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곱고 세련된 코리아니즘 “원더풀”

中·日 오리엔탈리즘과 격 다른 아름다움 … 이국적 취향 넘어 서구지역 전방위 인기

  • 김민경 기자 holden@donga.com

곱고 세련된 코리아니즘 “원더풀”

곱고 세련된 코리아니즘 “원더풀”
서울 소격동 길모퉁이에 자리잡은 고졸한 한옥 ‘효재’의 문은 늘 열려 있다. 그래서 경복궁에 들렀던 외국인들이 대문 사이로 호기심 반짝이는 눈길을 건네곤 한다.

집주인이자 한복 디자이너인 이효재 씨는 그런 외국인들에게 온돌방에 앉으라고 권한다. 한옥에 들어선 외국인들은 오방색 한복과 한국 전통 이미지 등 ‘코리안 이미지’의 아름다움에 감탄을 금치 못한다. 중국과 일본 중심의 오리엔탈리즘과 분명한 차이가 느껴지기 때문이다.

“중국과 일본이 동양 문화를 대표하게 된 데는 정치, 역사적 이유가 존재하죠. 중국은 압도적인 규모 덕분에, 일본은 서양인들이 ‘미니멀리즘’으로 이해하는 절제미 때문에 눈길을 끌어요. 반면 한국은 삶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만 보이는 ‘깊이의 문화’를 갖고 있어요. 오래 묵은 음식처럼, 이방인이 첫맛에 느끼긴 어렵죠. 최근에 현대적 트렌드의 하나로 그 가치가 알려지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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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복 디자이너 이효재 씨의 작품들. 옛것을 답습하지 않는 새로운 코리안 이미지를 만든다.

그녀는 한국의 기생을 소재로 한 드라마 ‘해어화’를 기획하던 중에 오리엔탈리즘과 일본 문화에 경도된 스필버그 감독의 영화 ‘게이샤의 추억’을 보고 “너무 억울했다”고 말한다. ‘효재’는 내년 뉴욕 맨해튼 소호에 한국의 의식주를 소개하는 매장을 낼 예정인데, ‘코리안 이미지의 상업적 가능성’을 주목한 현지 기획자들의 제안을 받아들인 것이다.

코리안 이미지로 모델 ‘혜박’(본명 박혜림)과 한혜진을 빼놓을 수 없다. 부동산 재벌 트럼프가 운영해서 유명해진 트럼프 에이전시 소속의 혜박은 2005년 뉴욕 컬렉션 무대에 등장하면서 아시아인으로는 처음으로 샤넬과 프라다의 모델로 발탁돼 모델 순위 50위권(31위)에 들었고, 한혜진은 중국계 모델 두 주앙과 함께 구찌의 ‘오리엔탈 헤로인’이란 찬사를 받으며 스타덤에 올랐다.



체격이 서구의 모델들과 비슷한 두 모델에게서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얇은 쌍꺼풀이 특징적인 한국 사람의 얼굴이다. 높은 코에 큰 쌍꺼풀을 가진 연예인들 사이에서 신윤복 그림에서 걸어나온 듯한 혜박과 한혜진 두 사람의 얼굴을 보고 있자면, 우리가 원래 저렇게 생겼었지 하는 생각이 든다. ‘코리안 루킹(Korean looking)’은 그들이 세계무대에서 각광받는 가장 큰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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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 광고비주얼의 모델 혜박. 서구인의 체형과 ‘코리안 루킹’으로 스타덤에 올랐다(좌).뉴욕 메트로폴리탄 뮤지엄숍에서 만나는 ‘코리안 이미지’. 가와코리아 제작(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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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종과 인현왕후를 등장시킨 LG생활건강의 최고가 라인 화장품 ‘후’ TV 광고.

혜박은 한 외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난 아시아 모델이라서 오를 수 없으리라고 생각했던 모든 무대에 섰다. 톱 아시아 모델 이상이 되고 싶다”고 말할 정도로 자신감에 차 있다.

보그코리아의 패션에디터 김은지 씨는 “2005년부터 동양 모델들이 서구 디자이너들에게 환영받기 시작했으며, 혜박과 한혜진은 세계 패션계에 ‘코리아니즘’의 시작을 알린 주인공”이라고 말한다.

혜박을 모델로 캐스팅한 패션브랜드 ‘H·T’의 한은미 씨는 “세계 패션계에서 한국 패션에 대한 이미지를 올려놓았고, 국내 촬영 때는 몰려드는 ‘제2의 혜박’들 때문에 몸살을 앓을 정도”라고 말한다. 혜박과 한혜진 덕분에 젊거나 어린 여성들 사이에 ‘한국적 얼굴’을 선호하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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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엔탈 이미지 2006’의 전시작. 주한 외교관들과 항공사에 ‘코리안 이미지’를 담은 잡지를 납품하던 회사가 소장한 데이터베이스로 기획된 전시다.

