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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ER STORY|차기 정부 10대 개혁과제

[노사관계] 그때그때 다른 물러터진 법과 원칙 떼쓰기 고질병 또다시 도질라

  • 강지남 기자 layra@donga.com

[노사관계] 그때그때 다른 물러터진 법과 원칙 떼쓰기 고질병 또다시 도질라

[노사관계] 그때그때 다른 물러터진 법과 원칙 떼쓰기 고질병 또다시 도질라

비정규직 차별 철폐를 요구하며 이랜드 노동자들이 삼보일배를 하고 있다.

차기 정부가 집권 직후 손대야 할 노사(勞使) 문제는 그야말로 ‘산적’해 있다. △복수노조 허용 △노조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 △산별교섭 법제화 △비정규직 갈등 해소 등이 당장 내년부터 손대야 할 과제다.

2006년 9월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이하 노사정위)는 복수노조제, 노조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 등을 2009년 말까지 유예하기로 결정했다. 참여정부 노사관계 로드맵의 핵심 쟁점이자 1997년부터 미뤄온 이 두 과제를 3년 유예한 것에 대해 참여정부는 각계로부터 “노사관계 개혁의 명분을 잃었다”는 비판을 받았다.

이에 내년부터 노사정위에서 이 사안들에 대한 합의를 시도해야 하지만, 노사 양측의 견해가 여전히 팽팽하게 맞서 있는 상태다. 사용자 측은 복수노조에 난색을 표하고, 노동계는 노조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에 반대하고 있다. 절충안으로는 ‘복수노조 허용하되 교섭창구 단일화를 법제화한다’ ‘노조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하되, 영세사업장 등 예외 둔다’ 등이 거론되고 있지만, 역시 뚜렷한 합의에는 이르지 못했다.

복수노조는 1997년까지 법으로 금지됐다. 미군정 반세기 만인 97년 노동관계법 재·개정 때 처음으로 복수노조 설립이 허용됐지만, 부칙의 유예기간 조항을 통해 2006년까지 시행이 미뤄졌다가 또다시 2009년으로 늦춰진 것이다. 그러나 미국 의회와 행정부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복수노조를 노동 관련 협상 기준으로 포함시키면서 더는 미룰 수 없는 과제가 됐다.

노조 전임자에 대한 임금지급 금지도 복수노조만큼이나 오랫동안 ‘과제’로만 남아 있었다. 벌써 약 10년간 세 차례나 시행이 연기됐다. 노조 전임자의 임금지급이 금지되면 일부 대기업을 제외하고는 노조가 뿌리째 흔들릴 수 있기 때문에 노동계는 반대 의견을 확실히 하고 있다.



이에 대한 대선 후보들의 입장은 엇갈린다. 대통합민주신당 정동영 후보는 노조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가 필요하다는 입장인 반면,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는 자신에 대한 지지를 선언한 한국노총에 “노조 전임자 임금지급 보장을 적극 검토하겠다”고 약속해 향후 누가 집권하느냐에 따라 이 문제에 대한 협상 내용이 달라질 것으로 예상된다.

한편 정부와 재계는 노동계의 ‘산별교섭 법제화’ 요구에 직면해 있다. 민주노총과 민주노동당이 산별교섭 법제화를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국내 최대 산별노조인 금속노조가 2008년에는 자동차 4사 등과 산별교섭을 반드시 성사시키겠다는 방침을 밝혀 내년에 노사 갈등이 고조될 우려가 높다.

산별교섭 법제화 두고 노사 갈등 고조 우려

올해 많은 논란을 빚은 비정규직법 및 비정규직 갈등 해소 문제도 차기 정부에서 중점적으로 다뤄야 할 과제다. 올 7월부터 시행된 비정규직법이 ‘2년 이상 근무자의 정규직화’를 2009년 7월부터 적용하도록 하고 있음에도, 기업들은 벌써부터 비정규직 채용을 꺼리고 있다. 이 법 시행에 앞서 비정규직 근로자들을 대거 해고한 이랜드그룹 사태는 지금까지 해결되지 않고 있다.

또한 비정규직법은 내년 7월부터 ‘100인 이상 300인 미만 중소기업’에 확대 적용된다. 이에 차기 정부는 비정규직법 적용과 관련한 중소기업 지원방안을 서둘러 확정해야 한다. 대선 후보들은 비정규직법을 폐지하거나 고치는 문제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리지만, 비정규직법 적용과 관련해 중소기업을 지원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모두 긍정적인 견해를 보이고 있다. 정 후보와 이 후보 둘 다 비정규직 근로자를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기업에 ‘사회보험, 법인세 경감’ 등의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것에 동의한다.

“노조 전임 임금지급 금지 허용이 최우선 과제”조준모 성균관대 교수·경제학

역대 정권의 노사관계 정책 순환을 보면, 선거 직전에는 득표를 의식해 노동계를 끌어안는 전략을 취하지만 반복되는 파업으로 정권 후반부에 이르러 노동계와 등을 돌리고, 노동계는 정부 측에 극렬한 비판을 퍼붓는 악순환이 반복돼왔다. 당선에 급급해 인기영합적 노사정책을 쏟아내는 현재 대선 후보들의 행보를 보면서 이러한 정책 악순환이 반복될까 우려된다.

