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86학번이다. 그해 3월은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학생회관은 도열한 전경들에게 봉쇄돼 빠져나갈 수 없었다. 다들 무서워하면서 창문 밖을 보는데 누군가 ‘사랑도 명예도…’를 부르기 시작했다. 처음엔 작은 목소리로 따라부르더니 점차 소리가 커졌다. 그러자 1층 식당 유리창이 깨지며 사과탄이 들어왔고 순식간에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그날부터 2년 동안 제대로 강의실에 앉아 있었던 기억이 없다.
지금 나름대로 정신과 의사에 교수가 되어 글을 쓰고 있으니 놀라울 따름이다. 그 후 몇 년이 지나 90년대 학번을 만났다. 대략 92학번을 기점으로 세상은 극적으로 바뀌었다. 그들은 우리랑 다른 종족 같았다. 사회를 중심으로 보지 않고 ‘나’를 중심으로 보고, 팝송이나 민중가요보다 대중가요를 더 좋아했다.
덜 완고하고 치열한 대신, 융통성 있고 자기 먹고살 것은 놓치지 않는 건전한 이기심이 있었다. 그렇다고 사회에 대한 관심이 전혀 없지는 않은 세칭 ‘전교조 학생 1세대’인지라 치열함과 개인주의가 공존하는 묘한 인간형이었다.
나 역시 중간에 걸친 세대로 1990년대 초반을 20대 후반부로 장식했다. 그런 와중에 이제 30대 중반을 넘어 40대로 들어서는 90년대 학번을 위한 특집이 ‘주간동아’ 630호에 나온 것은 반가웠다.
삐삐라고 불리던 무선호출기, 하이텔과 천리안을 중심으로 한 PC통신, “야, 타!”와 오렌지족, ‘씨네21’과 함께 영화광을 위한 자양분이 됐던 ‘키노’, 마르크시즘에서 전향한 좌파 문화운동가들의 ‘문화평론가’라는 정체 모를 직업을 만들어내게 한 ‘우체국의 현대화’ 포스트모더니즘, 그리고 무라카미 하루키와 서태지라는 거인.
이렇게 12개 아이콘을 촘촘히 이야기했다. 각각의 글을 기자 한두 명이 쓰지 않고 나름 의미 있는 글쟁이들에게 맡긴 것은 좋은 방법이었다. 하나하나 읽으면서 “맞아, 그랬지” 하고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기사는 그저 복고적인 감상을 넘어섰다. 그때는 몰랐던 내 눈에 지금까지 관통하는 거대한 문화코드 두 개가 들어왔다. ‘개인주의’와 ‘문화주의’다. 이제 우리보다 나를 중심으로, 그리고 먹고사는 것보다 삶을 즐기는 게 더 중요하다고 여기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트렌드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아마도 이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당시만 해도 참으로 신기하고 당돌한 문제제기였다. 덧붙여 90년대 초반 학번의 현재 모습을 인터뷰로, 사회경제학자와 소설가의 글로 입체적으로 조망한 것도 의미가 있었다.
12개 아이콘 외에 하나만 더 제안하자면 “그저 농구가 좋아서 할 뿐”이라던 슬램덩크의 주인공 ‘강백호’를 빼놓은 것이 섭섭하다. 이 모든 키워드를 관통하는 적절한 아이콘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현 건국대 의대 교수 신경정신과
지금 나름대로 정신과 의사에 교수가 되어 글을 쓰고 있으니 놀라울 따름이다. 그 후 몇 년이 지나 90년대 학번을 만났다. 대략 92학번을 기점으로 세상은 극적으로 바뀌었다. 그들은 우리랑 다른 종족 같았다. 사회를 중심으로 보지 않고 ‘나’를 중심으로 보고, 팝송이나 민중가요보다 대중가요를 더 좋아했다.
덜 완고하고 치열한 대신, 융통성 있고 자기 먹고살 것은 놓치지 않는 건전한 이기심이 있었다. 그렇다고 사회에 대한 관심이 전혀 없지는 않은 세칭 ‘전교조 학생 1세대’인지라 치열함과 개인주의가 공존하는 묘한 인간형이었다.
나 역시 중간에 걸친 세대로 1990년대 초반을 20대 후반부로 장식했다. 그런 와중에 이제 30대 중반을 넘어 40대로 들어서는 90년대 학번을 위한 특집이 ‘주간동아’ 630호에 나온 것은 반가웠다.
삐삐라고 불리던 무선호출기, 하이텔과 천리안을 중심으로 한 PC통신, “야, 타!”와 오렌지족, ‘씨네21’과 함께 영화광을 위한 자양분이 됐던 ‘키노’, 마르크시즘에서 전향한 좌파 문화운동가들의 ‘문화평론가’라는 정체 모를 직업을 만들어내게 한 ‘우체국의 현대화’ 포스트모더니즘, 그리고 무라카미 하루키와 서태지라는 거인.
이렇게 12개 아이콘을 촘촘히 이야기했다. 각각의 글을 기자 한두 명이 쓰지 않고 나름 의미 있는 글쟁이들에게 맡긴 것은 좋은 방법이었다. 하나하나 읽으면서 “맞아, 그랬지” 하고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기사는 그저 복고적인 감상을 넘어섰다. 그때는 몰랐던 내 눈에 지금까지 관통하는 거대한 문화코드 두 개가 들어왔다. ‘개인주의’와 ‘문화주의’다. 이제 우리보다 나를 중심으로, 그리고 먹고사는 것보다 삶을 즐기는 게 더 중요하다고 여기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트렌드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아마도 이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당시만 해도 참으로 신기하고 당돌한 문제제기였다. 덧붙여 90년대 초반 학번의 현재 모습을 인터뷰로, 사회경제학자와 소설가의 글로 입체적으로 조망한 것도 의미가 있었다.
12개 아이콘 외에 하나만 더 제안하자면 “그저 농구가 좋아서 할 뿐”이라던 슬램덩크의 주인공 ‘강백호’를 빼놓은 것이 섭섭하다. 이 모든 키워드를 관통하는 적절한 아이콘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현 건국대 의대 교수 신경정신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