서구적 시선이 선택한 오리엔탈리즘이 아니라 한국인의 눈으로 한국 문화의 힘을 표현하는 ‘코리아니즘’은 세계 미술계에서도 인기를 얻고 있다. 이는 아시아 미술이 강세를 보이고 한국 컬렉터들의 파워가 커진 덕분이지만, 한국의 아티스트들이 무엇을 어떻게 보여줄 것인지를 깨달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소나무 사진으로 유명한 배병우의 작품들이 뉴욕 미술시장에서 인기를 얻고 있으며, 아시아 컬렉터들이 모이는 홍콩 크리스티 경매에서도 김덕용 등 젊은 작가들이 주목받고 있다. 배해정 크리스티 코리아 대표는 “한국적인 것만으로 잘 팔릴 수 없다. 방법론에서 한국의 젊은 작가들은 다른 아시아 작가들에 비해 창의적이고 세련됐다는 평을 받는다”고 말한다.

최근 뉴욕 메트로폴리탄 뮤지엄숍에 ‘추녀마루 메모꽂이’와 ‘박쥐문 자개함’ 등을 납품하기 시작한 ‘가와’, 칠기와 자개 등으로 우리나라보다 뉴욕과 파리 등에서 더 많이 알려진 브랜드 ‘비움’ 등은 ‘코리안 이미지’를 상품으로 만들어 성공한 좋은 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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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들이 먼저 ‘발견’한 ‘코리안 이미지’. ‘오리엔탈 이미지 2006’ 전시.

이전의 오리엔탈리즘과 최근 인기 있는 한국적 이미지에서 가장 흥미로운 차이점은 한국적인 것이 이국 취향적 호기심을 넘어서 ‘럭셔리’하고 정신적인 오리엔탈 이미지로 팔려나간다는 사실이다. 삼성전자가 디자이너 앙드레김과 계약을 맺고 화초장 스타일의 고급형 지펠 냉장고를 내놓거나, LG에서 한방약재로 만든 최고가 라인 화장품 ‘후’의 광고에 숙종과 인현왕후를 등장시킨 것은 ‘고급스런 이미지’로서 코리아니즘을 역수입한 경우에 해당한다. 특히 ‘후’의 경우 ‘황조’였던 중국 수출을 염두에 두고 한국의 왕조를 ‘럭셔리’ 이미지로 등장시킨 것이라 더 화제가 되고 있다.

H·T의 한 씨는 “빈티지하고 거친 옷을 입어도 고급스럽고 우아한 아름다움을 잃지 않는다는 것이 서구 명품 브랜드 마케팅 담당자들의 한국 모델에 대한 평가다. 그것이 우리가 혜박을 캐스팅한 이유다”라고 말한다.

곱고 세련된 코리아니즘 “원더풀”

삼성전자가 앙드레김과 디자인 계약을 맺고 최근 출시한 고급형 양문냉장고. 최근 유행하는 ‘코리안 스타일 인테리어’와 어울리도록 디자인됐다.

한국 이미지의 ‘형’과 ‘색’이 가진 아름다움을 보여주겠다는 ‘오리엔탈 이미지 2006’(10월9~30일, 한구국제교류재단 문화센터)전을 조직한 제프리 존스(전 주한미국상공회의소 회장) 씨는 “1971년 처음 한국에 왔을 때 지방의 소도시에 있었기 때문에 한국 이미지의 깊이를 이해하기에 유리했다. 한국인들은 그것이 얼마나 깊이 있고, 여유를 가진 것인지 모른다. 이제 한국인들이 그것을 이해할 때”라고 말한다.

그러나 세계무대의 전면에 나선 아시아에서 전통문화의 이미지를 국가의 문화적 힘으로 홍보하고 상품화하려는 나라는 한국만이 아니다. 한국의 문화관광부가 ‘한브랜드박람회’(9월28일~10월1일, 일산킨텍스)를 열고 한국과 중국, 싱가포르, 베트남 등이 경쟁적으로 국가 차원의 미술 비엔날레를 설립하거나 ‘전통의상 프로젝트’(홍콩)를 벌이는 등 자국 전통의 이미지를 현대문화의 트렌드로 되살리기 위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그러나 오리엔탈 이미지 전쟁에서 승리한다는 것은 한편으로 아시아의 ‘국가 성장 홍보전’의 함정에 빠지지 않아야 한다는 뜻이다. 국가적 박람회보다 한 모델의 캣워크가 더 감동적일 수 있으니 말이다.



주간동아 555호 (p120~124)

김민경 기자 holde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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