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세기 프랑스 소설 ‘가르강튀아와 팡타그뤼엘’에는 “미녀에게 사모하는 정이 있지 않다니 참으로 가엾다”는 대목이 나온다. 아름다움을 숭배하는 존재자로서 인간은 미남미녀와 사랑에 빠지지 않을 도리가 없다. 아름다움은 인간이 갖는 최고의 관심사다. 인간의 호기심과 욕망을 끊임없이 자극하는 미디어는 이 같은 아름다움을 어떻게 우대해왔을까. 몇 가지 사례를 통해 살펴본다. - 편집자 -
(세계일보 2008년 3월29일자 ‘중구를 내 품 안에 … 신은경 vs 나경원’)
18대 총선에서 가장 관심을 끄는 격전지 중 하나는 서울 중구다. 통합민주당 정범구, 한나라당 나경원, 자유선진당 신은경 후보가 도전장을 내밀었지만, 많은 미디어에서는 남성인 정범구 후보를 뺀 채 두 여성 후보의 ‘미모 대결’로 이 지역구를 다루고 있어 정 후보 측에서 불만의 목소리가 나올 만도 하다. 3월29일자 세계일보 기사 ‘중구를 내 품 안에 … 신은경 vs 나경원’은 각각 TV 앵커에서 최고경영자(CEO), 판사에서 당 대변인으로 승승장구한 두 여성 후보를 동행 취재하면서 이들을‘인기 연예인 뺨치는 두 미녀의 대결’ ‘빼어난 미모만큼이나 경력도 화려’ 등으로 묘사했다.
2_ 대통령보다 그녀가 아름답다
(시사월간지 ‘신동아’ 2008년 2월호 표지)
‘신동아’는 2008년 2월호에 퇴임을 앞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집권 5년을 평가하는 특별기획을 실었다. 정치, 경제, 행정, 외교·안보, 교육, 복지, 언론, 지방 등 각 분야 전문가들의 기고문을 77쪽에 걸쳐 게재하고 이 기획물을 표지 제목으로 올렸다. 그러나 정작 표지의 주인공 자리는 노 전 대통령이 아니라, 14쪽 분량의 인터뷰 기사가 실린 나경원 전 한나라당 대변인에게 돌아갔다.
3_ 섹시한 골퍼에겐 섹시한 사진을
(헤럴드 생생뉴스 2007년 6월14일자 ‘박지은, 섹시한 골퍼 8인에 선정’)
미디어로부터 ‘미녀 골퍼’라는 애칭을 선물 받은 프로골프 선수 박지은 씨가 역시 미디어(미국의 스포츠전문채널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로부터 ‘가장 섹시한 여성 골퍼(Sexiest Women Golfers)’라는 영예(?)를 얻었다. 이 소식을 보도한 미디어는 역시나 ‘섹시 콘셉트’로 그의 사진을 골라 게재했다.
4_ 그녀의 헤어스타일 따라잡기
(뉴시스 2007년 4월3일자 ‘박근혜 어떤 헤어스타일이 좋으세요?’)
한나라당 대통령후보 경선을 앞둔 지난해 봄, 한나라당의 유력 대선후보였던 박근혜 전 대표의 바뀐 헤어스타일이 세간의 관심거리였다. 그의 모친인 고(故) 육영수 여사와 같은 올림머리를 오래 고수하다 웨이브가 있는 단발머리로 바꾼 것이 계기가 됐다. 어떤 헤어스타일이 그에게 더 잘 어울리는지, 뉴시스의 기사는 독자들에게 묻고 있다.
5_ 사랑해요, 샤라포바
(동아일보 2004년 9월30일자 ‘서울의 한가위 더욱 밝힌 그대 … 브라보, 샤라포바’)
2004년 발표된 논문 ‘한국신문에 나타난 여성스포츠 사진보도의 이데올로기’(고은하 김한주)에 따르면, 한국 여성 운동선수를 보도하는 데 중심적인 이데올로기는 여전히 민족주의적이며, 여성 신체의 성적 대상화 경향은 외국 운동선수에 주로 나타난다고 한다. 그 대표적인 예가 ‘테니스 요정’ 마리아 샤라포바 아닐까. 2004년 가을 대회 출전을 위해 방한한 샤라포바의 ‘서울 나들이’를 전하는 동아일보 보도는 일간지로서 이례적으로 ‘화보 형식’을 취했다.
6_ 장관님의 봄 패션
(연합뉴스 2004년 3월31일자 ‘강 법무, 화사한 핑크색 봄 패션’)
참여정부 때 최초의 여성 법무부 장관으로 임명된 강금실 전 장관은 재임기간 내내 여성, 미모, 패션 그리고 ‘호호’로 묘사되는 특이한 웃음 등을 키워드로 미디어의 조명을 받았다. 핑크색 숄을 걸치고 정부중앙청사 브리핑룸으로 들어서는 모습도 카메라 플래시 세례를 받고 전 국민에게 전달됐음은 당연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