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16

2007.12.25

“제작 한파 충무로 살리자” 영화배우들 출연료 바겐세일

  • CBS 노컷뉴스 방송연예팀 기자

    입력2007-12-19 18: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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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작 한파 충무로 살리자” 영화배우들 출연료 바겐세일
    영화배우들에게 출연료는 양보할 수 없는 자존심이다. 하지만 영화계가 제작 한파를 맞은 올해 이 같은 출연료 지키기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배우들이 스스로 몸값을 낮춰가며 영화 제작에 뛰어들고 있는 것.

    최근엔 이범수가 ‘출연료 바겐세일’에 가세했다. 스스로 몸값을 낮춘 그는 “많은 배우가 함께하는 만큼 좋은 영화가 나오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코미디 영화 ‘그들이 온다’(강석범 감독)로 ‘조폭마누라 3’ 이후 1년여 만에 스크린으로 돌아오는 이범수는 신작에서 기존 출연료보다 매우 낮은 금액을 받았는데 바로 어려운 제작 환경을 감안한 결과라고 한다. 크랭크인을 앞둔 12월3일 저녁, 청담동 영화사 사무실에서 열린 성공기원 고사에서 이범수는 “줄어든 출연료보다 배우들이 합리적으로 영화를 만들어야 한다는 공감대를 형성했다는 점에 주목해달라”고 강조했다.

    이범수뿐 아니라 함께 출연한 손창민 김민선 등도 ‘출연료 바겐세일’에 동참했다. 영화사 한 관계자는 “출연료를 줄였는데도 배우들이 흥행에 따른 러닝개런티나 인센티브를 받지 않기로 했다”고 귀띔했다. 200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톱배우들은 “몇백만이 넘으면 이후 관객 수부터는 얼마씩”이라는 단서조항을 달아 제작자에게 부담을 준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런 관례도 포기한 것이다.

    충무로에 불어닥친 출연료 거품 빼기에 처음 나선 배우는 차승원이었다. 5월 개봉한 ‘아들’(장진 감독)에서 차승원은 자신의 평균 출연료보다 50% 줄인 금액을 받아들였다. 제작비 축소로 환경이 나빠지자 자신을 희생한 것이다. 차승원은 “CF에 많이 출연하고 있으니 걱정 없다”는 말로 영화계에 신선한 충격을 던지기도 했다. ‘박수 칠 때 떠나라’에서부터 시작된 장진 감독과의 인연도 작용했지만, 배우에게는 ‘자존심’으로 통하는 출연료를 직접 줄이는 과감한 선택으로 차승원은 당시 눈길을 끌었다.

    김혜수도 ‘통 큰’ 결정에 합류했다. 상영 중인 ‘열한 번째 엄마’(김진성 감독) 출연을 결정할 당시 김혜수는 제작 상황을 고려해 출연료를 크게 낮췄다. 신생 제작사 작품인 데다 제작비가 20억원에도 못 미치는 것을 알고 먼저 출연료 긴축을 감행했다. 김혜수는 “시나리오를 보자마자 시선을 빼앗겼다”며 적극적으로 출연을 원해 제작사도 놀랐다고 한다. 김혜수의 캐스팅 소식에 추가 투자까지 이뤄져 영화 제작비를 늘릴 수 있었다. 이 같은 김혜수의 의지에 황정민 류승룡도 가세했다. 한번 오르면 좀처럼 내려오기 어려운 게 배우 출연료지만, 김혜수는 최근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이에 대한 신념을 드러내 다시 한 번 주목받았다.



    “출연료는 영화의 규모와 성향에 맞게 받는 것이 합당해요. 저예산 영화인데 거액을 고집하는 일은 결국 배우 때문에 영화의 성향을 바꾸자는 부당한 요구입니다.”

    사실 배우들이 출연료를 줄이면서 작품성 높은 영화를 택하는 것은 투자 위축 등 영화계에 팽배한 어려운 제작 여건 탓이다. 최근 만난 배우들 대부분은 “좋은 시나리오가 쏟아지던 시기는 지났다”고 입을 모았다. 인기 배우들에게 몰려가던 그 많던 시나리오가 영화 제작 편수 축소로 현저히 줄었고, 이 때문에 작품 선택 폭도 좁아진 것이다. 오죽하면 올해 개봉한 스크린에서 얼굴을 볼 수 있는 배우는 행복한 사람이라는 이야기가 다 나오겠는가. 이런 상황에서 출연료를 깎는 건 배우들의 ‘자구책’인 셈이다.

    더불어 직접 영화 제작에 나서는 사례도 늘어, 이제는 배우 스스로 ‘맞춤형 영화’를 찾겠다는 움직임까지 일어나고 있다. 신작 ‘내 사랑’(이한 감독) 개봉을 앞둔 감우성은 내년쯤 직접 쓴 시나리오로 영화를 만들고 배우로도 참여할 계획이다. 배우가 시나리오와 제작, 출연까지 모든 과정을 맡는 것은 이례적이지만 감우성이 이를 택한 까닭은 분명하다. 요즘 자신에게 맞는 캐릭터와 원하는 시나리오를 찾기 힘들기 때문. 차라리 직접 쓰고 출연해 원하는 영화를 만들어보겠다는 적극적인 의사 표현인 셈이다.

    물론 이런 움직임을 따르는 배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가 불규칙하게 교차할 때 문제가 생길 수 있고, 몇몇 배우의 일시적인 노력에 그칠 수도 있다.

    그러나 달라진 영화 환경에 적응하려는 배우들의 움직임은 제작비 거품을 빼는 동시에 원하는 영화를 택해 마음껏 연기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또 제작자와 감독에게는 제작과 투자를 활성화하는 요인이 된다. 이 같은 쇄신 분위기가 충무로 제작 활성화에 큰 물꼬를 틀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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