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63

2006.12.05

갱생의 길 걷는 조폭 변신 연기 눈뜨고 고개 숙이고

  • 입력2006-11-30 17: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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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갱생의 길 걷는 조폭 변신 연기 눈뜨고 고개 숙이고
    태초의 꽃미남 배우 중에 김래원이 있었다. 183cm의 시원한 키, 군살 없는 몸매, 남성적이면서도 순수한 미소, 이런 것들이 어우러져 김래원이라는 아우라를 만들어낸다. 김래원은 남성적인 야성미를 갖고 있으면서 동시에 여성의 보호본능을 불러일으키는 이상한 마력을 지녔다. 나쁜 짓을 해도 그가 하면 감싸주고 싶다고, 내가 아는 어떤 여성이 고백한 적이 있었다.

    김래원이 인정을 받기 시작한 것은 ‘옥탑방 고양이’ ‘러브스토리 인 하버드’ 같은 TV 드라마를 통해서다. 그의 영화운은 그리 좋은 편이 아니었다. 비슷한 또래의 청춘 스타였던 배두나 등과 함께 곽지균 감독의 ‘청춘’을 찍었지만, 좋은 결과를 얻지 못했다. ‘어린 신부’는 문근영을 국민 여동생으로 만든 결정적 작품이었지만 함께 출연한 김래원은 별로 기억되지 못했다. ‘미스터 소크라테스’는 김래원의 호연에도 그런 영화가 있는지조차 모르는 사람이 부지기수다. 그럼에도 그는 꾸준히 영화를 찍는다. 이번에는 ‘해바라기’를 찍었다.

    그동안 호연에도 불구 인상적인 작품 못 남겨

    갱생의 길 걷는 조폭 변신 연기 눈뜨고 고개 숙이고
    김래원은 좋은 작품을 남기고 싶어 영화에 애착을 갖는다. 배우로서 그는 욕심이 많다. 그 때문에 그는 작품을 찍을 때 자신의 주장을 강하게 내세운다.

    그는 촬영장에서 자신의 의견과 맞지 않으면 날카롭게 감독과 대립한다. 자기가 옳다고 믿는 부분에 대해서는 끝까지 관철하는 고집을 부린다. 그런데 ‘해바라기’를 보면 달라진 그의 모습을 알 수 있다.



    “이번에는 나 스스로도 많이 달라졌다고 생각한다. 너무 일찍 사회생활을 해서 그런지 욕도 많이 먹고 무시도 많이 당했다. 그런 것이 견딜 수 없었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스스로를 방어하려는 행동이 강했던 것 같다.”

    뭐가 달라졌을까? ‘해바라기’에서 김래원은 살인죄로 감옥에서 10년을 보낸 후 가석방으로 풀려난 조폭 태식 역을 맡았다. 삶의 밑바닥을 체험한 태식은 출소 후 완전히 사람이 달라져서 갱생의 길을 걸으려고 한다. 김래원의 연기에는 배역과 하나 된 진정성이 녹아 있다.

    ‘해바라기’는 조폭과 어머니의 관계를 부각한다는 점에서 ‘열혈남아’와 닮았다. 기존의 조폭영화에서는 어머니가 등장해도 조폭의 어머니였지만, 이제는 코드가 달라졌다. ‘열혈남아’에서 재문 역의 설경구는 자신이 복수해야 할 상대 조폭의 어머니를 만나 모정을 느낀다.

    ‘해바라기’의 태식이 출소 후 처음 찾아가는 곳은 해바라기 식당이다. 식당집 아주머니 김해숙에게 어설프게 인사를 하고 양아들이 되어 그 집에서 함께 산다. 그런데 영화가 흘러가면서 아주머니는 태식이 죽인 조폭의 어머니임이 밝혀진다.

    갱생의 길 걷는 조폭 변신 연기 눈뜨고 고개 숙이고

    ‘해바라기’

    모성애 통해 인간이 바뀌어가는 과정 열연

    ‘해바라기’의 강석범 감독은 “모성애의 무한한 사랑으로 인간이 바뀌어가는 과정을 담으려 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영화는 조폭영화의 관습적 코드를 따라 흘러간다. 진정성은 있지만 새로움은 부족하다.

