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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흥시장 펀드 투자, 맞선 보듯 따져라

작은 변수 하나로 세계 증시 언제든 급변 … ‘묻지마 베팅’보다 긴 안목으로 분산투자를

  • 손택균 동아일보 오피니언팀 기자 sohn@donga.com

신흥시장 펀드 투자, 맞선 보듯 따져라

신흥시장 펀드 투자, 맞선 보듯 따져라
증권업계에서 일하는 성지훈(가명·31) 씨는 올해 초 오랜만에 만난 누이와 저녁식사를 하다가 진땀을 쏙 뺐다. 식사를 하는 내내 “베트남 펀드에 3000만원을 넣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되냐”고 캐묻는 누이를 달래야 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중국 펀드로 짭짤한 수익을 얻은 직장동료를 지켜본 성씨의 누이는 기대수익이 더 크다는 베트남 증시에 투자해 ‘대박’을 터뜨리고 싶어했다.

성씨는 거듭 만류했다. 펀드의 수익구조에 대한 기본적 이해조차 없는 누이가 불안정한 해외 신흥시장 증시에 목돈을 넣겠다고 하는 것이 안타까웠다. 마음 한구석으로 적지 않은 자책감도 들었다.

입소문에 너도나도…특정국가 편중 심각

성씨의 누이처럼 해외 펀드 투자에 큰 관심을 갖는 사람이 많다. 펀드 평가사 제로인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으로 국내 투자자들이 해외 공모 펀드에 넣은 자금은 12조원을 웃돈다. 2005년 말(약 3조8000억원)에 비해 세 배 이상 증가한 액수다.

펀드에 대해 잘 모르는 초보자의 투자 러시는 물론, 국내 펀드를 환매해서 해외 펀드로 갈아타는 움직임도 늘었다. 지난해 6월 1조8000억원이 넘었던 국내 주식형 펀드 투자액의 월별 증가분은 11월에 6000억원 정도로 감소했다.



반면 같은 기간 해외 펀드 투자액의 월별 증가분은 800억원에서 1조3000억원으로 크게 늘어났다. 투자 자금이 지지부진한 국내 증시를 이탈해 높은 수익률을 낸 중국 등 해외시장으로 몰려간 것이다. 지난해 말 대형 중국 펀드의 연초 대비 수익률은 50%에 육박했지만 국내 주식형 펀드의 평균 수익률은 3%에도 미치지 못했다.

수익률만 보고 자금이 옮겨가다 보니 특정지역 쏠림 현상이 심각해졌다.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만 전체 해외 펀드 자금의 4분의 1에 이른다. 인도에도 한국인이 투자한 해외 펀드 자금 가운데 10% 이상이 몰려 있다. 전 세계에서 판매하는 피델리티자산운용 ‘차이나 포커스 펀드’의 지난해 말 기준 한국 판매액은 약 3조원으로 전체 순자산의 70%를 차지한다.

신흥시장 펀드 투자, 맞선 보듯 따져라
신흥시장 펀드 투자, 맞선 보듯 따져라


인기 해외 펀드의 좋은 성적은 해당 국가 증시의 활황에 힘입은 결과다. 중국 상하이지수의 지난해 상승률은 100%를 넘겨 세계 주요 증시지수 가운데 1위에 올랐다. 인도는 43.35%로 5위였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인기몰이의 중심인 신흥 주식시장에는 기대수익만큼 커다란 위험도 존재한다는 사실을 투자자들이 알고 있을지 의문”이라고 지적한다. 롤러코스터와 같은 신흥시장의 변동성에 대해 잘 모르고 있다가 언제 ‘봉변’을 당할지 알 수 없다는 것.

