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57

2008.10.21

나, 힘든데 같이 있어 줄래? 누구에게든 전화 거세요

자살 충동자에게 보내는 편지 “TV 보지 말고 술 마시지 말아야”

  • 조용범 미국 임상심리학자·생명인권운동본부 전 공동대표 dryongcho@yahoo.com

    입력2008-10-15 11:05: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나, 힘든데 같이 있어 줄래? 누구에게든 전화 거세요
    참가슴 아픈 일입니다. 그토록 애정을 갖고 배우 최진실 씨의 삶을 TV와 스크린에서 봐왔는데 그렇게 허망한 죽음을 택하다니, 상실감이 무척 클 것 같습니다. 그러나 저는 고인이 된 그가 혹 이 편지글을 읽는 당신에게 죽음까지 생각하게 만들었다면 심리학자로서 꼭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저에겐 사실 고인보다는 지금 죽음을 생각하는 당신이 더 소중합니다.

    ‘베르테르 효과’ 생각보다 단순한 과정

    한국에선 지난 수년간 연예인 자살사건이 이어졌습니다. 한 연예인의 자살은 대대적으로 보도됐고, 그 원인에 대해 언론과 인터넷은 무수한 억측 과 가설을 쏟아냈습니다. 언론매체는 되도록 한 가지 결정적인 원인을 찾으려고 노력했으며 몇 년 전부터 연예인들의 우울증, 그리고 요즘엔 누리꾼(네티즌)의 악플(악성댓글)이 그 원인으로 거론되고 있습니다. 고(故) 안재환 씨의 경우엔 사채가 자살의 주요 원인으로 밝혀졌죠. 저 역시 그분들의 죽음에 결정적 원인이 있으리라는 점을 부정하진 않습니다.

    그러나 언론에서 말하는 원인들은 대부분 촉발요인에 해당합니다. 즉 자살하는 사람은 수많은 자살 위험요인을 지니는데, 이 요인들이 중첩되고 가중돼 최종적으로 충동적인 자살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언론매체나 소문을 통한 자살사건의 전파가 타인의 자살행동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친다는 데 있습니다. 왜 유명 연예인의 자살이 그와 상관없는 타인의 자살행동을 유발하는 것일까요? ‘베르테르 효과’로 알려진 이 같은 현상은 생각보다 매우 단순한 과정을 거칩니다. 유명인이 자살하면 그를 좋아했거나 선망한 경우, 특히 같은 성별과 나이대 사람들에겐 자신과 유명인을 동일시하는 경향이 나타납니다. 유명인의 자살이 타인의 연쇄 자살로 이어지는 현상은 바로 이러한 모방의 부정적 측면 때문에 나타납니다.



    연예인의 경우 근거가 있거나 없는 여러 뜬소문(gossip)이 그들을 궁지로 몰고 가기 때문에 자살을 선택하곤 합니다. 사생활, 돈, 성형수술 등이 그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이 정말 무엇 때문에 자살했는지에 대한 사실은 고인의 명예를 고려해 확인되지 않고 있습니다.

    최진실 씨의 가족은 고인의 죽음이 미화하거나 폄훼되길 바라지 않을 것입니다. 모방 자살이 발생하는 것을 고인이 바랐을 리도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유명인의 죽음으로 자살에 대한 자극이 발생했을 경우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에 대해 말씀드리려 합니다.

    이 글을 쓰는 동안 제 눈에서는 눈물이 배어나옵니다. 어떻게 해야 과학적으로 분명한 사실을 알려드리면서 죽음에 이르지 않게 할 수 있을까요? 어떻게 해야 이 순간의 고통스러운 감정을 견디며 더 현명한 생각을 할 수 있도록 도울 수 있을까요? 분명한 사실은 이 글이 제 가슴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것이라는 점, 그리고 과학적 근거를 담은 권고사항이란 점입니다.