    그러나 출소한 태식이 해바라기 식당을 찾아가는 도입부부터 김래원의 연기가 달라졌음을 느낄 수 있다. 뒷골목 고등학생들이 주먹을 날려도 자포자기 식으로 얻어맞는 태식에게서 새로운 삶을 살고 싶다는 강렬한 욕망이 흘러나온다.

    “얼마 전 친구와 이야기하다 내가 지금까지 잘못 살아왔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가족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는 계기가 됐는데 그때 만난 작품이 ‘해바라기’다. 나도 태식이 겪은 것 같은 사랑을 하고 싶다.”

    ‘해바라기’는 영화적 완성도와는 무관하게 김래원이라는 배우를 성장시킨 영화다. 김래원이 정말 달라졌다는 것은 촬영장에서 나오는 뒷말 때문은 아니다. 영화 촬영장에는 연출부, 조명, 촬영을 비롯해 기획·제작·분장·코디 등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들기 때문에 배우들에 대한 뒷소문이 자연스럽게 흘러나온다. 스태프들 사이에서 달라진 김래원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지 않을 리 없다. 영화 관계자들의 평가가 정확한 경우가 많다.

    “나는 연기에 욕심이 많다. 항상 역할을 맡으면 먼저 이성적으로 그 캐릭터에 대한 생각을 하고 내가 할 것을 계산했다. 그러다 보니 내가 설정한 캐릭터와 연출 의도가 다르면 감독님들과 부딪쳤다. 그런데 이번에는 나를 비웠다. 무엇을 반드시 채워야만 하는 게 아니라, 무엇을 비우는 것도 아주 중요한 일임을 깨달았다. 작품을 하면서 나도 모르게 태식의 감정과 자연스럽게 동화됐다. 지금까지 연기를 하면서 이런 경험은 처음이었다.”

    TV 출연 홍보사절 … 안아주기 이벤트 열 계획

    ‘해바라기’ 속에서 변화한 김래원의 모습은 관객도 쉽게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진정성은 어떤 설명 없이도 타인에게 전달된다. 비록 내러티브는 조폭영화의 상투적 코드를 따라 전개되기도 하지만, 새롭게 살려고 몸부림치며 끝까지 노력하다 마지막에 복수의 불을 뿜는 김래원의 연기는 서늘한 감동을 준다.

    “이번 작품을 하면서 나는 진실하려고 했다. 나의 진정성이 관객에게 전달됐으면 좋겠다.”

    헐렁한 티셔츠 하나만 입고 순박한 눈빛으로 주변의 모든 박해를 받아들이는 태식의 모습은 지금까지 연기자 김래원이 만들어왔던 도시적 이미지와는 사뭇 다르다. 그 속에는 진정한 연기자로 거듭나고 싶다는 김래원의 열망이 숨어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인간 김래원을 지워야만 한다.

    김래원은 태식의 양어머니로 등장하는 김해숙 선배와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고 했다. 연기에 대해서도 많은 것을 배웠다. 촬영이 끝났지만 김래원은 여전히 김해숙을 ‘엄마’라고 불렀다.

    “엄마한테는 속이야기까지 다 하게 된다. 에둘러 연기에 대한 질문을 하자 엄마는 직접적으로 말하라고 충고해줬다. 엄마가 틀릴 수도 있고 내가 틀릴 수도 있으니까, 같은 동료로 솔직하게 얘기해보자고. 촬영은 끝났지만 어머니와 아들로 지내고 싶다.”

    보통 영화 개봉을 앞두고 홍보 차원에서 출연 배우들이 TV 오락 프로그램이나 토크쇼에 많이 출연한다. 하지만 ‘해바라기’의 배우들은 그런 홍보는 하지 않을 계획이다. 김래원은 말주변이 없어서 그렇다고 말하지만, 배우로서의 자존심이 숨어 있음이 분명하다. 대신 김래원의 안아주기 이벤트는 여러 차례 열 계획이라고 했다.

    ‘해바라기’를 찍으며 감정이 너무 가라앉아 있어서 차기작은 밝은 작품을 할 계획이라고 김래원은 말했다. 그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장르라고 생각하는 로맨틱 코미디로 우리는 변화한 김래원의 모습을 다시 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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