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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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원 보신주의 탓 ‘정보공개 청구’ 있으나마나

국회의원 윤리특위 제소현황 공개 결정에도 막무가내 “자료 못 준다”

  • 한상진 기자 greenfish@donga.com

    입력2008-04-07 14:4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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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무원 보신주의 탓 ‘정보공개 청구’ 있으나마나
    ‘공공기관의 정보공개에 관한 법률(이하 정보공개법)은 공공기관이 보유, 관리하는 정보에 대한 국민의 공개청구 및 공공기관의 공개의무에 관해 필요한 사항을 정함으로써 국민의 알 권리를 보장하고 국정에 대한 국민의 참여와 국정운영의 투명성을 확보함을 목적으로 한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정보공개 청구권’을 보장한 정보공개법의 제1장 총칙이다. 1998년 시행된 이 법은 또한 “공공기관은 국민이 알아야 할 필요가 있는 정보를 국민에게 공개하도록 적극적으로 노력하여야 한다”는 점도 분명히 하고 있다.

    그러나 현실은 녹록지 않다. 국민이 정부로부터 필요한 정보를 공개받기는 절대 쉬운 일이 아니다.

    3월17일 기자는 공공기관들이 정보공개법을 얼마나 잘 지키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국회를 상대로 정보공개 청구를 신청했다. 청구한 정보공개 자료는 ‘17대 국회의원들의 윤리특별위원회 제소현황과 처분결과’였다. 정보공개를 담당하는 국회 관계자는 “국회의원들의 의정활동과 관련된 정보는 국익을 해치는 것이 아닌 이상 원칙적으로 정보공개 대상으로 분류한다”는 견해를 밝혔다.

    그러나 국회 차원의 정보공개 결정에도 기자는 정보공개를 받지 못했다. 자료를 관리하는 국회윤리특별위원회(이하 윤리위)가 이런저런 이유를 들어 정보공개 청구에 응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보공개 청구 거부의사를 밝히면서 윤리위가 내세운 표면적인 이유는 “국회의원들의 사생활을 침해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다음은 윤리위 관계자의 말이다.

    공무원 보신주의 탓 ‘정보공개 청구’ 있으나마나

    2006년 2월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성추행 의혹에 휩싸인 최연희 의원의 의원직 사퇴와 국회 윤리강화를 위한 국회법 개정 촉구 집회를 갖고 있다.

    비공개 사유 10일 이내 통보 규정도 안 지켜

    “국회의원들의 개인 신상에 관련된 것이어서 공개가 어렵다. (공개 내용이) 부적절한 용도로 사용될 경우 국회의원들에게 피해를 줄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 공개불가 결정을 내렸다. 이미 국회공보에 나온 내용이니 꼭 필요하면 국회공보를 확인하라.”

    정보공개법에 따르면 정보공개가 되지 않는 경우는 △다른 법률 또는 법률이 위임한 명령에 의하여 비밀 또는 비공개 사항으로 규정된 정보 △ 국가 안전보장에 관한 사항 △ 국민의 생명, 신체, 재산 보호에 지장을 줄 수 있는 사항 △진행 중인 재판에 관련된 사항 △ 경영상의 비밀에 관한 정보 △ 부동산 투기 매점매석을 일으킬 정보 등이다. 게다가 정보공개법은 공개제한 대상인 경우에도 그 대상은 극히 제한돼야 한다는 원칙도 포함하고 있다. 국회의원 등 공직자의 개인정보에 대해서도 이러한 원칙은 지켜져야 한다는 것이 정보공개법의 제정 취지다.