직장 초년생 이동주(32) 씨는 지난해 5월만 생각하면 아직도 가슴이 섬뜩하다. 그는 지난해 초 TV 광고를 보고 인도 펀드에 400만원을 넣었다. 인도가 ‘제2의 중국’으로 성장성이 크다는 장밋빛 전망이 솔깃하게 들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입 후 펀드 수익률은 인도 뭄바이 증시의 대표지수인 센섹스지수 상승률도 따라가지 못했다. 불안한 느낌에 4월 말께 결국 환매를 결정했다. 최종 수익률은 11%로 기대에는 못 미쳤지만 그리 나쁜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이씨가 펀드를 환매한 직후 인도 증시는 한 달간 무려 40%가량이나 가파르게 하락했다. 그는 “6월 중순 다시 반등을 시작했지만 아마 그때까지 기다리지 못했을 것”이라며 “이제 겁이 나서 해외 펀드 투자는 엄두도 못 내겠다”고 말했다.

‘대박’ 노린 베팅… ‘쪽박’ 찰 위험 크다

신흥시장의 변동성은 정치·경제적 불안 요인이 많기 때문이다. 지난해 12월 갑작스런 통화 정책 발표 때문에 하루 16% 폭락한 태국 증시는 신흥시장의 위험성을 보여주는 생생한 실례다. 연초 대비 20%가 넘었던 태국 관련 3개 펀드의 수익률은 이날 폭락으로 순식간에 반 토막이 났다.

국내 자산운용 시장은 이미 10여 년 전에 해외 펀드 돌풍을 경험한 적이 있다. 국내 금리가 긴 하락세를 타던 1996년에 경제개방과 함께 고금리 정책을 선보인 러시아 펀드가 투자자의 큰 관심을 끈 것. 그러나 불과 2년 뒤인 98년 러시아는 ‘대외채무지불유예(모라토리엄)’를 선언했고 주가와 함께 펀드 수익률이 한없이 곤두박질쳤다.

피델리티자산운용 김태우 전무는 “당시 아는 사람을 통해 수억원을 러시아 펀드에 쏟아부었다가 하루아침에 쪽박을 찬 한 개인투자자의 울부짖던 모습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며 “작은 변수 하나로도 세계 증시가 언제든 급변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신흥시장 펀드 투자, 맞선 보듯 따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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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해외 펀드 열풍의 핵으로 떠오른 베트남에 대한 전문가들의 우려도 이런 과거의 뼈아픈 경험에 기인한다. 한국투신운용이 지난해 11월 말 내놓은 베트남 펀드 3종에 한 달간 몰린 자금만 3000억원. 이는 베트남 증시 시가총액의 40분의 1에 이르는 규모다. 포스코 등 국내 유명 기업이 적극적으로 진출하면서 경제성장에 대한 기대가 커진 것이 베트남 펀드의 인기를 높였다.

그러나 한국에서 만들어진 베트남 펀드 3개만으로도 베트남 증시 전체를 뒤흔들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그 증시의 수급구조가 취약하다는 뜻도 된다. 김 전무는 “상장기업이 130여 개에 불과한 베트남 증시가 급락세를 보일 경우 과연 펀드의 현금 환매가 가능할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섞어 투자’로 위험부담 줄여야

모든 펀드의 판매 설명서에는 “과거 수익률이 미래를 보장하지 않는다”고 씌어 있다. 이것은 해외 펀드도 예외가 아니다. 2005년 수익률 랭킹 10위 안에 들었던 국내 주식형 펀드 가운데 지난해 수익률 10%를 넘긴 것은 단 1개도 없었다. 오히려 10개 가운데 6개가 마이너스 수익률을 내 하위권으로 주저앉았다.

2005년 54%로 치솟았던 코스피지수 상승률이 1년 만에 4%대로 추락한 결과다.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등 믿었던 시가총액 상위 기업 주가가 2006년에는 줄곧 약세를 면치 못했다.