필자는 차기 정부가 노사관계에 뚜렷한 철학을 가지고 정책을 일관되게 수행하지 않으면 역대 정권처럼 악순환의 수렁에 빠져 허우적거릴 수밖에 없다고 단언한다. 참여정부의 예를 들어보자. 집권 초기 권기홍 노동부 장관의 친(親)노조 성향 및 법과 원칙 훼손 → 김대환 장관의 반(反)노조 성향 및 법과 원칙 준수 → 총선을 의식한 이상수 장관의 인기영합 정책으로 정리된다. 이런 와중에 갈지자형 노사관계 정책이 수행됐다. 차기 정부는 참여정부의 노사관계 정책을 반면교사 삼아 한 치의 흔들림도 없이 일관된 정책 의지를 천명해야 한다.

첫째, 노동부 장관 자리에는 정권 창출에 기여했던 폴리페서나 비전문 정치인을 배정해서는 곤란하다. 역대 정권에서 노동부를 늘 후순위로 고려하다 결국 ‘정치적으로’ 장관을 배정함으로써 노사관계 정책이 시대 흐름에 역행하거나, 뚜렷한 패러다임 없이 관료들에 묻혀 정책이 표류한 적이 많았다. 일자리 창출이 중요하다고 강조하면서도 막상 노동부 장관 임명을 보면, 측근에게 떡 하나 주듯 인사를 결정해 ‘말로만 일자리 창출’이 아닌가라는 의심을 갖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

둘째, 집권 내내 노사관계 측면에서의 법과 원칙 사수(死守)가 중요하다. 참여정부를 포함해 역대 정부에서는 말로만 법과 원칙을 준수한 측면이 강했다. 노사관계에서 법과 원칙 준수는 노동부 장관의 힘만으로는 안 된다. 대통령이 강력한 의지를 갖고 있지 않다면 성공하기 어려운 과제다. 건강한 노사관계가 정립되려면 법과 원칙의 틀을 벗어나서는 곤란하다. 산업현장 분규는 법과 원칙의 테두리 안에서 대화, 타협이 이뤄져야 한다. 법과 원칙을 가지고 노는 것(game the rule)이 아니라, 노사관계 게임의 공정한 룰(the fair rule of the game)을 정착시키기 위해 한 점 흐트러짐이 있어서는 안 된다.

‘무노동-무임금’ 원칙은 공정규칙의 중요 요소다. 최근 노동계 파업이 진정 국면을 보이게 된 것은 무노동-무임금 원칙이 제대로 지켜졌기 때문이다. 불법파업 주동자에 대한 임금지급으로 노조기금이 소진되면서 노조가 재정압박에 시달리게 됐고, 이로 인해 합리적인 파업만을 지지하는 노동계의 목소리가 커진 것이다.

셋째, 차기 정부는 2010년부터 시작되는 복수노조 허용과 사용자에 의한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에 대한 뚜렷한 원칙을 정립해야 한다. 복수노조는 허용하되 창구 단일화는 반드시 지켜져야 할 원칙이다. ‘복수노조, 복수교섭’은 노사관계발(發) 망국병이 될 것이다.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 원칙도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 영세사업장 노동조합에 한해 제한적으로 보호 규정을 둘 수는 있어도, 사용자가 노조 전임자 임금을 지급하는 관행은 근절돼야 한다. 그래야 노사관계가 바로 설 수 있다.

비정규직 문제 일본 벤치마킹 필요

넷째, 차기 대통령은 임기 시작 직후 비정규직의 정확한 실태 파악에 나서야 한다. 7월1일부터 시행된 비정규직법은 사용자를 과도하게 규제해 편법적 노동시장을 확대시킨다는 거센 비판을 받고 있다. 차기 정부는 먼저 실태를 정확히 파악한 다음,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법 개정에 나서야 한다. 현행 비정규직법에 추가로 비정규직 사용 규제를 가한다면 편법적 노동시장은 더욱 확대되고, 비정규직의 고용 불안과 노사관계 갈등은 더욱 심화될 것이다. 필자는 비정규직 사용 규제를 과감하게 풀고, 견제책으로 근로감독 체계를 강화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비정규직 고용 자체가 문제라는 잘못된 인식을 바로잡고, 우수 비정규직 근로자가 정규직화되도록 노사자치 프로그램 형성을 지원해야 한다.

비정규직 문제는 최근 일본 정부의 비정규직 정책을 벤치마킹할 수 있으리라 본다. 단카이 세대가 대거 퇴직하자 일본 기업들은 이들의 빈자리를 비정규직으로 채우되, 다양한 직능등급제를 통해 우수 비정규직 근로자가 정규직화할 수 있는 통로를 열어뒀다. 이를 통해 인건비 절감 → 생산성 향상 → 일자리 창출 → 안정적 노사관계 유지라는 선순환이 확산되고 있다. 일본은 이를 통해 외국으로 나갔던 일본 기업들이 유턴하는 계기까지 마련했다는 평가를 듣고 있다. 우리의 경우 사용자 규제 → 편법적 노동시장 확대 → 노동계의 법개정 투쟁 → 기업 투자 부진 → 일자리 부족 등의 악순환 고리가 만들어질 수 있음을 차기 대통령은 분명히 인지해야 한다.



주간동아 616호 (p32~34)

강지남 기자 layr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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