    그러나 기자가 청구한 국회의원 윤리위 제소현황 자료는 위에 언급된 제한사유 어디에도 포함되지 않는다. 게다가 사인(私人)이 아닌 공인(公人)인 국회의원의 개인정보는 공개되도록 법으로 규정돼 있다. 하물며 의정활동 과정에서 발생한 정보의 공개는 말할 것도 없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윤리위는 기자의 정보공개 청구과정에서 정보공개법의 절차도 철저히 무시했다. 정보공개법 11조에 따르면 해당 기관은 정보공개 청구가 있은 후 10일 이내에 정보공개 여부에 대한 입장을 청구인에게 통보해야 한다. 하지만 윤리위는 기자의 정보공개 청구에 대해 청구일 이후 10일이 지나도록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이에 대해 윤리위는 “정보공개를 청구한 날로부터 20일 이내에 공공기관이 공개 여부를 결정하지 아니한 때에는 비공개의 결정이 있는 것으로 본다”고 규정한 정보공개법 11조 5항을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은’ 근거로 제시했다. “우리는 자료를 공개하지 않기로 이미 결정했으니 20일이 지난 이후 청구인의 뜻에 따라 사후조치를 취하라”는 것이다. “정보공개 청구가 거절된 사유를 밝혀야 사후조치를 취할 것 아닌가”라는 질문에도 윤리위 측은 “때가 되면 보내주겠다”거나 “통보가 없으면 자동적으로 거부된 것으로 간주되니 20일 후에 알아서 하라”는 식의 무책임한 답변으로 일관했다.

    윤리위가 이렇듯 법을 어기며 정보공개에 응하지 않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먼저 정보공개 청구일로부터 10일 이내에 정보공개 여부를 결정하지 않아도 이를 강제할 수 있는 규정이 마련돼 있지 않다는 점을 정부기관들이 악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국회 정보공개 담당자의 설명이다.

    “정보공개를 거부하는 해당 부처에서 빈번하게 발생하는 현상이다. 10일 이내에 통보를 하지 않아도 처벌규정이 없기 때문에 강제성을 갖지 못한다. (공무원들이) 시간(20일)만 벌면 된다는 생각을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공무원이기 때문에 감수해야 하는 말 못할 속사정도 정보공개를 막는 이유가 된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실제 기자는 취재과정에서 윤리위 관계자로부터 어렵게 ‘그들만의’ 속사정을 들을 수 있었다.

    “윤리위 제소현황이 정보공개 청구 대상인 것은 맞다. 하지만 국회에서 일하는 공무원으로서는 여러 가지 사정을 고려할 수밖에 없다. 자칫 국회의원들에게 불이익으로 작용할 경우 그들에게서 항의를 받을 수도 있다. 우리 처지를 이해해달라.”

    “의원들에게 불이익 작용 시 항의받을 수 있다” 군색한 변명

    정보공개 청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았을 경우 국민이 취할 수 있는 방법은 세 가지다. 먼저 비공개 결정이 내려진 지 30일 이내에 이의신청을 할 수 있다. 이의신청이 들어올 경우 공공기관은 7일 이내에 청구인에게 이의신청에 대한 답을 하도록 하고 있다. 행정심판과 행정소송도 한 방법이다.

    그러나 일반 국민이 이러한 방법을 동원하면서까지 정보공개에 나서기는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최근 KBS 보도에 따르면, 정보공개 청구와 관련한 행정소송은 평균 1년3개월이 걸렸고 소송비용도 경우에 따라서는 건당 1000만원에 가까운 것으로 나타났다. 일반 국민이 막대한 시간과 비용을 들여 정부기관의 정보공개 거부에 대응하기 어려운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사실상 똑같은 내용의 정보공개 소송이 여러 차례 반복되고 있음에도 절반이 넘는 행정소송이 1심에서 끝나지 않고 고등법원이나 대법원까지 이어지는 것도 문제다. 이는 법원 판례조차도 행정기관에서 무시되고 있다는 방증이라 할 수 있다.

    정부는 최근에도 국민이 공공기관에 제출한 정보공개 청구의 91%가 받아들여졌다고 자랑한 바 있다. 그러나 기자의 경험에 따르면 이는 그저 수치상의 계산일 뿐이다. 정작 국민이 알고자 하는 정보는 국민 곁에 있지 않다. 공무원들의 ‘제 식구 감싸기’식 공개 거부가 계속되는 대한민국에서 ‘정보공개 청구권’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다시 한 번 묻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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