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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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 사민당 이유 있는 패배

페르손 수상에 대한 반감·우익 정당의 일자리 창출 공약 주효 … 복지제도 실패 탓은 아닌 듯

  • 최연혁 스웨덴 남스톡홀대학 교수·정치학

    입력2006-09-26 19: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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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웨덴 사민당 이유 있는 패배

    스웨덴 스톡홀름 근교의 울릭스달 유아학교.

    9월17일에 나온 스웨덴의 선거 결과를 놓고 의견이 분분하다. 일부에서는 과중한 세금으로 지탱해온 스웨덴 복지제도의 실패가 사민당 패배의 근본 원인이며, 스웨덴 복지제도의 수정이 불가피해졌다는 진단을 내놓는다. 반면 사민당의 패배는 장기 집권으로 인한 정치제도의 비효율성에 대한 국민의 평가이지, 스웨덴식 복지제도의 실패를 의미하지는 않으며, 우익정권 하에서도 스웨덴 복지제도는 건재할 것이라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사민당 입장에서는 이번 선거가 1920년 이후 가장 낮은 지지율을 획득했다는 점에서 충격적인 사건이다. 이번 지지율은 35.2%로, 1920년의 29.7%보다는 높지만 복지제도 구축기간인 1940년대부터 80년대까지 40%대의 높은 지지율을 유지해왔고, 1940년과 69년 두 번에 걸쳐 과반수를 획득했던 경험에 비하면 현저하게 떨어진 득표율이다. 사실 역대 선거 결과와 비교한다면 이번 선거가 특별히 사민당에 참패를 안겨준 사례라고 보기도 어렵다. 1998년 선거에서 이미 사민당은 과반수에 훨씬 못 미치는 36.4%를 획득해 소수 정권을 구축한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당시 사민당이 이렇게 낮은 지지율로도 정권을 재창출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일까.

    1920년 이후 가장 낮은 지지율

    열쇠는 정책공조 정당인 좌익당과 녹색당의 득표율에 있었다. 사민당은 좌익계열 정당인 좌익당(전신 공산좌익당), 녹색당과의 정책공조를 통해 소수정권을 유지해왔다. 1998년 선거에서는 좌익당의 기록적인 12% 득표율과 4.5%를 얻은 녹색당의 협조가 소수내각 구성에 큰 힘이 됐다. 3당이 전체 의석의 과반수를 획득해 정권을 구성한 것이다.

    2006년 선거에서 사민당은 1998년 선거 때보다 1.2% 떨어진 득표율로 우익보수 정당들에게 정권을 넘겨줬다. 이렇게 된 요인 가운데 하나로, 사민당과 정책공조의 축인 여타 정당들의 부진을 들 수 있다. 좌익당은 5.8%을 획득하는 데 그쳤고 녹색당 또한 5.2% 지지율을 기록해, 3개 정당 전체 득표율이 우익보수 정당들에 비해 1.9% 뒤처졌던 것이다. 사민당의 지지율이 떨어지더라도 정책공조를 유지해온 두 정당 중 하나라도 10%대 지지율을 확보했다면 사민당은 정권을 유지할 수 있었을 것이다.



    반면 신보수당은 2002년 선거 때의 15.3%보다 10.8% 높은 26.1%를 득표해 사민당을 10% 미만으로 따라붙었다. 신보수당이 획득한 26.1%는 1928년에 보수당이 얻은 29.4% 다음으로 높은 지지율이다. 신보수당에게 있어서 이번 선거는 스웨덴 정당사에 남을 만큼 의미 있는 선거인 셈이다.

    사민당의 또 다른 패인으로, 수상인 요란 페르손의 내각 문제에 대한 소극적인 대응을 들 수 있다. 페르손은 선거기간 중 좌익당과 녹색당이 집요하게 요구한 내각 할당에 미온적으로 대응하면서 입장을 명확하게 정리하지 못했다.

    반면, 우익 진영의 수상 후보인 프레드리크 라인펠트를 비롯한 나머지 3개 우익보수 정당 당수들은 공동 선거공약 발표 등을 통해 정책에 승부수를 걸었다. 그 결과 좌익계열 정당들의 공동 선거공약 부재는 상대적으로 명확한 우익보수 정당들의 선거 전략에 비해 열세를 면치 못했고, 선거를 일주일 남길 때까지 15%에 이르던 부동층을 끌어들이는 데도 실패했다.

