 그나마 위로가 될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 참 씁쓸하면서도 실용적인(?) 기사가 아닐 수 없다.
월가 ‘정리해고 파티’ 새 풍속으로 등장
대부분의 직장인은 해고된 동료가 짐을 챙겨 무거운 발걸음으로 사무실을 나설 때 아무 말도 건네지 못한다. 너무나 어색하고, 간절히 피하고 싶은 순간이다. 사무실을 나서는 동료의 얼굴은 장례식에 온 사람처럼 딱딱하게 굳어 있을 것이다. 이런 순간에 할 만한 적당한 말이 생각날 리가 없다.
인사관리 전문가인 로리 루티먼은 이럴 때 ‘괜히 어색한 말을 꺼내려 하지 말고, 동료를 껴안아주거나 어깨를 두드려주라. 힘찬 악수도 좋다’고 충고한다. 어설픈 작별인사보다 이 같은 ‘보디 랭귀지’가 동료의 쓰라린 마음을 위로해줄 수 있다는 것이다.
커리어 코치인 수전 크램은 ‘막 해고당한 사람에게 조언이나 충고를 하려 들지 말라’고 조언한다. 크램의 분석에 따르면 갑자기 직장을 잃은 사람은 실망과 분노에 차 있기 때문에 어떤 조언도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럴 때 동료가 할 수 있는 최선의 행동은 그의 손을 잡으며 ‘세상에, 이런 법이 어디 있어!’ 하고 분개해주는 것이다. 해고당한 사람에게 필요한 건 자신의 처지를 이해해주는 동료다. 그 이상의 역할을 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 당신은 가족도 친구도 아닌 ‘동료’일 뿐이니까.”
한 달 또는 보름 정도의 유예를 받은 해고 당사자 옆에 있는 직장동료도 좌불안석이긴 마찬가지다. 소심한 사람이라면 이런 생각을 할지 모른다. ‘내가 해고될 사람과 이야기하는 걸 보면 인사부에서 내 메일 내용을 검열할지도 몰라.’ 그러나 친하게 지내던 동료가 해고 통보를 받았다고 갑자기 그를 피하는 행동을 하면 안 된다. 루티먼은 동료를 피하기보다는 ‘페이스북(Facebook)’ 같은 소셜 네트워크 웹사이트를 소개하거나, 아예 웹사이트에 가입해주라고 말한다. 해고를 눈앞에 둔 사람은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기 때문에 작은 호의에도 감동한다는 것이다.
이달 말까지만 근무하게 된 동료가 드러내놓고 새 직장을 찾고 있다고 가정해보자. 사실 지금 같은 불황에 새로운 직장을 구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이번 불황이 앞으로도 15개월 이상 갈 것으로 본다. 오바마 대통령부터 “경기부양책이 제대로 가동된다면 내년쯤에는 경기 회복의 기미가 보일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구직자는 응답이 없는 이력서에 목을 매달거나, 인터뷰 뒤에도 아무런 연락이 없다는 사실에 점점 더 절망의 늪으로 빠져들게 마련이다. 이럴 때 옆자리의 동료는 무엇을 해줄 수 있을까. 크램은 “구직에 대한 좋은 책을 사서 슬그머니 건네라”고 충고한다. 예를 들면 자신에게 맞는 직장을 찾는 법을 다룬 ‘이력서 절대 보내지 마라(Don’t send a resume)’ 같은 책이다.
해고되는 사람이 상사나 부하직원이라면 문제는 좀더 복잡해진다. 진심이 담긴 위로의 말도 해고되는 상사에겐 고깝게 들릴 수 있다. ‘너희가 잘못한 걸 내가 다 떠안고 나가는 거란 말이다!’라든지, ‘내가 나가면 부장 자리는 당신이 차지할 거 아냐?’라는 식으로 상사의 반감을 사면 어떤 말로도 꼬인 감정을 풀 수 없다.
현실 받아들이도록 도와주는 게 최선
이럴 때는 차라리 말을 돌리지 말고 상사에게 “앞으로 어떻게 하실 건가요?”라고 단도직입적으로 묻는 게 낫다고 한다. 상사가 자신의 계획을 설명하면 고개를 끄덕이면서 “그렇군요. 잘되실 겁니다. 아무튼 나중에라도 부장님과 같이 일하게 됐으면 합니다”라고 진솔하게 말하는 것이다. 자신을 인정해주는 상사와 함께 일하기가 즐거운 것처럼, 상사 역시 부하에게 인정받았다는 데 큰 의미를 두게 마련이다.
부하직원을 해고해야 하는 상황 역시 난감하기는 마찬가지다. ‘당신의 기업을 시작하라’의 저자이자 애플사(社) 특별연구원이던 가이 가와사키는 최근에 펴낸 책 ‘리얼리티 체크’에서 이렇게 말한다.
“몇몇 부하에게 해고를 통보하는 순간보다, 정리해고 후의 부서를 관리하는 것이 더 어렵고 중요한 일이다. 한번 정리해고의 폭풍이 지나가면 남은 직원들은 모두 두려움에 떨게 된다. 그들은 하나같이 상사인 당신과 한 번이라도 더 대화를 나누려 하고 당신의 조언을 듣고자 할 것이다.”
즉 올바른 상사라면 이 순간에 진정한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는 것이다. 가와사키는 “이럴 때일수록 상사는 씩씩하고 용기 있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그것이 허세일지라도, 때론 허세도 부릴 줄 아는 사람이 진짜 상사”라고 조언한다.
가장 중요한 점은 어떤 경우라도 해고되는 동료에게 ‘동정심’을 발휘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실제 많은 해고 경험자들은 가장 견디기 힘들었던 점으로 ‘불쌍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시선’을 꼽는다. 해고 경험이 있다는 한 독자는 ‘결국 현실을 받아들이도록 도와주는 것이 주위에서 해줄 수 있는 최선’이라고 댓글을 달았다.
미국 언론들은 현재 미국 경기의 회복을 막고 있는 네 가지 요인으로 정리해고 급증, 주택 가격 하락, 은행 위기, 신뢰성 상실을 꼽는다. 이 중에서도 평범한 미국인을 가장 위협하는 것은 언제 닥칠지 모르는 정리해고의 칼날이다. 올해 다시 200만개의 일자리가 사라질 것이며, 현재 7.6%의 실업률이 연말에는 9%로 치솟을 것이라는 등 날마다 우울한 전망이 쏟아진다. 미국의 경기불황 그림자는 우리의 짐작보다 훨씬 더 깊고 어두운 듯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