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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er Story|참 깜깜한 국감

왜 하필 바쁜 국감 때 현장시찰까지 하시는지

예년 비해 상임위마다 급증 … 사진 찍고 생색내고 아직도 구태 정치?

  • 엄상현 기자 gangpen@donga.com

왜 하필 바쁜 국감 때 현장시찰까지 하시는지

왜 하필 바쁜 국감 때 현장시찰까지 하시는지

10월20일 대구 제11전투비행단을 방문한 국방위원회 소속 의원들이 전투기 탑승 체험에 앞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이거 답답하네, 괜찮은 거지?”(국회 국방위원회 소속 의원)

“네, 괜찮습니다!”(제11전투비행단 조종사)

몸무게가 90kg은 족히 넘어 보이는 국회의원에게 F-15K 전투기 뒷좌석은 비좁은 듯했다. 헬멧은 의원의 큼지막한 머리를 간신히 받아들였고, 산소마스크는 그의 얼굴을 잔뜩 일그러뜨렸다. 답답할 만했다. 그렇다고 하늘 같은 ‘의원나리’에게 “괜찮지 않다”고 말할 수는 없다는 듯 조종사의 표정이 난감했다. 의원 보좌관은 전투기를 오르내리며 의원의 모습을 찍느라 정신이 없었다.

18대 국회 첫 국정감사(이하 국감)가 한창 진행 중이던 10월20일 오후 4시, 제11전투비행단(이하 11비행단) 주기장(활주로 옆 전투기 대기장소)에서 벌어진 광경이다. 비행단은 이 의원에게 맞는 조종사 복장, 헬멧, 마스크를 구하느라 애먹었다는 후문이다.

국방위 의원들 활주로에서 전투기 탑승 체험



국회 국방위원회(이하 국방위) 소속 의원 18명 가운데 15명은 이날 오후 국감 대신 이곳으로 현장시찰을 나왔다. 홍준표 임태희 김효재 등 한나라당 의원 3명은 그나마도 빠졌다. 원내대표, 정책위의장, 당 대표 비서실장은 굵직한 당무를 보느라 바쁘다는 이유에서다. 그들은 이날 오전 대구 제2작전사령부에서 진행된 국감에도 참여하지 않았다. 당 업무가 국정보다 중요한 모양이다.

11비행단은 수십대의 F-15K를 보유한 공군 주력부대다. 외부의 부대시찰 요청이 하도 많아 공군참모총장이 한때 외부시찰을 일절 중단하라고 지시할 정도였다. 비행단 대원들은 외부 시찰이 잦을수록 피곤할 수밖에 없고, 그러다 보면 국방 의무에 소홀할 우려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비행단은 이날 의원들의 현장시찰을 위해 10여 일 전부터 준비했다고 한다. 전투기와 각종 화기들을 닦고 기름 치고 조였다. 훈련 일정도 한 달에 세 번 있는 전투기 정기점검일로 조정해 맞췄다. 그 덕에 활주로는 텅 비어 있었다.

대신 15명의 의원을 위한 15대의 전투기가 주기장에 줄지어 있었다. 의원들이 도착하자 의원 1명당 전투기 조종사 1명, 사진촬영 전담 군인 1명, 전투기 보조요원 3명 등 모두 5명씩 붙었다.

4시40분, 의원들의 탑승이 끝나자 전투기는 일제히 시동을 걸었다. 엔진에서 뿜어져 나오는 굉음은 마치 거대한 비상 사이렌처럼 들렸다. 그리고 곧 김학송 국방위원장을 태운 전투기부터 줄지어 주행 활주로로 이동했다. 활주로 출발선상에 선 전투기들은 엔진이 폭발하면서 가속도를 내 순식간에 시속 170~180km에 육박하는 속도로 내달렸다. 20~30초 지났을까. 활주로 끝까지 달린 전투기는 다시 주기장 쪽으로 선회해 들어왔다. 의원들의 전투기 탑승체험은 이동하는 시간까지 포함해 20분 만에 끝났다.

왜 하필 바쁜 국감 때 현장시찰까지 하시는지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 국정감사가 열린 10월10일 서울 마포구 상암DMC게임체험관에서 여야 간사인 한나라당 나경원 의원(맨 오른쪽)과 민주당 전병헌 의원(맨 왼쪽)이 게임을 하고 있다.

국방위 소속 의원들의 11비행단 시찰은 유승민 의원(한나라당)의 요청에 따라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유 의원에게는 그만한 정치적 이유가 있다. 지난 총선 때 유 의원은 지역구 한가운데에 자리한 11비행단을 이전하겠다고 공약으로 내걸었던 것. 11비행단 이전 문제는 이 지역뿐 아니라 대구의 오래된 민원사항이다.

탑승 체험에 앞서 11비행단 박재복 단장에게 현황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유 의원은 그 속내를 여실히 내비쳤다. 김 국방위원장의 배려로 발언 기회를 얻은 유 의원은 11비행단 이전 문제를 기다렸다는 듯 꺼냈다.