    4개 우익보수 정당연합은 구체적인 실천사항으로 기업환경 개선을 통한 일자리 창출과 이를 통한 실업 해소, 주택보유세 폐지를 통한 주택정책의 활성화 기조 유지, 부모의 선택권을 보장하는 보육비 지급을 통한 새로운 가족정책 수립, 스웨덴 정치의 핵심 이슈인 핵 발전소 유지를 통한 에너지 가격 인하 등 굵직굵직한 내용을 조율된 목소리로 국민에게 호소했다. 반면 사민당은 “모두 함께 갑시다”라는 구호로 전통적인 단결과 연대를 강조하면서 완전 고용을 정책으로 내걸었다. 구체적으로는 노인을 위한 실버타운 10만 호 건설, 24세까지 치과 비용 전액 무료, 보육비 인하, 연구투자를 일자리 창출의 필수조건으로 정해 GDP(국내총생산의 1%를 연구비로 지원하는 등 총 2조5000억원이 소요되는 복지성 정책을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사민당은 국민의 관심이 가장 컸던 일자리 창출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고, 보조금을 통한 복지제도의 유지만을 약속하며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하지 못했다. 그 결과 사민당의 전통적인 정책 분야인 노동시장, 가족, 주택정책 등의 이슈에서 중도우익 정당연합에 뒤지고 만 것이다.

    고부담-고혜택 복지모델 진지한 연구 필요

    사민당의 패인을 한 가지 더 든다면, 전체 스웨덴 유권자의 20%를 차지하는 스톡홀름에서 표심을 잡는 데 실패했다는 점이다. 이 지역에서 우익보수 정당은 36% 지지율로 제1당의 지위를 차지했다. 사민당은 전통적 표밭인 북부지방에서는 과반수에 육박하는 득표율을 기록했다. 그러나 대도시 실업자를 집중 공략한 우익보수 정당들의 일자리 창출 전략은 스톡홀름 유권자를 대거 흡수해 정권 창출의 밑거름이 됐다.

    이 같은 분석은 이번 선거 결과가 복지제도의 실패에 대한 심판, 혹은 국민의 사민주의에 대한 식상이 주된 요인이 아니라는 점을 말해준다. 사민당의 실패는 장기 집권에 따른 정치체제의 비효율성과 요란 페르손 수상의 정치적 스타일에 대한 반감, 그리고 중도우익 4개 정당들의 공동 선거 전략의 결과였다. 사민당은 여타 유로존(Eurozone) 국가들보다 높은 GNP(국민총생산) 증가율과 낮은 물가상승률을 통계수치로 제시하며, 경제만큼은 자신 있다는 안일한 선거 전략으로 일관했다. 또한 여타 좌익계열 정당들과 연합체제를 구축하지 못함으로써 부동층의 지지를 이끌어내는 데도 실패했다.

    그렇다면 이번 스웨덴 선거의 결과가 한국에는 어떤 의미일까? 먼저, 스웨덴의 복지제도는 1930년대부터 구축돼온 국민생활의 일부라는 점을 우리가 간과하는 게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스웨덴에 우익정권이 들어서더라도 세금과 복지 혜택에 계수조정 차원의 변화가 오는 것일 뿐 보편적 복지에 대한 틀은 깰 수도, 없앨 수도 없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국민의 창의와 선택의 폭을 더 넓혀주느냐, 아니면 국가에 의해 일정하게 재단된 복지 서비스와 삶의 질을 모든 국민에게 똑같이 나눠주느냐의 차이를 놓고 국민은 4년마다 한 번씩 노선을 선택하는 것일 뿐이라고 봐도 좋다.

    만일 우익정권이 세 번 이상 선거에서 승리한다면 복지제도의 상당 부분이 축소 또는 폐지되겠지만, 이 역시 유럽 정치에서 좌익 정권은 언젠가 다시 부활해왔다는 점을 고려할 때 역사의 순환으로 봐야 할 것이다. 한국의 정당제도가 보수-진보, 혹은 성장-분배의 이념적 차이를 바탕으로 재편되지 않는 한, 스웨덴의 복지제도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제2, 제3의 논쟁은 앞으로도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중요한 점은 스웨덴의 이러한 현실에서 우리에게 적합한 교훈을 찾아내는 일이다. 스웨덴은 고부담-고혜택의 사회복지 모델로 성장과 분배의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은 나라라는 점에서 이를 무조건 배척하거나 지지하는 식의 단편적인 자세를 버리고, 하나의 미래 정치모델로서 진지한 접근과 연구가 필요하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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