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8월 말 필자는 카자흐스탄 알마티를 방문했다. 한국기자협회 회장이던 필자는 그해 한국기자상 수상자 10여 명과 동행했는데, 마침 거기서 1923년 ‘아방가르’(선봉)를 제호로 출발한 ‘고려일보’ 창간 80주년 기념행사가 열려 그 자리에 참석했다. 1932년 평남 안주 출신으로 한글판 편집을 맡은 양원석 고려일보 주필을 만난 것 역시 필자에겐 귀한 인연이었다. 2006년 5월 74세 생일을 열흘 앞두고 고인이 된 그가 남긴 말이 아직도 귀에 쟁쟁하다.
“이민 3, 4세대 대부분이 고려어를 몰라 한글판 독자가 점점 줄어들어 걱정이다. 소비에트 시절에는 국가가 어느 정도 도와줘 작가들이 드물게나마 책을 낼 수 있었는데, 페레스트로이카 이후 시장경제체제로 넘어오면서 돈 없는 사람이 책을 펴내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그는 서울의 ‘시와 전설’이라는 작은 출판사에서 시집을 냈노라며 ‘카자흐 초원’이라는 시를 한국 기자들 앞에서 암송했다. “어머님 품마냥 한없이 넓은 초원/ 밤하늘 별나라 바라볼 때면 구수한 들쑥 냄새/ 달콤한 꿈까지 보게 됩니다/ 이역살이 괴로움도 잊게 됩니다.”
‘주간동아’ 846호의 ‘일제 징용 피해자 유골 찾기’ 기사에 양원석 주필이 지하에서 얼마나 행복할까 생각해봤다. 다음 문장이 특히 짠하게 울려온다. “남자 없이 농사짓고 사느라 죽을 뻔했어. 살라믄 안 해본 거 뭐 있간. (중략) 둘째는 태어난 지 열흘 만에 갔어(죽었어). 종배 아버지가 종배 세 살 때 사할린에 갔는데….”
우리에게 잊혀가는 ‘우리’가 너무 많다. 불과 한 세기 전 조국이 일제에 침탈당하며 겪은 일들, 60년 전 전쟁 참화 속에서 잃은 시간과 공간, 그리고 사람들…. 우리는 언제까지 그들을 망각의 세계에 처박아둘 텐가. 주간동아의 구실이 기대된다.
“이민 3, 4세대 대부분이 고려어를 몰라 한글판 독자가 점점 줄어들어 걱정이다. 소비에트 시절에는 국가가 어느 정도 도와줘 작가들이 드물게나마 책을 낼 수 있었는데, 페레스트로이카 이후 시장경제체제로 넘어오면서 돈 없는 사람이 책을 펴내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그는 서울의 ‘시와 전설’이라는 작은 출판사에서 시집을 냈노라며 ‘카자흐 초원’이라는 시를 한국 기자들 앞에서 암송했다. “어머님 품마냥 한없이 넓은 초원/ 밤하늘 별나라 바라볼 때면 구수한 들쑥 냄새/ 달콤한 꿈까지 보게 됩니다/ 이역살이 괴로움도 잊게 됩니다.”
‘주간동아’ 846호의 ‘일제 징용 피해자 유골 찾기’ 기사에 양원석 주필이 지하에서 얼마나 행복할까 생각해봤다. 다음 문장이 특히 짠하게 울려온다. “남자 없이 농사짓고 사느라 죽을 뻔했어. 살라믄 안 해본 거 뭐 있간. (중략) 둘째는 태어난 지 열흘 만에 갔어(죽었어). 종배 아버지가 종배 세 살 때 사할린에 갔는데….”
우리에게 잊혀가는 ‘우리’가 너무 많다. 불과 한 세기 전 조국이 일제에 침탈당하며 겪은 일들, 60년 전 전쟁 참화 속에서 잃은 시간과 공간, 그리고 사람들…. 우리는 언제까지 그들을 망각의 세계에 처박아둘 텐가. 주간동아의 구실이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