    여러분은 소중한 생명의 씨앗

    첫째 TV를 끄십시오. 그리고 연예인 자살을 다루는 언론사에 전화를 걸어 어떠한 유형이라도 연예인 자살 관련 보도를 하지 말라고 요구하십시오. 언론이 고인과 자살자들에 대한 내용을 거론하는 것 자체가 여러분의 생명권을 훼손하는 행위라는 사실을 아셔야 합니다. 유명인의 자살은 그와 자신을 동일시하고 그 인물을 좋아한 사람에게는 극단적인 순간에 자살을 선택할 수도 있다는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그 피해자는 여러분과 가족 그리고 친구가 될 수도 있습니다. 자살은 마치 페스트처럼 행동적 메커니즘을 통해 다른 사람에게 전염됩니다. 언론매체가 고 최진실 씨에 대한 방송을 끊임없이 내보내는 것은 살인행위라고 볼 수밖에 없을 만큼 심각한 일입니다. 전화를 하십시오. 여러분과 자녀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수화기를 드십시오.

    나, 힘든데 같이 있어 줄래? 누구에게든 전화 거세요
    둘째 유명인이 자살했을 때 그가 자살한 이유를 동정하지 않도록 철저히 조사하게 하십시오. 고인을 동정하기보다 문제가 있어서 자살했다고 냉정히 생각하는 편이 바람직합니다. 안타까운 감정이 들면 차라리 잠시 화를 내는 쪽을 선택하십시오. 왜 그 길을 택했는지, 그리고 그를 아끼는 사람들을 저버린 채 왜 떳떳하게 가능한 모든 방법을 사용하지 않았는지를 따져보고, 혹시 말할 수 없는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닌지 철저히 조사하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셋째 술을 마시지 마십시오. 기분이 나쁘고 상실감이 들며 죽음을 생각하게 될 때 이상하게도 멜랑콜리한 기분을 즐기게 됩니다. 당연히 지인들과 어울려 술자리를 갖게 되죠. 술은 결코 우울한 마음을 달래주지 못합니다. 되레 더 우울하게 만들고, 자신이 무슨 행동을 했는지 모르는 무통제감을 느끼게 합니다. 잠시의 해방감 뒤에 더 큰 외로움을 겪게 되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무통제감은 충동적 행동으로 이어지고 결국 자기파괴적 행동을 부릅니다. 술을 마시고 싶다면 즉시 바깥으로 나가 땀이 날 만큼 즐거운 활동을 하십시오. 운동도 좋고, 산책도 좋고, 영화 관람도 좋습니다. 충동적이지 않은 안전하고 즐거운 섹스(성적 활동)도 권하고 싶습니다.

    넷째 죽고 싶은 생각이 들 때면 지인에게 연락해 만나십시오. 외롭다고 느껴지면 가족, 친구, 친지, 종교인, 전문가 등 누구에게라도 전화를 걸어 분명하게 말하십시오. “내가 좀 힘든데, 같이 있어줄래?” 이 물음에 긍정적 대답을 들을 때까지 전화를 거는 겁니다. 혹시 함께 있어줄 사람이 아무도 없다면… 저에게라도 전화하십시오. 제 몸은 하나지만, 저와 같은 생각을 가진 많은 분들이 여러분과 함께 있어주려고 할 것입니다.

    다섯째 혹시 비슷한 괴로움을 겪고 있는 주변 사람에게 함께 있어달라는 전화가 걸려온다면 최소한 24시간 동안은 그와 함께 있어주십시오. 그분에게서 죽고 싶다는 생각이 사라질 때까지 말입니다. 죽음을 전염시키는 바이러스에 대항해 당신이 갖고 있는 생명을 살리는 항(抗)바이러스제를 주사해주십시오. 힘들고 어둡게 느껴지더라도 그를 살릴 수 있는 사람은 바로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밖에 없습니다.

    잊지 마십시오. 당신의 안위를 걱정하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당신은 생명의 씨앗입니다. 사랑합니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