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31

2008.04.15

잘나갈 때 노년을 준비하라

  • 공병호경영연구소 소장 www.gong.co.kr

    입력2008-04-11 10:5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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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잘나갈 때 노년을 준비하라

    <b>찰스 핸디의 포트폴리오 인생</b><br>찰스 핸디 지음/ 강혜정 옮김/ 에이지21 펴냄/ 360쪽/ 1만5000원

    “여러분이 좋아하는 작가는 누군가요?” 내가 같은 질문을 받는다면, 아마도 첫손 꼽을 작가가 찰스 핸디다. 2001년 ‘코끼리와 벼룩’이란 책이 나온 이래로 제법 긴 시간이 흘렀다. 올해 75세라는 저자의 나이 때문에 ‘이제 더는 책이 나올 수 없는 모양이다’라는 생각이 들었을 때 그의 신간이 선을 보였다. 바로 ‘찰스 핸디의 포트폴리오 인생’이다.

    이번 책은 2001년의 전작과 겹치는 부분이 꽤 된다. 그럼에도 잔잔한 에세이 스타일인 그의 책은 독자들로 하여금 직업, 삶, 결혼, 미래, 죽음 등 다양한 주제에 대해 생각할 계기를 제공할 것이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노년의 지혜’라는 단어를 떠올렸다. 직접 살아보지 않고는 좀처럼 깨칠 수 없는 삶의 진실, 그리고 시행착오를 책을 읽으며 느끼고 배울 수 있었다. 모두 18개의 주제로 정리된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착실히 읽을 필요는 없다. 그냥 손이 가는 대목부터 읽어가다 보면 핸디와 함께 인생이라는 여행길에 올라 있는 듯한 착각에 빠져들 것이다.

    2003년 7월25일, 핸디는 당시 그가 소유하고 있던 이탈리아 토스카나의 집에서 일찍 잠을 깼다. 이 순간 그는 ‘내가 일흔 살이 되었구나’라는 사실을 불현듯 깨달았다고 한다. 독자들 가운데 이 정도의 나이에 이른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 연배의 사람들은 과연 어떤 생각을 하고 무엇을 느끼게 될까? 저자는 부모를 비롯해 주변 사람들이 하나 둘 무대 뒤편으로 사라졌던 것처럼 “이제는 죽음이 나의 앞길에서 중요한 실체가 되었다”고 고백한다. 그렇게 죽음과 대면해야만 하는 나이가 되면 “잃을 것이 많지 않으므로 자신이 살아온 삶에 대해 좀더 솔직해질 수 있다”고 그는 말한다.



    독자들은 핸디의 조언, 즉 ‘당신이 평생 무슨 일을 해왔는가보다 어떤 사람으로 살아왔느냐가 더 중요하다’라는 부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저자 역시 50대까지 남에게 더 인상적인 이력서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지만 “이제 와서 생각해보니 남들에게 인상 깊은 이력서를 만들고자 시간을 보내는 일은 결국에는 시간낭비일 뿐임을 깨달았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저자가 게으르게 살아가라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핸디는 조직이 거의 전부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세월이 가면 조직은 사람을 기억해주지 않는다는 점을 지적한다. “조직이란 기억력이 좋지 못해서 과거 익숙했던 얼굴과 이름도 금세 잊어버린다. 한때는 내 말에 따라 움직이고 내 이름이 누구보다 중요하던 곳이라도 시간이 지난 뒤 가보면 아무 의미가 없다.” 책을 덮고 난 다음에도 “세상의 영화는 구름처럼 흩어진다”는 한 문장이 긴 여운을 남긴다.

    그렇다면 저자의 연배가 되어 되돌아본 인생에서 아쉬움이 있다면 무엇일까. 그는 지나치게 이기적으로 살았던 젊은 날에 대한 후회를 이렇게 토로한다. “나는 젊은 시절에는 내 미래만을 걱정한 나머지 다른 사람을 챙기지 못했다.”

    그는 독자들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로 일찍이 아리스토텔레스가 설파했던 ‘에우다이모니아’, 즉 ‘자신이 가장 잘하는 분야에서 최선을 다하라’는 명언을 선택한다.

    “우리는 모든 일을 잘할 수는 없다.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이 되려 하지 마라. 유전자는 어느 정도 우리를 규정한다. 좀더 아름답게, 좀더 똑똑하게, 좀더 운동을 잘하게 태어났으면 하고 바랄 수야 있다. 하지만 바람은 어디까지나 바람일 뿐이다. 언젠가 이발사에게 ‘점점 머리가 벗겨지니 어쩌면 좋겠냐’고 물었다. 그러자 이발사는 이렇게 조언해주었다. ‘부모님을 바꿨어야지요.’ 이 말이 유일한 대답이 되지 않을까 싶다.”

    책의 끝 부분에 이르러 저자는 언젠가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만난 럭비팀 감독 위건 씨와의 대화를 소개하고 있다. 당시 위건 팀은 우승을 거두고 승승장구하던 상황이었는데, ‘가장 어려운 점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감독은 의외의 답을 한다. “혈기 넘치는 선수들에게 뛸 날이 서른 이전에 끝난다는 사실을 납득시키고, 다른 직업을 위한 재훈련을 받도록 유도하는 일입니다.”

    우리는 한창 잘나가고 있을 때 황금기는 곧 끝나버리고 인생의 나머지 부분은 어쩌면 내리막길을 걷는 시들한 상태로 보내버릴 수도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이미 은퇴했거나 은퇴를 앞둔 시점에 이르러서 자신이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을 찾아내기란 무척 어렵다. 전성기일 때 이 시기가 그렇게 길지 않다는 사실, 그리고 살아가야 할 날은 아직 많이 남았다는 현실을 인식하고 대비책을 마련하기 위해 노력한다면, 시행착오를 줄이고 인생의 만족도를 높일 수 있을 것이다.

    또 우리는 노년이 되었을 때 젊은 날과 다른 활동 포트폴리오를 새롭게 짤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이 활동에는 돈을 버는 활동이 반드시 포함돼야 한다. 돈은 실질적인 유익함을 주는 동시에 자신이 여전히 가치 있는 사람이라는 자신감을 심어주기 때문이다. 자신의 활동 포트폴리오를 계속 조정해가야 한다는 점에서 우리 인생은 ‘포트폴리오 인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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