“누가 이 지역 국회의원이 되더라도 이것(비행단 이전)은 꼭 해야 할 일이다. 대구지역 모든 국회의원이 대구 발전을 위해 원하는 일이기도 하다. 내년에 기지 이전과 관련해 타당성 조사 예산도 이미 잡혀 있다. 이 정권에서 계획만이라도 반드시 확정짓고 진행할 수 있도록 하겠다.”

그러나 11비행단의 한 관계자는 비행단 이전 문제와 관련해 “논의가 진행 중이라는 말을 전혀 듣지 못했고, 이전도 불가능에 가깝다. 대구의 공군비행단이 이전할 경우 청주 원주 강릉 등 공군비행단이 있는 다른 지역 주민이 가만있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국방위 소속 의원들은 다음 날에도 독도 방문과 잠수함 시찰로 시간을 보냈다. 10월6일부터 25일까지 20일간의 국감 기간 중 국감이 열리는 날은 주말 닷새와 쉬는 날 사흘 등 8일을 뺀 12일에 불과했다. 국방위원회는 이 중에서도 또 닷새를 현장시찰에 할애했다. 제대로 된 국감은 7일 동안밖에 이뤄지지 못한 것. 질의시간이 부족해 제대로 된 국감을 못한다는 자조 섞인 의원들의 불만이 무색할 정도다. 이번 국방위의 시찰일수는 2~3일에 머물렀던 이전 국감과 비교할 때 두 배 정도 많은 것.

다른 상임위원회(이하 상임위)도 시찰일수가 전반적으로 크게 늘었다. 이전까지 현장시찰을 하루 또는 전혀 나가지 않았던 보건복지가족위원회, 환경노동위원회도 올해는 각각 사흘간 시찰을 다녀왔다.

YTN 사태로 국감이 파행으로 치달았던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와 공정택 서울시 교육감 선거자금 파문으로 여야 간 치열한 공방을 벌였던 교육과학기술위원회도 이틀씩 현장시찰 일정을 잡았다.

정무위원회, 행정안전위원회, 지식경제위원회, 국토해양위원회 등 현장시찰을 다녀오지 않은 상임위도 있다. 하지만 국감 기간에 재외공관 국감을 위해 해외로 떠나는 외교통상통일위원회를 제외한 12개 상임위 가운데 9개가 짧게는 하루, 길게는 닷새간 현장시찰을 다녀온 것으로 분석됐다.

일부 시찰 일정 중에는 오전 또는 오후에 시찰지역 관할 피감기관에 대한 국감이 병행되기도 하지만, 정상적인 국감이 진행되기는 물리적으로 불가능에 가깝다. 예를 들어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는 10월21일 오전 문화재청에 대한 국감에 이어 오후에는 부여 한국전통문화학교 현장시찰을 다녀왔다.

소속 의원들은 이날 오전 버스로 대전 문화재연구소로 이동해 10시부터 국감을 시작했다. 오전 국감 시간은 점심시간까지 2시간(120분) 남짓. 위원회 소속 의원 28명이 5분씩(140분)만 발언하기에도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다. 그러다 보니 제대로 된 국감 준비를 하기보다 업무 보고받은 것을 기초로 덕담을 주고받는 수준에서 질문과 답변이 오가는 장면이 연출되기 일쑤다.

“시찰 많다는 것은 그만큼 국감 부실하다는 방증”

국정감사NGO모니터단(이하 모니터단)은 이번 국감의 문제점으로 가장 먼저 급증한 현장시찰을 지적했다. 모니터단 홍금애 단장은 “각 상임위마다 국감 2주차 때 현장시찰 일정을 잡은 경우가 예년에 비해 크게 늘었다”면서 “의원들의 상임위 배정이 늦어져 피감기관의 문제점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것이 아마도 가장 큰 원인이 아닐까 싶다”고 말했다.

“시찰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국감이 부실하다는 방증”이라는 홍 단장은 “현장시찰이 국감이 아니라곤 할 수 없지만, 국감이 시작하기 전에 미리 시찰을 다녀와 그 결과를 국민에게 알리고 개선방안을 제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지적했다.

10월 중순에 접어들면서 해가 짧아졌다. 11비행단 활주로는 오후 5시가 조금 넘어서자 해가 뉘엿뉘엿 기울기 시작했다. 공군장교들도 평생 한 번 해보기 힘들다는 전투기 활주로 주행을 마친 의원들이 의기양양하게 기념사진을 찍은 뒤 전투기에서 내려왔다. 그중 한 의원에게 “기분이 어떠냐”고 소감을 물었다. 의원의 답이 가관이다.

“온몸이 뒤틀리는 듯한 기분이랄까. 정말 몰아지경에 빠졌다가 나온 것 같아요.”



주간동아 2008.11.04 659호 (p44~45)

엄상현 기자 gangpe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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