해외 펀드 투자 대상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신흥시장의 주가 변동성은 한국보다 훨씬 심하다. 2005년 100% 이상 지수가 상승한 12개국 증시 가운데 3개가 지난해 마이너스 수익률을 냈다. 세이에셋코리아자산운용 김원일 이사는 “최근의 수익률에 현혹되지 말고 긴 안목의 분산투자를 해야 한다”며 “신흥시장과 선진국 등 주가 움직임이 서로 어긋날 가능성이 큰 지역에 투자하는 펀드들을 섞어서 위험부담을 줄여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해외펀드 투자 요령

투자기업 정보 파악 최우선 위험자산에서 30% 넘지 말아야


신흥시장 펀드 투자, 맞선 보듯 따져라
“숲만 보지 말고 나무도 좀 보세요.”

쏟아지는 해외 펀드 문의에 대한 답변으로 요즘 한국펀드평가 우재룡 사장(사진)이 자주 하는 말이다.

“주식형 펀드의 수익은 투자한 기업의 주가 추이에 따라 결정됩니다. 투자자들이 이 당연한 사실을 잊고 있는 것 같아요.”

인도 경제가 아무리 성장해도 인도 증시가 상승세를 타지 못할 수 있다. 인도 증시가 올라도 인도 펀드가 모두 높은 수익을 내지는 못한다. 마찬가지로 ‘베트남 경제의 성장 가능성이 크다’는 소문만 믿고 베트남에 어떤 기업이 있는지 살펴보지도 않은 채 베트남 펀드에 투자하는 것은 너무 막연하고 나태한 판단이라는 것.

펀드 투자자에게는 펀드 판매사에 요구해 투자기업에 대한 정보를 얻을 권리가 있다. 그러나 이것을 알려주는 판매사는 찾아보기 어렵다.

회사원 윤대근(31) 씨는 지난해 9월 서울의 한 은행에서 중국 펀드에 가입했다. 판매 담당자는 해외 펀드 투자 경험이 없는 윤씨에게 대뜸 수익률 그래프를 내밀며 중국 펀드에 집중 투자할 것을 권했다. 윤씨는 상당한 수익을 올렸지만 자신의 돈이 어떤 기업에 투자되고 있는지는 아직도 잘 모른다.

우 사장은 “최근의 인기에 편승한 특정지역 투자 펀드만 마구 쏟아지고 있어 투자자들의 판단을 흐리고 있다”며 “판매 직원에게 요청해 투자 대상 기업에 대한 정보 등을 파악하는 것은 투자자의 권리인 동시에 의무”라고 강조했다.

‘몰빵 투자’의 유혹도 경계해야 한다. 해외 펀드의 투자 비중은 전체 위험자산에서 최대 30%를 넘지 않는 것이 좋다. 5억원의 재산을 가진 사람이 1억원을 주식 등 위험자산에 투자했다면 해외 투자액은 최대 2000만~3000만원이 좋다.

해외 펀드는 어디까지나 투자 포트폴리오를 다양하게 분산하기 위한 수단이라는 사실도 잊지 말아야 한다. 분산투자는 위험부담을 줄이기 위해 다양한 대상에 골고루 나눠 투자하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무조건 몇 개의 펀드에 돈을 조금씩 나눠 넣었다고 해서 분산투자가 잘됐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중국, 베트남, 인도 펀드 등 3가지 상품에 가입한 것은 분산투자 의미가 전혀 없다. 미국 금리와 국제 유가 등 하나의 변수에 똑같이 반응해서 모두 손해가 나거나 모두 이익을 낼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모 아니면 도’가 되는 셈이다.

우 사장은 “해외 펀드 투자는 상호 관련성이 작은 국가 몇 개에 나눠서 투자해야 위험을 줄일 수 있다”며 “한국 주식형 펀드에 이미 가입한 투자자라면 중국 등 같은 아시아 신흥시장보다는 미국, 유럽 등 선진국 관련 펀드로 눈을 돌리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주간동아 570호 (p46~48)

손택균 동아일보 오피니언팀 기자 soh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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