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57

2008.10.21

다시 ‘공간’ 열고 미술을 말하다

1972~1991 활동 공간화랑 재개관 … 박기원 씨 ‘마찰’展 시작으로 본격 가동

  • 김민경 편집위원 holden@donga.com

    입력2008-10-15 14: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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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시 ‘공간’ 열고 미술을 말하다

    ‘마찰(Friction)’(위). 공간화랑이 재개관 프로젝트의 첫 번째 전시로 기획했다. 전시장 바닥에 철수세미를 설치한 작업이다. 신관에 해당하는 유리 큐브(아래). 공간의 내부와 외부를 연장한 이 건축물은 유리로 외관을 만든 초고층 건물이 흔한 지금도 독특한 아우라를 발산한다.

    서울 종로구 계동 현대 사옥 옆에 자리한 공간 사옥 스페이스(SPACE)처럼 사람들에게 건축에 대한 소박한 로망을 자극하는 건물이 또 있을까. 1971년 짓기 시작한 검은 벽돌 건물과 유리로 안과 밖의 구분을 없앤 90년대 ‘유리 큐브’가 조우하고, 가운데 마당의 한옥까지 끌어안으며 생명체처럼 자라온 공간 사옥은 말할 나위 없이 한국의 근대건축사 그 자체다(두 건물 사이 한옥은 원래 현대 소유로 고 정주영 명예회장이 좋아하던 것을 회장이 고인이 된 뒤 공간에 팔았다고 한다).

    그러나 굳이 건축사를 알지 않아도, 아무리 건축에 무심한 사람이라도 콘크리트 빌딩들 사이에서 문득 담쟁이덩굴이 휘덮은 벽돌집이며, 빛나는 유리집인 공간 사옥을 발견한 사람이라면 누군들 ‘저 안에 들어가보고 싶다’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그런 의미다.

    김수근·장세양 두 천재가 지은 사옥

    한국 현대건축 1세대 거장 중 한 사람인 김수근(1931~1986)이 벽돌로 본관을 짓고, 그의 제자 장세양(1947~1996)이 신관인 유리집을 지음으로써, 두 천재가 세대를 이어 지은 공간 사옥은 70년대와 80년대 한국의 대안문화를 살아 있게 한 공간이기도 했다.

    관제가 곧 주류 문화가 되어 모든 전시와 공연 공간을 차지하던 시절, 공간 사옥 안 공간화랑과 공간극장은 유명하지 않은 작가와 비주류가 대중과 만날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었다. 특히 김수근의 실험적인 건축 철학처럼 이곳에는 예술성과 실험성이 강한 작가들이 모였고, 김덕수의 사물놀이, 공옥진 황병기 홍신자 등 ‘아방가르드’한 예술인들이 공연을 통해 대중적 인기를 얻었다. 그렇게 80년대 초까지 척박한 시기에 공간 사옥은 상대적으로 ‘전성기’를 누렸다.



    1991년 공간 사옥은 여전히 공간 그룹의 사옥인 채 공간화랑과 공간극장은 상설적인 활동을 접었다. 미술관과 화랑, 대안공간들이 생겨났고, 첨단시설을 갖춘 공연장들이 잇따라 들어섰기 때문이다. 그러다 올해 10월2일 공간화랑은 그 작은 문을 다시 열었다.

    “80년대 초까지 공간은 정말 굉장했죠. 과거의 영화를 되살려보자는 생각도 사람들의 가슴속에 왜 없었겠습니까. 시간문제였죠. 척박한 시절 예술의 인큐베이터였던 것처럼, 할 일을 할 때가 있을 거다 생각했었죠. 지금이 그때라고 판단해서 지난해 재개관 준비를 시작했습니다.” (박성태, 공간그룹 상무, 월간 스페이스 편집장)

    재개관 시점을 ‘지금’으로 결정한 건 투기자본까지 끌어들이는 미술계의 급속한 ‘상업화’였다. 재개관 프로젝트의 목표를 ‘담론의 구축’으로 설정한 공간화랑의 고원석 큐레이터도 “작가들의 발언은 많지만, 새로운 것을 창조해낼 만한 생산적 담론은 드물다. 이는 작가의 위기이자 정신의 위기”라고 말한다.

    다시 ‘공간’ 열고 미술을 말하다

    현대 사옥 옆에 자리한 공간 사옥. 김수근 장세양 두 거장이 조우한 건축 걸작이자 척박한 시기 한국 문화의 인큐베이터 구실을 했다(위). 건축 거장들은 남의 소유였던 한옥을 결코 무시하지 않고 보호하듯 존중하듯 건축물을 지었다. 지금은 공간 사옥의 일부가 됐다(아래).

    “90년대 초 포스트모던 담론 논쟁이 벌어졌던 시기엔 어쨌든 작가적 담론이 활발하게 생산됐다. 그 담론에 뿌리내리고 오늘날까지 의미 있는 작업을 하고 있는 작가들의 전시를 기획하고자 한다. 물론 비영리로 운영되는, 대안공간의 대안공간이 될 것이다.”(고원석, 공간화랑 큐레이터)

    90년대 초 ‘젊은 그들’이었던 작가들은 지금 40대 중후반이다. 공간화랑이 ‘중견’을 위한 공간이 되는 건 아닐까. 그는 “지금 30대 신진작가들은 미술시장에서 지나칠 정도로 잘 팔린다. 그 말은 어쩔 수 없이 자본에 종속된다는 얘기다. 미술은 이런 환경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고 설명한다.

    공간 인식 문제를 소재로 작업하는 작가

    공간화랑의 재개관전이 처음 선정한 작가는 박기원 씨다. 공간화랑의 재개관에 이보다 더 좋은 작가도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다. 박기원 씨는 우리가 늘 속해 있을 수밖에 없는 ‘어딘가’에 대한 인식의 문제를 소재로 작업한다. 그래서 전시장이라는 공간을 그대로 두고, 그곳을 덮거나 칠하거나 바닥에 둘 뿐이다. 전시장에서 그의 작품을 찾기 어려우므로 관객들은 찬찬히 공간을 들여다보면서 비로소 거기에 공간이 있었음을 발견하는데, 이것이 어쩐지 경이롭고도 소름 돋는 경험이 되는 것이다.

    박기원 씨는 공간화랑 바닥에 ‘마찰’(Fric-tion, 11월16일까지)이란 제목으로 철수세미를 깔았다. 관객은 맨발로 작품에 맞닿는 경험을 통해 날카로운 철조각들이 매우 부드러우며, 어떤 얼룩을 제거하리란 기대를 갖거나 혹은 제거해야 한다고 느낀다.

    ‘마찰’은 가을에 열리는 국제적인 대가들과 화려한 신진작가들을 제치고 반드시 봐야 할 전시다. 또한 거대한 도시 가운데 개미집처럼 벽도 층수도 없이 지어진 김수근과 장세양의 공간 안에서 길을 잃는 경험도 꼭 해보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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